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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2화 〉 422화 방문자 2 (422/425)

〈 422화 〉 422화 방문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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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 않는 기 싸움 따위 받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성인이 주먹질할 수는 없고, 싸울 거면 말로 싸우면 되지 머리 아프게 뭔 기 싸움을 해.

기 싸움 이긴다고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건 체면에 목숨 거는 꼰대나 실컷 이기라고 먼저 그에게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크흠. 오랜만이네. 어서 앉게.”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다시 문이 열리고 심예나가 쟁반에 두 개의 잔을 담아 들어왔다.

프림로즈에서 내 정보도 있다더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믹스커피였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모카치노 등등도 가리지 않고 마시는데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믹스커피였다.

믹스커피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캔커피고.

예전에 공장에서 일할 때랑 덤프 몰 때, 믹스커피를 참 많이 마셨다.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마시고, 오후에 입이 심심하면 또 마시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회인 대부분 그렇다.

대한민국에 믹스커피 없는 회사가 없을 정도다.

월급쟁이와 노동자의 친구 믹스커피.

이호철 커피는 원두 향이 은은하게 나는 것이 드립 커피 같았다.

이호철과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새로 지은 지 3년밖에 안 된 써클엔터 사옥을 부럽다는 듯 칭찬했고 이호철은 전부 빚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호철은 내 인기가 많아져서 축하한다고 했고, 나는 그런 거 전혀 아니라고 겸양을 떨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꿍꿍이가 있더라도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과 겸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탐색하는 것이다.

“내 말 상대나 해주기 위해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로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나?”

이호철이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운을 띄었다.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탐색이 끝났으니 이제 상대해주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더는 못 봐주겠으니 후딱 할 말 하라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저쪽에서 먼저 하자고 했으나 나도 시작할 요량으로 웃음기를 싹 지우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사장님께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사과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어드바이저 건 말입니다. 사장님이 아메킹에 큰 기대를 걸고 저에게 직접 부탁하신 일인데, 드래프트에서 써클엔터가 뽑은 애들을 보고, 제가 사장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너무 송구해서 여태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제야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 말 안 듣고 청개구리 마냥 정반대로 뽑은 걸 보고도 조용히 참고 있다가, 써클걸즈가 떨어지자마자 신나서 달려왔다는 걸 내탓인양 돌려 말하자, 이를 알아들은 이호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이호철은 고작 이 정도에 자기 놀리냐고 화내지 않았다.

그랬을 사람이면 애초에 이런 위치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그게 어디 신 사장 잘못인가. 자네 말 안들은 우리 잘못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써클걸즈는 방송 내내 인기 탑이었습니다. 이지수도 그렇습니다. 제가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고 혹평했었는데, 아메킹 전 출연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번 아메킹을 계기로 제 눈이 얼마나 편협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앞선 말은 비꼰 거지만 이지수에 대해서는 진심이었다.

이지수는 내가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새삼 아이돌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게 아니다.

아이돌로 부적격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은 방송에서 꾸준히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짧은 경력의 연습생 신분이라 괜찮지만, 정식으로 데뷔하면 많은 비판,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이지수는 배우나 방송인으로서는 괜찮은 재목이다.

아무리 분량, 편집으로 밀어줘도 안 되는 사람은 안된다.

이지수는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중의 눈을 속일 수 있을 만큼 연기를 할 줄 안다는 거다.

이것은 그녀의 재능이고 센스다.

정말로 배우나 방송인으로 성공할지는 그녀의 노력과 운에 달린 문제라 그 누구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했다.

“이지수 X­파일 기사 보고 많이 울었다네. 이틀 내내 울었어.”

“정말 죄송합니다. 이지수와 만날 기회를 주시면 직접 그녀에게 사과하겠습니다.”

“하려면 더 일찍 했어야지. 떨어지고 사과하면 놀리는 거밖에 더 되겠나. 더군다나 그녀를 떨어뜨린 W2걸즈는 자네가 좋게 평가한 애들이야. 자네가 떨어뜨린거나 마찬가지란 얘기지.”

