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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289화 (289/594)

〈 289화 〉 죽은 자들의 도시(01)

* * *

세이라의 명령으로 수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용사와의 결전으로 인한 부상이 낫자마자 호출을 받고 프레데리카의 호문클로스 공방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이야기 들었지?"

"뭘요?"

"몇 달 전에 세이라가 말하지 않았어? 중요한 임무가 있다고 미리 귀띔을 해줬다고 하던데?"

그제서야 어인족 수렵기간에 출장가기 전, 세이라가 편지를 두 개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예, 그랬던 것 같군요. 그런데 해당 임무에 프레데리카도 관련이 있습니까?"

"어느 정도는 도움을 주기로 했거든. 내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평상시 물약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게 3호는 날카로운 바늘이 달려있는 투명한 플라스크 내부에 내용물을 채워넣고 있었다.

"이번 임무는 좀 위험할 거야."

"안 위험한 임무가 없었던 것 같지만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평화로운 임무를 받아도 매번 사고에 휘말리거나 갑자기 강한 적이 튀어나와서 죽기 직전까지 싸우거나.

"그래도 이번에는 더 위험하지. 3호. 보여줘."

3호는 담담하게 자신의 입을 열어서 자신의 송곳니를 보여주었다.

지이익.

"지퍼는 왜 열어?!"

"아니... 이쪽으로 쓰라고 개조한거 아닙니까?"

"아니야!"

프레데리카가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퍼를 닫고 있는데, 3호는 자신의 송곳니와 함께 평상시보다 더욱 창백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어떤 상태인지 알겠어?"

"음... 입에 넣고 움직일 때 조심해야 되겠군요."

"아니라고!"

"현재 저는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난 저 송곳니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그냥 변장을 하거나 장난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3호의 웃옷 안으로 손을 넣어서 가슴을 만져보는데, 확실히 심장의 박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슴이 커서 안 느껴지는 건가?'

"자연스럽게 가슴을 만지는구나."

가슴골 사이로 손을 넣어도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이라던가, 예전에 만졌을 때와는 다르게 피부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도 느껴졌다.

예전에는 가슴이 풍만하다보니 가슴골에 살짝 땀이 찼다면 지금은 차갑게 식어있어서 손을 넣고 있어도 약간 시원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뱀파이어가 된 겁니까?"

"맞아. 뱀파이어의 피를 구강섭취시키는 것으로 3호를 뱀파이어로 만든 거지."

"왜 그런 일을 한 겁니까?"

"시험을 위해서야. 다른 호문클로스들은 인간과 신체구조가 많이 다르니까 제대로 먹힌다는 보장이 없었거든."

작은 플라스크 안에 담겨있는 액체를 톡톡 건드린 프레데리카는, 그 날카로운 바늘을 3호의 아랫배에다가 꽂아넣었다.

"으아아악!"

바늘이 사람의 살을 뚫고서 들어가는 광경에 나는 눈쌀을 찌푸렸는데 마나 세이버나 아니면 다른 병장기로 살이 베여나가는 광경은 익숙했지만 오히려 작은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가는 광경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기사라는 놈이 엄살은."

"으으... 끝났습니까?"

"끝났다."

플라스크 안에 들어가 있던 액체가 3호의 아랫배를 통해서 몸 안에 주입되자 3호의 송곳니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피부에 혈색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좋아. 실험결과는 성공적이구나."

만족한 표정의 프레데리카가 날카로운 바늘을 뽑아내는 모습을 인상을 쓰며 바라보고 있던 나는 3호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 안쪽의 송곳니가 정상적인 크기로 줄어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의 심장이 뛰는 감촉을 확인해 보았다.

"으흠! 그만 만지지 그래?"

두근두근하면서 심장박동이 뛰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동안 프레데리카가 방해를 하려고 했지만 나도 유두 하나 없는 젖가슴에 굳이 관심이 없어서......

"응?"

근데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볼록하고 오돌토돌한 감촉의 유륜이 만져지는 것이...

"에헴!"

"어, 아. 죄송합니다."

뭔가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촉이 평상시에는 동그란 공 같이 느껴진다면 지금은 평범한 여성의 가슴처럼 유두가 발달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지금 치마쪽에서 살짝 둔덕이 드러나는 것 같은데......'

"임무!"

"예, 예!"

프레데리카의 호통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3호에게서 벗어나 프레데리카 앞에 앉았다.

"이번 임무가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 줄은 알겠지?"

"뱀파이어와 관련된 임무입니까?"

"그래.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불순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고, 안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임무야."

"어디로 가면 됩니까?"

"죽은 자의 도시."

프레데리카가 내민 지도는 수도권 근방에 있는 지형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지도에서 평지로 표시되는 지역에 X표시가 되어 있었다.

"여기는......"

"과거 귀족의 무덤가로 사용되던 곳이야. 현재는 네크로맨서들을 통해서 겨우 교류하고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지."

"아하. 그렇군요."

"찾아갈 수 있겠어?"

