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화 〉366화 어둠 1
지수가 부른 쪽으로 가보니 그곳은 유독 나무가 울창했고, 기다란 봉에 달린 커튼이 문처럼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 보니 가려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단둘, 혹은한팀이 노는 프라이빗 룸 같은 곳이었다.
수조처럼 속이 훤히 보이는 작은 풀이 있었고, 옆에는 소파, 테이블 있었으며, 놀다가 그대로 마지막까지 가능하도록 침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마침 아침 조회라도 하는 듯 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예비생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제복이나 교복처럼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이외였던 건 맥스타워의 더 이스트는 사교 파티 콘셉트로 모두 서양 드레스 차림이었는데, 여기는 동각원이라는 이름답게 한복 스타일이었다.
최근 여러 학교에서 도입하는 한복 스타일 교복과는 달랐다.
패셔너블하고 맵시를 살린 스타일리쉬한 개량한복으로 하이웨스트 스커트마냥 허리까지 올라오는 한복형 치마에, 장저고리 상의를 치마 속으로 넣었다.
저고리는 고름이 없는 덮는 형태였고, 대신 치마허리 부분에 매듭 끈이 있어. 허리를 전통한복의 저고리 매듭 형태로 동여매, 날씬한 허리가 더욱 강조되었다.
저고리였다면 고름이라 불렀을 왼쪽으로 늘어진 매듭 끈의 끝은 치마 밑단 조금 윗부분까지 내려와 있었고, 오른쪽 허리에는 키링처럼 작은 노리개를 차고 있었다.
상의 색깔은 모두 옅은 분홍빛이 드는 흰색 상의였는데, 치마 색으로 나이를 구분하는지 노랑, 빨강, 녹색, 파랑, 검정 다섯 가지였으며, 교육생으로 보이는 5명은 치마도 상의와 같은 색이었다.
치마가 좀 짧은 거 같긴 했어도, 동각이라 그래서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학교 평범한 여학생이 교복을 줄인 정도와 비슷했다.
이 외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여자들 다섯이 있었는데, 교관, 강사들인 것 같았다.
이들의 복장은 보통 학교 선생님들처럼 평범해서 오히려 가장 놀랐다.
예비생, 교육생을 완전히 세뇌하고 조교 하는 주역들이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색기가 줄줄 흐르는 그런 여자들일 거라 상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복장도 보통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처럼 평범했고, 특별히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물론 여기 기준으로 그렇다는 거다.
예비생, 교육생, 그리고 평범한 차림 강사, 교관들은 전부 더 이스트 출신들이라 밖에 나가면 다들 남자를 몰고 다닐 미소녀, 미녀들이다.
괜히 매니저들이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외친 게 아니다.
”저희를 위해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동각원장 이희연, 서방님과 사모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신재윤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연이에요.“
선생으로 보이는 다섯 여자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30대 초반 정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 대표로 인사했다.
겉보기에 30대 초로 보인다고 30대 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기는 더 이스트, 동각이다.
실제 나이는 본인 입으로 듣기 전까지 모른다.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치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 동각원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각주로부터 서방님과 영부인께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동각원을 둘러보신 소감은 어떠셨나요?“
영부인이란 호칭에 나는 슬쩍 누나를 보았고, 누나도 조금 껄끄러웠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곁눈질했다.
원래 영부인이란 말은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3인칭으로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
이들이 나를 극진하게 생각하니 누나를 영부인이라 부르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영부인 하면 대통령 부인을 칭하는 말로 거의 고유명사화 되다 보니 약간 거북하고 어색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네. 너무 좋더군요. 염치없지만 준비되는 대로 이사 오기로 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각원장 뒤편에서 작게 ”꺄악“ ”어머“ ”와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예비생, 교육생, 강사 할 것 없이 눈을 마주치고 소곤거렸다.
저런 모습을 보니 여기 분위기가 엄하거나 경직된 건 아닌 것 같다.
원장은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나에게 고혹적인 미소를 보이며 함께 손을 가슴에 올리고 허리 숙이며 말했다.