내가 이지수에 대해 미안해하자 이호철은 좋은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써클걸즈를 떨어뜨린 게 아니라 이지수를 떨어뜨렸다고 한 것이 그 증거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이호철이 눈치챌 수 있도록 일부러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장님 말씀을 듣고 한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신 사장, 자네 괜찮은가?”

내 반응이 심상치 않자 이호철이 사뭇 긴장한 것 같았다.

고개를 들고 눈에 힘을 주고 이호철을 응시했다.

“X­파일 기사 말입니다. 기사 터지고 기자에게 전화해서 푸념했었습니다. 항의도 아니고 푸념요. 그랬더니 전화 끊자마자 바로 평가서 전부 SNS에 올려버리더군요.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언론사, 기자와 척을 져봤자 나만 손해다 싶어 그 이후로는 전화, 메일도 안 하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지수가 이틀이나 울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만히 있었던 건 책임회피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평가서 유출로 상처받았을 연생들을 생각해서 끝까지 항의하고 파서 범인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 그 일로 인기가 더욱 올랐지 않나. 지나간 일 헤집으면 신 사장만 손해야. 신 사장은 한 회사의 대표고 주인이야. 언론사에게 밉보이면 자네 하나로 끝나지 않아. 리드레아, 새별너울에게도 피해가 가. 연예인이 피해를 보면 직원들도 피해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네.”

진상을 파고들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써클엔터가 나온다.

이호철에게는 영원히 묻어둬야 할 일.

그는 나와 우리 회사 걱정하는 척하며 내 팔을 잡아가면서까지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저에게는 플러스가 되었으니 더더욱 찾아야 합니다. 많은 연생의 눈물로 만든 인기 따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싫습니다.”

“신 사장이 무슨 방법이 있어 찾겠다는 건가.”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

“돈이면 안 되는 일 없습니다.”

“그만!”

이호철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노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더는 못 들어주겠군.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못하는 말이 없군. 썩 돌아가게.”

나는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하고 결의에 가득 찼던 얼굴을 풀고 씨익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겁나세요?”

“뭐라고?”

“제가 파고들어서 평가서 유출한 사람이 써클엔터 SIEGE 담당 고문수 실장인 거 들킬까 봐 겁나냐고 물었습니다.”

이호철은 고문수의 이름을 듣고 일순 놀라는 듯싶더니 금세 평정을 회복하고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30년이란 오랜 시간을 이 험난한 연예계에서 버틴 사람답게 감정 컨트롤 혹은 표정 관리가 능숙해 보였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은은한 원두향을 맡고는 반모금 정도 머금고는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여태 일부러 쇼한 거였군.”

“맞습니다. 처음부터 인상 찡그리고 험악한 소리 할 수가 없어서 잠깐 사장님 즐겁게 해드렸습니다.”

“어떻게 알았나?”

나는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한쪽 팔을 소파 헤드에 올려 비스듬히 기대었다.

“앞에 말했잖아요. 돈이면 안 되는 거 없다고.”

“일주일 동안 조용했던 건 알아보느라 그랬던 거군.”

“맞습니다. 알아볼 거 알아보고 해결할 거 해결했죠. 남은 건 써클엔터 하나에요. 원래는 아메킹 방송 끝나고 오려고 했는데 써클걸즈가 엊그제 떨어지는 거 보고 지금이 좋겠다 싶어서 오늘 왔죠.”

“내가 틀렸군. 신 사장 혼자 왔다고 하길래 예민한 얘기는 안 하고 나에게 뭔가 부탁할 게 있어서 온 줄 알았더니.”

”겸사겸사 왔죠. 사장님한테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어디 들어나 보지.“

나는 다리를 풀고는 이호철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써클걸즈 방출할 거죠?“

”당연한 거 아닌가. 써클엔터 역사에 남는 망신을 당했어. 오늘 방출시킬 거네.“

”강주희도.“

”........“

써클엔터에서 오직 박 실장과 그만 알고 있는 비밀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자 그는 충격을 받았다.

완벽에 가깝던 표정 관리도 전혀 안 됐다.

