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기무녀-39화 (39/105)

〈 39화 〉 039. 철혈의찬탈자 (中)

* * *

***

한성 분교를 졸업한 우리들은 한성 분교 근처에 중학교가 하나도 없었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다른 지역이라곤 해도 사실 산을 하나 넘으면 바로 나오는 마을이라서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바로 달평 마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자, 모든 불행이 시작된 강일 중학교의 소재지였다.

우리들이 강일 중학교에 입학하고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 조금 말을 해보자면, 처음엔 그냥 초등학교 때처럼 지냈다.

“ 경민아, 같이 놀러가자! ”

“ 응, 그래! 오늘은 어디 갈까? ”

“ 흐음… 오늘은 PC방 가서 게임이나 할까? ”

“ 안 그래도 어제 신캐 나왔다던데, 그거나 같이 키울까? ”

“ 그래, 그럼 그러자! 아, 그리고 겜 다 하고 노래방도 가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 드디어 노래방에 수록됐대! 헤헤… ”

학교를 마치고 시내에 나가서 PC방에 가기도 했고 노래방에 가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즐거운 일상이 이어졌다.

다른 친구는 아무도 없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경민이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도 있는 지금보다 그때가 훨씬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한 일상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

원래 사람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때면 바뀌는 게 많다.

중학생이 되면 교복을 입게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를 신경 쓰게 된다.

대학생이 되면 술을 마시게 되고 직장인이 되면 스스로 상당량의 돈을 벌게 된다.

그렇듯이 경민이도 바뀐 게 많았다. 한국에 오래 살다 보니 한국어도 옛날보다 훨씬 능숙해졌고 친구도 많이 늘어났다.

경민이는 얼굴도 잘생겼고 성격도 좋고 돈도 그럭저럭 많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했다.

“ 경민아! 오늘 신캐 나온대! 오늘 같이 PC방 가서 신캐 키워보자! ”

“ 아, 한별아… 그게… 어쩌지… 미안… 나 오늘은 다른 애들이랑 놀기로 약속을 해서… ”

“ 아… 그, 그래…? 이번에 나온 신캐… 스킬도 되게 간지나고… 일러스트도 멋지고… 스토리도 평가 되게 괜찮던데… ”

“ 미안… 이게 조금 중요한 약속이라… 그건 담에 같이 하자! ”

“ 어…? 아… 그래…? 그럼 뭐… 할 수 없지… 오늘은 나 혼자서 하는 수밖에… ”

“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

“ 으, 응… 내일 봐… ”

다만, 나는 바뀐 게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하나둘씩 변해가는데, 나는. 아니, 나만 바뀐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경민이랑 노는 게 즐거웠고 경민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거면 나는 만족했다. 이렇게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민이는 다른 친구랑 노는 시간만 늘리고 나랑 노는 시간을 점차 줄였다. 다른 친구들과 노는 것을 훨씬 즐겼다.

“ 경민아, 내가 어제 재밌는 게임을 찾았는데… 오늘 이거 같이 해볼래? ”

“ 아… 미안… 내가 요즘 게임을 별로 안 해서… 우리 맨날 같이 하던 게임도 요즘 안 해서 접었는데… ”

“ 에…? 그, 그거 접었어…? 우, 우리 아레나 랭킹… 1위 찍자고 했었잖아… ”

“ 솔직히 좀 무리 같고… 게임보단 차라리 그냥 나가서 노는 게 재밌는 것 같아서… 아, 나 다른 애들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볼게! ”

“ 겨, 경민아…! 경민아…! ”

우리들이 매일 PC방에 가서 8시간씩 달아놓고 하루 종일 같이 하던 게임을 이렇게 접었다는 게, 당시엔 정말 충격이었다.

남들은 이게 뭐가 충격이냐고 비웃겠지만 나한텐 상당한 충격이었다. 집에만 가면 스트레스를 받는 나였다.

그런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경민이와 함께 PC방에 가서 그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서 다시 그 게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게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다.

