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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61화 (61/199)

〈 61화 〉 중간 시험 (4)

* * *

훌쩍훌쩍.

닭똥 같은 눈물을 또르르 흘리던 안나의 눈가를 사샤가 티슈로 토닥토닥 닦아준다.

“흐윽….“

크흥.

코 삼키는 소리까지.

조금 난처하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지.

“공녀님. 뚝.“

“뚝….“

뚝이랜다.

아무튼 잠깐 잉잉 울던 안나가 눈물을 그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쓰이지는 않았다.

내가 보고 있단 걸 깨닫자마자 순식간에 눈물이 그쳤으니까.

“….“

조용하다.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흘깃 올려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안나.

그녀를를 잠시 지켜보다 이대로 가면 언제까지고 대화가 멈춘 채일 것 같아, 내 쪽에서 마저 말을 잇기로 했다.

“….“

뭘 더 말해줘야 하지?

칭찬 할 건 다 해준 거 같은데. 검술은 내가 감히 입에 담을 영역이 아니고.

남은 얘기는 아까 시험 직전 왜 나를 어려워하느냐? 하는 얘기일텐데.

“킁….“

칠칠 맞게 훌쩍 대고 있는 이 아가씨한테 그런 얘기를 하면 또 울어버리지 않을까?

아니. 분명 괜한 걱정일테지만. 설마 크로이체프의 공녀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눈 앞의 광경을 보면, 그런 걱정을 하게 되고 만다….

“안나?“

“흡…. 네에.“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니,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도 착실하게 대답하는 그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어린 아이를 대하듯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왜 그리 놀라시는 거예요, 안나? 제가 뭐 했나요?“

“아니, 그, 넷…. 아뇨….“

이건 ‘네’인가 ‘아니오’인가.

안나 역시 자신의 말실수를 인지한듯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아, 아닙니다. 그냥, 이름, 이름으로 부르셔서….“

이름?

아.

“안나?“

“흐끕.“

나지막이 이름을 재차 부르자, 안나의 어깨가 다시 떨려왔다.

“네, 네….”

“…이름을 불러서 놀랐다는 거죠?”

“네….”

그렇군.

요즘 들어 아이리스를 대할 때 거리낌 없이 이름으로 부르다보니, 안나를 부를 때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 별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그게 안나에게는 심히 자극적이었나 보다.

자극적이라고 말하니 어감이 이상한데.

“혹 싫으시다면….”

“아, 아뇨! 싫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살짝 떠보니 이번에는 강하게 끊어낸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은 건 아니고, 그냥 부끄러운 것 같았다.

아니. 그야 호감 있는 남자가 친근하게 불러주면 싫어할 여자가 드물테지만.

그 대상이 나라는 점이 조금.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직선적인 호감이라니, 밀어내기도 난처한 수준이다.

“…그럼 앞으로도, 안나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

이번엔 뭔가 망설이듯 입가를 달싹이는 안나.

부탁이 있는 눈치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살짝 보챘다.

“말씀하세요.”

“……존대하지 않으셔도, 괜찮, 슴미다…?”

긴장해서인지, 끝으로는 어눌한 발음이었다.

….

솔직히 말해서, 별로 상관은 없는 제안이었다. 안나가 느끼기에 내가 반말을 쓰는 게 특별하게 느껴질 지 모르겠으나.

다만.

정식으로 교제 중인 아이리스가 있는데, 안나에게 먼저 말을 터는 게 맞나…?

그런 고민이 잠깐 들었다가.

“그럼, 그렇게 할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안나를 너무 홀대 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고.

뭐 다른 것도 아니고 겨우 반말 하는 것 뿐이니까.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

안나도 무척 기뻐하고 있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아무튼. 그래서.”

“네?”

“왜 나 피했어?”

“엣.”

여기서 다시 그 얘기로 간다고?

그리 말하듯, 안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져서는, 나를 봤다가,

“왜 저를 보세요…?”

사샤에게 도움을 청하듯 사샤를 봤다가 매몰차게 거절 당하고,

“그게….”

다시 나를 본 다음,

두 손으로 치마 밑단을 꼬옥 쥐곤.

“…제가, 전하랑, 친하게 지내면, 폐가, 될까봐….”

“…폐?”

무슨 폐….

아.

“황녀님이랑, 크리스티나, 라는 영애랑, 소문 있는데, 저까지 끼면… 안 좋으니까….”

그런가.

생각해보니 아이리스와의 소문이 알음알음 아카데미 내부에 퍼지던 시점과 안나가 나를 피하게 된 시점이 겹치는 것 같긴 했다.

“황녀님과의 소문은…, 다들 쉬쉬 하고 있어서 조용하지만…, 저까지, 대상이 되면, 그땐….”

제국의 균형을 이루는 황실과 크로이체프, 그리고 프리드리히와 체페슈라는 견제 구도가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른다.

