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030. 약속의파수꾼 (下)
* * *
승민이 그렇게 말하자 경민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친하진 않아도 옛날에 친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별이 자살을 했다는 게 별로 믿기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승민이 농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경민은 당황스러워서 괜히 뺨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 엄… 강한별이 자살을 했다고…? 왜…? 내가 아는 강한별은… 어지간한 일로는 자살할 만한 애가 아닌데… ”
“ 월명 중학교 사건이 뭔지 알아? ”
승민의 이야기에 경민은 흠칫했다. 월명 중학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학교였다.
‘ 아… 졸업 앨범… ’
츠카사와 함께 창고를 뒤지다가 발견한 졸업 앨범의 학교. 경민이 졸업한 학교였다.
그런데 승민이 선택한 단어는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월명 중학교에 전학가서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래서 졸업 사진에 찍힌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한 경민은 한숨을 내쉬며 승민에게 물었다.
“ 월명 중학교 사건? 거기서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그러자 승민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갤러리에 들어가서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줬다.
동영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 봐도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금발의 여학생이 교칠 창문으로 화염병을 던져서 경찰을 공격하는 모습.
경민이 넋놓고 화면을 보고 있자 승민은 휴대폰을 화면을 끄면서 말을 이었다.
“ 나도 일단 뉴스에서 봤던 사건이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강한별이 인질극을 벌였어. ”
“ 아무리 강한별이라지만 여자인 데다가 고작 중학생인데 도대체 어떻게 인질극을 벌였나, 싶었는데… 역시 강한별은 강한별이야. ”
“ 강일 중학교 만큼 외진 곳은 아니지만 월명 중학교도 제법 외진 곳에 있거든. 안 그래도 사람 적은데 새벽부터 준비했다고 하더라. ”
“ 자기 아빠 부하들 미리 불러서 대기시키고 경비원 출근하니까 기절시켜서 사람 적은 화장실에 감금하고 각종… 뭐냐… ”
“ 대충 화염병, 휘발유, 식칼, 이런 무기 같은 것들 준비해서 교실 하나 잡고, 아무나 등교할 때마다 기절시켜서 거기 감금했대. ”
“ 30명 가까이 모였을 때 복도에 휘발유 뿌린 다음 자기 스스로 경찰에 신고. 여기서 끝났으면 조금 놀랄 만한 사건인데… ”
“ 결국 학교 건물도 새까맣게 태우고 30명 전부 죽였어. 심지어 경찰차에도 화염병을 던져서 순직한 경찰도 많았지. ”
“ 그 미친년이 진짜 어디서 배운 건진 몰라도 화염병도 존나 잘만들어서 폭발력도 미쳤고 불도 잘 안 꺼지더라. ”
“ 그렇게 죽이고 나서 남학생 한명 끌어안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대. 경찰이 미리 에어 매트리스를 주변에 깔아 놓긴 했는데… ”
“ 남학생만 살고 강한별은 죽었어. 머리부터 떨어졌는데 운은 또 존나 좋았는지 즉사는 아니었지만 병원으로 가다가 결국 죽었어. ”
승민의 설명에 경민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별의 범죄는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솔빈이 저지른 범죄도 충분히 끔찍했고 솔빈도 엄연한 연쇄 살인마였다.
하지만 한별은 차원이 달랐다. 솔빈이 죽인 사람은 그나마 전부 무고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을 학대하고 강간한 아버지. 자신을 그런 아버지한테 맡기고 몇 년을 방치한 어머니.
솔빈의 범행 동기는 그럭저럭 납득할 만했고 조금은 참작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한별은 그냥 무턱대고 납치해서 경찰을 협박하다가 깡그리 죽여 버린 거다.
심지어 다른 남학생을 길동무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 그 남학생은 도대체 무슨 죄냐고… 근데… 남학생은… 누구지…? ’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문득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생각.
‘ 나도… 월명 중학교 다녔잖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강한별은 나를… 아니, 설마 그딴 이유 때문에 저런 짓을 했겠어? ’
하지만 경민은 혼자서 생각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억제할 수 없었는지, 등줄기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혹시 자신도 사건에 엮인 게 아닐까. 괜히 불안해진 경민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슬쩍 닦고는 승민에게 물었다.
