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유기무녀-85화 (85/105)

〈 85화 〉 085. 천생의강신무 (下)

* * *

그냥 아무것도 듣기 싫어져서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은지 얼마나 지난 걸까.

그냥 아무것도 보기 싫어져서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머금은지 얼마나 지난 걸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쯤 츠카사는 이불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 우으… ”

푸른 하늘은 어느덧 새까맣게 물들었고 거실은 백열 전구의 어스름한 불빛에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츠카사는 천천히 근처를 더듬으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는 평소에 입는 옷을 입고 평소에 자는 자리에 누워 있었다.

꿈인가. 꿈이면 좋겠네. 헛된 바람인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창밖을 살폈다.

“ 카오루… 신사… ”

그녀가 악몽을 겪은 카오루 신사는 정말 당연하게도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또한 그녀의 부모는 카오루 신사 근처에 있었다.

내용은 확실히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낮에 있었던 일로 어떡하면 좋을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아서 츠카사는 다시 한번 이불을 덮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 추워… ”

여름이었다. 긴팔이었다. 이불도 덮었지만 어째선지 추웠다. 한없이 추웠다.

누군가 안아주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만 같았지만 그럴 사람 따윈 세상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어느덧 새벽이 지나고 다시금 아침이 찾아왔다.

“ 츠카사, 일어나렴. 이제 슬슬 가야지. ”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츠카사를 카오루 신사로 데려가서 강제로 손님들의 미래를 보게 만들었다.

츠카사는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부모라도 행복하다면 차라리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자신이 민페였다. 지금 같은 경제 불황기에 태어난 잘못이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 부모에게 민폐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희생으로, 하다못해 자신의 부모라도 행복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이 가지고 싶어 했던 것을 기억하고 사주니까 그거면 충분히 좋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미래를 읽어주는 것으로 손님들이 괴로운 미래를 부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 같은 인간 하나의 희생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있었다.

하지만 사채를 써놓고 이자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 엄마… 아빠… 저, 저… 엄마랑… 아, 아빠한테… 그… 부, 부탁… 드, 그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괘, 괜찮아요…? ”

“ 응? 뭐니? ”

“ 그… 저, 저는… 장난감… 피, 필요… 없으니까… 저… 그, 그걸로… 히, 힘든 사람들한테 기부… 하면… 안 돼요…? ”

“ 기부…?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니? 돈 아깝게 기부를 왜 하니? 얘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

“ 츠카사, 솔직히 말해서 아빠는 너한테 쓰는 돈도 조금 줄이고 싶단다. 어차피 너는 손님들한테 여러가지로 받잖니? ”

“ 그런데 너한테 쓰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기부를 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

“ 애초에 그딴 것들은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자연스레 도태된 거야. 자연의 섭리는 거스르는 게 아니란다. ”

“ 그, 그치만…! ”

“ 얘가 정말… 언제부터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듣게 된 건지 모르겠네? ”

“ 죄, 죄송해요… 하지만… ”

“ 아이고, 그래. 알았다. 대신 이번 달은 간식 먹을 생각하지 마. ”

자신의 간식비를 줄여가면서까지, 부모를 졸라서, 자신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한테 기부를 했다.

츠카사는 기부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츠카사는 부모한테 기부를 맡겼다.

“ 안 했어…? ”

하지만 츠카사의 부모는 기부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거의 기부하지 않았다.

“ 횡령… 했어… ”

가까스로 자선 단체로 넘어간 얼마 안 되는 금액도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몰래 횡령해서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 사, 사람이… 죽었… 어… ! ”

그나마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도 하필 사채업자한테 돈을 대서, 사채업자가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게 만들었다.

“ 내, 내가… 기부하자고 말해서…! 저, 전부 나 때문에…! 내, 내, 내가 기부를 안 했으면… 내가, 내가, 내가, 내가…! ”

괴로웠다. 숨을 쉬는 게 힘들었다. 그녀는 분명히 좋은 의도로 기부했지만 대부분의 돈은 중간에서 누군가 가로챘다.