”저희 동각원 일동 모두 가까이에서 서방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 몹시 기쁩니다. 서방님과 영부인, 그리고 장차 태어날 아기씨께서 한치의 불편함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수고 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평소처럼 지내세요. “
”저희의 모든 것을 바쳐 성심성의껏 서방님을 모시는 것이 동각과 동각원에 적을 둔 모든 이들의 기쁨이며 삶의 이유입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막상 나보다 연상인 사람이 왕을 대하는 것처럼 극도로 공손하게 나오니 엄청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방금 전에 내 위치에 적응하고 받아들이기로 다짐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서방님. 영부인.“
시간이 얼마 없어 동각원장과 몇 마디 주고받고는 다른 이들과는 대화를 나누지는 않고 악수 한 번씩만 하고 오늘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짧은 만남을 마치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
잔뜩 인상을 쓰고 폰을 꺼내는 누나를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큭, 영부인“
”왜 불러요. 서방님?“
좀처럼 듣기 힘든 짜증과 신경질 섞인 목소리와 함께 누나가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실실 웃으며 물었다.
”어딜 그리 바쁘게 전화하시오?“
”여진이한테. 영부인 말고 다른 거로 불러 달라고 하게. 좋은 말이라는 거 아는데 너무 나이 들어 보여.“
번호를 찾아 통화를 누른 누나가 귀에 전화를 대고 여진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린다.
”언제는 나이 들어 보이고 싶다며?“
”학생 소리 듣기 싫다고 했지, 내가 언제 나이 들어 보이고 싶다고 했어. 여보세요? 여진아 나야. 지연이. 부탁이 있는데.....“
미친개, 마녀 소리도 아무렇지 않아 했던 누나지만 영부인만큼은 못 참겠나 보다.
이만큼 여자에게 나이는 매우 예민한 거다.
몸무게 다음 수준이다.
어쨌든 같은 여자로서 누나의 마음이 공감됐는지 누나의 어필이 받아들여져 이날 이후 누나의 호칭은 영부인에서 부인으로 바뀌었다.
●
”여기를 또 오게 될 줄이야.“
강남의 화려한 번화가 뒤의 어두컴컴한 주차장에 선 나는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지키는 철문을 보았다.
샤이닝 스타.
세라, 은주, 예린, 서진, 서하를 처음 만난 곳이며, 세라가 우리 회사가 이적하고 두 번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
VIP만이 출입한다는 샤이닝 스타의 비밀 출입문 앞에 서 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어둠을만나기 위해서다.
오민정의 부탁을 받아 지수를 통해 여진에게 어둠을 만나겠다는 뜻을 전했고. 여진은 그녀만이 알고 있는 방법을 통해 오늘의 약속을 잡았다.
그래서 박병식 피디와 그 일당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돕기로 한 나 이사님이 함께 온 것이며, 기둥서방의 부인으로 단번에 더 이스트에서 높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 누나도 어둠을 직접 만나보겠다며 온 것이다.
여진은 더 이스트의 각주답게 단순히 약속을 잡아준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오늘 만나기로 한 여자의 이름, 직책, 나이, 성격 등 자세한 정보는 물론 오늘 나를 수행하고 경호할 사람으로 올백 머리 강종철 실장을 보냈다.
샤이닝 스타의 전 주인이었던 은주는 세라가 내 곁이라는 몸을 맡길 장소가 생기자마자 급매로 샤이닝 스타를 팔았고, 공교롭게도 샤이닝 스타를 사서 새로 주인이 된 사람이 바로 오늘 내가 만나기로 한 어둠이다.
”사장님께서 도착했다고 연락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불편하시더라도, 저 안에서만큼은 하대해주십시오.“
끄덕.
강종철 실장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누나와 팔짱을 끼고 그의 뒤를 따라 샤이닝 스타의 문으로 향했다.
내 뒤로 지수와 나 이사님이 섰다.
사내들에게 다가가 강 실장이 나지막히 말했다.
