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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244화 (244/594)

〈 244화 〉 수상할 정도로 인간을 좋아하는 고래들(01)

* * *

"와 씨... 이러면 인어들은 교미 어떻게 하냐? 잘못하면 죽는거 아니야?"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는 고래녀의 하반신 지느러미 위에 선 나는 일단 상체 부근으로 올라와 바지를 입고 마나 세이버를 챙겼는데, 어인들처럼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상대는 수십이건 수백이건 썰어버릴 자신이 있지만 상어처럼 수면 아래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적들은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단검... 만으로 상어를 해치울 수 있을까?'

바닷속에서 마나 세이버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비가 오더라도 검날이 흩어지거나 주변에 수증기가 퍼지기 때문에 사용하기 힘든 것이 마나 세이버인데 수중에서 사용한다?

자기 자신을 찜기에 집어넣어 죽고 싶은 멍청이가 아니라면 절대 수중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단검 밖에는 없었는데......

'범고래들도 고래를 사냥할 때에는 약점부위만 집요하게 노리고 부드러운 살만 먹고 나머지는 버린다는데, 상어는 다른 두꺼운 가죽도 모두 뜯어먹을 수 있는 구강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달려들 경우 정말 위험한 상황인 건가?'

일단 지금 상황에서 이 고래녀가 당하면 나도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피를 흘리면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하반신에서 물 속으로 뛰어들면서 상어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젠장! 뭐 이렇게 많아!'

그런데 상어가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아까 전의 범고래처럼 대여섯 마리가 몰려온다면 어떻게든 다 쳐내거나 사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피 냄새가 어디까지 흘러간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적어도 수십마리 이상이었다.

'이렇게 되면 단검으로 모두 썰 수는 없겠는데?'

"하... 젠장."

잠시 상어들을 상대할 방도를 떠올리던 나는, 아직까지 처녀혈이 새어나오고 있는 고래의 음부에서 피를 몸에 덕지덕지 바르고는 숨을 참으며 공중으로 도약하였다.

풍덩!

차갑게 식어버린 검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자 내 몸에 잔뜩 묻어있던 피가 배어나오면서 상어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일부러 몸에 바닷물을 끼얹으면서 피를 닦아내면서 상어들의 시선을 끌었다.

'온다'

물결 아래로 수많은 상어 지느러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보통 상어들도 어지간하면 인간을 습격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피냄새를 맡고 광분하고 있을 때에는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었다.

슈칵!

가장 근접해 있던 상어의 등지느러미를 잘라버리는 것으로 더 이상 헤엄치지 못하게 만든 나는 다른 상어들이 달려드는 것을 침착하게 한 마리씩 등지느러미만 노려서 베어주었다.

지느러미에 뼈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연골로만 이루어져 있었기에 단검에 살짝 마나를 담는 것만으로도 지느러미를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었고 빗나간다 할지라도 상어의 옆구리에 큰 상처를 만들면서 피가 배어나오면 다른 상어들이 그 피냄새를 맡고 상처입은 상어를 향해 달려든다.

이런 식으로 다섯 마리 정도를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만드니 어느새 상어들은 고래녀가 아니라 나를 향해 모조리 몰려들고 있었다.

'그럼... 일단 저놈!'

촤악!

수면에 가까이 붙어서 달려들던 상어를 피하기 위해 마치 말에 올라타는 것처럼 상어의 코를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위에 올라탔고, 다른 상어들이 몰려들기 전에 방금 전에 지금 짓밟은 상어의 등판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파앗­!

공중에서 물을 흩뿌리면서 뛰어오른 나는, 고래녀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내가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마나 세이버를 겨누었다.

"흡..."

치이이이이익­!!

첨벙첨벙첨벙첨벙!!

