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79화 (79/199)

〈 79화 〉 아르카디아 (3)

* * *

황궁이 발칵 뒤집혔다.

황녀 아이리스를 둘러싼 기이한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바로, 애런 황자였다는 익명의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익명의 고발은 바로 나다.

애런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서 정체를 숨긴 채 놈을 고발했다.

덕분에 황궁은 애런을 두고 혼란스러운 상태다.

지금껏 뛰어난 처세술로 쌓아온 이미지 덕에 애런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는 반면, 반대로 애런이 그럴 줄 몰랐다며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

혹은 처음부터 애런이 좀 꺼림칙 했다며,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소수나마 있었다.

일개 사용인부터, 궁내에 머무르는 궁중의 신하들까지. 모였다 하면 애런의 음습한 뒷수작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는 기다렸다.

이렇게까지 건드려줬는데, 반응이 없을리가 없었다.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애런이 건든 상대가 아이리스였다.

정 반응이 없다면 이쪽에서 먼저 긁어봐도 괜찮고.

다만, 굳이 애런을 시켜 이렇게 소문을 퍼뜨리는 모습이 에드윈이 애런을 쳐내려는 것 같이 보였다.

정체를 들켜버린 애런을 잘라내는 겸, 가십이라도 좋으니 소문을 퍼뜨려 아이리스의 이미지를 겸사겸사 깎아먹으려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게 정말로 큰 의미가 있나? 하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에드윈은 이 일로 애런이라는, 꽁꽁 감춰뒀던 끄나풀을 잃게 됐으면서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게 들킨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고 쳐내는 거야 이해하겠지만, 오십년간 정치질만 해왔을 인간이 한 짓이라기엔 너무 어설펐다.

게다가 애런이 수틀려서 내부고발이라도 하면 어찌 되겠는가?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에드윈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지.

‘역시 잘 모르겠군.’

다만 아무리 생각하도 떠오르는 게 달리 없었다. 애초에 에드윈에 대해서 그리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누나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성향 정도만 막연하게 파악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일단은.

‘애런부터 조지자.’

그래.

에드윈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긴 하지만, 당장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애런부터 조져둬야 하지 않겠는가.

에드윈은 까마귀를 시켜 감시해두라고 했으니 나중에 뭐라도 하나 걸리겠지.

어차피 가만 놔두면, 혼자서라도 마왕한테라도 빌붙을 놈이다.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는 게 좋았다.

“아이리스.”

“네, 오빠.”

나는 품에 안긴 채 바스락 몸을 부비는 아이리스를 내려다 봤다. 질척한 키스로 밤을 지새웠던 지날 날 이후, 이전에도 그랬지만 아이리스가 응석을 부리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새하얀 은발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차가운 인상의 얼굴을 부드럽게 편 채 얼굴을 부비는 걸 보자면 솔직히 좀 꼴렸다.

“…오빠. 아랫배에 닿아요.”

아이리스의 나지막한 목소리. 투덜대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한 듯 열감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이리스가 말랑말랑한 배를 부벼대서.”

“…마, 말랑말랑하지 않거든요?”

여자는 여자라는 건가. 아랫배를 언급하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낸다. 아랫배가 말랑한 게 뭐가 문제지. 부드럽고 좋은데.

“…저 살 쪘어요?”

한참을 투덜대다, 내가 조용히 내려다보자 이윽고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물어본다. 나는 길다란 은발을 손가락으로 쓸어주며 말했다.

“아니. 딱 좋아.”

“그치만 아랫배가 말랑말랑 하다고….”

“말랑말랑 싫어?”

“살 찐 거 같잖아요!”

나는 손을 뻗었다. 착 달라붙어 있어 여실히 전해지는 아이리스의 부드러운 감촉. 밀착해 있는 몸뚱이 사이에 손을 넣자.

“히약! 어딜 만져요!”

“아니. 배 만지려고.”

“가가가가슴 닿았어요! 그리고 배도 만지지 마세요!”

“미안.”

어쩐지 엄청 크고 부드럽고 말랑말랑 하더라.

나는 방금 느꼈던 커다란 우유통의 감촉을 잊지 않기로 하며 아이리스의 배에 손을 올렸다.

“만지지 말라구…!”

주물주물.

“꺄아악! 꺄아악!”

아주 난리다. 배 좀 만졌을 뿐인데 시끄럽긴. 나는 버둥버둥 발을 굴리는 아이리스를 꼬옥 마주 안은 채,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오빠는 변태예요! 가가가슴도, 배도, 막 만지고! 저번에는 엉덩이도 만지고!”