”은시(隱柿)의 주인이 오셨다.“
은시?
처음 듣는 말에 아리송했으나, 사내들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문을 열었다.
”좀 어두워 발 조심하고, 나 꽉 잡아.“
”응.“
주인이 바뀌었어도, 시선을 피하기 위한 VIP 출입문 계단의 희미한 푸른 빛 조명은 여전했다.
전처럼 계단을 내려가 다시 오르고 복도를 돌아 한번 더 계단을 오르자 예전에 왔었던 VIP룸 복도가 나타났다.
사전에 어느 방에서 보기로 약속이 돼 있었는지, 강 실장은 주저 없이 복도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먼저 방에 들어간 강 실장 이어 방을 들어서자 전면 유리를 등지고 서서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던 한 여자가 몸을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밤으로 돌아간 여자라길래 홀복 차림에 화려한 머리 장식과 화장을 상상했는데, 명품임이 분명한 고급스러운 화이트 투피스 정장에, 살짝 컬이 들어간 머리는 한쪽으로 넘겨 앞으로 내린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지금 처음 만나는 여자지만, 지수를 통해 더 이스트에서 정보와 사진을 받았기에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저 얼굴, 저 몸매, 저 피부가 37살이라는 거지?
만나는 여자마다 전부 저러니 나도 이제 뭐가 평범한 거고, 뭐가 특별한 건지 헷갈려.
”그대가 우미현인가?“
”그렇습니다. 본래 문 앞에서 맞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우미현이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 모두 자리에 앉았다.
문 쪽으로부터 나 이사님, 누나 나 지수가 앉았고, 반대편에는 우미현만이 앉았다.
강 실장은 소파에 앉지 않고 나 이사님 옆에 섰다.
내 맞은편에 앉은 우미현은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모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입가에 옅은 미소와 두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초딩 시절부터 덕질한 아이돌을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한 후에야 만난 팬과 같은 모습.
오민정이 했던 더 이스트보다 어둠이 더 기둥서방 말을 잘 들을 거란 말에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물으시겠습니까? 박병식, 임상욱, 유성, 전현우에 대해 물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어둠이 된 이유부터 물으시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동각의 뜻을 저버리고 어둠이 되어 명부에서 제외되었으면서도 마치 동각의 여자인 양 행세하는 이유부터 물으시겠습니까?“
과시인지 자랑인지 아니면 기선제압용인지, 내가 묻기도 전에 내가 원하는 걸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묻는 우미현에게 검지를 좌우로 까딱까딱 움직이며 전부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걸 묻기 전에 그대에게 한가지 확인을 해야 해. 그래야 나도 무슨 질문을 할지 결정할 수 있어.”
“말씀하세요.”
“지금 이 만남, 그대에게는 정보가 필요한 손님과의 미팅인가, 아니면 기다렸던 순간인가?”
내 질문에 우미현은 설마 이런 것을 물을 줄은 몰랐는지 흠칫 당황했다.
“....제 대답에 따라 질문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녀는 즉각 대답하지 못하고 반문했다.
우미현이 기둥서방을, 나를 특별하게 생각지 않는다면 반문할 여지도 없이 고르기만 하면 되는 쉬운 질문.
대답이 아닌 반문 했다는 것만으로 오민정이 말한 대로 어둠이 비록 규칙을 깨고 밤으로 다시 돌아오긴 했어도, 더 이스트를 완전히 저버린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만약 손님과의 만남이면 난 박병식, 임상욱, 유성, 전현우에 대해 물을거야. 그리고 받은 정보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곧바로 일어서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러나 기다렸던 만남이라면...”
“기다렸던 만남이라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소문 이상이었군요.“
”내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좋은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물어보기 겁나네.“
여유롭게 웃음 짓는 나에게 우미현도 미소로 응수했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좋아.“
더 이스트가 준 자료에서 우미현은 어둠의 행동대장, 대변인 같은 여자라고 했다.
