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396화 잔챙이들
* * *
”으윽.“
몇 시간 만에 구속에서 풀리고 의자에서 일어나자 신음성을 흘리고 휘청였다
검은 양복들이 양옆에서 부축하지 않았다면 곧바로 쓰러졌을 것이다.
현우는 재갈이 풀렸음에도 거친 숨만 내쉴 뿐 말 한마디 없었다.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어느 방이었다.
검은 양복들은 그들을 소파에 전부 던져놓았다.
”무, 물 좀.“
”.....“
묶여 있는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해 너무 목이 탔다.
간절하게 물을 달라 했으나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우르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소파 앞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들이 좌우로 벌어졌다.
남자들이 비켜선 자리에는 편안한 의자에 앉은 지연이 있었다.
”제수씨. 제발 물 좀 줘요. 옷이나 담요도...“
아까는 춥다는 기분이 전혀 없었는데, 이 방은 난방이 안 되는지 너무 추웠다.
부끄러움, 창피함 때문이 아니라 추위 때문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
퍽
”아악!“
유성이 지연을 부르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의 정강이를 찼다.
일명 쪼인트를 깐 것이다.
”오냐오냐 하니까 우습게 보이나? 지금 네가 부인께 부탁할 처지인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지금껏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사람들이 폭행하자 현우와 상욱이 더욱 기가 죽고, 유성도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만지며 정신없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씨이, 부탁 좀 한 거 가지고 명령은 무슨. 그리고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으면 상처 하나 없이 집에 보내준다고 했으면서.....’
많이 억울했으나 약속을 운운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진짜로 상처가 없기도 했고.
맞을 때는 되게 아팠는데, 멍도 안 들었다.
심지어, 몇 시간이나 꽉 묶여 있었는데, 팔, 다리 몸 등에 묶였던 흔적이 전혀 없다.
이들이 상당한 기술자라는 게 확실해졌다.
”임상욱, 유성, 전현우.“
조용히 지켜보던 지연이 입을 열었다.
”부인이 부르시는데 재깍재깍 대답 안 하지?!“
”네. 네 죄송합니다.“
그들이 미적거리자 단번에 남자들의 인상이 험악해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여러분이 섹스를 아주 좋아한다고 해서 준비했는데, 어땠나요? 원 없이 쌌죠?“
”예예, 고맙습니다.“
”배, 배려 감사합니다.“
”네.“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심정을 꾹 참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까.
”그럼 여러분도 저에게 보답을 해줘야겠죠? 아이돌 메이킹에서 벌어지는 일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박병식을 비롯한 스태프 그리고 아이돌 메이킹에 대해 전부 말하세요.“
”아이돌 메이킹이면....?“
검은 양복들의 인상이 험악해지자, 앞다투어 그들이 아는 모든 것을 내뱉기 시작했다.
지연은 옅은 미소를 짓고 눈을 반짝이며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머리에 담았다.
●
집에 새벽 5시쯤 들어왔다.
어제저녁 7시 반에 아이돌 메이킹 녹화 끝나고 샤이닝 스타에 9시쯤 도착했다.
임상욱, 유성, 전현우를 납치(...)해 세트장에 도착한 게 10시 반.
11시에 시작해서 3시 반쯤에 끝났다.
어제 내가 엄청 오래 섹스해서 다들 질렸다는데, 계산해보면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키스하고 애무하고 오랄 받은 시간 빼면 겨우 4시간밖에 안 했다.
억울하다.
유미와 소민은 내년 1월 정식으로 BICA ENT. 배우 파트가 신설되기 전까지 동각원에서 지내기로 했다.
동각원에 실제 연기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어차피 우리도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동각원으로 이사할 예정이라, 동각원에서 지내며 연기교육을 비롯해 각종 교육을 받기로 했다.
나연은 당분간 옛 친구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다가 동각원에 생길 병원의 약사로 일하기로 했다.
내년 2월부터 아이가 줄줄이 태어날 텐데 주치의에 약사까지 있으니 든든하다.
정오쯤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누나가 어제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걔네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어. 말 그대로 잔챙이들이었어. 중국에 성 상납하는 것도 모르고, 뒤에 송윤석이 있는 것도 몰라. 문제의 나프뮤직, 로망엔터, 펜스미디어 전부 댄스팀 수준의 행사용 그룹 만들 목적으로 아이돌메이킹에 참가한 건 줄 알아. 박 피디나 그들한테 뇌물 주고 성 상납한 것도, 인지도 높아져 행사 잘 잡히게 방송 분량 따려고 그런 줄 알아.“
”진실을 하나도 모르면 그놈들이 포커스 엔터는 왜 경계한 거야?“
”포커스 엔터가 송유명 회장 세컨인 오민정의 지시로 아이돌 메이킹에서 벌어지는 뇌물, 성 상납 건을 파고 있는 줄 알고 있거든.“
그들이 해외 매춘알선을 몰랐다 해도 성 상납, 뇌물만으로 은팔찌 자격요건은 충분하다.
