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강의 중 (2)
* * *
이름 모를 대학원생이, 한창 다른 생도들에게 이중 속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베르너 교수에게 다가갔다.
물 오른 강의가 흐름이 조교의 방해로 뚝 끊기니, 불쾌한 듯 베르너 교수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뭔가?”
“교수님. 저기, ….”
조용히 전달해달라던 내 말을 잊지는 않았는지, 교수에게 강의를 듣던 생도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혔음에도 조교는 굴하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가 무서운 게 아닌 건 아닌지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있었지만.
뭐. 조교가 불이익을 당할 일은 없겠지.
동색 그리폰 휘장까지 받을 정도의 인재다. 그 정도 실력의 교수가 조교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 할 리 없었다.
조교에게서 사정을 들은 베르너 교수의 눈이 번뜩 떠졌으나, 조교가 눈치 빠르게 내가 조용히 전달해달라고 말했다는 것을 전했는지 그 시선이 내게 향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교수가 강의가 끊긴 것도 신경쓰지 않고 나한테 눈을 돌리면 아무래도 또 주목이 모일 테니까.
“허허! 그래, 알겠네. 자네는 가서 마저 하던 일 보게.”
“알겠습니다 교수님….”
교수의 용서를 받은 조교는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듯 안심한 표정이었지만, 글쎄.
하던 일 마저, 라고 하기엔, 일단 첫 단계부터 제대로 못 밟았는데 어떻게?
조교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듯, 또 거무죽죽 반쯤 죽은 얼굴이었다.
“전하….”
“으음.”
“이봐요.”
그때였다.
일단 교수가 시킨대로 나한테 다시 오긴 했으나,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버퍼링 걸린 기계처럼 굳어있던 조교와, 달리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내가 고민하던 때에, 누님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 먼저 가르쳐주세요.”
“아!”
누님이 제시한 해결책에 조교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누님이니만큼, 나 대신 누님을 지도했다고 교수도 불만을 느끼진 않으리라.
하지만 의아한 게 없는 건 아닌데.
“이중 속성 쓸 수 있지 않아?”
애초에 특성「형?」의 영향으로, 원한다면 모든 속성을 사용할 수 있는 그녀였다.
이제 와서 이중 속성? 이라고 해봤자.
“쉿. 너랑 데이지 말곤 아무도 몰라.”
음.
그래도 내가 납득하지 못 한 것을 느꼈는지, 누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는 건 맞지만, 아직 속성 결합에는 미숙하니까. 이 김에 그걸 위주로 배워두지 뭐.”
그렇다면야.
나는 이게 힘숨찐인가,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은 힘을 숨겼는데도 2학년 수석에 찐따도 아니지만.
애초에 누님이 이중 속성 결합에 미숙한 이유가, 굳이 거기까지 할 필요도 없이 스펙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
누님은 나 대신 조교에게서 이중 속성의 결합에 대해 성실히 배웠다.
아무래도 실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서서겠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괜히 나도 뭐라도 하고 싶은 맘에 손이 근질거렸으나ㅡ,
‘당장 고대 마법 건이 이틀 전이니까.’
참아야했다.
「부여」를 사용하면, 이중 속성의 사용은 쉽다. 「연결」과 「조율」이 있다면 속성의 결합 또한 쉬운 일이다.
누님이 단순히 다중속성을 사용할 수 있다ㅡ 에서 끝이라면, 나는 다중속성의 사용 뿐 아니라 그것의 조합까지, 내 고유특성의 숙련도에 따라 자유로웠다.
지금 당장 경지에 오른 마법사만 가능하다는 삼중 속성 결합도 가능하다.
하지만 방금 전 종이에 마력을 넣자마자 까맣게 물들며 소멸해버리는 것을 조교가 보았고, 교수마저 그것을 들은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중속성 이상의 결합을 선보인다?
잠깐 생각해봤더니 피곤한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심심해졌다.
강의는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들을 게 없었다. 그야 내가 이중속성을 사용하는 방식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베르너 교수가 가르치는 이중속성은 절대다수의 마력속성인 원소계와, 극소수인 개념계 중에서도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것들만을 다뤘다.
그야 알려진 것도 거의 없는 희귀 속성을 가르칠 순 없을테지만.
정작 그 강의를 기대하고 듣는 내가 바로 그 희귀 속성이었다.
강의의 내용 자체는 알찼던 것 같지만. 만일 내가 적당한 원소계 속성 마력의 소유자였다면 참으로 훌륭한 교사라고 박수라도 쳐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
누님도 옆에서 열심히 조교한테 설명을 듣는 중이고….
흠. 옆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기립하고 있는 데이지를 흘긋 보았다.
얼마 전까지 허둥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날카롭던 눈매와 잘 어울리는, 벼려진 칼날 같은 모습이다.