침을 꿀꺽 삼켰는지 목울대가 움직였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놀랄 거 없어요. 노브테크 김 사장한테 써클걸즈 2차에서 졌다고 말한 사람이 접니다. 좀 전에 남은 건 써클엔터 하나라고 말했잖아요. 그래서 사장님 괴롭힐 생각으로 말한 건데, 설마 걸그룹 런칭 포기할 줄은 몰랐어요.“

”........정체가 뭔가?“

”내 정체가 연예계 최대 미스테리인가. 하나같이 내 정체부터 물어보네. 난 그냥 난데.“

쾅!

”대답해!“

내가 그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느낀 이호철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치자 그 진동에 커피잔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커피 몇 방울이 잔 바깥으로 튀었다.

이호철이 동요할수록 나는 한껏 여유로워졌다.

나를 노려보는 이호철을 무시하고 커피잔을 입가에 대며 말했다.

”이호철 사장님. 여기가 사장님 홈그라운드라고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 되나 본데, 노브테크 김 사장한테 이사회 열라고 바람 넣은 게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써클엔터 대표 바꿔버리려다가 참았다고요.“

다 구라다.

노브테크 김 사장이란 사람한테 이사회 열라고 바람 넣은 게 누군지는 몰라도 난 아니다.

난 써클걸즈 떨어졌다는 말만 했다.

정확히는 내가 한것도 아니고 전해 전해 김 사장이란 사람 귀에 들어가게 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

뭘 하기로 전에 이호철이 걸그룹 포기라는 강수를 던지는 바람에 뭘 제대로 하지도 못했지.

심예나가 준 정보에 적당히 살을 붙여서 그럴싸하게 포장하니 이호철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정신을 못 차렸다.

설령 거짓이라 의심한다 해도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박 실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 실장도 의심할 수도 있고.

별 힘 안 들이고 말 몇 마디로 이호철 개고생 시키려고 거짓말했다.

심예나가 스파이인 걸 들켜서 잘려도 상관없다.

내가 고용하면 된다.

현소희, 김민아, 조아영, 강주희, 김유라만 데려가면 더는 써클엔터에 볼 일도 없으니 스파이도 필요 없다.

회사가 커지면 직원도 더 구해야 하는데, 경험 많고 이쁜 여직원 생기는 거니 개이득이지.

만약 써클엔터가 스파이 심었다고 나를 비난하려고 하면, 나도 자기들이 부탁한 일 했더니 나 엿 먹이려고 평가서 유출한 거 까면 된다.

”자 이제 사업 얘기 좀 하죠. 원래 이거 때문에 온 거였으니까“

”연 사장 때처럼 보상금을 원하는 건가.“

”아까 뭘 들은 거예요. 내가 분명 사장님 손해 볼 일 아니라고 했잖아요.“

다른 곳도 아니고 써클엔터 사장실에 혼자 와서 적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해놓고,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고 사업 얘기를 하자고 하니 이호철은 기가 차서 말을 못 했다.

대주주와 끈이 있(다고 뻥친)는 나를 내쫓지도 못하고 타는 목을 달래기 위해 식은 커피를 냉수 마신 듯 벌컥벌컥 마시고는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말해.“

”차기 걸그룹 데뷔조 저한테 파세요.“

”지금 뭐라고 했나?“

”어차피 여자 연습생 전부 계약 해지하고 내보낼 거잖아요. 그럴 바에는 나한테 계약 팔아서 교육비 건지라고요.“

”새별너울 데뷔한지 1년도 안 된 회사가 데뷔조를 왜.....?“

”아무리 의도한 게 아니라 해도 나 때문에 데뷔가 코앞에 있던 애들이 데뷔 못 하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됐잖아요. 안 그래도 평가서 공개되는 바람에 내 잘못도 아닌데 아메킹 연생들한테 미안해 죽겠는데, 써클엔터 연생들까지 휘말리게 만든 게 찔려서 그래요.“

”강주희는 안돼. 솔로 해도 되고 배우 해도 돼.“

내가 써클걸즈 방출 얘기하면서 강주희 이름을 꺼내서 그런지 대뜸 강주희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써클엔터가 몇 년간 공들여 가르친 연습생들 데뷔해서 망하는 거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지요.“

”설마 신 사장이 데뷔시키려고 데려간다는 건가?“

”그럼 내가 뭐하러 비싼 돈 주고 데려가겠어요.“

”다른 회사에 팔거라 생각했네. 신 사장 추천이라면 사겠다는 회사들 많을 테니까.“

“아니, 내가 무슨 인신매매범인 줄 아나. 내가 차익 좀 먹자고 애들 여기저기 팔아먹을 사람으로 보여요!”

