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022. 광학의타천사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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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4일 토요일. 햇볕은 뜨겁고 그림자는 선명한 정오 시간대.
멀찍이 떨어진 우거진 숲에서 쓰르라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아오, 씨발 졸라 덥네 ”
또한 머리를 길게 길러서 끈으로 대충 묶은 어떤 소년이, 어깨에 가방을 걸친 채로 논길을 걷고 있었다.
교복은 달평 마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학교인 강일 중학교의 교복. 명찰의 색깔은 흰색으로, 그 소년이 3학년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왜 하필 이런 더운 날에 부르고 지랄이야, 씨발… ”
명찰에 적힌 이름은, 안승민. 그는 주말에 교복을 입은 채로 걷고 있었다.
학교에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원에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복을 입었는데, 이유라면 아주 간단했다.
‘ 강한별 썅년만 아니었어도…! ’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민의 반은 현장 체험 학습을 떠났다.
승민은 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결코 어머니께 거스르지 않고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살아왔다.
‘ 우리 승민이 다음 주에 현장 체험 학습 가는데 입을 옷이 없네… 엄마가 옷 사줄까? ’
‘ 어… 용돈 주시면… 제가 살게요. ’
‘ 어허, 용돈은 아직 안 된다니까. 용돈은 우리 승민이가 좀 더 크면 줄게! 아직 용돈을 받긴 어리잖니! ’
‘ 아니, 그냥 옷 살 돈… 말한 건데… ’
‘ 에이, 옷은 엄마가 사줄게! 승민이는 아직 그런 거 잘 모르니까! 아, 이거 어때? ’
‘ 그, 그거요…? 좀… 촌스럽지… 않나요…? ’
‘ 에휴, 얘가 무슨… 봐 봐, 뭘 모르잖니… 이게 엄마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창… ’
용돈을 주지 않아도 불만을 토로한 적은 없었다. 옷은 그냥 어머니가 사주는 대로 적당히 입고 다녔다.
현장 체험 학습을 떠나던 날도 어머니에게 받았던 옷을 입었다. 승민이 입은 옷은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단 듯, 놀림을 받았다. 겉으론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아무래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한테는 차마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었다.
딱히 어머니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다. 분명 확실하게 의사를 드러내면 들어줄 것이다.
다만 오랜 세월에 걸친 세뇌가 축적되어, 자신의 정신이 부서져도 반항하지 않는 게, 그게 착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로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옷을 사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고, 다시 그 옷을 입고 가서 비웃음을 살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호구 취급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정신이, 육신이, 모든 게 부서지더라도.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아버지처럼, 어머니도 자신을 떠나갈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승민은 언제나 밖에 나갈 때면, 교복을 입는 것으로 대신했다.
‘ 승민아, 친구랑 놀러 가는 거 아니었어? 근데 왜 교복을 입는 거니? ’
‘ 아… 그… 입기 싫은 건 아닌데… 뭐냐… 그… 교, 교칙 때문에요…! 하하… ’
‘ 그렇니… 난 또… 엄마가 사준 옷을 입기 싫다는 건 줄 알았잖아… ’
어머니한텐 교칙이 그렇다느니, 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 야, 근데 니 왜 맨날 교복 입고 나오냐? 안 불편해? ’
‘ 야, 그거… ’
‘ 아… ’
‘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교복이 더 편하더라고! 하하… ’
‘ 아… 그, 그래? 뭐, 니가 편하면 됐지… ’
얼마 없는 친구에겐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늘어놓으며.
그래서 승민은 지금도 교복을 입고 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 원인. 가장 먼저 승민을 비웃고, 그 이후로도 당시의 사건을 언급하고 다니며, 승민을 마구 비웃던 여학생.
한별은 지금 그의 옆에서 함께 논길을 걷고 있었다.