어둠이 더 이스트처럼 조직화되어 있는 건지는 확인 되지 않지만, 적어도 어둠 간 네트워크가 있는 건 확실하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미현이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나 이사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오민정 이사가 말한 대로라는 건가?“
”네. 제 말을 아주 잘 듣는다는거죠.“
”오늘그 엄청난 집을 선뜻 내어주는 걸 보면서도 관사로 넘어가고, 자세한 건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안 되겠군. 어둠이 제발로 회사에서 나간 이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직장이랑 비유하면 사직했다는 건데, 사직한 사람이 처음 만난 전 직장의 새 사장에게 설설 기는 건 말이 안돼. 자네 단순한 사장이 아니지? 정확히 뭐야. 신이라도 되나?“
”음...그게....“
”보호자에요.“
자기도 모르게 정답에 근접한 나 이사님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는 사이 누나가 나 대신 답했다.
“보호자?”
“정확히 말하면 양부모나 법정대리인 같은 거죠. 나 이사님도 보면서 느끼셨겠지만, 이들은 엄격한 규칙과 단단한 결속으로 묶여 있어요. 그것이 300년이나 이어진 원동력이 되었지만, 부를 쌓고 힘이 생겼어도 변화, 즉 밤일을 그만둘 수 없게 하는 족쇄가 되었죠. 보호자 없이 300년간 배운 대로만 살던 이들을 재윤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다른 길로 이끌어 주는 거죠.”
“집 나간 아이도 부모 말은 듣는다는 건가?”
“부모가 싫어서 나간 게 아니라 부모가보고 싶어 나간 거니까요.”
전설 속의 대상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순화된 누나의 설명만으로도 다른 눈으로 나를 보는데, 그 전설이니 뭐니 하는 것까지 알려줬으면 사이비 교주 보는 눈으로 봤을 거다.
이때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우미현이 돌아왔다.
그리고 우미현의 뒤에 인자한 인상의 할머니가 들어왔다.
저 사람이 어둠의 대모나 주인같은 거나 보네.
할머니가 들어오자 예의 바른 청년답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 이사님, 누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각주님!”
“오랜만이구나. 잘 있었니?”
우미현과 함께 온 할머니를 보고는 일어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경악하는 지수에게 친손녀 대하듯 자상하게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각주야?”
“네, 80년대 각주셨어요.”
너무 놀라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따지듯이 물었다.
“각주님이 왜 어둠이랑 같이 계시는 거예요?!”
“왜긴, 어둠을 만든 장본인이니 같이 있는 거지. 맞죠?”
“호호. 과연 대단하십니다. 저 혼자 만든 게 아니긴 해도 상당 부분 관여했으니 장본인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죠.”
“이럴 수가....”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나 이사님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비사(祕史)가 분명할 테니, 경악을 넘어 충격을 받은 듯한 지수는 잠시 제쳐두고 나 이사님을 불렀다.
“나 이사님 정말 죄송하지만, 나가계셔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아쉬움도 보이지 않고 나 이사님은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방에 계시면 됩니다. 기다리기 지루하시면, 창밖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 고르세요. 누구든지 대령해드리겠습니다.”
주인이 바뀌고 세라가 없어졌어도, 샤이닝 스타는 여전한 것 같았다.
전현우를 비롯한 그 인간들이 여전히 뺀질나게 여기를 드나드는 이유가 이거였어.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우미현의 제의를 나 이사님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녀는 잠깐 놀라고는 이내 미소지었다.
“아, 그러셨군요. 제가 실례했습니다. 사과의 의미로 좋은 와인 한 병선물하겠습니다. 지금 드시지 않고 댁에 가져가셔도 괜찮으니 사양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적당한 거절은 미덕이지만, 과한 거절은 비례(非禮)기에 나 이사님은 사과의 의미로 준다는 와인마저 사양하지는 않았다.
“강 실장 내 오랜만에 만나 이런 말 하기 미안하네만 자네도 나가 있게. 혼자는 심심할 테니 가서 어울려 드리게.”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보는 강 실장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강 실장은 나와 할머니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우미현, 전대 각주, 누나 나 지수 5명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