경민이 입장에선 단순히 게임을 접은 것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인생을 낙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거기까진 그래도 버틸 만했다. 경민이가 그 게임으 접었어도, 우리들은 여전히 친했다.

그렇다. 우리들은 친한 친구였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친한 친구에 불과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른 친구랑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내가 그걸 아니꼽게 볼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들은 부부도 아니고 하물며 연인도 아니며 그냥 친한 친구니까.

설령 우리들이 부부나 연인 같은 사이라도 단순히 다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했다.

단순히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됐다는 이유 만으로, 친구 관계를 모조리 깨부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소리였다.

하물며 그게 친구 관계라면 어떻겠는가. 다른 친구랑 친하게 지내지 말고 나랑만 친하게 지내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러니까 나는 가능하면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약간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봤다.

경민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니 나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다. 굳이 경민이가 아니라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는 많았다.

“ 어… 한별아, 너도 힙합 좋아해? ”

“ 어…? 그런데… ”

“ 헐, 대박… 야, 나도 힙합 존나 좋아해! ”

“ 아, 그래? 다른 여자 애들은 힙합 같은 것보단 대부분 발라드좋아하던데… 조금 특이하네… 너는 누구 좋아해? ”

“ 나는 NO:EL 좋아해! 사클 시절부터 좋아했어! IDFWU 존나 좋아, 진짜… ”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은 만큼, 개중에는 경민이보다 훨씬 잘맞는 친구도 있었다.

“ 어, 너도 그 게임해? 나도 그 게임 하는데! ”

“ 와, 진짜? 야, 우리 진짜 잘맞네… 너 어느 캐릭터 써? ”

“ 나, 걔! 건블레이드 쓰는 애 있자너! 별빛에 잠겨라! 나 주간 아레나 랭킹 9위였어! ”

“ 아, 걔! 와, 되게 잘하네… 나는 그… 누구냐… 걔 썼는데! 아, 깡통! 최근에 나온 신캐 있잖아! 요즘은 걔 키우고 있어! ”

“ 걔 진짜 사기더라… 아, 너 캐릭터 닉네임 뭐야? 집에 들어가자마자 친추할게! 혹시 너 서클은 있어? 없으면 우리 서클 들어와! ”

그 친구랑 친해지고 함께 PC방에 가서 함께 게임을 했다. 경민이보다 훨씬 실력이 좋아서 항상 실패하던 던전도 쉽게 깼다.

노래방도 갔었다. 우리 둘 다 랩을 좋아했고 경민이랑 다르게 더블링을 정말 잘해서, 랩을 하는 맛이 있었다.

재밌었다. 즐거웠다. 근데 이상했다. 자꾸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뭔지 말로 설명하자니 조금 어렵다.

다만 그 친구랑 즐겁게 대화하고 놀면서도, 자꾸만 경민이한테 눈이 갔다. 경민이랑 같이 놀면 훨씬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심리를, 나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다. 고작 친구다. 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게 뭐가 그리 불만인 걸까. 경민이보다 훨씬 잘맞는 친구도 찾았는데.

신경 쓰지 않으려 발악했다. 하지만 자꾸만 가슴이 아파왔다. 다른 사람은 됐으니까 제발 경민이랑 놀고 싶었다.

그리고 하늘이 소원을 이루어줬는지, 주말에 문득 경민이가 나를 자기 집에 불렀다.

엄청 기뻤다. 당시에 친해졌다는 친구한테 얘기를 하면서, 옷도 차려 입고 그때 처음 화장도 해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조금 잘보이고 싶었다. 잘보이고 싶은 이유라. 딱히 대단한 것은 없었다.

친구를 만난다고 아무렇게나 입고 씻지도 않고 나가진 않는 것처럼, 그냥 어디 놀러갈 때처럼, 가볍게 꾸미고 나갔을 뿐이었다.

기묘하게도, 정작 최근에 친해진 친구와 PC방에 갔을 때는 머리도 감지 않고,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나갔지만 말이다.

