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 외전 ] 비슷한 일을 겪은, 열 여덟의 샤를 1
* * *
"언니, 괜찮아요?"
샤를은 침대에 누운 언니 챠르쉴라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언니는 덥다고 자꾸 이불을 치웠지만 몸은 차가웠다. 열이 머리를 침범해 추위와 더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샤를은 다시 이불을 덮어줬다. 짚단을 넣은 꺼슬꺼슬한 이불이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하지만 챠르쉴라는 열에 절은 신음소리를 냈다.
"더워...너무 더워어..."
샤를은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마계에 퍼진 적사병은 결국 챠르쉴라까지 덮쳤다.
적사병. 붉은 반점이 몸에 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고열을 동반한다. 탈수, 격렬한 설사, 전해질 농도 깨짐이 주요 증상. 탈수가 가장 치명적으로 빠르게 조치하지 않으면 경련, 발작까지 일으키다 사망한다. 치사율은 50%에 달한다.
샤를은 언니를 정성스럽게 돌봤다. 병에 걸리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언니가 죽는 건 무서웠다.
이 병은 접촉을 통해 전염되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살아도 걸리는 사람이 있고, 멀쩡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마계인들은 천벌이라고 믿었다. 현대의 사람이 봤다면 수원(??)을 통해 감염되는 질병인 걸 알아채고 조치했겠지만 여긴 마계. 원인을 모르는 샤를은 갈팡질팡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춥다니. 그럼 진짜 위험한데.'
언니가 지금 춥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중기 이상의 단계까지 진행된 듯 했다. 이대로 두면 사흘 안에 죽는다.
다행히 치료법은 존재했다. 수분, 당분, 소금을 지속적으로 보충해 주는 것. 몸에서 빠져나간 에너지를 보충하고 전해질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지금 집에 있는 건 물뿐이었다.
필요한 건 꿀과 소금...
꿀이야 그나마 구해보겠지만, 바다와 엄청나게 먼 샤를의 마을에서 소금은 귀중품이었다. 암염 광산도 없고 가끔 들르는 행상에게 구입하는 게 전부. 하지만 적사병으로 인해 교역은 끊겼다. 마을의 지주에게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돈도, 마력도 없다.
샤를은 손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샤를...지금 해는 졌니...? 나, 일하러 가야 하는데..."
챠르쉴라는 열에 들뜬 머리로 멍하니 이야기했다. 이런 몸상태로는 일은 커녕 일어설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이마의 뿔 아래로 땀이 줄줄 흐른다. 샤를은 물을 짜낸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챠르. 내 사랑스러운 언니. 언니가 죽게 둘 순 없어. 샤를은 일어서며 언니의 이마에 키스했다.
"언니, 나갔다 올테니까 움직이지 말고 쉬어요."
샤를은 각오를 굳히고 문 밖으로 나섰다. 거리를 지나, 평소 자신이 일하던 창관으로. 매일 출근하는 창관이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떨리고 무서웠다. 하지만 해야 한다.
샤를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꿈이 아니라 첫 경험을 팔고 싶다고?"
푸실푸실하게 살찐 악마가 샤를의 몸을 훑어보았다. 서큐버스라는 종족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움을 타고 난 종족. 하지만 그 수가 워낙 많다보니 비싸게 팔리진 않았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몰려든 서큐버스때문에 오히려 가격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 요새는 일급의 절반만 주면 서큐버스를 진짜로 안을 수 있다.
하지만 첫날밤이라면 좀 다르긴 하지.
"흠... 15 데나리우스 쳐 주지. 마력은 네가 다 가지고."
"은화 열 다섯개요? 겨우 저랑 언니, 일주일 치 생활비밖에 안 되잖아요...!"
"서큐버스의 첫날밤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악마는 일부러 샤를의 가치에 흠집을 내려 했다. 악마가 돈을 버는 이유는 간단하다. 약한 자의 골수까지 짜내기 때문이다. 아마 언니 챠르쉴라가 건강했다면 포주의 뺨을 올려붙였을 것이다. 개자식, 곤경에 빠진 사람에게 손은 못 내밀망정, 흥정을 하려 들어?
그 다음엔 샤를을 껴안고 가만히 충고해 주겠지. 샤를. 이런 데에서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 첫날밤을 보내렴. 너같은 어린아이는 꿈을 꾸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언니는 이제 세상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그걸 알고 있는 샤를은 이를 악물었다.
"은화 스물 다섯개. 그 이하로는 안 돼요."
악마는 담배연기를 푸우 내뿜었다. 직접 성교따윈 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던 몸, 성숙한 가슴. 챠르쉴라가 싸고 돌았지. 저 정도면 첫날밤을 꽤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올라가서 8번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손님 올려보내면 잘 응대하고."
샤를이 계단을 올라가자 악마는 몸을 일으켜 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호객을 시작했다.
"자, 여러분! 가게에서 지금까지 꿈만 꾸게 해줬던 샤를이, 오늘 처음으로 손님을 받겠다고 합니다! "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남자들의 눈이 번뜩 빛났다. 서큐버스의 처녀라. 귀하진 않지만 싸지도 않다. 그리고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던 샤르아이스라. 곧 남자들의 경매가 펼쳐졌다.