그나마 들어간 금액도 사람을 돕기는 커녕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기 위한 사채업자의 자금으로서 사용됐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기부함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망친 거다. 죄책감이 들었다. 가슴에 말뚝을 박는 것만 같았다.

“ 자, 잘… 오셨… 습니다아… ”

그래도 그녀는 계속해서 손님들의 미래를 봐줬다. 자신의 예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했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꿈을 포기할 뻔했던 사람이 자기 꿈을 끝까지 몰아붙여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했으니까. 유즈루처럼.

“ 그러니까… 내가 대충 이런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어때? 성공할까? ”

마침내 자신의 사업이 성공할지 어떨지 궁금해서 츠카사를 찾은 사람이 생겼다.

츠카사는 그한테 좋은 말을 해주고 그가 나중에 성공해서 활짝 웃는 해맑은 얼굴로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답례는 필요 없었다. 그냥 자신의 예언이 도움됐다고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 싶은 게 전부였다. 그게 고작이었다.

“ 아…! 우… 시, 실패… 하고… 가, 가, 가, 가족… 들을… 우으… 히끅…! ”

하지만 그는 부모님의 사망 보험금을 끌어모아서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들을 죽인 다음 자살할 예정이었다.

“ 가, 가족들을… 시, 식칼로… 찌, 질러서 죽이고… 자살할… 거예요… ”

그렇게 말하자 그는 좋은 말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불길한 소리만 한다면서 그녀의 멱살을 잡고 복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성인 남성의 주먹으로 아직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한 가녀린 여자 아이의 복부를 냅다 후려갈긴 거다.

“ 우욱… 케흑…! 아파… 시러어… 아픈 거 시러…! 아파아아…! ”

당연히 츠카사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서 복부를 부여잡고 눈물에 콧물을 질질 짜면서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어지간히 궁지에 몰려 있던 걸까. 그래서 사업으로 크게 한탕 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예언이 무조건 적중한다는 무녀가 악담을 퍼부으니 어지간히 뭣같았던 걸까.

자신의 상황이 억울했던 걸까. 그래서 주먹으로 때려놓고 뭔가 부족했던 걸까.

“ 씨발년이 진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그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

“ 당장 똑바로 말해…! 내가 성공할 거라고 말하란 말이야…! 내가 도대체 얼마나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

“ 매일 술처먹고 염병 지랄을 떨어대는 뭣같은 알코올 중독자 아빠 밑에서 씨발 이렇게나 훌륭하게 자라났다고…! ”

“ 유명한 대학교에 입학했어… 대기업에 취직했어… 남들이 우러러 보던 여자랑도 결혼했어… 예쁜 자식도 낳았어…! ”

“ 이렇게나 열심히 살았으면 씨발 제발 좀 보답해줘도 되는 거잖아…! 내가 도대체 뭐를 그리 잘못한 건데…? ”

“ 어째서 정리 해고를 당하고… 아내랑 애들이랑 별거하고… 그나마 가족을 붙잡아 보려고 준비한 사업까지…! ”

츠카사는 문장이 끝날 때마다 주먹으로 한대씩 얻어맞았다. 복부를. 얼굴을.

“ 아윽…! 아파요…! 히끅…! 무서워요… 제, 제발 살려주세요…! ”

살려 달라고 외치고 아프다고 외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들어준 사람이 그를 말려도 그는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츠카사는 얼굴이 온통 멍과 붉은 피로 물들어서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 아파… 아파… 아픈 거 시러… 아픈 거 시러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

아파요. 싫어요. 죄송해요. 이윽고 경찰과 구급 대원이 왔을 때쯤.

남성의 주먹은 멈추고 츠카사는 곧장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들은 병원으로 와서 병원비도 냈지만 당연히 츠카사는 걱정하지 않았다.