“ 근데 그… 남학생은 누구야? ”
“ 한경민. ”
“ 그렇구나… 한경… 뭐…? ”
“ 너라고. 요구 사항이 너를 데리고 오라는 거였어. ”
“ 나를 데리고 오라고…? 그, 그래서… 어, 어떻게 된 건데…? ”
“ 요구가 단순한 만큼 그냥 들어주려고 했었는데, 하필 니가 그때 늦잠을 자서 늦게 도착했다더라. 그러다가… ”
“ 거기까지… 뒤는… 말 안 해줘도… ”
“ 그래? 그럼 일단 이건 여기까지만 말할게. ”
경민은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평생 한번 겪을까 말까 싶은 사건을 고작 1년 동안 2번이나 겪었다는 소리였다.
이미 끝난 일인데도 소름이 돋았다. 이젠 승민의 말이 의심스러워서, 의문을 제기했다.
“ 근데 뉴스인데 이름이 나와? 어떻게 나하고 강한별이라고 확신하는 거야? ”
“ 방금 보여준 동영상 말고 다른 동영상에 니들 이름이 나온 게 있었어. ”
“ 아… 아니, 근데 그건 도대체 누가 찍은 거고 넌 그걸 도대체 어디서 본 거야? ”
“ 월명 중학교 근처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폰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고, 나는 인기 급상승 동영상 보다가 우연히 봤지. ”
“ 아… 인질극을 구경했어…? 그냥 구경한 것도 아니고 찍었어…? 심지어 제보 영상으로 제공한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올렸다고…? ”
“ 근처에서 방송하면서 수익 창출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뭐. 그러다가 화염병 맞아서 타 죽은 사람도 있었다지? ”
“ 동영상 올라갔던 거, 지금은 전부 어떻게 됐어? 아직 우리 이름 떠돌아 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
“ 당연히 지금은 전부 삭제됐지. 사실 굳이 삭제 안 해도 우리나라 사람 냄비 근성 오지는 거 알잖아. 이 사건은 잊혀진지 오래됐어. ”
“ 하긴… ”
“ 이건 그냥 내가 혹시 몰라서 그냥 별 생각 없이 저장해 뒀던 거야. 보아하니 이게 그 혹시 모르는 상황이었나 보네. ”
승민과 대화를 끝낸 경민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는 단숨에 무거워졌다.
하지만 츠카사는 그런 공기에도 개의치 않고 바닥에 누워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 진짜 대학교 졸업한 사람 맞지? ”
“ 96년생. 혹은 여권 위조범. ”
“ 허… 수업은 어떻게 들었대. ”
승민은 헛웃음을 터뜨렸고 경민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츠카사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 저기요, 누나? 일어나세요. ”
그러자 츠카사는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잠이 깨지 않은 건지 멍한 눈빛으로 경민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うち?きとよ、?ちゃん!”
잠결에 무심코 내뱉은 이야기. 밖에서는 우산도 뒤집힐 만큼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공기는 한없이 차가웠는데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를 듣자, 왠지 모르게 몸이 따스해지는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일본어에 당황한 승민은 그대로 굳었지만 이야기를 알아들은 경민은 츠카사가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 옛날에 친하긴 진짜 친했나 보네요. ”
뒤늦게 정신을 차린 츠카사는 양쪽 볼을 붉게 물들이고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나 승민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 뭐야, 저게 뭔 뜻인데? ”
“ 내 인났다, 갱민아. 이런 느낌. ”
가느다랗고 새하얀 새끼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츠카사는 경민의 모습을 슬쩍 살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손으로 부여잡고 살짝 풀린 눈빛을 경민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 방금 저희들이 하는 얘기, 주무시느라 제대로 못들으셨죠? 제가 처음부터 설명해줄게요. 우선… ”
하지만 경민이 별로 관심 없다는 듯이 화제를 넘기자, 옆머리를 쓸어넘기던 츠카사의 손가락이 갑자기 멈추었다.