"예.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포도수확 시즌이 지나서 지금쯤 수녀원에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 한 귀족 영애가 떠올랐다.

"그럼 방금 전에 만드신 약물은?"

그 말에 프레데리카는 사악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만약을 위한 보험. 안 쓰면 더 좋겠지?"

굳이 보험이라고 하는 것 치고는 뭔가 불길한데 말이다...

* * *

"......그런 연유로 같이 가시죠."

­ 수녀원에 새벽부터 쳐들어와서 사람을 납치한 다음에 할 말인가요 그게?! ­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현재 나는 리엔의 몸을 옆구리에 끼고 어두운 숲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리엔의 영혼은 내가 마나를 살짝 불어넣어서 몸에서 뽑아낸 상황이라 고스트 상태로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고 대신 그녀의 몸은 내가 등에 업은 채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죽은 자의 도시로 가야하는데, 그곳에 가려면 역시 죽은 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위치도 리엔의 집 근처이고."

죽은 자들의 도시는 리엔의 집과 뱀파이어 클랜이 머무른다는 고대의 저택가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스트인 리엔이 하늘에 올라가서 방향을 보고 죽은 자의 도시로 안내해주고 있었는데, 원래대로라면 그냥 독도법만으로 찾아갈 수 있겠지만 프레데리카가 조언해주기를 죽은 자의 도시는 특별한 안개로 위치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자는 찾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확실히...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느껴지는구만'

리엔의 저택을 넘어서 어느 정도 진행을 하니 점점 안개가 깔리기 시작하는데 평범하게 축축한 안개가 아니었다.

마치 화재현장이나... 무언가 고기를 잘못 태웠을 때 나는 매캐한 향이 이 안개를 채우고 있었는데 단순히 어두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구에 마나를 주입해도 안개 너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의 소름끼치는 한기가 점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주변 공기가 신경쓰일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고 입에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내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리엔의 육신을 제외하면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워지고 주변에서 사악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별 수 없이 손목에 걸고 있는 마나 세이버를 꺼내들었다.

우우우웅...

안개를 가르기 위해 마나 세이버를 들어올린 순간, 안개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엔. 일단 돌아오시죠."

혹시라도 모를 무력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리엔에게 돌아오라 불렀지만 리엔의 대답이 없었다.

"리엔. 리앤?"

공중을 올려다보았지만 마찬가지로 검은 안개에 둘러쌓여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내 목소리도 이 안개 속에 묻히는 것처럼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말을 듣고서도 리엔이 오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리엔이 당한 건가?'

우우우웅!

마나 세이버가 빛을 뿜어낼 때마다 검은 안개가 갈라지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검은 안개는 조금이라도 내가 틈을 보이면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서서히 짙어지고 있어서, 마치 이 안개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았다.

"콜록!"

들이마신 공기가 내 목구멍에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숨이 턱 막히는 것과 함께 마나 세이버의 빛이 흐려져가기 시작한다.

"......그럴 줄 알았지?"

나에게 다가오는 붉은 눈을 향해 마나 세이버를 겨누고 강제로 마나를 집어넣어서 검날을 늘리니 푸른 검날이 검은 안개와 붉은 눈동자의 미간을 정확하게 갈라버렸다.

치이이이익!

"끼에에에엑!!"

곧바로 검은 안개에서 수십, 수백개가 넘는 붉은 눈동자가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내 주변이 살기로 덮이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힘을 숨길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마나 세이버를 교체하였다.

태양의 힘을 담은 마나 세이버, 프로미넌스로.

"태양이여. 대지를 뒤덮은 검은 밤을 추방하라."

츠즈즈즛­!

태양과도 같이 빛나는 황금의 마나 세이버는 검은 안개를 반으로 갈라버리면서 내 주변에 달려들던 수많은 붉은 눈동자를 태워버렸다.

화아아악­!

'저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안개의 정체, 고스트인지 아니면 어떤 괴물인지 모르겠지만 태양빛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버린 검은 안개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면서 프로미넌스를 찔러 넣었다.

후와아악­!

흐릿하게나마 형태를 유지하던 검은 안개가 프로미넌스에 타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내 주변을 감싸며 감각을 혼란시키던 검은 안개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후우우우......"

츳!

프로미넌스의 검날을 집어넣고 다시 가방 안으로 집어넣은 뒤 주변을 둘러보니, 검지 않은 평범한 안개 너머에서 거대한 구조물과 그 위에서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검은 매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엔. 리엔?"

등에 짊어지고 있는 리엔의 몸을 건드리면서 물었지만 리엔은 돌아오지 않았다.

검은 안개를 흩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리엔은 여전히 실종 상태였는데, 만일 리엔이 크게 상처를 입거나 성불하거나, 혹은 영혼이 소멸되었다면 내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육신도 축복이 끊기면서 차갑게 식어버릴 것이지만 현재까지도 리엔의 몸은 따뜻하게 체온이 유지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무사하다는 이야기겠지'

어디로 리엔이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검은 매연이 다시 안개로 변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죽은 자의 도시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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