“ 야, 씨발 빨리 안 걷냐? 씨발 존나 느리게 걷네. ”
승민의 속도에 맞추어 걷던 한별이, 승민을 걷어차며 짜증 섞인 욕설을 쏟아냈다.
그녀에게 걷어차인 승민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 씨발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솔빈이를 내가 특별히 만나게 해준다잖아. 너도 솔빈이 보고 싶지 않아? 아님 씨발 그냥 다시 돌아갈래? ”
한별이 차가운 시선으로 승민의 얼굴을 밟으며 말했다.
그러자 승민은 이빨을 빠득빠득 갈면서 그녀의 발을 쳐냈다.
“ 알았다고… 그냥 더우니까 힘들어서 그런 거야… ”
“ 그럼 교복을 입지 말던가. 한여름에 동복 입어 놓고 덥다 하면… 에휴… ”
“ 아니, 씨발 니가 나한테 그럴 자격이… ”
“ 있지. 너보다 내가 훨씬 착하고 훨씬 좋은 사람이니까. ”
“ 허, 니가 착해? 씨발 옷 좀 이상하게 입었다고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새끼가? ”
“ 그래, 대가리에 좆박은 개병신 새끼야. 내가 너 같은 미친 소아성애자 새끼보다 몇 배는 나은 새끼지, 안 그래? ”
한별은 휴대폰 화면을 당당히 내밀더니 대놓고 승민을 비웃었다.
승민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닦더니,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그는 얼음처럼 굳어서 어금니를 악물고 있을 뿐, 한별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 하아… 천솔빈… 솔빈이구나… 귀엽다… 얼굴도 귀엽고… 말하는 것도 너무 착하고… ”
“ 천사 같아… 내가 반드시… 반드시 그딴 쓰레기 같은 아빠한테서 구해줄게…! ”
“ 그, 그러니까… 기다려 줘… 지금은 내가 힘이 없어… 그러니까 조금만… 흐읏…! ”
어떤 남학생이 체육 시간의 한적한 교실에서, 책상에 놓인 축축한 체육복의 땀 냄새를 마구 맡으며 자위하는 동영상.
남학생의 얼굴과 체육복의 명찰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남학생은 누가 봐도 승민이고, 명찰엔 솔빈의 이름이 있었다.
즉, 한별이 승민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승민이 솔빈의 체육복을 훔쳐서 땀 냄새를 맡으며 자위하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 이거 존나 유용하네. 나 같은 애도 아니고 천솔빈 같은 병신을 쫓아다니는 게 이상해서, 니새끼 조사하다가 우연히 찍은 건데. ”
“ 아,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별로 병신 같다고 생각하진 않아. 존나 역겨워서 토가 나올 만한 업적이라 감탄은 하고 있지만. ”
“ 중1때 길거리에서 질질 짜다가 근처를 지나가는 처음 보는 초딩한테 위로받고, 초딩한테 첫눈에 반해서 초딩을 스토킹. ”
“ 것도 모자라서 첫눈에 반했던 초딩이 중학교에 입학하니까, 이젠 체육복을 훔치고 땀 냄새 맡으면서 무려 30분 동안 상상딸. ”
“ 이야, 이거 전부 까발리면 씨발 전국에 있는 기레기들 좋아 죽겠는데? 뭐, 사실 내가 니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긴 하겠지 ”
“ 하지만 과연 누가 먼저 매장될까? 죄목은 사실 적시 명예 훼손인데. 나는 쾌락에 미친 예비 범죄자 새끼를 붙잡은 거잖아. ”
“ 스토킹? 협박? 내용 까 봐. 이틀도 아니고 고작 하루 미행한 정도의 스토킹. 금전 요구도 아니고 그냥 잠깐 일을 도와달라는 협박. ”
“ 금방 묻혀. 그것보단 미친 소아성애자 새끼가 갓중딩을 강간하려고 애새끼를 물색하고 있었다는 게 훨씬 문제잖아? ”
“ 애초에, 나랑 너랑, 주변에서 누가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냐? ”
“ 너같이 음침한 변태 찐따 새끼보단, 마을 어르신께 예의도 바르고, 용돈 모아서 마을에 기부한 내가 훨씬 신뢰를 받지 않겠어? ”
“ 뭐, 학교에서 자주 애들 패고 다녔지만 나는 너같이 사람 덜된 병신만 때려서… 오히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거든. ”
