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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2화 (2/199)

〈 2화 〉 빙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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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로 나온, 와인잔에 채워진 혈액을 목으로 넘겼다. 피를 마시는 것도 슬슬 익숙해졌다. 요즘은 좀 맛있는 거 같기도 했다….

일단 흡혈귀라고 해서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기호식품의 영역으로, 영양분을 얻기 위해서는 꼭 혈액이 필요했다.

이 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빙의 직후 완전히 허약해진 내 몸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선 혈액 섭취가 필수였기에, 한 번도 피를 먹어보지 못한 나도 비위고 뭐고 24시간 내내 혈액팩을 쪽쪽 빨고 있었다. 옆에서 누님이 빤히 보고 있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덕분에 지금은 그냥 토마토 주스나 와인 마시듯 마시게 됐다.

피를 목구멍으로 넘기곤 자리서 일어났다. 비록 내가 누님의 호감도를 올리기로 마음 먹기는 했으나,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일단 방금까지만 해도 식사 중이었고, 이지를 상실했다곤 하나 구울 메이드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서 뭔가를 하기엔 누님이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기억을 잃었다 믿고 있는 누님은 매일같이 내 방으로 찾아왔으므로, 무언가를 하려면 그 때에 해도 늦지 않았다.

오히려 단 둘이 침실에 남는 상황이므로 사고를 치기에도 적합한 환경이리라.

그러니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언제 어디서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지였다. 그녀가 내게 호감을 품고 있다한들 어디까지나 사이 좋은 남매지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한 명의 남자가 아니라 기억을 잃어 보살펴줘야 할 동생으로 보고 있을테니.

실제로 무력으로도 내가 많이 밀린다.

그것은 그녀의 상태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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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 체페슈

근력 ▶ 142

민첩 ▶ 156

체력 ▶ 122

내구 ▶ 141

마력 ▶ 133

상태: 불안

특성: 혈귀, 형?, 가주(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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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진 스칼렛 체페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스탯이다. 아니, 온전한 몸상태로 돌아오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스칼렛 체페슈의 특성 중 공? 특성이 개사기 특성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레티시아의 형? 특성도 만만하진 않다.

어쨌든 무력으로도 내가 밀리고,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 덕에 모성애도 자극 될 테니 누님에게 내가 어떤 인상일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잘 쳐줘봐야 잘 생긴 내 동생…. 정도겠지. 사실 빙의 전 우리집 또라이를 생각하면 누님이 동생인 나를 그런 식으로라도 생각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만, 나름 미연시 세계 속 아닌가. 사이 좋은 남매란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정작 내가 있는 세계부터가 검과 마법의 판타지 세계라는 걸 생각하면 사이 좋은 남매도 있을 법 하지 않을까.

중요한 건 지금 이대로 가다간 남매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카데미에 가게 돼서는, 누님이 황자에게 반해버릴지도 모른단 것이다. 퀘스트도 깨고, 누님이 다른 곳에 괜히 눈 돌리지 않도록 적어도 사이 좋은 남매 수준의 관계에서는 벗어나야 했다. 아카데미에 가기 전까지.

이대로 방에 가서 가만 기다리고 있으면 누님이 찾아오겠지. 그럼 누님에게 있어선, 매일 반복하는 일과 중 하나를 실천하는 것 뿐일 것이다. 설렘도 없고, 아픈 동생에 대한 걱정만 한 가슴 품고 오겠지.

나는 조금 자극을 주기로 했다.

“누님.”

“응. 왜?”

“이따 내 방은 몇시즈음 오려고?”

“시간 나면 가겠지? 왜, 누나가 기다려지니? 심심해?”

내 물음에, 귀여운 동생 보듯 누님이 싱그럽게 웃었다. 이런 누님이 게임에선 악독한 악역으로 나온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랑이 뭐길래 그런걸까. 솔직히 그녀가 내 혈육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곳이 이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분명 한달 전만 해도 이곳은 내게 게임 속 세상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난 그녀를 한 명의 여자로써, 침대에 자빠뜨리기 위해 작업을 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미래를 생각했더니 어딘가 기분이 이상해져서,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답했다.

“심심하진 않은데, 누님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아서.”

“어차피 매일 같이 있는데 뭘.”

“단 둘이 있는 시간 말이야. 너무 짧은 거 같아. 마음 같아선 온종일 누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

“…….”

툭 던진 말이다.

이런 말 한 번 했다고 무언가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고, 갑작스런 변화 대신 조금씩 밑밥을 던지기 위해 뱉은 말이었다.

아주 약간의 진심을 첨가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이상했다. 뺨이 살짝 붉어지고, 꾹 다문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평소 같았으면“누나가 그렇게 좋으니?”하고 대답했을 그녀가 아무 말도 없자 의아해진 내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래?”

“……그, 온종일이라는 건. 음. 잘 때도 같이 자자는, 그런….”

“아.”

무슨 오해를 했는 지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상한 점은 남아있었다. 나는 참지 않고 묻기로 했다.

