소설리스트

〈 334화 〉334화 기둥서방 (334/425)



〈 334화 〉334화 기둥서방

수없이 만지고, 맛보고, 온몸으로 만끽한 설미와 아인의 얼굴과 몸매, 그리고 어젯밤 기억을 되새기니 자지가 반응한다.
잡념, 아니지 성스러운 장면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아랫도리에 의해 지배당하는 인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지가 뇌를 재촉하면 나도 모르게 덜컥 “콜”을 외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크흠. 각주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죠. 아무리 이쁘다 한들 파트너로 선택도 못 하는 각주 이야기를 들어서 뭐하겠습니까. 그림의 떡이죠.”

“그림의 떡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 관심은 있으신가 봐요?”

“이쁜 여자 싫어하는 남자도 있습니까?”

[국]은  손으로 받치고 있던 턱을 떼고 숙이고 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국]이 되고 나서 알았는데, 이쁘다고 다 좋아하는  아니더라고요. 너무 이뻐서 싫다는 회원님도 계셨고, 아메리칸 스타일로 육덕진 게 좋다면서 더 이스트에는 다들 말랐다고만 하는 회원님도 계셨어요. 또 처녀 싫고 남자 경험 많은 여자가 좋다는 회원님, 여자는 마흔은 넘어야 한다는  등등 취향이라는 게  제각각이라 맞춰주기 참 어려워요. 옛날에는 어리고 이쁘면 충분했고, 처녀면 금상첨화였다고 하던데.”

“좀 전에는 누구를 선택해도 최고의 여자로 기억에 남을 거라고 자신만만하시더니 갑자기 약한 모습이군요.”

“[무]님은 나이 안 따지고 이쁘면 다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무]님 취향에는  이스트가 딱이죠.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눈이 엄청 높을 것 같아서 각주님 얘기를 꺼낸 거예요.”

[국]이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본 마냥 정확히 짚어내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눈치 빠른 사람이 서비스업 종사자고, 그중에서도 화류계 여자 따라올 사람 없어요. 온갖 인간군상을 상대하며 항상 웃는 얼굴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해서 눈치 없으면  해요. 그래서 더 이스트도 신입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손님 표정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 기분 파악하는 법부터 가르치죠.”

[국]은 아직 모르는 거 같은데 화류계 못지않게 눈치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직종이 하나 더 있다.
연예인 매니저라고, 주위가 온통 갑밖에 없어 눈치와 넉살 없이는 버틸 수가 없는 직업이 있지.

“300년 동안 쌓인 노하우라는 거군요. 무섭네요. 점집 차려도 되겠습니다.”

“[무]님 이라면 흰가면 급도 분명 만족하시겠죠. [무]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그런데 다른 회원님들처럼 그녀에게 푹 빠지지는 않겠죠. 흰가면 정도의 여자는 [무]님 주위에 흔하니까요.”

“그런 것도 제 얼굴에 나옵니까?”

“어머, 부정하지 않으시네요?”

대답 대신 싱글벙글 웃으며 반문하는 [국]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더 이스트가 아무리 회원소개라고 해도 뒷조사도 안 하고 모르는 사람을 알아보지도 않고 들일 만큼 허술한  아니잖아요. 그런 곳이었으면 300년이나 이어져 내려올 수가 없죠. 그러니 부정해서 뭐하겠어요. 조금만 알아보면 제가 무슨  하는지 금방 나올 텐데. 제가 그리 비밀이 많은 사람이 아니니 알아보는데 별로 힘들지도 않았겠죠. ”

언제 뒷조사했냐고 묻지 않았다.
그런  전혀 중요하지 않다.
회원제 비밀 사교클럽인 만큼 출입자에 대한 신원확인은 당연한 거니까.

“맞아요. 어제 [담]님에게 예약을 받으면서 동행인 성함을받아 조사했어요. 정말 금방 끝났어요. 너무 금방 끝나서 싱거울 정도였죠. 연예기획사 BICA ENT 사장. 걸그룹 리드레아, 새별너울, 가수 이시현 소속. 2달 전 속도위반 결혼. 부인이 엄청 이쁘던데 좋으시겠어요.”

좋지, 아주 좋지.
그러나 그녀에게 좋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기방 동각의 후예이자, 상류층 남자들이 일탈의 장인 비밀 사교클럽.
결혼한   달도 안되 여자를 파는 곳에 와서 좋다고 부인 자랑을 한다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을 거다.