“ 까놓고 말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아무나 죽이고 전부 너한테 덮어씌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
“ 하지만 너는 어떨까? 내가 판을 키우면, 너같은 새끼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는데? ”
“ 병신처럼 침대에 누워서 멍때리기? 대인 기피증 생겨셔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느그 어머니께 욕먹어서 정신 병원 가기? ”
“ 그럼 너희 어머니 되게 불쌍한데… 아, 내가 씨발 애새끼를 이따구로 키웠구나. 씨발 나 같으면 벌써 미역국 게워내고 자살 쳤다. ”
“ 우리 승민이, 아무리 개떡 같은 옷을 줘도 아가리 묵념하고 입는 효자인데, 어머니를 그렇게 죽여 버리면 안 되겠지? ”
“ 아, 니가 효자는 아닌가? 하긴, 이미 이딴 대가리에 총 맞은 짓 하고 다니는 시점에서, 효자 되긴 글러 먹은 패륜아 새끼지. ”
“설령 니가 니밖에 생각 안 하는 쓰레기 새끼라도, 내가 이걸 느그 솔빈이한테 보여주면… 걔가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 ”
“ 너는 나중에 다시 고백하려는 생각 아니었어? 내가 이걸 공개해 버리면 니가 무슨 발악을 하든,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
“ 그니까 씨발 너는 내가 시키면 아가리 닫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함부로 반항하지 말고, 병신년아. 하여간 지능이 낮으니… ”
승민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리며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겼다.
“ 후우…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얼른 가자… 늦겠다… ”
군말 없이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승민을 바라보던 한별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 그래도 안심해. 볼 장 다 보면 찍은 거 전부 삭제할 거야. 이래 봬도 입밖에 내뱉은 약속은 전부 지키는 편이거든. 믿건 말건 자유지만. ”
승민은 한별에게 보이지 않도록 이빨을 빠득빠득 갈아대며 가방끈을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 한별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뇌까렸다.
“ 아오, 씨발년이 진짜… 면상만 봐도 아무한테나 다리 벌리면서 돈 받는 골 빈 창녀 새낀데, 운동 좀 한다고 졸라 나대고 다니네… ”
승민이 처음부터 한별의 명령에 전부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은 했었다.
하지만 승민이 멍청했던 점과 한별이 영악했던 점이 발목을 잡았다.
‘ 이게 강한별 휴대폰… 인가… 파일만 삭제하면… 그럼 그 년은 이제 나한테 함부로 협박 못 하겠지. ’
휴대폰을 몰래 훔쳐서 파일을 삭제하려고 시도했다.
‘ 아, 잠깐… 근데 암호가… 아오, 씨발 나새끼 존나 병신인가… 에이, 씨발… 일단 내일 책상에 몰래 놔두자… ’
하지만 휴대폰의 암호를 몰라서 결국 제자리에 되돌려 두었다.
‘ 암호… 030728… 자기 생일인가? 푸흡, 존나 단순하네. 에휴… 하긴, 운동 말곤 암것도 못하는 골 빈 년들이 다 그렇지… ’
‘ 나중에 파일 삭제하면 나한테 협박한 걸로 역으로 협박해서 한번 따먹을까… 운동 배웠으니까 허리 놀림은 좋을 것 같은데. ’
한별이 암호를 누르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휴대폰을 다시 훔쳤다.
‘ 뭐야… 030728… 맞는데? 왜 틀렸다고 나오는 거야…? 오늘 확인했는데… 설마 금세 바꿨… 썅년이 내가 훔쳐본 거 알고…! ’
하지만 당일 바로 훔쳤음에도 불구하고 암호는 진작에 변경된 상태였다.