“ 오, 뭐야? 오늘 되게 꾸미고 왔네? ”

“ 아니, 뭘… 꾸며… ”

“ 너도 꾸미니까 되게 예쁜데? 앞으로는 좀 꾸미고 다녀라. ”

“ 그, 그럴까…? 헤헤… ”

경민이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면서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경민이 방에서 경민이가 나를 부른 이유를 들은 이후, 급격히 기분이 나빠졌다.

“ 그래서 나는 왜 부른 거야? 같이 놀자고? 헤헤… 안 그래도 네가 좋아할 법한 게임… ”

“ 아, 그… 그건 아니고… 내가 나중에 약속이 있어서… 미안… ”

“ 아… 그, 그래…? 최근에 많이 못 놀아서… 같이 놀고 싶었는데… 아, 알았어…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가 뭔데? ”

“ 아, 그게 있잖아… 실은… 내가… 고백을… 받았거든. ”

“ 에…? ”

경민이가 그 얘기를 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에, 정말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나로서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한가지는 확실했다. 이건 분명 내가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충격을 받은 거지. 어째서 내가 충격을 받은 거지.

경민이가 고백을 받은 게 뭐가 어때서. 그럴 만한 애잖아. 그게 뭐가 충격인데.

나보다 먼저 솔로를 탈출할 징조니까 충격인가. 나보다 먼저 어른의 계단을 오르게 될지도 모르니까 충격인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느낀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나중에 약속이 있다는 게 얘랑 약속이 있다는 거야. 얘가 오늘까지 대답해주면 좋겠다고 말해서… ”

“ 거절해. ”

“ 으, 응…? ”

“ 고백. 거절하라고. ”

질투심이다. 내가 제일 먼저 경민이랑 친하게 지냈다. 내가 훨씬 오랫동안 경민이랑 친하게 지냈다.

니들은 뭔데. 초등학교 때는 경민이 생일 파티에 아무도 안 왔던 주제에.

왜 중학생이 되니까 이제서야 친하게 지내려고 지랄 떨어 대는 건데.

“ 왜, 왜…? ”

“ 왜라니? 너도 좋아? ”

“ 아니, 그건… 아닌데… 뭔가 미안해서… 얘도 되게 용기 내서 고백했을 테고… 애는 되게 착한 앤데… 상처 받으면 어떡하지… ”

“ 니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귀려고 하는 게 오히려 상처 주는 거야. 그러니까 거절하는 게 너한테도, 걔한테도 좋은 거야. ”

“ 그, 그런가… 그럼… 일단 거절할까… ”

“ 폰 줘. ”

“ 엥…? 폰은 왜…? ”

“ 내가 대신 거절해줄게. ”

“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애초에 나한테 고백한 거고… ”

“ 욕할 자신 있어? 정말 확실하게 거부할 자신 있어? ”

“ 아니, 그건… 조금 완곡하게… ”

“ 그럼 폰 줘. 괜히 좋게 거절했다가 걔가 가능성 있다고 착각하면 어떡하게? ”

“ 아니, 설마 그런 착각은… ”

“ 너는 그럴 의도가 없겠지만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은 어장 관리하는 남자의 전형적인 특징이야. 쓸데없이 여지주는 거. ”

“ 그, 그런가… 그럼… 그냥 니가 대신 거절 해줘. 그렇다고 대놓고 막 욕을 한다거나 그러지는 말고… 그냥 확실하게만… ”

“ 인간 관계 파탄낼 생각은 없어. 나도 그냥 확실하게만 말해둘 생각이었어. ”

“ 그, 그럼 다행이고… ”

“ 아, 근데… 이거 거절하면… 오늘은 약속 없는 거겠네? 그, 그럼… 나, 나랑… 놀아줄 수 있어…? ”

“ 흐음… 그럴까. 너랑 안 논지도 되게 오래 됐고… 어차피 이거 빼면 따로 약속도 없었고… 그럼 오랜만에 같이 놀자! ”

“ 헤헤… 있지, 나 니가 좋아할 만한 게임 들고 왔는데… ”

경민이가 확실하게 고백을 거절하고 나랑 놀자고 하는 순간, 다른 애들을 전부 버리고 나를 선택하는 순간, 그제서야 안심됐다.