경민의 이야기를 대놓고 모조리 흘려들으며 츠카사는 멍하니 바닥을 바라봤다. 이윽고 평소와 전혀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우선 월명 중학교에 한번 가보죠. 강한별의 영혼도 아직 이승에 남아 있을 거예요. ”
“ 저승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은 보통 자신이 죽은 장소에 묶여 있기 마련이니 월명 중학교에 있을 확률이 높아요. ”
“ 그럼 월명 중학교에 가서 천솔빈과 함께 처리하는 게 효율이 좋죠. ”
“ 강일 중학교 사건 이후 기억은 없으시다고 말씀 하셨지만 일단 가보면 이번처럼 뭔가 떠오르는 게 있을지도 몰라요. ”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오늘은 집에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월명 중학교에 가죠. ”
단숨에 대화를 끝내버린 츠카사. 방금 전의 잠꼬대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목소리였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주변의 공기에 경민은 당황스러워서 애먼 정수리만 긁적였다.
“ 내일 월명 중학교 가는 거야? 그럼 나도 같이 갈게. 나도 솔빈이 천국 가는 건 보고 싶으니까. ”
어색한 정적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승민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경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 그래? 그럼… 어디서 만나지… ”
“ 성남동 시계탑. 거기서 택시 타고 가자. 그럼 나는 먼저 갈게. ”
“ 어, 어… 그래. 내일 봐. ”
승민은 경민에게 손을 흔들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다시 이어지는 정적.
“ 가죠. ”
츠카사는 우산을 펼치며 입을 열자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가 총알처럼 가슴을 꿰뚫었다.
고백하지도 않았는데 고백하고 잔인하게 차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었지만 경민은 괜히 풀이 죽어서 시선을 바닥에 깔고 그녀의 뒤를 쫓았다.
“ 아, 네… ”
경민과 츠카사는 그대로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조용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도,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도, 츠카사는 한마디도 안 했다.
애매한 표정으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경민은 그런 츠카사의 눈치를 살피며,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딱히 친구도 없고 커뮤니티도 안 하고 휴대폰 게임도 안 하고 뉴스도 안 보는데, 뭔가 하는 척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버스 내에 감도는 싸늘한 공기를 버스 기사도 느낀 건지, 괜히 그들을 힐끔힐끔 바라봤을 정도였다.
“ 후우… 드디어 도착했네요. 몇시간밖에 안 됐는데 몇달은 걸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
“ 글쎄요. ”
경민이 피식 웃으며 화두를 던졌지만 츠카사의 반응은 무안할 정도로 차가웠다.
결국 경민도 내일 아침까진 말을 걸지 않기로 결정하고 입을 다물었다.
삐친 것은 아니었다. 츠카사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 그냥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 누나, 먼저 씻으실래요? ”
“ 그럼 사양 않고 먼저 씻을게요. 아, 그리고 제가 옷을 지금 어디 맡겨 뒀는데… 혹시 잠옷 한벌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 어… 상관은 없는데… 잠옷은 지금 긴팔밖에 없어요. ”
“ 아, 괜찮아요. 오히려 그게 좋아요. 긴팔 아니면 그냥 입던 옷 입으려고 했어요. ”
“ 아… 그러시구나… 아, 그리고 누나는 제 방에 주무세요. 저는 거실 소파에 잘게요. ”
“ 그래요? 그럼 사양 않고… ”
츠카사는 순식간에 샤워를 끝내고는 경민의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경민은 굳게 잠긴 방문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은 이해했다. 한집에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남자가 있다. 불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경민한테 자꾸 달라붙으면서 장난치던 츠카사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귀찮게 굴지 않아서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츠카사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 내일 되면 원래대로 돌아오려나… ’
경민은 한숨을 내쉬더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우산을 쓰고 마당으로 나왔다.
창고에서 월명 중학교의 졸업 앨범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입안에 막대 사탕을 집어 넣은 채로 소파에 누워서 졸업 앨범의 페이지를 넘겼다.
‘ 강한별 사진도 있구나. 일단 30명 넘게 죽이고 학교에 불도 죽이고 경찰도 죽인 애인데… 졸업 앨범에 넣어도 되는 건가…? ’
‘ 이미 만들어 놓은 건가… 아니, 그래도 학부모들한테 항의 안 들어오나 몰라… ’
경민은 졸업 앨범에 실린 한별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졸업 앨범에 실려 있는 한별의 표정을 보자 왠지 츠카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 츠카사 누나 표정이랑 똑같네… ’
도대체 이유가 뭘까. 도대체 뭐가 그녀들을 이런 표정으로 만든 걸까.