“ 병원비가… 쯧… 비싸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몸이 약한지 모르겠어… ”

“ 지금 병원비 걱정할 때야… 우리 이렇게 장사하는 거 들키면 망한다고…! ”

츠카사를 치료하는 데에 드는 병원비랑 자기 딸을 이렇게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키는 것을 무서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찰이 자리를 비운 동안 그들을 츠카사를 세뇌했다. 그리고 츠카사는 그들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경찰한테 전달했다.

“ 엄마랑 아빠가 하는 일을 조금 도와주고 있었는데에… 이상한 아저씨가 찾아와서 얼굴을 때렸어요… 여기… 아파요… ”

츠카사가 말한 것에 유일하게 빠져 있는 내용이 있다면 유즈키와 하루유키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

그들은 엄연히 츠카사를 학대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 먹고 있었지만 츠카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말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테고 괜히 말했다가 유즈키와 하루유키가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다시 카오루 신사로 돌아갔고 다친 날은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당연히 다시 카오루 신사로 돌아갔다.

“ 내가 딸을 낳았는데… 글쎄, 우리 딸이 IQ가 그렇게 높더라니깐? 혹시 우리 딸이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도 알 수 있니? ”

이번에는 한국에서 유명한 대기업 회장 부부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딸이 츠카사에게 찾아왔다.

“ 따, 딸은… 부, 부담감 때문에… 부, 분신… 자살… ”

하지만 부부의 딸은 주변의 과도한 기대에 부담감을 느끼고 결국에는 고등학생 쯤에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자살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전하기 싫었다. 하지만 돈을 받고 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한테 고스란히 전달했다.

당연히 츠카사도 괴로웠다. 얼마 전에 태어난 아이한테 축복해주지는 못할 망정 나중에 자살할 거라는 악담만 퍼붓는 게.

그래도 최선이었다. 츠카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 허,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 뭐… 좋아. 그럴 수 있지. 근데 여기 앉아서 개소리 지껄이는 니 인생보단 낫겠네. ”

하지만 칭찬을 듣거나 좋은 소리를 듣는 일은 없었다. 온통 안 좋은 미래를 말하는 츠카사를 욕하고 때리기 바빴다.

“ 아, 아아…! 주, 죽지 마… 세요… 아, 안 돼요…! 안, 돼…! 시, 싫어… 주, 죽는 거 보기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무조건 적중한다는 츠카사의 예언을 듣고 결과가 좋지 않으니, 츠카사의 눈앞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생겼다.

“ 죽기 싫어… 아픈 거 싫어… 칼…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우욱…! 아, 앞이 안 보여… 무서워…! 사, 살려주세요…! ”

심지어는 츠카사를 칼로 찔러서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

‘ 직장에서 해고당한 30대 남성이 가족을 모두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

‘ 명진철 회장의 외동딸인 명윤설이 광천 고등학교에서 분신 자살한 것으로… ’

결국 츠카사가 예언한 모든 것은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났는데도.

“ 고놈 참 신기하네… 어린 애가 칼에 맞고도 어찌 그리 멀쩡한지 몰라… ”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츠카사는 영력 덕분에 언제나 멀쩡히 회복됐다.

복부를 얻어맞고도. 손바닥이 식칼에 찔리고도. 평소처럼 멀쩡하게 회복했다.

다만 카오루 신사에는 틈만 나면 경찰이 드나들었다.

나중에는 아예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상시 경찰을 배치했다.

츠카사가 무슨 일을 당하는지 들킬 법도 했지만 들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조리 침묵했다.

“ 아이고, 서장님… 매번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별 건 아니고… 이거라도… ”

“ 아니, 뭘 이런 걸… 저야 매번 진심으로 감사하죠. 따님 덕분에 재산을 수십 배로 불렸으니까요. 하하하하! ”

자고로 사가현의 경찰은 무려 일곱 명이 살해당한 연쇄 살인 사건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경찰이었다.

미제 사건도 많았다. 사가현은 경찰의 숫자도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애초에 인구가 적은 시골 지역이니까.

외지인에게만 좋은 모습을 보이고 마을 사람끼리 서로 입을 다물면 완전 범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여태까지 평생을 함께한 마을 사람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 마을에서 배척당할 것이다.