"은화 스물 다섯!"
"은화 서른!"
"은화 50개!"
돈이 궁해도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뒷골목은 더 붐빈다. 먹고살기 어려워진 악마들이 몸을 파니, 가격은 내려가고. 이때를 틈타 성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은화 50개 나왔어. 더 낼 사람 있나?"
없나. 그럼 이 손님으로 할까, 하던 차에 뒤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어이, 3 모데우스 내지."
금화 세개. 은화 75개어치. 1.5배로 가격을 내겠다는 말에 악마가 그쪽을 쳐다봤다.
험악하기로 소문난 오크였다. 웬만한 가게에선 출입 금지당한 놈. 첫 손님인데 샤를이 괜찮으려나?
이리저리 재던 악마는 곧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어차피 언니도 적사병에 걸려서 오늘내일 할텐데. 지켜줄 사람도 없는 서큐버스따위.
돈이나 더 벌면 그만이지. 8번 방 앞에 데려다 놓으며 포주는 한 마디 툭 던졌다.
"너무 험악하겐 하지 마. 서큐버스긴 해도 첫 경험이라잖아."
"뭐, 알았어."
하지만 악마 포주를 내려보낸 오크는 비열하게 웃었다.
자신이 낸 돈이 자그마치 3 모데우스다. 거의 두달 반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 물론 도박판에서 딴 거지만.
오크는 자신의 이빨을 혀로 핥았다. 샤르아이스, 낸 돈 값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도 대부분의 창관에서 출입 금지라 쌓여 있었는데.
첫 손님이 샤를에게 한 잔인한 행동을 묘사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여기 대화의 편린만 가져와도 끔찍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야, 너 오늘 처음이라며?"
"너 뭐 병 있냐? 이 나이까지 처녀인 서큐버스는 흔치 않은데."
"벗고 벌려."
"아니, 왜 울어?"
"하...서비스가 형편없네. 키스도 안해, 애무도 없어 너는 롱런하기는 힘들겠다.
표정이 왜 그렇게 좆같아? 야, 너도 내가 만만하냐? 어?"
"꺄악!!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샤를의 비명에 악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크가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샤를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악마가 냅다 재떨이를 들어 오크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떨어져, 이 새끼야!"
평소에도 거칠게 굴기로 유명한 놈인데 결국 여기서도 사고를 치는군. 넌 다음부턴 발도 못 붙일 줄 알아라. 끌려나가며 오크가 버둥거리자, 악마가 얼굴을 몇번 더 내리쳤다. 육중한 주먹에 맞은 오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샤를은 몸을 벌벌 떨며, 오크가 방 밖으로 끌려나가는 걸 봤다. 제발, 저대로 사라져서 내 눈에 보이지 않게 해줘
하지만 계단참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악마의 무릎을 붙잡고 악다구니를 썼다.
"야, 이 씨팔년아! 금화 세 개 값은 해야지! 어? 씨팔! 내가 삼 모데우스나 줬는데! 쳐 우는것만 보고 끝이라고?"
포주가 당황했다. 아픈 몸을 추스르던 샤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포주가 주겠다고 한 건 은화 스물 다섯닢. 삼분의 이를 떼먹은 거야? 그러면서 이게 적정 시세라고?
"야, 그, 원래 절반은 우리 몫인거 알잖아."
어차피 챠르쉴라 아파서 못 나오고. 적사병이라 죽을 것 같으니까. 그냥 샤를을 후려쳐서 돈 벌 생각으로 질렀지만 이런 사태가 있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첫날밤을 치른 여자에게는 돈을 모조리 건네는 게 이 바닥의 예의였다.
"...금화 세 개. 전부 내놔요."
샤를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건 일이다. 졸린 목이 아프고, 무서웠지만. 눈물을 보이는 건 약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해야한다.
"여기 서큐버스들 가격 후려친다고 소문내고 다닐까요? 아무리 서큐버스가 많다고 해도 소문나면 힘들 텐데. 그리고 우리 언니가 여기 뒤집는 꼴 보고 싶어요?"
악마는 콧김을 내뿜었다. 이번 건은 자신의 실패다. 상처입은 줄 알고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가시에 찔렸다. 여기서 더 우겼다간 평판마저 작살나게 생겼다.
오크를 걷어차 층계참에서 굴리고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침대 옆의 협탁에 탁 내려놓았다. 불만스럽게 걸어나가며 문가에서 경고했다.
"돈 줄 테니까. 계속 출근하고, 괜히 소문내지 마라. 네 언니한테도 비밀이야."
악마가 나가고 나자 샤를은 겨우 숨을 내쉬었다. 금화 세 개. 이거라면 언니한테 뭐든 사다줄 수 있어.
괜찮아. 이건 일이잖아. 다른 서큐버스도 모두 겪는 일일 뿐이야. 어쩔 수 없어.자신에게 되뇌이며 샤를은 창관을 벗어나 자신을 기다리는 언니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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