내가 질투심을 가진 이유라. 그건 아마도 단순히 친한 친구를 빼앗기는 게 아니꼬와서 그런 게 아닐까.

적어도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당연하게도 그게 아니었다.

***

그날 이후로도 상황은 언제나 비슷하게만 흘러갔다. 경민이가 다른 애들과 놀면 놀수록 열불이 났다.

특히 남자 애들이 아니라 여자 애들과 놀면 나는 정말 불안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경민이한테 가진 감정은 단순히 우정 같은 게 아니었다.

아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딩 새끼가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남들 눈엔 졸라 웃기게 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분명히 사랑이었다. 나는 정말 경민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수라계만 보면서 살아온 내게, 세상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준 경민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버림 받은 내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경민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랑 별로 맞지 않는 부분도 내게 맞추려 노력하는 경민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애미랑 잠수탄 외가에게 외면받고, 애비랑 한배탄 친가에게 이용당한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경민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힘들어서 울고 있을 때면 조용히 나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경민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존재였던 나를,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던 경민이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 으읏… 경민아…! 후아…! 우… 으으…! ”

그런 경민이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경민이 눈에 나밖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언제나 노력했다.

몸매를 관리했다. 피부를 관리했다. 머릿결도 관리했다. 패션에 신경 썼다. 화장도 배웠다. 온갖 시사 지식도 머리에 집어 넣었다.

그렇게 2학년이 되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한테 관심도 없던 남자 애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때부터 애비라는 인간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나이를 처먹고 자기 애미 애비가 뒤지고 친구도 조금씩 뒤지다 보니, 성욕보다 생존 욕구가 커졌던 걸까.

아니면 나중에 자기를 돌봐줄 간병인이 필요하니까, 나한테 조금이라도 원망을 사지 않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존나 미친 소아성애자 새끼라서, 성장한 나한테 아무런 성욕도 느끼지 못하게 된 걸까.

어느 쪽이 됐건, 상관 없었다. 경민이한테 바칠 내 몸을, 경민이한테 더렵혀질 내 순결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었으니까.

“ 오, 한별아! 못본 새에 되게 예뻐졌네! 이야… 순간 아이돌인 줄 알았어! ”

내가 자기 관리를 시작하게 되면서 경민이가 내 앞에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주변 상황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언제 누가 무슨 목적으로든 우리 경민이를 건드리면 기분이 더러워져서, 내 성격도, 내 말투도, 점점 씹창나기 시작했다.

내가 유도를 그만둔 것도. 난폭한 년으로 전교생한테 낙인이 찍힌 것도.

“ 야, 쟤 진짜… 존나 꼽지 않냐? 지가 경민이 여친도 아닌데 경민이한테 말 거는 여자애들 전부 괴롭히더라… ”

“ 헐… 진짜 미친 년인 듯… ”

내가 경민이한테 접근하는 모든 여학생한테 쿠사리를 놓으니, 여자 애들 사이에서 평판이 작살난 것도.

“ 야, 저 새끼 존나 꼽지 않냐… 여자 애들은 저딴 기생 오라비 같은 새끼 어디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 졸라 이해 안 되네. ”

“ 느금마가 너를 낙태 안 하고 낳은 이유보단 이해 잘되는 것 같은데, 병신아. 느금마 너 낳고 미역국 처먹은 이유가 미스터리지. ”

“ 저 새끼 뭐냐. 갑자기 패드립을 치고 지랄이네, 씨발. 야, 씨발 나 여자라고 안 봐주니까 깝치지 마라. ”

“ 강한별인데 어쩔래, 씨발럼아. 깝치긴 누가 깝쳐, 좆밥 새끼가. ”

“ 악…! 웁… 씨발… 아아아아악! 다리, 다리,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뒤져, 씨발 새끼야. 병신 같은 게 졸라 나대네, 씨발 진짜. ”

아무런 잘못 없는 애를, 경민이를 괴롭히는 남학생의 다리를 박살내니, 남자 애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아진 것도.