경제 불황기에 실직하는 사람도 넘쳐나는 마당에 마을에서 떠난다는 각오로 현실을 고발할 사람도 적을 것이다.

모든 게 정말로 억지스러웠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게 오로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 준비된 하나의 장치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대체 얼마나 얻어맞은 걸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걸까.

어느덧 숫자를 세는 것도 무감각해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유즈키와 하루유키는 후쿠오카에 커다란 저택을 가지고 있엇다.

츠카사의 얼굴에서 미소는 완전히 사라졌고 츠카사는 계속해서 카오루 신사에 틀어박혀서 손님을 받았다.

“ 저희 딸이 지금… ”

“ 따님께서 벌써 5년째 교토 대학교에 입학하려고 준비하고 계시군요. ”

“ 네? 그, 그걸 어떻게… ”

“ 실패합니다. 댁의 따님한테는 가망이 없어요. 교토 대학교에 입학할 만한 머리가 아닙니다. 얼른 포기하세요. ”

이제는 손님을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적응되고 있었다. 옛날에 비해서 다소 불친절해진 감은 있었지만.

사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하는 어린 시절부터 못볼 꼴만 보면서 살았니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유즈키와 하루유키는 이제 돈을 쓰는 것도 질렸는지, 츠카사가 며칠 정도는 마음대로 쉬어도 혼내지 않게 됐다.

웅장한 저택에 값비싼 명품을 두르고 노후 자금을 넉넉하게 남겨두고도 돈이 남아서 이제는 사실상 츠카사한테 넘긴 상태였다.

이제 카오루 신사에서 일할 필요는 없지만 어째선지 츠카사는 계속해서 카오루 신사에 남아서 손님을 받았다.

“ 혹시 제가 가수로 성공할… ”

“ 못합니다. 노래라곤 해본 적도 없으면서 가수로 성공하길 바라는 건가요? 정말 뻔뻔하고 터무니없는 바람이군요. ”

“ 아니, 조금 좋게 말해줘도… ”

“ 좋게 말해줬다가는 정신을 못차리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제가 하는 말이나 듣고 제발 정신 차리시죠. 벌써 서른인데. ”

다만 심각하게 불친절한 태도로 손님을 받는 덕분에 인터넷에서 유명했다.

귀여운 여중생한테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욕을 먹을 수 있는 가게라고.

“ 저기… 제가 사실 10년 동안 백수인데 취업할 생각도 없구요, 그냥 평생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고 싶습니다. ”

“ 목적이 뻔히 보여서 싫습니다. 정말로 죄송하지만 돌아가주세요. 당신은 반드시 의사로 성공할 사람이니까요. ”

수입은 제법 짭짤했다. 이제 괴로운 일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무료했다. 어딘가 공허하고 앞으로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살아도 문제는 없었다. 돈은 충분히 벌리는 데다가 부모님이 죽으면 유산도 있었다.

공부도 그럭저럭 잘했다. 열심히 한다면 나중에 도쿄 대학교도 노려볼 만하겠지만 지금 상태로도 구 제국 대학은 충분했다.

또한 츠카사는 그거면 족했다. 학력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돈을 쓰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 나는… 왜 사는 거지…? ’

이쯤 되면 슬슬 자신이 살고 있는 이유가 점점 궁금해졌다. 딱히 사는 데엔 지장이 없고 목표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많이 기부해봤자 어차피 누군가의 뒷주머니로 간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기부하는 것도 정말 낭비로 느껴졌다.

츠카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혼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열심히 예언해봤자 어차피 아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령 진심으로 받아들여도 대다수는 애먼 츠카사한테 성질내기 바빴다. 혹은 그대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용감히 맞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전부 현실을 부정만 하다가 이미 정해진 최악의 미래를 향해서 정말로 올곧게 나아갔다.

그런 사람들만 보다 보니까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를 않았다. 그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2010년 4월 10일 토요일. 어떤 가족이 카오루 신사에 찾아오게 되면서 세상의 운명은 뒤바뀌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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