나야 딱히 그럴 생각이 없어도, 소문을 접한 모두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리라.

“그래서 가급적… 거리를 두려구…. 전하는─.”

“스칼렛.”

“에윽.”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말을 잇던 안나의 말을 끊었다.

깜짝 놀란 얼굴.

이게 그, 처음에 말도 제대로 못 해서 결투 신청을 하면서도 당당하던 그 안나가 맞나?

아이리스도 그렇고, 안나도 그렇고, 오래 알고 지냈더니 몰랐던 면모들을 알게 된다.

아니지. 오히려 이 쪽이 그녀들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그, 네…?”

“스칼렛, 이라고 불러봐.”

“….”

여기서 안나가 어떻게 대답할까.

조금 짓궂은 마음으로,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숨긴 채 안나를 빤히 응시했다.

과연.

“…전하가 황녀님과 교제하는 건, 저주 때문이기도 하다고, 들었으니까….”

못 들은 척인가.

이것도 이것대로 괜찮다.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내가 지적하지 않아도 옆에서 안나를 흘겨 보는 사샤가 나중에 쿠사리를 먹일테니.

어쨌든.

“고마워.”

혹시라도 곤란해질지도 모르는 내 입장을 생각해서였다니, 생각 이상으로 기특한 대답이었다.

기특하다, 라고 그녀를 생각하기엔 나나 그녀가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진 않지만.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진 않지만.

아마도.

진짜로.

“흣.”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하시는 건가 봐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오물거리는 안나 대신, 쓴웃음을 지은 사샤가 내게 말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안나.”

“…흑!”

아.

또 운다.

*

안나와는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하고, 그녀의 기숙사에서 나왔다.

처음엔 당장 품에 품은 여자만 해도 벅차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안나는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나까지는 괜찮다, 괜찮지 않다.

뭐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고 이어지다보면 나오는 결론이란 으레 ‘내가 존나 쓰레기 새끼’라는 것 뿐이기 때문에 적당히 끊고는, 내일 있을 시험을 대비하는 대신 크리스티나의 기숙사를 찾아갔다.

“앗. 오셨나요?”

마침 씻고 나왔는지 물기에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말리던 크리스티나가, 그림자 속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를 보곤 빙그레 웃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찾아갔음에도, 크리스티나는 당황하지 않고 대신 팔을 슬쩍 벌렸다.

“으흠.”

어서 안기지 않고 뭐하냐는 듯, 이쪽을 흘겨보기까지.

아무튼 날이 갈 수록 이런 것만 늘어서는.

크리스티나를 마주 안고서, 부드럽게 등을 토닥였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정말로요?”

흠.

나는 일부러 잠시 대답을 미뤘다가, 크리스티나의 표정이 퉁명스러워지기 직전, 뺨에 쪽 입술을 댔다.

“당연하지.”

“정말. 짓궂게.”

삐죽 내밀던 입술을 집어넣고 살풋 웃은 크리스티나가 나를 침대 위로 데려갔다.

부드러운 침대에 엉덩이를 걸터 앉은 채.

우리 둘은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채.

그거면 좋다는 듯.

“…요즘 소문이 돌던데. 알죠?”

긴 침묵 끝에 크리스티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양다리라는 거?”

깍지 낀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그녀의 부드러운 손등을 간질이며 답했다.

꾸욱.

마주 잡은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태연한 거 아니에요?”

“틀린 말도 아닌데 뭘.”

솔직히 말해 떳떳한 행위는 아니었다.

숨겨둔 여자라 할 수 있는 누님이나 데이지를 제외하고서라도, 지체 높은 귀족가의 딸인 크리스티나와, 아예 황가의 여인인 아이리스 두 사람에게 한 남자가 손을 뻗고 있다는 게.

아무리 내가 힘으로 모든 잡음을 깔아뭉갤 수 있는 체페슈라고한들, 아예 도덕적 관념마저 바꿀 순 없었다.

“괜히 저 때문에.”

크리스티나는 걱정 하고 있었다.

누님과 데이지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크리스티나에게만 숨긴다는 일은 내게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진즉 모든 얘기를 나눈 이후였다.

모든 사정을 이해한 크리스티나는 아이리스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눈 감아줬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오히려 자신과의 염문이 아이리스를 만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소릴 해.”

“그치만. 당신의 체면이 깎이잖아요.”

“그러는 너는.”

“…당신은 체페슈의 가주니까.”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힘을 준 건지, 아니면 내가 손에 힘을 준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크리스티나를 밀쳤다.

털썩.

침대에 쓰러져, 길다란 머리칼을 흩뜨리며, 나를 멍하게 올려다 보는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짓씹듯, 속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토해냈다.

짐승이 으르렁 대는 듯 한, 내가 냈다기엔 참으로 거친 목소리였다.

“그 이전에, 네 남자이기도 해.”

그러니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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