“ 야, 씨발 졸라 간지 나네. 야, 나한테도 유도 가르쳐 줄 수 있음? ”

“ 귀찮아. ”

“ 아, 씨발 그러지 말고 좀 가그쳐줘. 그나저나 저 새끼 존나 잘팼다. 안 그래도 내가 저 새끼 조만간 밟으려고 했었는데. ”

“ 아오, 씨발… 걍 꺼져. ”

“ 아, 오키. 알겠다. 내가 씨바 밥 한 번 사줄게. 그거면 됐냐? ”

“ 됨. ”

“ 졸라 쉬운 년이네. ”

“ 느금마. ”

전부 그때였다. 내가 반쯤 미쳐서 학교에서 날뛰기 시작한 것도.

“ 갱민아, 거기서 뭐하냐? ”

“ 응? 아, 한별이구나. 그게… 톡으로 고백을 받았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

“ 아, 이 새끼 내가 아는 새낀데… 인성 존나 쓰레기야. 걍 거절해. ”

경민이 근처에 다가오는 여학생은 온갖 선동과 날조로 철저하게 박살냈다. 개중엔 결국 전학을 선택한 여학생도 있었다.

“ 왜? 얘 뭐 했어? ”

“ 그게 있잖아… 최근에 어떤 애가 지갑이 없어졌는데 그게 그 새끼 주머니에 있었대. ”

“ 엑… 진짜야…? ”

“ 야, 누님이 언제 거짓말 하드냐? ”

당연히, 이건 거짓말이다. 내가 훔쳐서 그 애 가방에 넣어뒀다.

그러니까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다른 애들한테 뒤집어 씌운 거다.

“ 벌써 학교에 소문 다 났고 경찰서에도 갔다 왔어. 고백 받아줬다가 니 지갑도 털릴걸. ”

“ 그, 그럼… 거절해야겠네… 되게 착한 앤줄 알았는데… ”

“ 야, 넌 진짜 나 없으면 어떻게 사냐. 호구 같이 그딴 쓰레기 같은 년 지갑 될 뻔했네. ”

“ 그러게… 하하… 고마워, 한별아. ”

“ 그럼 오늘 나랑 같이 놀자. 어차피 마치고 할 일 없지? ”

“ 그렇지, 뭐… 그럼 같이 노래방이나 가자! ”

모든 애들을 철저히 막아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애들을 막으면 무슨 소용인가. 내가 경민이를 아무리 좋아하고 있어도, 그걸 티를 내도, 몰라주는데.

내 눈엔 오직 경민이만 비추어지고 있어도, 경민이 눈에 비추어지는 건 내가 아닌데.

나한테는 경민이가 세상의 전부라도, 경민이는 그게 아닌데.

" 야, 근데 니 강한별이랑 사귐? 졸라 붙어다니노. "

“ 한별이? 아, 그냥 친한 친구야! 뭘 사귀고 있어. ”

경민이한테 나는 그냥, 친한 친구에 불과한데.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사실 별로 좋지 않지만 일단 여기선 좋다고 치겠다.

적어도, 경민이와 가장 친하고 경민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나니까.

내가 이상한 짓만 안 하면 평생 경민이 곁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평생 경민이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언젠간 나를 돌아봐 줄지도 모르니까.

내가 가장 좋은 여자라고, 내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알아줄지도 모르니까.

그런 내 삶에 불안감을 조성하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진별림.

나랑 같은, 경민이랑 같은, 천솔빈이랑 같은, 일본어 동아리의 여학생 중의 하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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