‘ 아. ’
‘ 뭐야, 쟤… 한별이 휴대폰 뺏어서 갤러리 뒤지고 있어… ’
‘ 쟤 왜 저래…? 존나 미쳤나 봐… 한별이한테 뒤질라고… ’
그래서 아예 한별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을 때 훔쳐서, 재빠르게 파일을 삭제하는 위험한 수단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한별이 파일을 수많은 장소에 백업한 뒤였다.
‘ 야, 씨발 눈 깔아. 뭘 존나 다 해결한 것마냥 모가지 빳빳이 세우고 앉았냐? 병신 새끼가 뒤질라고 작정했냐? 느금마 앞에서 틀어줘? ’
‘ 에휴, 병신아… 내가 니도 아니고 이걸 그냥 갤러리에 떡하니 놔두겠냐? 당연히 여러 곳에 백업해 뒀지. 대가리 졸라 나쁘네, 진짜… ’
게다가 이건 수많은 학생이 지켜보는 교실에서 발생한 사건.
‘ 야, 최근에 한별이가 휴대폰이 자꾸 없어진다고 했었지? 그거 사실 쟤 아니야? ’
‘ 헐, 대박… 이거 맞는 듯… 근데 왜 자꾸 한별이 폰을 훔치는 거지… ’
‘ 한별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전화번호 안 줘서 그런 건가…? ’
‘ 뭐야, 뭐야.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야? ’
‘ 야, 대박… 최근에 한별이가 휴대폰 자꾸 없어진 거, 전부 쟤가 훔쳐서 그렇대… 전화번호 안 줘서 훔쳤다는데…? ’
‘ 와, 저 새끼 진짜 미쳤네… 진짜 찐따 새끼들 존나 역겨운데 걍 다 뒤져 버렸으면… ’
‘ 야, 경민이는 뒤지면 안 돼… 경민이는 존나 잘생기고 존나 귀엽잖아… ’
승민이 직접 훔치는 모습을 확인한 수많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다.
결국 승민은 가해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 그, 그렇게 된 일이에요… 그런 일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에요… ’
‘ 아. 글나. ’
‘ 저기… 제 말 제대로 들어주셨죠? ’
‘ 일단 듣긴 들었다. ’
승민은 뒤늦게 한별의 협박을 경찰에게 알렸다.
‘ 근데 솔직히 믿기 힘들다. 금마처럼 착한 아가 또 어딨다고… 애초에 점마가 니한테 그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뭔데? ’
‘ 아니,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소리세요…? ’
‘ 금마가 보기엔 아새끼들이랑 치고박고 싸우고 나쁜 아처럼 보이는데… 심성은 착한 아다. ’
‘ 걔가요…? ’
‘ 금마랑 싸운 아새끼들, 전부 동네 할배한테 싸가지 없이 반말 찍찍 싸고 팔에 문신하고 그런 새끼들이었다이가. ’
하지만 아무리 간절히 호소를 해도 경찰은 좀처럼 믿어주지 않았다.
