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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551화 (551/594)

〈 551화 〉 장모님 알집 서요?(01)

* * *

"후우우......"

요즘 따라 레빈이 고민이 많은지 부쩍 한숨이 늘어나고 있었다.

"왜 그래. 또 마도기사단 예산 감축당했니?"

"아니 그건 좀 늘었다. 황금기사단 견제한다고 이쪽에 증액시켜준대."

그럼 내 봉급도 늘겠군. 희소식인데?

"야 혹시 봉급 늘어난거 몰래 빼돌려서 주면 안 되냐. 내가 요즘 용돈이 부족해서..."

기본적으로 받는 마도기사단 봉급은 에린이 직접 찾아가서 애들 양육비로 다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잘한 용돈이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메리와 알리시아가 벌어오는 돈도 있지만 그건 정산이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돈이 되지 못하기도 했고, 에린 입장에서는 메리와 알리시아가 번 돈은 그 모녀가 써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을 그어놨다고 해야 할까.

물론 돈이 정말 없다면 손을 벌리겠지만 내 봉급과 다른 부인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양육이 가능하면 어지간해서는 손을 벌리지 않겠다, 이런 생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벨라 누나도 아직까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고 에린도 중간중간에 부업을 하거나 귀부인들 호위를 맡으면서 임시직 여기사로 활동도 하는 중이고.

"그랬다간 내가 에린한테 죽어."

"칫."

마누라가 같은 기사 출신에다가 직장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어떻게 꼼수를 쓸 수가 없네.

"그래 됐다. 용돈이나 좀 늘려달라고 해야지 뭐."

그래도 부부사이라는게 뭔가. 밤에 부인을 만족시켜주면 든든한 용돈을 받는 것이 나름대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뿔 좀 빨아주면 뭐가 나오겠지 생각하고 있는 동안 레빈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아아......"

"왜 그렇게 죽을 상이야. 너도 슬슬 고추 안 서니?"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데인이 요즘들어 발기가 잘 안 된다고, 카산드라 선배가 무섭다면서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던데.

그래서 정력에 좋은 만드라고라 제품을 추천해줬는데 나중에 괜히 이거 맛들였다고 기력 빨려서 죽겠다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니 젊을 때에는 맨날 섹스섹스 지랄을 다 하던 놈이 나이드니까 슬슬 부인이 안 예뻐보이는 모양이다.

'뭐 나야 아직까지 쌩쌩하지만'

기사단 멤버 중에서도 오랜시간 전투에 참전하면서 욕구가 사라지는 녀석들이 대다수였고 오히려 나처럼 활기차게 연애하는 녀석이 소수라고 하던가.

결과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남자들은 자지가 고개를 숙여서 슬퍼지게 된다는 건데 레빈도 서서히 안 서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임마! 난 아직도 잘 서! 매일 아침 빨딱빨딱 하면서 일어난다고!"

"......그건 기본 아니냐?"

나는 맨날 서다 못해서 부인들만 보면 발기를 주체하기 힘들어지는 바람에 딸들 앞에서 들킬까봐 숨어서 천장을 기어간 적도 있구만.

"아니지 보통 안 서는게 정상이지. 오웬 선배는 이제 슬슬... 끝물이고 데인은 1주일에 한 번 선대더라. 그리고 그 순간......"

1주일에 한 번 데인이 홀쭉해진다 싶었더니 카산드라 선배에게 쪽 빨린 건가.

다른 동기들도 몇 명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젊은 시절에는 부인이 많은 내가 부러웠다가 요즘 들어서는 한 명도 감당이 안 되는데 어떻게 유지하냐고, 정으로 사냐고 질문을 받았다.

발기한 자지를 툭툭 건드리면서 보여주니 갑자기 형님! 하면서 부르짖길래 걔들한테도 정액먹여 기른 만드라고라 제품 추천해줬지.

'그러고 보니 10년이나 있었으니까 만드라고라 특허료도 많이 쌓였겠는데?'

프레데리카도 한번 찾아갈까 생각하고 있는 동안 레빈은 자신의 손에 들린 수정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 결국 구했냐?"

"제수씨한테 하나 받았다."

얘한테 제수씨가 누구... 아, 메리인가?

"그거 너무 오래듣지 마라. 정신이 멍해진다."

인어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홀리는 효과가 있어서 오래 들으면 그 노래에만 집중하게 된다.

물론 직접 불러주는 노래가 그렇다는 것이고 수정구에 담아 놓은 노래는 그것보다 덜하겠지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무언가 레빈 녀석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으흠... 저, 그러니까 얼마 전에 오신... 알리시아 이모 있잖아. 에어리... 씨던가?"

음? 아, 이 녀석은 진실을 모르는구나.

"아... 왔지. 온 김에 음반 하나 같이 내버리게 되었지만. 곧 돌아간다고 하던데?"

애초에 장모님 입장에서는 메리는 인간이랑 살아, 알리시아는 할머니랑 갈거야라고 온 셈인데 알리시아가 카인이랑 결혼하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조마조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던가.

그래도 바다를 오래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범고래 근위단은 인어여왕의 제어가 없으면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고 하니 슬슬 바다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물론 알리시아를 데려가기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방문하실 예정처럼 보이지만 말이야'

"그...... 그 분, 혹시 뭐 좋아하는지 아냐?"

"......뭐라고?"

"아니 그러니까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거나, 어떤 남자가 좋다거나 이런......"

내 육감이 지금 레빈이 하려는 말의 의도를 파악해버리고 말았다.

".....너 설마?"

"으흠...! 아니 뭐 일단 그렇다는 거지. 이곳에서 기거하시는데 내가 선물도 제대로 못 해드리고 몸도 길쭉하셔서 불편하실 텐데 잠깐이라도 배려를......"

