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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예림이는 처녀가 아니라니까요!-142화 (142/358)

〈 142화 〉 139. 이삿날엔 역시 중국집이지

* * *

“와. 세상에.”

“진짜 저희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나와 샤를은 짐 옮기는 곳 옆에 가만히 서서 쳐다보기만 했다. 영선 누나가 부른 복싱장 오빠들이 모든 짐을 날랐다.

“방해야.”

도와주려고 해봤지만 방해니까 비키라는 말만 들었다. 거의 열 명 가까이서 짐을 옮기니 30분만에 이삿짐이 용달에 다 실렸다.

“다 됐니?”

박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박스 옆면에다 써 놓는 일을 마치고 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원룸살이 인생이라 짐이 없기도 했고.

“그럼 출발한다?”

우린 용달을 타고 파크빌 14층으로 향했다. 집에서 20분 거리. 신축. 남향. 4억5천짜리 45평 전세. 이사가기 전까진 몰랐는데, 막상 용달을 타고 떠나자 실감이 제대로 났다. 신난다!

“사다리차 같은 거 안 불러도 돼요?”

“필요 없다.”

두 명이서 냉장고를 힘도 들이지 않고 올렸다. 집에 들어가자 샤를이 일사불란하게 가구를 넣을 위치를 집어줬다.

“네, 침대는 저쪽 방에 넣어주시고. 세탁기는 위치 살짝만 옮겨주시겠어요? 행거는 저쪽으로 하고.”

“샤를. 어디에 뭐 넣을지 다 생각하고 있던 거야?”

샤를이 반짝반짝 웃으며 팔짱을 껴 왔다.

“저, 제 방이 생긴 건 처음이거든요! 집 본 날부터 너무 설레가지고 어떻게 꾸밀 지 매일 생각했어요!”

음. 내가 영선 누나나 유다 누나랑 뒹굴 때 이런 계획을 짜고 있었구나... 응... 미안해...

그러다 난 처음 보는 물건을 보고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뭐야? 킹사이즈 침대? 우리 게 아닌데? 이게 어디서 난 거야? 다른 집 이삿집 훔쳐온 거 아냐? 비닐도 안 뜯었는데?

의심스럽게 보는데 영선 누나가 내 귀에 속삭였다.

‘이사 선물이야.’

나는 눈치도 없이 큰 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다.

“누나. 침대 진짜 고­”

퍼억. 누나가 내 입을 막았다. 그러며 주변의 눈치를 보고 속삭였다.

‘내가 침대 선물로 줬다고 하지 마! 오빠들이 이상하게 본단 말이야!’

아하. 그러니까 이 침대가... 우리한테 주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기도 써먹을려고 큰 걸로 줬다?

그 사실을 알고 침대 사이즈를 보니 선물의 의미가 달라 보였다.

“누나. 이 침대에서 대체 뭘 하려고?”

그러자 영선 누나가 나와 샤를, 유다 누나까지 힐끔힐끔 본다.

이 위에서 섹스할 생각밖에 없군... 아무래도 저번에 호텔에서 한 3P섹스가 꽤 취향이었나보다.

킹사이즈 침대 하나에, 우리가 원래 쓰던 슈퍼싱글 사이즈를 붙여놓으니 호텔 침대 사이즈와 비슷하네. 음. 그렇군... 그런 걸 하기 위한 거군.

뭐, 어찌됐든 침대는 고마워요. 그런데 유다 누나가 침대를 보고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음. 나도 올릴 거 있는데... 이 오빠들한테 부탁하면 되려나? 아, 저기 왔다!”

1층에 용달이 하나 선 걸 보고 유다 누나가 손을 흔들었다. 거기에서도 가구들이 쏟아진다. 2015년식 양문형 냉장고, 쇼파, 59인치 TV. 샤를과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있는데 유다 누나만 시무룩해한다.

“새걸로 못 사줘서 미안... 적금 때문에 묶여있는 돈이 대부분이라... 그냥, 적금 깰까?”

“아니예요 누나! 진짜! 진짜 좋아요!”

안 그래도 엄마한테 돈 드리느라 생활비 빼고는 빈털터리 상태! 가전 제품들 어떻게 채워넣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도움이라니! 적금 안 깨도 돼요! 충분히 좋아요!

영선 누나와 유다 누나에게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복싱장 도장 관원들에게도.

“저, 이사 도와주신 거 감사합니다.”

30만원을 넣은 흰 봉투를 드렸지만, 말레이곰 민수 형은 손을 휘휘 저어 거절했다.

