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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234화 (234/594)

〈 234화 〉 그럴거면 X추 떼(03)

* * *

콰앙!

판델 선생이 안으로 들어가고 투구를 돌린 채 당황한 듯이 떨리는 푸른 눈동자가 보이자, 나는 그제서야 손을 살짝 들어올리며 에린에게 인사했다.

"반?"

"안녕."

여기 들린지 얼마 안 돼서 오랜만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특별히 소식을 묻거나 인사를 나눌 필요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에린의 옆에 서서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훔쳐 듣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델핀 언니가 한명 더 보였던 것 같은데... 혹시 엘프의 숲에서 데려왔다던 그 엘프 레인져야?"

"그거 판델 선생이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누가 봐도 평상시의 판델 선생이 아니라 델핀과 닮은 여성 엘프였기 때문에 에린도 궁금해졌는지 나랑 같이 문에다가 귀를 대고서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함소리를 훔쳐 들었다.

"델핀! 이 약물에 뭘 넣은 거지?!"

"응? 남성성을 줄이고 싶다고 하길래 내 피를 집어넣고 엘릭서를 촉매로 사용해서 성전환 약물을 보내줬는데?"

"나는 단지 반 저 녀석을 중성화시키기 위한 호르몬 중화제나 여성호르몬을 원했다고!!"

"반한테 쓰려는 거였어?!"

안에서는 델핀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고 두 하프 엘프가 얼마나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지 사장인 프레데리카까지 소리를 듣고 연구실로 다가올 정도였다.

"무슨 일이더냐?"

남의 가게에서 이게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프레데리카에게 설명은 해주었다.

"판델 선생의 고추가 영원히 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슨 요즘 애들의 비밀스러운 은어 같은 거냐?"

"아니요. 그냥 반이 말을 지리멸렬하게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녀석은 여자 꼬실 때에만 혓바닥에 기름이 돌거든요."

으흠, 사실이라 할 말이 없군.

"이야기를 듣다보니 얼마 전에 델핀이 나랑 같이 연구해서 만든 성전환의 물약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 같은데."

"성전환 물약... 가능 합니까?"

"실질적으로는 델핀의 피를 이용해서 그녀의 몸으로 재구성하게 만드는 물건이니까 판델이 아니라면 효능이 먹히지 않겠지. 그것도 델핀의 요청으로 엘릭서를 상당히 사용하고 나서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엘릭서는 화장실에서 추출합니까?"

내 질문에 프레데리카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타올랐다.

"못하는 말이 없구나 아주! 지난번 일은 사고로 누출된 것이고 원래는 그런 음란한 행위 없이 주사기를 통해 추출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에린의 투구 속에서 붉은 안광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음란한 행위......? 지금 사장님이 하는 말 굉장히 신경쓰이는데?"

잠깐. 이거 나도 위험한거 같은데.

쾅!

"시끄러워 이것들아!!"

안에 있던 판델 선생이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왔는데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 이마에 핏대가 돋아있고 얼굴은 씩씩거리고 있었으며 옷이 흘러내려서 한쪽 가슴이 노출되어 있었다.

"판델 너... 감히 나보다 가슴이 커?!"

델핀은 그리고 판델 선생의 가슴을 보면서 화를 내고 있었고.

'하하. 개판이네'

"지난번에 사장님이 조용하다 했더니 응...? 너무 많이 휘두르고 다니는거 아니니...?"

에린이 내 하반신에 손을 넣고 꽉 쥐는데...

'이거 아픈데...?'

이러다가 나도 판델 선생처럼 거세될 거 같은데...?

"흐읍...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 그렇지?"

"그럴 때가 맞지 않아?"

"그, 그리고 이걸 터뜨리면 에린도 손해라고!"

그 말에 에린은 움찔하면서 손에 힘을 풀었다.

"소, 손해 아니거든?! 나는 이런거 터뜨려봐야 속이 시원하지!"

말은 그러지만 다시 꽉 쥐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손만 대고 있는 면에서 이미 속마음이 다 들키는 셈이다.

일행이 안정될 때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일이 바쁜 프레데리카는 다시 사장실로 돌아가서 이런저런 사업용 서류를 처리하러 돌아갔고 판델 선생은 델핀과 기술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못 돌아간다고?!"