그야말로 경지에 다다른 메이드ㅡ.
바로 이틀 전, 내가 고대마법을 사용했을 때에, 깜짝 놀라 다른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와와 거리던 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곁에서 나와 누님을 모시는 측근으로써, 품위를 유지하지 못해 죄송하다더니.
실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이토록 단정하고 소쇄한 자태야말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블랙우드로써의 데이지이다.
블랙우드의 별명은 두 가지이다. 체페슈의 번견, 그리고 미친개.
평소 한 없이 침착하고 고요한 자태,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극도로 정갈하게 갈무리 된 투기, 남녀 가릴 것 없이 속도를 중시한 듯 가벼워 보이는 몸.
전사가 아니라 암살자에 가까운 모습ㅡ.
그런 모습에 적이 방심할 때, 미친개처럼 돌변해 모가지를 물어뜯기에, 상대가 누구라한들 그 동맥에 송곳니를 꽂을 때까지 멈추지 않기에,
그렇기에 체페슈의 번견이며, 미친개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내 양물에 매달리던 데이지의 정갈한 자태에, 그리고 그것이 세간에 알려진 블랙우드의 본모습이라는 것에, 괜히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차갑고 조용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거지라고 생각했더니.
나와 누님 앞에서만 순종적인 강아지였지, 실상은 목줄 매인 늑대였던 것이다.
나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꼿꼿하게 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이지의 발목을 타고 올라간 그림자가, 핥듯이 그녀의 종아리를 어루만졌다.
“….”
데이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장난이란 것을 눈치 챘는지, 반항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옆을 슬쩍 바라봤다. 누님은 가르침을 받는 와중에도 내 쪽으로 눈길을 흘깃흘깃 줬다.
동생 사랑에 기분이야 좋았지만, 데이지를 더 희롱했다간 십중팔구 누님도 눈치 챌 것이란 뜻이기도 했다.
그럼 누님도 끼워주면 되지.
나는 짐짓 모른 척 그림자를 움직였다. 누님의 허벅지를 그림자가 톡 건드렸다.
“….”
“음….”
“왜 그러십니까, 공녀님?”
데이지는 꿋꿋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고, 누님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아마 이런 장소에서 내가 장난질을 칠 줄 몰랐기에 놀란 듯 했다.
….
은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상상 이상으로 음란한 누님이니 그럴 법 하단 생각을 하면서, 데이지의 허벅지와 가랑이를 그림자로 간지럽혔다.
일단 지금의 메인은 데이지였으니까….
누님은 공부하면서 안절부절 못 하게 하는 정도로 일단 만족하고, 데이지를 희롱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어올라간 그림자가 데이지의 음부를 건드렸다.
흠칫.
미약하게 떨린 몸. 단단하게 싸맨 메이드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젖가슴이 작게 출렁거렸다.
완전 회복 상태의 누님과 크리스티나에 비하면 조금 밀리지만, 데이지 역시 가슴이 도드라지게 큰 편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름을 알고 지낸 여자 중 가슴이 좀 작다 싶은 여자는 안나 크로이체프 뿐이군.
심지어 그 수행원인 사샤조차 D컵 정도는 돼 보였다.
아무튼. 음란한 용도가 아닌 순수하게 고용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정갈한 메이드복조차, 데이지 수준의 글래머가 입으니 남자를 유혹하는 섹시 코스튬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다음에 누님한테도 입혀볼까.
더블 메이드 플레이라.
상상만 해도 좋군.
엄한 상상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버티는 데이지의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흡.”
아주 작지만, 확실하게, 데이지가 참지 못 하고 얕은 숨을 뱉었다. 넘실거리는 그림자가 유의미하게 데이지의 하반신에 자극을 준 상태에서, 내 손이 닿으니 그만 참을 수 없게 된 듯 싶었다.
“…안, 됩니다. 주인님.”
“말투도 바뀌었네.”
“여기, 여기는, 밖이잖습니까….”
이틀 전만 해도 그런 거 신경 안 썼으면서.
나는 무시하고 데이지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맨 뒷줄이고, 내 옆에는 누님밖에 없었다. 그나마 조교가 누님의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긴 하지만, 적절하게 시야에서 사각으로 빠진 채였다.
게다가 데이지에게 손을 대기 전에 미리 인식 저해를 부여한 결계를 펼친 뒤였다.
평범한 인식 저해 결계 따위는, 결계가 펼쳐지기도 전에 그 마력의 파장 때문에 저 앞에서 거의 연설하듯 강의 중인 교수에게 들켰을테지만 「부여」를 통해 펼쳐진 인식 저해의 결계는, 결계를 펼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 하는 것조차 철저하게 막아주었기 때문에ㅡ,
“흡….”
완전 범죄였다.
아니. 애초에 데이지는 내 것이니, 공연음란죄 따위가 아니라면 범죄조차 아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