사탕을 핥아먹고 있었더니 문득 츠카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경민이 츠카사를 똑바로 바라보자 츠카사는 시선을 회피하며 머뭇거렸다.
파르를 떨리는 입술을 물고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 서방님… 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
“ 네, 뭔데요? ”
“ 저, 정말… 저에 대해서 기억 나는 게… 아무것도 없으세요…? ”
“ 아니요, 있어요. 말했잖아요. 옆집 누나. 흔해빠진 캐릭터라니까요. ”
경민이 그렇게 말하자 츠카사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밤에 불을 끄고 보는데도 그게 선명히 보일 만큼, 그녀의 눈빛은 요동치고 있었다.
소매를 부여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명백히 동요하고 있는 츠카사의 모습을 보고, 경민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평소처럼 농담으로 받아칠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여서 그런지, 경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까부터 츠카사의 모습이 자꾸만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뭔가 실수한 건가. 그렇게 생각한 경민이 졸업 앨범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물었다.
“ 죄송한데… 그렇게 많이 친했나요…? 저는 그냥 조금 친하게 지냈던 옆집 누나… 정도로만 기억 나는데… ”
“ 많이 친한 수준이 아니거든요…! ”
츠카사는 눈알을 부라리며 경민의 멱살을 부여잡고 소파에 넘어뜨렸다.
“ 그럼 말을… ”
“ 제가 말해야 알아요…? ”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말을 안 하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반박하려던 혓바닥이, 갑자기 멈췄다.
“ 누나… 울어요…? ”
츠카사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경민의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어금니를 악물고서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선명히 망막에 맺히고 있었다.
“ 아니에요… 이건…! ”
츠카사는 격하게 눈물을 닦으면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종이 같은 것이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달빛에 반짝였다.
‘ 응…? ’
이상했다. 종이가 달빛에 반짝였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떨어진 것은 누가 봐도 종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당황한 츠카사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누워 있던 데다 팔이 훨씬 길었던 경민의 손이 먼저 닿았다.
“ 이게… 뭐죠…? ”
경민은 물건을 집어서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코팅지였다. 하지만 코팅해 놓은 것은 종이가 아니었다.
꽃반지. 시들다 못해서 썩어 문드러진 꽃반지였다. 곰팡이도 피었고 벌레도 코팅지 중간에 끼여 있었다.
설령 자기 자식이 선물해줬어도 이쯤되면 버렸을 거라 생각될 만큼, 심각하게 더러운 상태였다.
그거말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 가지고 있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 그, 그거…! 도, 돌려주세요…! 제발… 제발요…! 소, 소원이에요…! 저, 저… 뭐, 뭐든지 할 테니까… 그것만큼은…! ”
하지만 츠카사는 경민이 돌려주지 않자 거의 울면서 간절히 부탁하고 있었다.
경민은 잠깐 꽃반지를 살피다가 이내 츠카사에게 돌려주면서 정수리를 긁적였다.
“ 그거… 누가 준 건진 몰라도… 아니, 되게 소중한 사람이 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그쯤되면 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 ”
“ 싫어요…! 이건… 절대… 어떻게 그런 말을…! 약, 속… 했는데…! ”
하지만 츠카사는 코팅지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면서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태까지 츠카사가 붙잡고 있었던 소매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경민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 누나…? 잠깐만요… ”
“ 아, 안 돼요…! ”
츠카사는 처음 만날 때부터 줄곧 긴팔을 입고 있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경민의 잠옷을 빌리기 위해 옷장을 뒤질 때도 무조건 긴팔을 고집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긴팔도 아니고 손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긴팔을 고집했다. 지갑을 주웠을 때도 소매를 조금밖에 안 걷었다.
하수구에 손을 넣을 일이 생기면 소매를 바짝 걷는 게 보통임에도 불구하고.
경민은 그게 단순히 취향이 특이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냥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 누나… 이거…? ”
“ 아, 니… 에요…! 이건… 이건…! ”
츠카사의 소매를 걷자 보인 것은, 팔뚝을 가득히 메운 수많은 자해 흉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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