"응. 너 평소에 피 뽑아둔거 있어?"

"없지. 보통 내 피를 뽑아두게 될 경우는 상처감염을 막기 위해서 방혈(?血)을 하는 경우 밖에 없는데 그런 경우 금방 마법으로 소각하면서 폐기처분했고."

"그럼 안 되지. 내 피를 섞어서 몸을 나처럼 맞추도록 만든 거고 이미 변형이 끝났으니까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으면 네 피를 사용하고 엘릭서를 촉매로 사용해서 만들어야 가능할 거야."

"......피! 내 피 없냐?!"

갑자기 판델 선생은 나에게 달려들어서 물었으나 당연히 판델 선생의 피가 나에게 있을 리 없었다.

"침! 아까 찻잔에 있던거! 아니면 내가 떨어뜨린 머리카락이나 수염! 자른 손톱!"

"그건 죽은 조직이라 안 돼... 그리고 피도 한 두 방울 찾아서는 안 돼. 엘릭서의 촉매 변형을 마쳐두고 신선한 피를 넣어야 할 정도니까."

실제로 델핀은 다량의 피를 뽑아내기 위해 손가락이 아니라 자신의 겨드랑이에서부터 팔뚝으로 이어지는 굵은 혈관을 절제하여 피를 뽑아낸 상처를 보여주는데 얼마 전에 이곳에서 변이물약 실험을 할 때에는 없었던 상처였다.

턱.

그 말을 듣자 판델 선생은 놀랍도록 침착한 표정을 지으면서 델핀의 연구실에 있는, 플라스크가 널브러진 책상 중 하나를 잡고서 정리를 하고는 앉을 자리를 만들고 델핀을 불렀다.

누군가 본다면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 위한 것처럼 보였으나 왠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는 건 왜일까.

"그러니까 침착하게 정리를 해보자 델핀."

"응."

"일단, 내가 받은 물건은 결국 나를 델핀화, 즉 하프 엘프 여성화로 만들어주는 물약이었고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 만들어졌다?"

"남성호르몬을 줄이는 물약이 필요하다 했으니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제작해준 거지."

"그리고 또 그 물약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내 몸에서 나온 피나 다른 생체조직이 필요하다?"

"부작용이 아니라 원래 의도했던 효능이니까 정상적인 효능이지."

"그래서... 결국 이대로 살아라?"

"응."

마지막 결론에 판델 선생은 자신의 앞에 놓인 탁자를 손으로 뒤집어 엎으려고 했으나 아까 오우거 스트랭스의 부작용과 내 손에 잡혀서 삐끗해버린 손목 때문에 그냥 탁자만 잠시 달그락하면서 들어올리고는 다시 내리는 것에 그쳤다.

"그걸 수긍하라고?!"

"그러게 미리미리 자기 피는 빼놨어야지."

"내가 뱀파이어도 아니고 왜 피를 모아두는데?! 그리고 이런 위험한 물약을 만들면서 원래도로 복구시킬 수 있는 해독제도 안 만들어놔?"

와 웃긴다. 원래 예상대로 정말로 나를 중성화하는 약물이었으면 해독제가 없는 것을 보고 씨익 웃었을 거면서.

"그래서 분명히 경고문으 잔뜩 적어뒀는데 안 읽었지?"

"큭......"

"애초에 연금술사 공방에서는 정해진 약물이 아니라 사용자가 의뢰한 약물에 대해서는 약물을 수령하고 돈을 받는 순간부터 약물의 모든 주의사항을 인지하고 잘못 사용할 경우 자신의..."

"때려쳐! 원래 몸으로 돌려놔!!"

판델 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법을 난사하면서 주변을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들이누워서 바둥바둥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는데......

"......저 분 원래 저래?"

"아니."

에린도 판델 선생의 깨는 모습에 기가막히는지 나에게 물었는데 나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돌려내!! 돌려내라고오!!"

만약 저 모습을 평상시의 판델 선생처럼 부스스한 하프 엘프 남성의 모습으로 한다면 내 눈이 썩어가는 광경이겠지만 막상 예쁘장하 하프 엘프 여성으로 전환된 다음에 생떼를 부리고 있으니 약간은 용서가 가능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으아아아아앙­!!"