그러니 이를 조사하는 포커스 엔터를 경계한 것이 당연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박병식한테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했다는 거네.“
”실체만 모르지 그들도 돈 받고, 성 상납받았으니 결국 똑같은 놈들이지.“
”박병식한테 이를 걱정은 안 해도 되지? 박병식 귀에 들어가면 송윤석도 알게 되잖아.“
”만약을 대비해 감시할 사람 붙였고, 쓸데없는 소리 하고 다니면 어제보다 훨씬 뜨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겠다고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입 다물 거야. 다음에 내가 그들을 초대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수가 아니라 공을 부른다고 경고했어.“
어제도 결코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는데, 더 심하게 한다니.
으으, 상상하기도 싫어.
이번에 당한 일도 한동안 악몽에 시달릴 레벨인데, 다음은 더하다.
제발 그들이 정신 차려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빌었다.
”대신 말 잘 들으면 상을 주겠다고 했어. 전현우는 댄스 스튜디오 담보 잡힌 거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임상욱은 EF뮤직 차기 걸그룹 데뷔할 때 민정이 곡 하나 주기로 했어. 유성은 올해 지금 회사랑 계약 끝나는데, K2미디어랑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어. 처음에는 더문엔터로 불러준다고 했는데, 내가 더문엔터 팀장이라 자주 볼 거라고 하니까 경기를 일으키더라고. 그래서 K2로 바꿨어. 유성이 행실은 별로여도 실력은 있으니 정신만 차리면 K2에 이득이 될 거야.“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본업에 충실하도록 도와주기로 했구나.“
아무래도 곧 엄마가 될 거라 유해진 건가?
미친개, 마녀라 불릴 정도로 엄한 트레이너인 누나가 웬일로 주의와 계도 정도로서 마무리 한 듯했다.
불만이라는 건 아니다.
사실 그들이 나를 엿 먹일 계획을 짜긴 했어도, 막상 제대로 한 것도 없고 누나한테 호되게 당하기만 했다.
어제 풀만큼 풀어서 딱히 남은 감정이 없다.
”응, 니네 돈으로 놀면 술집을 가건, 클럽을 가건 누가 뭐라고 안 하니, 다른 사람 등쳐 먹을 생각 말고 열심히 살라고 했어. 내 생각대로라면 앞으로 클럽 근처에도 안 갈 것 같지만.“
누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묘한 미소를 짓자, 뭔가 수를 썼다는 걸 알아챘다.
역시나 어제 누나 계획이 뭔가 어설퍼 보였는데, 그럴 리가 없지.
어제의 기억을 되짚어 특이했던 사항을 떠올렸다.
”음. 알았다. 어제 누나가 봉사부라고 한 남자들. 단순히 그들을 괴롭히려고 부른 게 아니라 딴 속셈이 있었던 거지?“
”클럽 갔다가 우리한테 잡혀서 험한 꼴 당했으니 무서워서 클럽은 못 갈 테고, 여자인 나한테 크게 곤욕을 치렀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자진해서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도 보았지. 여성 불신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아. 또, 너의 실체를 봐서 남자로서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졌어.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후후.“
여자 몸은 절대 보여줄 수 없다면서도, 내 알몸을 보여주라고 한 것까지 전부 계산이었을 줄이야.
전부 꿍꿍이가 있었던 거다.
그럼 그렇지. 누나가 문제아들을 주의, 계도만 하고 끝낼 리가 없지.
명 트레이너답게 누나는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육’ 해 버린 것이다.
”봉사부, 그러니까, 어제 온 남자들 있는 가게 이름이 봉사부야.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쪽 세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대. 특히 봉사부 에이스 애무 솜씨는 동각원에서 특별강사로 초빙할 정도도 뛰어나다고 해.“
”혹시 어제 온 사람 중에 에이스가 있었어?“
”셋 다. 봉사부에 딱 세 명 있는 에이스 다 불렀어. 같은 남자인 만큼 남자의 반응, 약점을 속속들이 다 알아서, 한번 경험하면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된다고 할 정도래. 뭐, 진짜로 성 정체성을 바꾼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지. 실제로는 여자친구, 부인이랑 멀쩡히 잘 지내면서 가끔씩 색다른 재미 삼아 오는 이성애자 단골도 나름 있대.“
누나는 명함 한 장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앞면에는 딸랑 전화번호만 한 가운데에 있었다.
뒷면을 보니 글귀가 있었다.
[오늘 형님을 모신 L군 입니다. 저를 초빙한 분께서 풀나이트 20회분 금액을 미리 지급하셨는데, 이번 한 번으로 제 일이 다 끝났다고 하더군요. 저희 규정상 이런 돈은 절대 받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남은 금액 환불해 드리려고 했으나 수고 많았다며 받지 않겠다고 하시네요. 이걸 어찌할지 고민한 끝에 형님께 제 명함을 드립니다. 19회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십니다.]