“됐어. 영선이 부탁으로 도와준 거니까. 나중에 우리 필요한 일 있으면 또 부르고.”

그러며 허허 웃고는, 내 쪽으로 몸을 숙여 속삭였다.

‘근데 집에 여자가 좀 많다...? 영선이한테 잘 하라고.’

그러며 사람들을 데리고 문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눈에 검지와 중지를 가져다 대고는 내쪽을 가리킨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잘 하라는 무언의 압박.

음... 솔직히 내가 절조 없이 아랫도리를 놀리고 다닌 탓에 생긴 일이라 할 말이 없네! 아하하!!

영선 누나는 손짓은 못 보고, 문 밖으로 나가는 소리만 듣고 뒤를 따라갔다.

“오빠! 어디 가! 중국집 시켜줄 테니까 먹고 가!”

“됐어. 체한다. 집도 좁은데 우린 가서 먹을 거야.”

“아, 하나도 안 좁구만! 뭐가 좁다고 그래!”

계단으로 운동 겸 뛰어 내려가는 오빠들을 향해 말해봤지만 그대로 내려간다. 저 아래까지 간 걸 보고는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도와줘서 고마워!”

밑에서 손만 뻗어 화답했다. 누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머리를 긁었다.

“먹고 가라니까. 왜 저러는 지 모르겠네.”

음. 썸 타는­ 혹은 남친 후보랑 같이 있으라고 배려해주는 거 아닐까?

“됐어. 배고프다. 우리도 밥 먹자.”

내가 냉큼 탕수육, 간짜장, 짬뽕 세트를 시켰다. 유다 누나가 자기가 내겠다고 나섰지만 이런 날에 돈 내게 하면 그거야말로 쓰레기지! 안 돼!

돈 내는 걸 제지당한 유다 누나는 김장 배추처럼 풀이 죽었다. 앉아 있다가, 우리 이사를 도와줬다는 칭호를 차지한 영선 누나가 부러운 지 중얼거렸다.

“영선이는 친구가 많구나.”

“뭐, 친한 오빠 동생 사이죠!”

그러며 방을 휘휘 둘러본다.

오빠들은 꼼꼼하게 입주 청소까지 다 마쳐주고는 갔다. 입은 은혜가 크다. 영선 누나가 사심을 담아 농담 하나를 던졌다.

“근데 집 진짜 좋다. 둘이 쓰기엔 너무 넓은 거 아냐? 어때, 나도 이사 올까?”

유다 누나도 지지 않고 거든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전세금은 어떻게 구했어? 대출? 금리 높으면 내가 대환해줄게! 적금 담보로 대출받으면 되니까.”

그리고는 오피스텔 정리하고 이쪽으로 들어올 생각이겠지?

나와 샤를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샤를과 미리 이야기를 해 놔서 다행이다.

“음, 드릴 이야기가 있는데...”

이 집에서 살게 될 니모나와 무슨 관계인지 설명해야 하고. 샤를이 언제까지 예림이 모습으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저, 혹시. 악마를 믿으시나요...?”

“엉?”

뜬금없는 주제에 유다 누나와 영선 누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야기를 하는 나도 어이없을 지경인데 어쩌겠어.

“사실은 샤를이 악마거든요.”

영선 누나는 무슨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냐­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비유적인 의미?”

유다 누나는 손가락을 교차해 십자가 모양을 만들고, 샤를한테 들이대며 웃었다.

“악마야, 물럿거라!”

우리 둘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안 믿을 줄 알았어. 역시 보여주는 수밖에 없지.

“오빠, 이불 하나만 가져다 줘요...”

“알았어.”

눈 앞에서 변신해야 믿지 않겠냐고 해 봤지만 변신 장면은 징그러워서 죽어도 보여주기 싫댄다. 하긴, 정선 호텔에서 섹스할 때도 이불 덮고 변신했지.

나는 샤를의 등 위에 이불을 덮어주며 둘에게 말했다.

“이거 마술쇼같은 거 아닙니다. 진짜 악마라서 변신할 거예요.”

누나들은 ‘얘가 머리에 소주를 꽂았나­?’ 이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도 이불을 덮어주며 내가 마술 쇼 진행자가 된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자... 이렇게 덮고 하나, 둘, 셋을 세 주세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누나들은 떨떠름해하며 하나, 둘, 셋. 숫자를 셌다.

그리고 내가 이불을 들었다.