‘ 애초에 니가 내 같으면 니가 말하는 걸 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 그, 그건 그렇지만… ’
‘ 내 말 잘 들어 바라이, 금마가 그딴 짓을 할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긋노? 없제? 말해 바라, 없다이가? ’
‘ 하, 하지만… 저, 저는 분명히… 분명히 겪은 사실을.. ’
‘ 하아… 내 말 뭔소린지 모르긋나? 아직도 금마가 그딴 짓을 했다고 씨부리고 싶으믄, 니가 그 증거를 들고 오라는 기다. 으이? ’
‘ 즈, 증거… 어, 어떤… ’
‘ 마, 일하는 데 방해되니까 이딴 말도 안 되는 걸로 쳐 신고해싸치 말고, 퍼뜩 집에나 쳐 드가서 공부나 하그라. ’
‘ 아, 알겠습니다… ’
‘ 느금마가 그렇게 고생하는데 니는 그게 불쌍치도 않드나? 에휴, 쯧쯧… ’
휴대폰을 도난했던 인간의 발언 따위,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학생도… 선생도… 경찰도… 부모도… 전부 적이란 말이지…? 그럼 폭력을 써서라도…! ’
결국 승민은 한별을 때려서라도 굴복하게 만들고자,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 커헉…! ’
‘ 야, 너 진짜 병신이지? 이건 욕이 아니라 진심으로 병원 가봐라. 진심으로 니새끼 지능에 뭐 문제 있는 것 같은데. ’
하지만 체급도 별로 차이 나지 않는 데다가, 옛날부터 유도를 오랫동안 배웠던 그녀에게 오히려 역공을 당했다.
이윽고 한별은 갑자기 옷을 벗고 대뜸 소리를 질렀는데, 마침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이 찾아와서 승민을 붙잡았다.
알고 보니 한별은 승민의 계획을 사전에 알아차리고, 경찰에게 미리 언질을 줘서 그쪽을 순찰하게 만든 것이었다.
‘ 얘야, 아줌마를 봐서라도 한 번만… 딱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니…? 얘, 얘가 정말 착한 앤데… 어, 어째서… 그런 일이… ’
‘ 아니, 그럼 뭐… 제가 지금 거짓말을 했다고 말씀 하시고 싶은 거예요? ’
‘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앞으론 그러지 않도록 아줌마가 따끔하게 혼낼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용서를… ’
결국 강간 미수로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고 승민의 어머니는 한별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용서를 빌어댔다.
‘ 알겠어요. 합의금을 필요 없고… 그냥 다신 그런 짓 못 하게 해주세요. 알겠죠? ’
‘ 그, 그래… 정말 고맙다… 얘, 승민아… 너도 얼른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
‘ 하아… 진짜 제가 잘못… ’
‘ 승민아, 엄마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니…?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았으면 감사하다고 말해야 되잖니…! ’
‘ 아오… 아, 알았어요… 인사하면 되잖아요, 인사하면… 한별아… 그… 용서해줘서… 고, 고마… 워… ’
‘ 쯧쯧… 에휴, 아지매… 자식새끼가 지애비 똑 닮아가꼬 그런가, 요즘 얼굴이 죽상이네. 힘내이소. ’
‘ 아이고, 아닙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하고…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승민아, 얼른 가자…! ’
결국 한별이 마지 못해 선처를 해주며 승민은 처벌을 피했다.
하지만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에 퍼져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게다가 영상도 제대로 삭제하지 못해, 원점은커녕 후진만 미친 듯이 해버린 상태.
물론 승민은 한별의 협박을 녹음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법적인 싸움으로 번지면 승민의 행동도 모조리 들킨다.
그래서야 완전히 말짱 도루묵.
‘ 야, 너 씨발 지금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거냐? 녹음? 이 새끼가 진짜 쳐돌았네? ’
애초에, 그녀는 무슨 독심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승민이 녹음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간파했다.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냥 잠자코 한별의 명령에 따르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승민은 지금 목줄을 차고서 손잡이를 한별에게 넘겨주고 있는 상태.
‘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 솔빈이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는구나… 누군진 몰라도 생일 파티니까… 솔빈이 사진 찍어도 괜찮겠지? ’
‘ 그래,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친구 생일 파티에서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는 건데, 도대체 누가 문제를 제기하겠어? ’
‘ 인단 생일 파티에서 솔빈이 사진 수급하고… 솔빈이 집에 잠깐 들러서… 속옷이나 훔칠까? 최근에 딸감도 부족했는데… ’
‘ 솔빈이는 엄청 가난하니까… 세탁도 자주 못 할 테고, 그럼 제법 많은 냄새가 배어 있겠지… 큭… 아아… 행복하다… ’
하지만 자유를 빼앗긴 사람치고, 승민은 만족스려워 보였다.