“나에게 너무 좋은 제안이라 오히려 의심돼. 방출 기다렸다가 데려가면 공짜인데, 굳이 돈을 내고 사려는 이유를 모르겠군. 병 주고 약 주겠다는 건가?”

몇 년 전 연습생 표준 계약서라는 게 생겨서 이제는 연습생도 다 계약을 한다.

마음대로 관두고 자를 수가 없다.

연습생을 자르려면 교육점수, 발전 가능성이 작다는 정당한 근거자료가 있어야 한다.

모든 기획사가 정기적하는 연습생 평가의 결과가 계약해지사유 근거가 되는 거다.

이론적으로는 계약 기간 동아 연습생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건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훈련 및 교육은 회사의 의무지만, 데뷔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데뷔 못 시켜준다고 하면 데뷔가 가능한 다른 회사를 찾기 위해 앞다투어 계약해지에 합의한다.

그런데 써클엔터는 조금 다르다.

방금 강주희 솔로나 배우시킨다고 한 것처럼 꼭 걸그룹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 후보생으로 돌릴 수가 있다.

시간도 얼마 없고, 내가 찍은 애는 한 명도 놓치기 싫은 나로서는 감나무 밑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를 감을 언제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절대로 그가 알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핑계를 댔다.

”이래야 뒤끝이 없을 테니까요. 만약 내가 방출생 데려가서 데뷔시키고, 만에 하나 성공하기라도 하면 죽 쒀서 개 준 거 같아서 지금보다 더 저를 싫어할 게 뻔하잖아요. 저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애들 활동 방해하려고 무진장 애쓰겠죠.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이가 없군. 써클엔터 사장실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해놓고 인제 와서 뒤끝 걱정을 한다고? 지금 날 가지고 노나? 어? 내가 그리 우스워 보였어?!“

내 제안을 듣고는 호기심이 동한 듯 꼬치꼬치 물어보던 이호철이 내가 살짝 겁먹을 티를 내자마자 단번에 기세가 바뀌어 크게 화를 냈다.

정말이지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다.

이러니 박병식 같은 인간한테 넘어가서 시키는 대로 한 거겠지.

이런 모습을 보니 내 안에서 이호철의 평가가 바뀌었다.

걸그룹을 포기한 건 회사를 위한 결단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려는 자기보신 때문이었다고.

”착각하지 마시죠. 이호철 사장님. 지금 내가 뒤끝이 무서워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걸그룹을 포기한 결단력을 높이 샀기에 이런 제안을 한 거고, 이왕 끝내기로 한 거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 다 접고 어디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싸우고 싶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작은 SIEGE 준석 학창시절 학폭 기사부터 하죠. 그 다음은 대영 갑질 논란입니다.“

준석과 대영 모두 SIEGE의 멤버.

써클엔터의 대표이자 돈줄인 SIEGE가 타격을 입으면 써클엔터도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징계 칼 같이 한다(고 이미지 메이킹 엄청나게 하는)는 써클엔터가 이들의 과거와 잘못을 전부 덮어버렸던 걸 이번에 서클엔터에 대해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 입에서 SIEGE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호철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만 진정하게 신 사장. 내가 좀 전에 한 얘기는 없던 얘기로 하세. 데뷔조 팔겠네.“

이호철을 무시하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계약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던져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호철 사장님. 사장님의 가장 큰 손해는 다 준비한 걸그룹을 포기한 게 아닙니다. 제 존중을 잃은 겁니다. 우리 문제와 별개로 저는 사장님을 높게 평가했고 그래서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사장님이 다 망쳤습니다.”

나는 이호철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뒤돌아 사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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