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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0화 (10/199)

〈 10화 〉 크리스티나 (1)

* * *

크리스티나 헤일리는 영리한 여자다.

언제나 눈을 감고, 방긋 방긋 웃고 있어 상냥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고, 실제로도 크리스티나 헤일리가 상냥한 여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상냥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녀가 백작가의 유능한 여식이라는 것은 또 별개의 사실이다.

그녀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유능한 귀족이었다.

그래서 체페슈로부터 날아온 통보에 가까운 그것을 본 그녀는, 곧장 자신의 큰 오라버니를 찾아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따지는 크리스티나에게 돌아온 배다른 오라비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뭐? 체페슈? 모른다! 영지의 일은 네 전담 아니냐!”

“그렇지만 오라버니, 영주 대리는 오라버니….”

“그래서? 내 탓이라고?”

불 같은 성정에, 앞뒤 가릴 줄 모르는 오라비에게 더 따져봐야 소용 없음을 깨달은 크리스티나는, 대신 둘째 오라버니를 찾아갔다.

“뭐라? 그거 잘 됐군. 그걸로 형을 몰아낼 수 있겠어.”

“체페슈의 미움을 사면 백작위가 무슨 소용인가요, 오라버니. 부디….”

“내가 백작위를 물려받고 어련히 알아서 잘 하면 된다! 시끄러우니 물러가라!”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몇십 분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후계자가 된 첫째를 질투하는 둘째였기에, 그는 되려 이 상황을 기회로 보았다.

멍청하고 무능한 쌍둥이 형과 달리, 자신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에 크리스티나는 결국 설득을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어린 여동생에게 가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없겠지. 새어머니를 찾아뵙기로 했다.

새어머니는 그녀를 끔찍이도 싫어하시지만, 그래도 영지를 위한 충언마저 내치시진 않으리라 믿고서 크리스티나는 새어미를 찾았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아예 크리스티나의 방문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문 앞에서 차가운 박대만을 얻은 채, 그녀는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아버지를 보필하던, 그리고 여전히 헤일리 가에 충성하는 가신들이 모두 남아있었으니까.

그녀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 영지를 반드시 지키겠노라 다짐했다….

*

약속한 당일이 되었다.

크리스티나와, 그녀와 함께 체페슈를 맞이하기 위해 지난 며칠을 동분서주한 가신들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 정원에 모여 있었다.

침묵. 모두가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채, 곧 헤일리 영지의 미래가 판가름 나리란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마침내. 정원의 문이 열리고, 검은 배경에 붉은 까마귀가 그려진 깃발을 매단 마차가 정문을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토록 충성해온 블랙우드를 제외한 어느 귀족과도, 그 흔한 혼인 동맹조차 없이 홀로 선 채임에도 제국에서 가장 널리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은둔해 있는 제국의 실세.

사교계에서도, 중앙 귀족원에도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 없음에도, 암암리에 그 손길이 제국 전체에 뻗어있는 괴물의 수괴가 마차 안에 타고 있다는 사실에, 크리스티나는 당장이라도 다리가 풀릴 뻔 한 것을 힘들게 부여잡았다.

‘여기서, 꼴 사납게 쓰러지면 전부 끝이야…!’

그것은 그녀 뿐 아니라 그녀의 뒤를 지키던 가신들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높은 무력을 지니고 있는 헤일리의 기사단장이 더욱 그랬다.

‘말도 안 되는 기운…! 직접 마주 본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위압감이라니. 터무니 없는….’

오히려 이곳의 누구보다 힘의 우위에 민감하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무릎 꿇을 것 같은 다리를 지탱하고서, 혼절할 뻔한 정신을 억지로 혀를 깨물어 견뎠다.

강직한 기사단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마 조금이라도 유약한 자였다면, 무릎을 꿇었을테지.

그렇게 헤일리의 모든 가신의 눈이 집중 된 가운데,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림자가 흘러내렸다.

마치 물이 떨어지듯, 그림자─그림자라고 불러야 할 지, 어둠이라고 불러야 할 지, 그것은 그 자리의 누구도 감히 단언할 수 없었다. 한 없이 어두운 어둠과 함께, 한 명의 남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선명한 금빛 머리칼, 루비처럼 반짝이는─ 한 없이 아름답고 찬란하나 인간 같지 않고 무감정한 눈동자─, 핏기 없이 새하얀 피부와 조각 같은 외모.

가히 절세의 미남이라 할 법 했으나─.

그것에 호감을 느끼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공포였다.

절대적인 포식자를 눈 앞에 둔 피식자와 같이.

어느 먹잇감이 맹수를 앞에 두고, 맹수에게 호감 따위를 느낀단 말인가?

크리스티나는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반갑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음에도 남자는 덤덤히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남자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사방을 집어삼킬 듯 날뛰던 그림자가 조용히 사그라들어 남자의 발 밑으로 모였다.

그제야 다들 숨이 트이는 듯 했다….

그것이 자신은 언제라도 여기 있는 모든 것을 처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해, 크리스티나는, ….

“제국의 위대한 일곱 기둥, 영원 불멸의 체페슈를 뵙습니다.”

두려웠으나, 그럼에도 의연하게 해야 할 행동을 하였다.