아. 이 녀석 지금까지 호문클로스 사서 잠깐 쓰거나 딸딸이만 치고 살아서 그냥 혼자 살려나보다 했는데 하필이면......

"아무튼 이렇게 되었으니 부탁하나 하자. 내가 에어리씨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안 되겠냐?"

아이고 이 녀석 하필이면......

"이모 아니라 알리시아 할머니다."

"너는 메리씨보다 나이가 많으면 다 할머니라고 하냐?"

아니 조금 많은 수준이 아니라 진짜 많은데?

우리 할머니보다 더 언니인데?

"그러니까 인어는 한 배에 한 명의 아기를 낳잖아. 그렇지?"

"응."

"그런데 메리에게 언니가 있을 수 있겠냐? 당연히 그녀보다 손윗 인어라면 누가 있을까?"

"그럼 메리 제수씨의 이모인가? 하긴 나이차이 얼마 안 나는 이모도 있을 수 있지. 그 전 세대에서 알을 두 개 낳았던가..."

"아니 임마 현실부정하지 말고!"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어! 그렇게 아름답게 생겼는데, 솔직히 나보다 젊은 모습인데 그 말을 믿으라고?!"

"인어랑 우리랑 수명이 같냐!"

아오 이 놈 콩깍지 씌여서 말이 하나도 안 통하네!

똑똑똑.

레빈이랑 한바탕 싸우기 직전까지 서로 화를 내고 있으니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리면서 카인 녀석이 재수없는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어딜 어른이 얘기 하는데 훔쳐들어?!"

"단장님. 반 선배. 밖까지 다 들립니다."

"마침 잘 왔다. 카인, 너도 알리시아랑 친하지? 나중에 결혼할 거지?"

그 말에 카인 녀석이 움찔하며 내 눈치를 보는데, 왜 저 자식이 내 눈치를 보지?

설마 진짜로 알리시아를 데려가서 건드릴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이 새끼가?

그 쪼끄만한 치어나 다름없는 애를?!

'안 되겠어. 델핀에게 성전환 약을 구해가지고 카인 녀석에게 미리 먹여두지 않으면......'

"아니 결혼은 그냥 알리시아가 아직 어려서 멋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어쨌거나 알리시아랑도 친하고 메리 제수씨랑도 친하고, 또 에어리씨랑도 친하지?"

"반 선배보다는 친하지요."

그건 그냥 장모님이 나를 존나게 싫어해서 상대적으로 카인이랑 친해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 녀석이 자꾸 거짓말 하잖아. 에어리씨가 알리시아의 할머니라는 등, 인어는 한 번에 딸 하나밖에 안 낳아서 메리 제수씨의 언니가 아니라 엄마라던가."

"그건 진짭니다."

카인의 단호한 말에 레빈이 멍한 표정으로 카인을 돌아보았다.

"농담하지 말고."

"진짜입니다."

"......너 반이랑 같이 다니면서 아가리만 벌리면 구라치는 습관이 옮았냐?"

레빈 이 자식은 나를 어떻게 보는 걸까.

"그럴 리가 없어! 그렇다면 에어리씨가 이미 아이를 낳은 애 엄마라고?! 심지어 그 애가 제수씨인 메리라고?!"

"장모님이라니까."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레빈은 자신의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울기 시작했다.

"으흐흐흑...!"

나도 노총각인 친구 녀석이 오랜만에 애정어린 부탁을 하니 들어주고 싶지만, 상대가 이미 기혼자인 것을 어떻게 해주겠는가.

"상대는! 상대는 누군데!"

"죽었겠지."

메리가 70살이니까 장모님이 70년 전에 장인어른을 만난 것이다.

그 당시에 대략 20대라고 잡는다면 올해로 90세... 물론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돌아가셨다고 봐야한다.

게다가 선원 출신일 텐데 선원들은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낮거든. 술은 있는대로 퍼마시지 항해일은 힘들지... 오래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포기해. 생각보다 나이도 많고. 이미 애도 낳은 몸이라서..."

순간적으로 '이미 알집은 누가 썼다'라고 말해주려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장모님의 몸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게 불경한 생각이라서 그냥 말을 아꼈다.

"......"

레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번에 증액된 예산으로 우리 좋은 물품이나 사자고. 세 명이니까 예산 마음대로 써도 되잖냐? 그러면 이번에 시설도 좀 교체하고 부식도 빵빵하게 사서 들여놓자. 우리 훈련기사 시절에 있던 육포가 왜 아직도 굴러다니는데?"

"유통기한이 남았습니다."

"안 남았어! 남았어도 저딴거 안 먹어!"

카인이랑 티격대면서 무슨 부식을 살까 고민하고 있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레빈이 입을 열었다.

"그래. 결심했어."

"그치? 역시 저건 갔다버리고..."

"이미 그녀가 결혼을 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대가 살아있지 않다면 괜찮은 거잖아?"

"하?"

이 새끼가 예산 증액을 얘기하려니까 자꾸 기운 빠지게 장모님 얘기만 하네.

"결과적으로는 지금은 혼자가 된 미망인이라는 거잖아? 약간 충격이기는 했지만, 괜찮아! 나는 받아줄 수 있어!"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와주시기만 하면 돼!!"

레빈의 마나회로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레빈의 오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입으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인 오러로는 거짓말을 못 한다.

"......결정했어! 마도기사단의 단원들아, 나에게 힘을!!"

"아니 별로 돕고 싶지 않은데."

"단장. 저도 조금......"

"닥쳐! 도우라고!!"

노총각의 분노는 이리도 매서운 것인가.

결과적으로 나랑 카인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단장 레빈의 명 때문에 강제로 장모님과 레빈에게 다리를 놓아줘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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