'어 운다... 판델 선생 운다'

그렇게 판델 선생의 중성화 시도사건은 자기 자신의 영구적 성전환이라는 자업자득 엔딩으로 끝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고추가 안 선다면서 놀리던 선생님이 정말로 고추가 평생 설 일이 없어지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큰일났는데."

앞으로 마도기사단 양호실에 판델 선생이 다시 근무를 하건, 아니면 판델 선생이 은퇴를 하게 되건 어느쪽이던 곤란해질 텐데.

'뭐... 상관없나?'

"왜 자연스럽게 내 엉덩이를 쓰다듬는 건데?"

"만지기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짝!

어우 오늘따라 에린의 손바닥이 매섭네.

* * *

떼를 쓰고 울고불고 하다가 지친 판델 선생은 결국 내 품에 안겨서 복귀하게 되었다.

씨익... 씨익...

"화 좀 삭히십시오.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강해지는 길이라는 기사들의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감정을 제일 통제 못하는 네 놈이 이런 말을 하는게 기가 막히는구나."

나 정도면 굉장히 감정 통제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하......"

"좋게 좋게 생각하십시오. 어차피 쓰지도 않을 고추..."

"쓰건 안 쓰건 갑자기 몸이 이렇게 변화되었는데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 아예 처음부터 성별이 전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종족이라면 모를까."

"예, 예."

"마나 회로가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 마나 회로가 있었으면 처음부터 다시 깔아야 했을 거고 만약 연인이라도 있어봐라. 그랬다면 어떻게 설명할 거지?"

"있습니까?"

"없다."

"그럼 됐네요."

그 말에 판델 선생은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부들부들 떨었으나 오늘 있던 일들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다 너 때문이다."

"왜 저 때문입니까. 모르는 사이에 제자에게 몰래 이상한 약을 먹여주려고 하다가 역으로 당한 것이지. 차라리 그럴거면 순순히 저를 설득해서 먹어달라 하지 그랬습니까."

"그렇게 했으면 먹어줬을 건가?"

"아니요. 미쳤습니까?"

어느새 양호실로 돌아온 나는 투덜투덜대는 판델 선생을 내부 실험실 안쪽에 내려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잘 모르겠다. 나도 내가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이렇게 되면 델핀과 나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판델 선생을 보니까 왠지 갸름해진 턱선과 피곤한 표정,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까지 얼굴에 달라 붙어서 요염하게 보이는 것이...

"핫하! 쌤통이다!"

"이 개자식이!!"

다시 분노한 판델 선생이 마법을 쏘면서 나에게 달려들었고 그렇게 잠시 추격전이 있은 후 판델 선생은 체력소모로 인하여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저 자식 반드시 중성화시킨다!!"

기운을 찾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판델 선생이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말자.

* * *

"선생님 제가 다리가 다쳐서."

"선생님 제가 팔을 비어서.'

"선생님 제가 고간이 이상해서."

"오냐. 마지막 녀석은 딱 대라. 환부를 절제해주마 이 개자식들아."

판델 선생이 머무르는 양호실이 이전에는 모두에게 기피당하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동기 놈들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일부러 어딘가에 부딪친 듯한 멍든 자국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일부러 손가락을 찧거나 벌레 물린 자국을 들이밀면서 양호실에 들이닥쳐 기사단 내부가 엉망이 될 지경이었다.

"야, 뭘 구경하고 있어? 빨리 안 쫓아내?"

"예, 예."

이렇게 되자 판델 선생은 가장 만만한 나를 불러다가 동기들을 쫓아내 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동기들이 있어도 내가 버티고 있으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그런거... 겠지?

'그리고 왠지 판델 선생이 점점 행동까지 여성화되는 것 같지만 신경쓰지 말자'

"골반 튕기지 마세요. 저 놈들 눈 돌아갑니다."

"여기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게 너 밖에 더 있나?"

'내가 보기에는 한 149명쯤 더 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판델 선생... 별 수 없이 내가 지켜줘야 되겠네."

"네가 가장 위험해 네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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