고간으로 쏠리는 혈액을 애써 분산시키며, 음흉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별은 그런 승민을 경멸하는 듯한 시선으로,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우웩, 씨발 존나게 역겹네. 역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새끼는 우리 귀여운 경민이밖에 없다니까… ’
‘ 아, 납치해서 감금하고 싶다. 우리 경민이 따먹으려고 얼굴, 몸매, 체력 전부 철저하게 관리했는데 천솔빈 때문에 전부 망쳤네. ’
‘ 씨발 그딴 애미 애비 뒤진 개좆집 창년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바람피울 생각도 못하게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착정하고 있을 텐데. ’
‘ 경민이로 망상하면서 혼자 하는 것도 슬슬 힘드네… 기분은 좋은데 힘들어서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는 경민이 모습 보고 싶다… ’
승민과 한별은 각자만의 추잡스러운 망상을 즐기며 발걸음을 옮겨, 어느덧 경민의 집에 도착했다.
한별은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오더니, 창문으로 집안을 살폈다.
그런 그녀를 수상하게 생각한 승민도 그녀를 따라서, 창문으로 집안을 살폈다.
이윽고 집안을 확인한 그들은 돌처럼 굳어서 아무런 잇지를 못하고 있었다.
“ 우읍… 푸하…! 오빠… 저… 다른 것도… 핥고 싶은데… 지금… 안 될까요…? ”
“ 나중에 애들 돌아가면… 그때 하자. ”
“ 네…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테니까… 잔뜩… 해주셔야 돼요…? 히힛… 하웁… ”
솔빈이 목줄을 차고서 경민의 솔가락을 열심히 핥아주고 있었다.
불쾌하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마치 사탕을 빨고 있는 꼬마처럼,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핥았다.
‘ 소, 솔빈아… 솔빈아…? 왜…? 내가 훨씬… 잘해줬잖아…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핥고 있는 건데? ’
‘ 어째서 그렇게 행복하단 듯이 목줄을 차고 있는 건데…? 내가 고백했을 때는 별로 다른 사람이랑 사귀고 싶은 생각 없다며…? ’
‘ 아, 그래… 너도 나쁜 남자가 좋은 거야? 내, 내가 좀 더… 나쁘게 행동했으면 되는 거야…? 도대체 어째서…! ’
승민은 정신이 나간 듯이 털썩 주저앉아서, 머리카락을 미친 듯이 쥐어뜯었다.
비록 화는 자주 내도 결코 동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한별도.
경민과 솔빈이 스킨십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만큼은, 굉장히 동요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나는 맨날 주먹으로 때려 놓고… 천솔빈한테는… 저렇게 상냥하게 머리도 쓰다듬고… 안아주는 거야…? ’
‘ 내가 더… 내가 훨씬 더 사랑하는데… 내가 훨씬 옛날부터 사랑했는데… 내가 훨씬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돈도 많은데…! ’
‘ 나는 너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데… 사람도 죽여 왔는데… 너를 위해서 내 모든 세월을 바쳐서 이렇게 관리했는데…
‘ 지금 이게 뭐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도대체 뭔데 걔랑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다른 건데…? ’
‘ 나도… 쓰다듬어주면… 안아주면… 저렇게 애교 부릴 수 있고… 훨씬 더 사랑스럽게 웃을 수도 있는데… ’
‘ 손가락도… 발가락도… 다른 것도 얼마든지… 빨아줄 수 있는데…! ’
‘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손톱을 미친 듯이 물어뜯으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경민이 보기 싫지 않도록 깔끔이 다듬은 손톱은, 그녀의 새하얀 이빨에 무참히 물어뜯겨, 흉하게 변해 있었다.
한별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선, 이빨 사이에 끼인 손톱을 침과 함께 뱉었다.