”어제 그들을 집에 보내줄 때, 차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10분 정도 봉사부와 같이 있게 했거든. 자기가 상대했던 사람에게 각자 이런 명함을 다른 사람 몰래 줬어.“
”......“
악마의 유혹.
비용도 전부 지불되었다.
그것도 19회분이나
어젯밤 통째로 출장 나왔는데 1회밖에 안 빠졌다는 건 아주 긴 밤을 19번이나 공짜로 보낼 수 있다는 뜻.
”덫을 놓은 건 알겠는데, 20회는 너무 많은 거 아냐? 10회면 충분했을 거 같은데.“
”10에서 1 빼면 한 자리 숫자잖아. 그럼 왠지 적어 보여서 쓰기 아까운 기분이 들 수도 있어. 19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쓸 수 있지. 이왕 덫을 놓을 거 확실하게 해야지.“
과연 그들의 앞날이 어찌 될지.
전부 그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 같으면서도,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기분이 든다.
누나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마 그들을 유혹할 함정을 여기저기 더 파놓았을 거야.
동각원이 강사로 초빙할 정도의 실력자들인 만큼, 만에 하나 충동을 못 이겨 전화했다가는.....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어? 그런데 동각원은 강사 무조건 여자만 쓴다고 하지 않았나? 예비생, 교육생 정조에 대한 신뢰니 신용이니 뭐니 해서.“
”그들은 예비생, 교육생이 아니라 동각원 강사를 지도하는 특별강사.“
동각원 강사를 상대로 지도 할 정도면 국내 최정상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어제 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한 사람들이었구나.“
”괜히 스페셜리스트겠어. 동각원 뿐만 아니라 강 실장을 비롯한 사원들 전부 봉사부 강력 추천했을 정도야.“
여기서 말하는 사원은 검은 양복들이다.
철저하게 이성애자를 걸러내고 게이만 골라 뽑은 동각의 숨은 일꾼들.
사원이라고 부른다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신입 초봉이 1억인 고액연봉자들이다.
이렇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니 철통같이 비밀을 엄수하고 목숨 바쳐 충성하는 거다.
”전부 강력 추천했다면, 전부 봉사부 가봤다는 얘기잖아. 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는 거로 아는데 이 사람들 안 되겠네.“
동각은 사원 선발할 때 같은 조건이면 커플을 우선으로 뽑는다.
싱글지옥 커플천국 동각.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음...할 말 없네.
●
일이 있어 나 이사님 백정화와 K2미디어에 왔다.
오늘 포시즌스 프로듀싱 건에 대해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하고 정식으로 아웃소싱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로 했다.
나 이사님은 매니저먼트 본부장으로서 당연히 동행했고, 누나 비서인 백정화는 회의록 작성 및 경영지원본부 이사인 누나에게 업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참석했다.
정화가 와서 내 비서인 지수는 회사에 남았다.
”포시즌스 앨범 준비 일체는 저희가 담당하고, 그 외에는 K2 미디어가 담당. 여기에 동의하는 거죠?“
”네. 컨셉 및 앨범, 안무, 의상 등 제작 관련은 BICA에서 전적으로 맡고, 저희는 BICA의 결정에 그 어떤 간섭이나 참견도 없을 겁니다. 이점은 확실하게 약속합니다. 단, 워킹데이 기준 최소 3일에 한 번은 진행 상황 팔로우 해줘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거죠. K2 담당자 정해주시면 그쪽에 일일보고 하겠습니다. 대신....아, 아닙니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니 다들 의아해했으나 모른 척 입을 다물었다.
진행 상황 실시간으로 전부 공유할 테니, K2도 유출 방지를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알고 있으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곧, K2를 불신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서 관뒀다.
”비용은 일괄정산, 월별 정산 중 BICA가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그거참 고마운 말씀이네요. 월별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재무 상태는 일괄정상으로 해도 전혀 상관없는데, 돈 많다는 티 내기 싫어서 월별로 받기로 했다.
”비용이 예산 상한선을 초과하면, 초과분은 지급하지 않을 겁니다. 명심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포시즌스 앨범 준비에 책정된 예산은 리드레아, 새별너울 앨범제작비의 무려 2배.
우리 용역비가 포함된 금액임을 감안해도 상당히 많았다.
과연 대형기획사다운 위용이랄까.
이 돈이면 스태프들 잔뜩 끌고 해외 로케라도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초과할 일 없다.
그래도 우리 수고비 잔뜩 얹어서 예산 꽉꽉 채워 청구할 거다.
싼값에 해준다고 소문나면 나만 힘들고, 아무리 장래 예린, 서진, 서하의 회사라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BICA에 전면 협조 하라는 회장의 지시가 있어서 그런지, 날이 섰던 인사말에 비해 회의는 별다른 이견 없이 순조롭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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