“어, 어? 뿔? 뿔이다아악­­!!!!”

영선 누나의 비명.

“지, 진짜 악마???!!”

이건 유다 누나.

그리고 청바지와 티를 입고, 수줍게 무릎을 꿇고 있는 샤를. 귀 옆엔 뿔이 볼록 튀어나와 앞으로 꼬인 형태로 나와 있다.

솔직히, 이 뿔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지. 외모도 많이 달라졌고.

“농담하는 거 아니예요. 진짜 악마라니까요.”

유다 누나는 눈을 반짝거리며 샤를을 쳐다봤다. 저 누나는 오컬트쪽에 관심 있는 고스로리 스타일이니까 그럴 수 있지. 작업실 공방 한 구석에도 육망성 그림이라던가 붙어있기도 했고.

하지만 영선 누나는 받아들이기 힘든지 입을 떡 벌리고 샤를의 뿔을 톡톡 건드려봤다.

“진, 진짜다...”

그러며 머리를 걷고 뿔을 살핀다. 코스프레 플레이가 아니라, 정말 피부에서 나온 뿔. 영선 누나는 멍하니 날 쳐다보다 중얼거렸다.

“이, 이거­ 우리가 알아도 되는 거야? 그냥 계속­ 누구냐. 원래 이름이, 예림? 예림이인 척 하면 안 됐나?”

“그게 말이죠...”

샤를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 건 성당 기사단 때문이다. 성당 기사단이 왔을 때 둘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왜냐면.

“사실 누나 두 분, 계약서 쓰셨잖아요. 그게 악마의 계약서거든요...”

샤를이 미안한 표정으로, 손에서 계약서 두 장을 내민다. 누나들은 ‘방금 전까지 손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혹시라도 성당 기사단이랑 얽힌다고 해도 크게 해 될 건 없겠지만.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지금까지,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둘은 계약서를 받아들고, 계약서의 글씨가 핏빛으로 일렁거리는 걸 본다. 이것까지 보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Gif를 종이에 구현할 수 있는 인간이 있겠어?

다행히 둘은 기겁하거나 패닉에 빠지진 않았다. 샤를의 뿔을 만져보고, 잡다한 질문들을 던졌다. 한국엔 어떻게 온 거야? 악마? 막 나쁜짓을 하는 거야? 왜 강민이랑 있어?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에 샤를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답해준다. 그런 질문을 받을 동안 나는 잽싸게 충격 사실을 하나 더 끼워넣었다.

“그리고, 여자 한 명이 저희랑 같이 살게 됐거든요.”

뭐? 유다 누나와 영선 누나의 눈이 동시에 이 쪽을 노려봤다. 악마보다 이 쪽이 더 신경쓰인다는 태도.

“야. 그것부터 자세히 읊어 봐. 어떻게 된 건데.”

“여기에 여자 한 명이 더 들어온다고?”

누나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날 잡아먹으려고 한다.

내 업보지만, 살려줘­

아아­ 니모나 이야기를.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맨 처음부터! 천천히! 샤를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포탈을 넘어왔고. 나랑 계약했고. 그리고 영선 누나랑 같이 술 마시고­ 그 다음에­

갑자기 등에 땀이 흐른다.

어라. 영선 누나의 꿈은 ­ 뭐라고 설명하지­? 묶여서 나한테 강간당하는 꿈이, 샤를 탓이었다? 샤를도 대충 둘러댔다.

"저랑 만나면 야한 꿈을 꾸게 되거든요. 제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긴 한데. 언니 욕망이 너무 강해서..."

"넘어가! 그 부분은 더 이야기하지 마!"

영선 누나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넘긴다. 묶여서 양방향 강간당하는 게 취향이라는 이야기는 좀 그렇지. 우리도 스킵하면 좋다!

그리고 유다 누나의 이야기와. 그 이후 있었던 일들. 그리고 이번에 강원도 갔다 온 이야기까지 다 하자 둘은 입을 벌리고 신음을 흘렸다.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래서, 성당 기사단이란 게 우리에게 결국 뭘 한다는 거야?"

솔직히 이건 우리도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 그 아저씨가 성당 기사단도 나름 원리 원칙이 있는 곳이라곤 했는데.

우리 넷이 끙끙거리는 동안, 문 밖에서 벨이 울렸다.

"아, 밥 왔다."

일단 샤를을 방 안으로 숨겨놓고 음식을 받았다. 다 펼쳐놓고 옹기종기 모였다.

좋아, 일단 먹고 생각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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