이내 심호흡을 하더니 애써 미소를 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 진정해… 천솔빈 썅년만 안승민 병신한테 넘기면… 고스란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잖아…? ’
‘ 나는 그냥… 고생 끝에 찾아올… 머지않은 행복에… 기대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경민이한테 봉사할 것들 생각하면서… ’
‘ 경민이의 상냥함은 내 거니까. 목줄을 차는 것도, 경민이의 손가락을 핥아주는 것도, 다른 걸 핥는 것도, 결국 나중엔 내가 될 테니까. ’
‘ 그리고… 이거… 기회야. 안승민 저능아 새끼를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기회. ’
‘ 천솔빈 병신년 심리도 뻔해. 계획을 조금만 수정하면… 천하의 개썅년으로 만드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 ’
한별은 입꼬리를 올리며 승민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승민은 영혼이라도 나간 듯이, 몸에 아무런 힘을 주지 않고, 오로지 한별의 근력만에 의지해서 일어났다.
한별은 승민의 멱살을 꽉 붙잡고선 활짝 웃으며 말했다.
“ 단순한 명령인데… 이젠 진심 같네? 아, 그리고… 이게 마지막 명령이야. ”
“ 이거 끝나면… 노예 해방시켜줄게. 전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천솔빈을 꼬셔서 혼자 따먹든, 찐따들 불러서 돌림빵하든. ”
그제서야 승민은 정신을 차리더니, 멱살을 잡은 한별의 손을 뿌리치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마음에 안 드는 기생오라비 새끼 처리하고, 솔빈이 꼬셔서 데리고 가래서 도대체 무슨 개떡같은 명령인가 했는데… ”
“ 그게 저런 상황이면 얘기가 다르지. 니가 씨발 웬일로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거야? 맨날 이상한 정보 수집만 주구장창 시키더니. ”
“ 아니면 아예 연장 챙겨오라고 말하지. 그럼 손도끼 들고 와서 씹새끼 아구창 쳐 갈겨 버리고 감방 가는… ”
활짝 웃으며 승민의 이야기를 듣던 한별이, 마지막 이야기에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그러더니 살벌한 미소와 함께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그거 다시 말해줄래? ”
입꼬리는 올리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듯한 인간의 초점 없는 눈빛.
승민은 당황해서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턱을 덜덜 떨다가,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열었다.
“ 농담인데 존나 진지 빠네. 알았다고. ”
그제서야 한별은 진심으로 웃더니, 현관으로 가서 당당히 초인종을 눌렀다.
***
경민의 손가락을 핥고 있던 솔빈은, 초인종이 울리자 갑자기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것은 솔빈이 경민의 집에 와서 처음 듣는 초인종 소리.
솔빈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민의 품속에 안겨서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 우… 으… 아…! 아아아아아…! ”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극심한 공포를 느낀 건지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민은 그녀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입술을 맞추고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솔빈은 초점이 어긋난 눈빛으로 얼굴을 붉히고는, 경민의 손바닥에 얼굴을 대고 마구 비벼대면서 말했다.
“ 오빠… 손… 따뜻해서… 지금… 엄청나게 안심했어요… 헤… 헤헤… 헤헤헤… ”
경민은 그녀를 진정시키고는, 솔빈의 목줄을 잡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솔빈은 경민의 등 뒤에 숨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애써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현관에선, 인터폰으로 한별과 처음 보는 남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남학생은 교복을 입고 있었으며, 이름표를 확인해보니 이름은 안승민이었다.
‘ 누구지? 한별이 친구? 처음 보네. 아니, 근데 그럼 이거… 사실상 한별이밖에 안 왔다고 봐야 되는 거 아니야? ’
‘ 씨발 이번에 안 오면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으로 회 썰어 먹는다더니… 진짜 간 거야, 늦는 거야, 아니면 도대체 뭐야? ’
경민이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 어라? ”
갑자기 목줄이 팽팽해졌다. 천천히 시선을 옮기자, 솔빈이 굳어 있는 게 보였다.