마나 세이버가 격렬하게 타오르면서 바닷물을 끓여버리고, 상어들은 끓는 물에 지져지면서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크흡...!'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고 마나 세이버는 바닷물에 분출구가 닿으면서 삽시간에 꺼졌으며, 나도 기화된 연기를 실수로라도 들이마셨다가는 폐가 타버리고 피부가 증기로 인해 녹아내릴 것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푸하!"

만일 내 몸에 묻어있는 바닷물이 조금이라도 적었다면 내 피부는 뜨거운 증기에 의해 녹아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마나를 몸에 두른 것으로 어느 정도 화상을 방어할 수는 있었지만, 피부가 화끈거릴 정도의 약한 화상과 내가 마나 세이버로 삶아 죽인 상어는 고작해야 세 마리 정도라는 사실에 나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너무... 멀리왔나?'

게다가 바쁘게 도망치고 있던 고래녀는 이미 먼 곳까지 헤엄치고 나서야 내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이 근방에 모여든 상어들 때문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 그러니까 이제......"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내 주변으로 모여드는 피에 굶주린 상어의 지느러미를 보면서, 나는 팔이나 다리 하나는 내줄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단검을 손에 쥐었다.

쏴아아아아­!

내 등 뒤에서 여섯 개의 엄청난 살기가 느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살기는......!'

오늘 낮에 느꼈던 그 살기.

단순히 먹잇감을 사냥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육 자체를 즐기는 듯한 폭군의 살기였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꺼려지고 나에게 피해를 입힐지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살기였지만 지금은 그저 반가운 마음 밖에는 없었다.

촤아아악­!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범고래의 거체가 상어의 옆구리를 가격하는 순간, 상어는 낮에 보았던 어인처럼 입에서 피를 뿜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퍼엉! 퍼어엉!

그 강력한 근력을 담은 꼬리치기가 작렬할 때마다 상어들은 마치 공처럼 날아가면서 피를 토하며 바다 위에 배를 까뒤집고 쓰러졌는데, 그렇게 상어떼들을 가르면서 나에게 다가온 지느러미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내 아래로 들어오면서 자신의 등 위로 나를 태워주었다.

쪼르르르륵.

마치 인사를 하듯, 정수리에 있는 숨구멍에서 물을 뿜어내며 대장 범고래가 내 앞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우리 애기 바다에 떨어졌어요?"

"예, 어쩌다 보니까요."

"그럼 누나들을 불렀어야지! 잠깐 누나들이 쉬고 있는 동안 혼자만 도망가면 돼요 안 돼요?"

"안... 되겠지요?"

퍼엉! 퍼어엉!

상어라고 해봐야 범고래에게 있어서는 꼬리치기 한 방에 두 세 마리씩 나가 떨어지는 놈들일 뿐이었고, 몇 마리는 이미 옆구리가 물어뜯기면서 자신의 간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럼 누나 등에 어부바하고, 다시 고래 위로 돌아갈까?"

"예.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 범고래들은 그야말로 바다의 폭군.

수백마리의 어인이건 아니면 수십마리의 상어이건, 자신들이 마음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막강한 여인들이니까.

쏴아아아­

"어... 어어?"

그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내가 범고래의 몸 위로 올라타는 것을 확인하자, 갑자기 고래녀가 이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처럼 쌍둥이 섬을 위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와 숨구멍이 위로 보이도록 엎드린 상태에서 몸을 잠수하더니, 그대로......

뻐어어어어엉­!!

물 안에서, 점프를 해버렸다.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면서 자신의 등을 그야말로 질량병기로 사용하며, 상어무리에 대해서 엄청난 양의 무게와 파도로 짓눌러버리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그 충격파로 인해 발생한 파도가 나를 덮쳤으나, 다른 범고래들이 내 주변을 지켜주면서 파도를 대신 맞아주었기 때문에 머리가 조금 젖는 것을 제외하면 큰 피해는 없었다.