무엇보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손님의 부인 얘기를 꺼내는 [국]도 이상했다.
방금 항상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서 눈치가 필수라고 한 여자가, 처음 온 손님에게 손님의 부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너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어 선을 그었다.

“여기서 와이프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군요.”

“양심에 찔리세요?”

“저를 자극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머, 제가 뭘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와이프에 관해 물으십니까? 이게 더 이스트가 자랑하는 모든 손님을 만족시키는 접대입니까? 이거 실망인데요. 신인 아이돌도 당신보다 팬서비스 잘해요.”

“각주 불러서 여기는 직원 관리 어떻게 하냐고 따져도 됩니까?”

“각주님은 다,당신이 감히 볼 수 있는 분이...”

지금껏 얌전하게 대꾸하던 내가 갑자기 비아냥까지 섞어가며 반항적으로 나오자 [국]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손님에게 당신? 멋지네. 아이돌이 팬에게 이 갈면서 당신이라고 했으면 자필 사과문 쓰고 자숙이야. 진짜 신인보다 못하네. 손님 귀한 줄 몰라. 하긴, 말로는 화류계 여자니, 살기 위해 몸을 팔았던 창기의 후예니 했어도, 맥스타워 120층에서 폼 잡으면서 살았으니 진짜 진상들을 상대해 본 적이 없겠지.”

쾅!

“닥쳐, 니가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국]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으로 쾅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을 내려치고는 이까지 드러내고 소리쳤다.

‘이상해, 분위기 좋게 잘 나가다가 살살 나를 긁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더니, 한순간에 이성을 잃고 돌변했어. 더 이스트에서 차기 각주 후보이자 관리자라는 직책을 맡길 정도면 충분히 능력 있고, 냉정한 여자일텐데 이런 작은 도발에 격렬하게 반응까지 하고. 뭔가가 있어.’

[국]이 씩씩거리며 이를 드러내고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무표정하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여기서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300년 전 기방에서 이어져 내려온 상류층 인사들의 사교클럽, 흰가면 여자들, 매난국죽, 각주, 회원, 가명, 비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이러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겠지. 내 무엇이 그녀를 자극한 걸까. 나, 신재윤, 26살 BICA ENT. 사장, 유부남, 예비아빠........내가 이곳의 다른 남자들과 무엇이 다른 거지?’

[국]이 화를 내든 말든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렸을  꿈이 연예인이었지? 뭐였어? 가수, 텔런트, 아이돌, 모델?”

“가, 갑자기 무슨...”

뜻밖의 물음에 당황하는 [국]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내가 왔을 때, 원래는 [난]이 홀에 있고 너는 흰가면으로 있어야  시간인데 바꾼 거지?”

“어, 어떻게 그걸!”

“남강석이 제일 젊은 축에 속하는 이곳에 20대 연예기획사 사장이 온다니 호기심이 생겼을 거야. 그래서 자격이 안 되는 나를 들여보내 준거겠지. 어차피 나는회원가입 자격도 안 되니, 재미 삼아 한번 보고, 10억이나 벌 생각이었을 거야. 그런데 나랑 얘기하다가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 거잖아. 꿈많던 어린 시절의 기억. 주위에서 이쁘다는 소리를 들으며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던 시절이. 그러다가 너는 화려한 연예인이 아니라, 창기들이 모여 만든 동각의 후신, 더 이스트의 [국]이라는 사실에 화가  거야.”

“......”

내가 맞았는지, [국]은 당혹을 숨기지 못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어졌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이쁘다는 소리를 듣는 소녀치고 연예인  안 꿔본 사람 아무도 없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너튜버, 프로게이머 등을 선호하지만, [국]이 초등학생이었던 10년 전에는 연예인이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였다.

더 이스트의 여자들은 연예인보다 낫다고 자부할 정도로 외모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
[국] 말고도 어렸을  연예인 되겠다고 꿈꾼 이들이 한둘이 아닐 거다.

“아까 네가 말했지. 고급 기생들이 동각의 기생들을 멸시하고 경멸했다고. 넌 나를 보고 너도 모르게 창기인 자신과 현대의 고급 기생인 연예인을 대입한 거야. 맥스타워 120층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데 결국 술집 여자에 불과한 자신과 현실에 화가 난거지. [난]이 바꿔주지 않았다면 처음 보는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가면을 쓰고 돌아다녀야 했을 현실에 너무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났겠지.”

정곡을 찔려 변명도  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주저앉는 [국]에게 강하게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말 안 해도 되는 매난국죽 찾기, 각주 이야기한 거, 다 의도적이었잖아. 말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네가 원하는  뭐야.”