“ 솔빈아…? ”
경민이 말을 건네자 솔빈은 갑자기 인터폰 화면 속의 승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저, 저거…! 시, 싫어요…! ”
솔빈의 팔다리는 봄철의 순풍에도 부러질 듯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내 솔빈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가슴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 솔빈아! ”
깜짝 놀란 경민은 황급히 달려가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 솔빈아, 괜찮아? 왜 그래? 저 사람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
“ 우, 으… 오빠… 오빠… 오빠… ”
솔빈은 경민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경민에게 안겨서 계속해서 경민을 부르고만 있었다.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던 경민은 문득 인터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경민은 승민을 처음 봤다. 승민과 솔빈의 접점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솔빈의 반응으로 미루어 봤을 때, 대충은 감이 잡혔다.
‘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솔빈이는 흔히 말하는 찐따. 그런데 외모는 엄청 예쁘진 않아도 평균 이상은 돼. ’
‘ 그럼 정말 많은 일이 있었을 거야.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닌, 어중이떠중이들이 솔빈이한테 많이 들이댔겠지. ’
‘ 진심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라, 지들도 본인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훨씬 예쁜 애들한텐 들이댈 생각도 못하는 거지. ’
‘ 그리고 솔빈이는 만만해 보이니까, 자기 정도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무턱대고 들이댔던 거겠지. ’
‘ 입으로는 좋아한다느니, 뭐라느니, 실컷 씨불이다가 정작 솔빈이보다 훨씬 괜찮은 여자랑 사귈 기회가 있으면 바로 버릴 것들. ’
‘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머지 역겨워서 토가 나올 것만 같은 추악한 발상이네. 차라리 사창가 찾아가서 돈내고 창녀들 사먹던가. ’
‘ 걔들은 돈만 내면 알아서 다리 벌려주는 자동판매기 같은 걸레년들이니까. ’
솔빈의 상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을 뿐, 좋아지려는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경민은 승민을 볼수록 가슴 깊숙이 스미는 강렬한 증오심에 어금니를 악물었다.
‘ 안승민인가. 쟤도 그딴 쓰레기 같은 부류 중에 하나겠지. 달평 마을 인간들은 솔빈이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
‘ 솔빈이가 도대체 뭐를 잘못한 거야? 어째서 솔빈이를 그렇게 괴롭히는 건데? 이렇게나 귀엽고 착한 애를… 도대체 어째서? ’
경민은 주먹을 움켜쥐다가 온 힘을 다해 솔빈이를 끌어안고 목줄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힐 듯이 안았지만 오히려 솔빈은 진정한 듯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 오빠… 힘들어요… 저… 그냥… 오빠랑 있고 싶은 게 전부인데… 그냥 그거면 되는데… 아무것도 필요 없는데…! ”
“ 괜찮아, 솔빈아. 힘들 때면 혼자 떠안지 말고 언제든지 어리광부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 ”
경민은 그녀를 진정시키며 다시 현관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한별이가 저런 새끼를 데리고 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한별이가 잘못한 것은 아닐 거야. ’
‘ 걔가 나를 자주 괴롭히고 말을 조금 험하게 하긴 해도… 절대 나쁜 애는 아니야. 분명히 무슨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
‘ 한별이보고 돌아가라 하거나 안승민 보고만 돌아가라고 말해도 이상하고… 한별이 체면도 있으니까… 일단 집에 들이자. ’
‘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불과해. 증거도 없는 데다가, 내가 목격했거나 소문이 있던 것도 아니야. ’
‘ 그래. 냉정해지자.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때 정당하게 내쫓으면 돼. 내가 감당 못할 정도여도, 여차하면 한별이가 있어. ’
경민은 조용히 휴대폰의 녹음기를 켜서 녹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호흡을 크게 가다듬더니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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