“같이 자는 게 무어 어때서. 오히려 누님은 누나랑 같이 자고 싶었느냐며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그랬다. 내가 아는 누님이라면, 되려 신나서 그러자고 할 사람이었는데.

본디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이라 아주 옅은 홍조마저 진해보였다.

그 반응이 부끄러움인지, 아님 다른 무엇인지는 모를 일이나, 적어도 누님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상했다.

“그, 그렇지. 음.”

그런데도 누님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이젠 아주 손부채질로 얼굴을 식히고 있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지금 동요하고 있다는 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 여자가 왜 이럴까.

나는 더 추궁할 수 있었으나, 그랬다간 누님이 도망갈 거 같아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누님에게 다가갔다.

툭.

“이상하게 왜 그러지. 나 방에 들어가서 한숨 잘테니까, …한, 두 시간? 두 시간 뒤즈음 와. 그 정도면 올 수 있지?”

누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치자,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레티시아 체페슈는, 당황했다.

그녀의 동생은,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오만하고, 또 그만큼 품위도 있고, 능력도 있는 자. 체페슈의 가주로서, 당당하게 군림하는, 위대하던 체페슈의 핏줄 속에서도 다시 없을 재능을 타고난 자…. 드라쿨레아나 노스페라투의 늙은 원로들만 아니었어도, 10년 안에 혈귀의 왕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동생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동생이 어려웠다. 너무 완벽해서. 그것은 두려움이나 질투, 시기…, 그런 것들과는 달랐다. 동경이었다. 그녀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동생에게 품기에 적절한가 싶다가도, 동경할 수밖에 없는 자였다.

그랬던 동생이 바뀌었다.

한 달 전, 그녀의 동생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죽은 듯 잠들어 있을 때. 그러다 동생이 깨어났을 때. 그렇게 마주한 동생이 어딘가 달라져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그녀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처음엔 경계했다. 달라진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였을까. 거리를 두려 했다. 동생이 깨어난 날 밤, 그녀를 불러 자신이 기억을 잃었노라 털어놓기 전에는.

약해진 몸, 잃어버린 기억. 처량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모든 걸 털어놓은 동생의 모습은 가련했다. 동경하던 동생 대신, 보살펴주어야 할, 사랑스런 그대가 있었다.

동생은, 체페슈의 가주는,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기억을 잃은 자신이어도 자신은 그녀의 동생이니,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좋아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미워하지는 말아달라고 그리도 몇 번이고 속삭이던 동생의 모습은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가슴을 꼭 부여잡았다. 두근두근.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콱 막히고는 해서.

그녀는 지금의 동생이 좋았다. 난생 처음 해보는 가주 대리역도 처음엔 어려웠으나, 매일 밤 그녀를 맞이해주는 동생을 보면 그런 것 쯤 다 잊게 되었다.

동생은 기억을 잃었어도 그녀의 동생이었다. 다른 얘기가 아니라, 매일 밤 그녀가 찾아가 얘기해주는 것들을 무척 빠르게 스펀지마냥 흡수하는 걸 보면 그랬다.

그녀가 동경하던 동생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아끼는 동생이었다.

처음에는 모성애라고 생각했다. 약해진 동생을 볼 때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그것이.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것도 금방이었다. 매일 밤 그녀의 손길에 편히 머리를 기대는 동생을 볼 때면, 혹은 가볍게 이마에 입 맞춤 할 때면, 동생이 나른하게 웃어줄 때면…. 아랫배가 꾹 당기는 것을.

잘 자란 인삿말을 나누고 방을 나서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확인해보면, 어느샌가 허벅지까지 습기로 가득차 있음을 어찌 모른 척 할까.

다만 그녀는 그것이 사랑이라 여기지 않았다.

너무 고귀하고 사랑스런 동생이었다. 게다가 남매였다.

사랑이 아니라, 동경하던 이가 한 없이 약해져 자신에게 기대는 것으로부터 쾌감을 느끼는 그녀 자신의 변태적인 기호일 뿐이라 여기기로 했다.

변태년. 그녀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러고도 참지 못해서, 손장난질을 치고.

그리고.

결국 그러기를 며칠, 동생에게 아카데미 생활에 익숙해지려면 아침에 적응해야 한단 말로 밤이 오기 전에 재워놓고서.

…. 그녀는 퍼뜩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거, 아침엔 생각하지 않기로 했는데. 상스러워. 매일 밤이면, 달빛을 받고, 활성화 된 피와 욕구에 그만 참을 수 없게 된 생각들로 몸부림 치다, 결국 참지 못한 대신 밤이 아닌 시간만큼은 참아야겠다 다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지.

그녀는 발개진 얼굴을 식히려 손부채질을 마구 했다. 열이 식질 않았다. 갈증이 나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서 자리를 비운 동생이 앉았던 자리가 보였다.

…이건 다, 동생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니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었으므로.

비척비척,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난 그녀가 동생이 앉았던 자리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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