[국]은 절망하듯 테이블에 기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얼굴을 감싼 손이 그녀의 눈부분을 가리고 있던 나비가면을 반이상 들려 올라가 얼굴이 드러났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국]을 재촉하지 않고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지켜보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절망에 가득한 [국]의 목소리가 싸늘함이 가득했던 적막을 깼다.

“가슴, 거기 다 보여주고 창피한 꼴로 돌아다니기 싫어.  몸을 징그러운 남자들한테 보여주기 싫어. 어떤 늙은이가 매난국죽하고 자고 싶다며 나를 찾을까 봐 무서워. 여기서 나가고 싶어.”

피로 연결된 조상도 아니고, 역사고 뭐고,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 남 일이야.
긴 역사가 어쩌고, 전통이 저쩌고 해도,  파는 걸 좋아하는 여자가 어딨겠어.

옛날 동각의 기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이것 외에는 다른 길을 못 찾겠으니, 하루, 한 달, 일 년, 십 년이 지났고 이것이 쌓이고 쌓여 300년이 흐른 거지.

그녀의 일에 끼면 결국 다 내가 뒤집어쓴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국]에게 묻고 말았다.

“내 능력으로는 [국] 너를 찾을 때까지 매난국죽 찾기를  한다는 건 너도 알 거고, 널 여기서 빼내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한순간에 정신이 무너져  말이 안 들리는 것인지, 아니면 대답할 여력이 없는지 얼굴을 감싼 채 아무 반응도 없는 [국]에게 소리쳤다.

“말해!”

내가 소리치자 [국]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고는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가, 각주님의 기둥서방이 되면 돼. 각주님의 기, 기둥서방이란 건, 곧 더 이스트의 기, 기둥서방이야. 더 이스트의 여, 여자는 모두 그, 그의 말을 들어야 해. 몸을 파는 것도, 여, 여기서 나가는 것도 기,기둥 서방이 결정할  이,있어.”

각주라는 호칭, 한 글자 가명처럼 동각의 흔적이 여기에도 남아있었다.
나 참, 기둥서방이 뭐야. 기둥서방이.
어감이 너무 안 좋잖아.

[국]이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국에게 물었다.

“더 이스트의 문을 닫게 하는 것도 가능해?”

만약 내가 기둥서방(으으, 이 호칭, 정말 바꾸고 싶다)이 된다면, 누구는 구해주고, 누구는 몸을 팔라고 할 생각 전혀 없다.
아예 더 이스트 간판 내리고,  이스트의 재산을 나눠  출발 하던지, 밤을 벗어나 양지로 나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게 하면 된다.

“그, 그건 나도 몰라.”

“가능해요. 기둥서방이 원한다면.”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국]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나도 재빨리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장식이 화려한 하얀 나비가면과 웨딩드레스와 같이 새하얀 엠파이어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있었다.
하이웨이스트에서 길게 뻗은 실루엣이 족히 170은 넘어 보이는 큰 키에 어울려, 그녀가 서 있는 문 뒤에서 들어오는 홀의 커다란 샹들리에 빛과 어우러져 마치 어두운 밤을 몰아내기 위한 강림한 빛의 여신처럼 느껴졌다.

“각주님...”

저 여자가 각주구나.

각주가 빛을 등지고 있고, 내가 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어 인상착의가 명확히 구분이  되었으나, 각주가 우리에게 다가오자, 그녀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온다.
새하얀 피부와 웨딩드레스와 같은 순백의 엠파이어 드레스와 대조적인 흑단처럼 윤기 나는 검은 머리가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 좌우로 흔들리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나비 가면 밑으로 드러나 그녀의 붉은 입술은 작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고,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은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맑고 투명했다.

그녀를 본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와 씨, 존나 이뻐. SS급 인정. 쌉인정.’

나비가면으로 얼굴을 반을 가린 각주를 보고, 군대에서 넋놓고 여돌들 볼  이후 오랜만에 쌉인정 소리가 나와버렸다.

“별실 CCTV가 꺼져 있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와봤더니 이런 일이 벌어졌을 줄이야. [국],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지 알지?  지금부터 [국]이 아니야. 더 이스트에서 추방하고, 외국으로 팔 거야. 빨리 끝날 수 있도록 아시안 좋아하는 옐로우 피버 많은 곳으로 팔아줄게. 5년 정도 구르면  모두 청산하고 돌아올 수 있겠지. 그때까지 멀쩡하다면.”