여기서 남자에게 겁을 먹었다간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그녀는 여기에서 꺾이기 위해 지금껏 헌신해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두려워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다행이 그녀의 그런 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던 남자가─, 체페슈의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크리스티나 헤일리로군. 맞나?”

“……. 네.”

그 같은 거물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단 사실에 등골이 섬찟하긴 했으나, 최근 분쟁으로 인해 사전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라면 영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라 크리스티나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너무 겁 먹었어. 일일이 의미부여 해봤자 나만 힘들어….’

라며, 의연해지기 위해 정신을 다스렸으나,

“이미 죽은 친모는 리베라의 사람이었고.”

“….”

뒤이은 남자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아니, 조사하면 나올테지만. 그 정도까지 나에 대해 외울 필요가 있었나?

그녀는 헤일리의 셋째이자, 장녀…. 영주 대리도 아니고, 뛰어난 기사도 아니었으며, 약간의 마법적 소양이 있을 뿐인 여자에 불과했다.

‘나를 왜….’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군.”

“그건…. 네.”

다 알고 있다는 듯, 자꾸만 속마음을 찔러대는 말만 골라 하던 남자가, 다 알고 있다는 듯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서 얘기하지.”

크리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잔뜩 겁을 집어먹었군.

헤일리 영지에 와서 느낀 감상이었다.

나를 맞이한 크리스티나 헤일리 뿐 아니라, 그 뒤로 죽 늘어선 가신들까지 죽을 상이다. 기사단장은 당장 죽을 것처럼 거무죽죽한 얼굴에…, 혀라도 깨물었는지 입가에 피가 흐른다.

여기서 계속 있어봤자 다른 이들에게 겁만 줄 것 같아,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헤일리 백작의 다른 자식들은 안 나온 건가.

대충 사정은 파악했다. 엄연히 내 영지는 제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에 위치해 있고, 땅도 넓은 편에 속해 그만큼 영지민의 숫자 또한 많았다.

덕분에 모험가 길드, 정보 길드, 마탑 등등이 수도 다음으로 지부를 여는 곳이기도 하고.

특히 교단은 인간과의 화합을 상징하기 위해 성국 교황청 다음으로 큰 신전을 이곳에 지어두었다.

흠. 흡혈귀의 영지에 최고 규모의 신전이라.

아이러니하지만, 흡혈귀는 딱히 마족이 아니라 신성력에 취약하다던가 교인들과 사이가 나쁘다던가 하는 일이 없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천년 쯤 전 마족과 인외종족의 경계가 희미할 땐 분쟁도 잦았다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듣기로는 흡혈귀 추기경도 있다던데.

그나마 나는 전생의 기억이 있어 좀 어색하긴 했다.

어쨌든…. 실제로 마주한 크리스티나 헤일리는, 꽤 예뻤다. 얼굴만 보고 용서해주고 싶어질 정도로.

푸른빛 스트레이트 헤어에, 미인점에다가, 실눈 거유라니. 게다가 설정상 그녀는 나중에 힐러로써 재능을 깨닫고 교단의 성녀 다음으로 마왕과의 싸움에서 활약한다.

데이지도 꼬셨고, 누님도 꼬실 예정인데, 이제 와서 크리스티나라고 손 대지 말란 법 있을까ㅡ.

게다가 여주랑 사이 좋은 친척이라 나한테 도움이 되면 됐지 나쁠 건 하나도 없는데?

이건 손 안 대면 바보지ㅡ.

크리스티나의 안내를 받으며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끝내고, 그녀가 안내해준 응접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기다렸단 듯 차를 내온 메이드가 각자의 자리 앞에 차를 내려놓고 나갈 때까지 이어지던 침묵은….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예상했던대로 크리스티나가 먼저 끝냈다.

눈을 꼭 감고서─애초에 원래 실눈캐지만─, 혼란스러운 헤일리 가의 상황을, 수치스럽게도 가문 외의 사람에게 설명하면서도 크리스티나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영지와, 가신들을 지키려는, 가족들에게는 버림 받았을지언정 꿋꿋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여인의 아름답고 찬란한 자태였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측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질 테니….”

“하나 제안을 하지.”

“…네?”

그리고 나는,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들으려고 이곳을 찾은 게 아니었다.

솔직히 크리스티나 헤일리가 정확히 어떤 여자인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19금 GL물을 그리느라 찾아본 대충의 설정과 외모 정도였으니까.

그냥, 선역으로 나온 조연캐릭터니까─. 같은 마음으로, 인연이라도 만들어주면 좋을 거 같아서 찾아왔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당차고, 당당하면서, 의연하고, 그러면서도 꽃처럼 꺾일 듯 가냘프고 연약해 보여서─.

진심으로 가지고 싶어졌다.

그래서.

“네 아비를 살려주마.”

“…!”

“조건은 하나다.”

피의 맹약.

그녀의 아버지와, 가신들, 영지.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대가로, 그녀의 모든 것을 가져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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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헤일리

근력 ▶ 31

민첩 ▶ 24

체력 ▶ 45

내구 ▶ 33

마력 ▶ 66

특성: 「귀족」「물의 가호」「치유」

고유특성: 「호수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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