'하... 하기야... 고래 정도면 체급이 깡패지'

지금까지 내가 몸 위에 있느라, 아니면 범고래들이 상대라서 상대적으로 밀려보였을 뿐이지 실제로 고래가 전력을 다하면 바다에서 견줄만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쳇. 우리 왔다고 일부러 저러는거 봐."

그리고 그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범고래들은 나를 껴안은 채 고래녀를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계속 따라가면서 보호해 줄게. 우리 애기 집에 보내줘야지."

"정말이지 범고래들은..."

"응? 누나들이 뭐?"

"좋다구요."

정말 그녀들은 수상할 정도로 인간에게 친절했다.

* * *

"보고드립니다 발로르 공."

자신의 앞에서 보고를 하고 있는 흑표기사단의 발리안 경을 보면서 소드 마스터 발로르 공은 불쾌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수염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현재 주변 보고 사항을 말씀드리자면..."

"야."

"예?"

"나한테 보고하지 마라. 어차피 나는 네 놈들 똥 닦아줄 생각도 없고 단지 안개의 숲인가 뭔가가 다시 나타났다는 얘기에 온 거니까 말이다."

"예, 예! 알겠습니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골통을 박살낼테니 닥치고 내가 요구하는 말만 하도록."

발로르 공은 올해로 여든이 넘는 나이였지만 그의 전신은 왕국에서 가장 건장한 기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그의 흉악한 기세는 사신보다도 기사들을 더 긴장시킬 정도였다.

그는 지금 굉장히 불쾌한 상황이었는데, 고작해야 안개의 숲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 위해 이런 외진 곳까지 이동했다는 점에서 불쾌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망할 계집년들... 돌아가기만 하면 모가지를 꺾어줘야 되겠어."

어차피 호문클로스 계집이나 하프 드래곤 계집이나 고작 목 부러졌다는 것만으로 죽지는 않는다.

단지 고분고분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라는 생각의 무력시위를 하려는 생각인데 그 정도로 발로르 공은 화가 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득남한 아들의 재능이 그야말로 쓰레기라는 소식을 들은 그는 자기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얼굴 한번 보지 않을 정도로 냉정하게 화를 내고 있었고, 다음번 자식은 카산드라 수준의 여기사들의 몸을 요구해서 새로 얻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실종된... 아니, 동방전선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카산드라를 손에 넣겠다고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그럼 다시 한번 말해봐. 안개의 숲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다시 사라졌다고?"

"예. 마치 마법처럼..."

뻐억!

그 순간 발리안 경은 복부에 발차기를 얻어맞고 천막을 완전히 무너뜨리면서 다른 천막에까지 굴러가버렸다.

대형 몬스터가 전력으로 후려쳐도 이 정도 위력은 나오지 않을 것인데 발로르 공은 자세도 제대로 잡지 않은 발차기 한 번에 이렇게 날려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몸을 지금 헛고생 시켰다 이 말인가?"

지독한 살기가 국경수비대에 퍼져가기 시작한다.

마치 목덜미를 맹수가 물고 있는 것처럼 일반 병사들은 숨도 쉬지 못한 채 꺽꺽대면서 죽어가고 있었고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마치 석화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며 눈알만 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단순히 몬스터가 아니라 압도적인 폭력과 무력의 화신, 그야말로 재난 그 자체.

압도적인 무력으로 기사들을 구타하고 굴복시킨 그는 소드 마스터라는 경이로운 위치에 올라있기는 하지만, 인성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개차반 그 자체였다.

자신을 가로막을만한 적이 없으니 지금까지 예의를 배울만한 시간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욕망대로, 생각대로 하는 것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호룡 세이라는 그의 무력이 필요했기에 이곳으로 발로르 공을 보낸 것이었다.

지직... 지지지직!

공간이 갈라지는 불쾌한 소음과 함께, 안개 숲이 있다가 사라진 그 장소에 마치 거울이 깨지듯 차원이 갈라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허억..."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고 옷은 예리한 날붙이로 잘려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검은 머리의 소녀.

용사가 나타난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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