마치 기분 좋게 낮잠을 자다가 누군가 깨워서 일어나 살짝 짜증이 난다는 듯한 말투로 [국]을 지옥으로 내던지는 각주를 보며 소름이 돋았다.

“잠깐.”

“회원님도 더 이스트 내부 일은 참견 못 합니다. 오늘 처음 방문한 이름도 없는 [무]님은 가만히 계세요.”

나를 째려보는 매서운 눈초리와 만년설 같은 차가운 목소리가 내 가슴을 싸늘하게 만들었지만, [국]이 한순간 이성을 잃은 대가로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팔을 뻗어 [국]과 각주 사이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더 이스트의 기둥서방이란 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지?”

“전 재산 전부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 파산하고 싶지 않으면 좋게 말할 때 가만히 있어요. [국]이 먼저 잘못했으니 [무]님은 넘어가는 거지, 안 그랬으면 규칙을 어기고 파트너 선택 없이 매난국죽에 사적으로 접근한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겁니다.”

“방법이나 말해.”

위협에도 내가 물러나지 않자, 다시금 나를 노려보던 각주는, 나를 째려보던 각주는 눈의 힘이 풀어지고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각주는 [국]에게서 몸을 돌려 나를 보고는 팔짱을 끼고 감추는 기색 없이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큭, 좋아요.”

하고 코웃음을 날리고는 기둥서방 (만약 내가 기둥서방이 되면 가장 먼저  기둥서방이라는 호칭부터 바꿀 거야!!!) 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략 150년 전쯤,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을 무렵, 위세를 떨치던 어떤 가문이 동각을 탐냈죠.뒷세계에서 권력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100년 넘게부를 쌓아온 동각을 삼킨다면 누구도자신들을 넘보지 못할 것이라 여긴거죠. 그래서 동각이 쉬는 날, 손님이 없을 때를 골라 동각을 습격하여, 각주를 협박해 동각을 넘긴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정보를 입수한 당시 각주께서는 자신들은 천하디천한 창기라서 아랫도리가 실한 이라면 상놈이든 양반이든 누구든 동각의 기둥서방으로 모시고, 동각을 전부 그에게 바치겠다며 소문을 냈고, 전국팔도의 자신 있는 남정네들이 전부 모여들었죠. 각주는 모여든 이들에게동각의 규칙을 내세워 값만 제대로 치르면 얼마든지 도전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님이 [국]에게 들었는지 모르니 설명하자면, 동각의 기생은 오직 한 명에게만 몸을 팔며. 기생 한 명의 몸값은 당시 저택 한  값이었습니다. 각주는 도전하되 끝까지 성공하면 동각의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그러나 실패하면, 그때까지 건든 기생들의 몸값을 두 배로 받겠다고 했죠. 동각은 도전자들과 이를 구경하는 이들로 한동안 바글바글했기에, 기습적으로 쳐들어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려던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죠.”

“더 이스트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남자들의 도전도 실패했단 거군.”

“네. 경상도의 만석꾼 한 명이 파산하고, 평양의 작은 상단 하나와 한양 경상의 점포 8개가 동각으로 넘어갔으며, 전국 각지의 저택 십수 채가 동각의 것이 되었습니다. 급한 위기를 벗어난 동각은 100년간 모은 모든 재산과 도전으로 번 돈, 그리고 모든 연줄을 동원해 동각을 탐내던 가문의 경쟁가문을 지원했고, 동각의 지원을 받은 가문의 여식이 세자빈에 책봉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억이 난다.
외척이 심하게 날뛰던 시대라서 세도시대라고 부른다고.
그 뒷면에 동각이 얽혀 있었다고 하니 정말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 게 실감난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고,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다’ 라는 말에 1/3 정도 들어맞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300년 역사와 전통이란 게 창기들이 모인 기방에서 시작되어 군사정권 시절의 요정을 지나 비밀사교클럽이라는 이름의 성매매 퇴폐클럽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게 좀 깨지만.

“동각을 위기에서 구해낸 각주의 약속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죠. 도전은 간단하고 명쾌합니다. 더 이스트의 모든 여자랑 자고 전부 만족시키면 됩니다. 가장 마지막이 저죠. 제가 항복을 선언하면, 더 이스트와 더 이스트의 모든 여자, 전 재산 전부 당신의 것이 되며, 실패할 경우, 그때까지 당신이  여자들의 값을 두 배로 치러야 합니다.”

긴 설명을 끝내고, ‘어때? 무섭지? 못 하겠지?’라는 듯 비웃는 각주를 보며 생각했다.

어? 해볼 만한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