“황녀 입에서 그런 단어가 막 나오니까 좀 꼴리네.”

“꺄아악! 더 커졌어! 이거 뭐예요!”

그러게 누가 꼴리게 만들래?

아이리스는 자신의 하복부를 쿡쿡 찌르는 물건의 크기에 경악한 듯 했다. 어느새 발버둥 치는 것도 멈추고 입을 벌리곤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 안 돼요. 지금은. 알잖아요….”

“뭘? 뭐가 지금 안 되는데?”

“이….”

아이리스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답답해 미치겠단 얼굴을 지으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잔뜩 붉어진 얼굴이다.

그만 놀려야겠다. 더 했다간, 정말로 저질러 버릴지도 모르고.

내가.

무엇보다, 슬슬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이리스.”

“…왜요?”

“네게 소개 받고 싶은 사람이 있어.”

“소개요…?”

고개를 갸웃 하는 아이리스. 나는 아이리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살갗의 촉감이 내 손가락에 감겼다. “으응─.” 기분 좋은 듯 아이리스가 길게 콧소리를 냈다.

“리하르트를 소개시켜줘.”

“…리하르트 오라버, 음, 리하르트…. 뭐라구 불러요?”

리하르트 아르카디아.

클라우디우스 2세의 둘째 아들이자, 훗날 아이리스와 에드윈 사이의 내전에서 끝까지 아이리스의 곁을 지켰던 충신.

스스로 황제가 되기 보단, 보다 올바른 사람이 황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막내 동생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가 바로 리하르트다.

나는 리하르트가 지금 상황에 딱 알맞은 인재라고 생각했다. 애런과 에드윈을 저격하는 저격수로.

아이리스와 혼약 얘기가 나오곤 있으나, 어디까지나 외부인인 내가 황가의 일에 공식적으로 참견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어엿한 황실의 어른 중 한 명인 리하르트는, 평소부터 성실한 노력파이자 우직한 성품 덕에 인기가 많았다. 우직하게 성실히 노력하는 모습만으로 뭇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내다니, 처세술로만 살아남은 애런과는 참으로 대조적이군.

“오빠. 다른 생각하지 말구 답해줄래요?”

“아, 응. 뭐라고?”

“뭐라고 불러야 하냐구요. 리하르트 오라버…를.”

“아.”

내가 나 말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었지 참.

귀엽게도 내가 한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아이리스에게 기특하다는 듯 엉덩이를 가볍게 팡팡 때려줬다.

“꺄악!”

손에 착 감기는 게 아주 좋았다. 다만 아이리스가 펄쩍 뛰면서, 내 가슴팍을 마구 퍽퍽 때려댔기 때문에, 엉덩이 팡팡은 채 다섯 번을 넘기지 못했다.

아쉽게도.

“뭐하는거예요진짜오빠완전변태같아요왜엉덩이를자꾸때려요!”

멱살을 잡혀서는, 탈탈 흔들린다. 으앙, 하고 울상 짓는 아이리스를 보고 있자면, 그만 괴롭히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만 장난을 치고 만다.

이건 괴롭히는 맛이 좋은 아이리스의 잘못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한텐 차가운 얼굴 하고 말은 상냥하게 하면서도 은근 철벽 치는 “아이리스가 나한테만 울상도 짓고 멱살도 잡고 부끄러워 한다는데 어떻게 참아 그걸.”

“그런건속으로말해!!”

“아. 입으로 말했나?”

아무튼.

“소개 좀 시켜주겠니?”

“…오빠 원래 이런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싫어요?”

“좋은데요….”

그래도 싫다고는 못하겠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린다.

“…그래서. 뭐라고 불러야 하냐구요.”

“리하르트…, 리하르트 오라버니까지는 봐줄까?”

“으응…. 그치만 오빠가.”

“나중에 나 여보라고 불러주면 되지 대신.”

“히윽.”

딸꾹질 한다.

내 말에 깜짝 놀라서는, 히끅, 히끅 하며 딸꾹질을 하다, 자기 가슴팍을 콩콩 두드린다.

“으그그.”

와.

방금 엄청난 거 봤다. 가슴을 손으로 콩콩 하는데 왜 출렁출렁 하는 효과음이 나는 것 같을까. 저 정도면 누님이랑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정도인가.

일단 데이지보다 약간 컸다.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큰 게 크리스티나와 누님이고, 그 다음이 데이지와 아이리스인가.

저기 한 없이 밑바닥에서, 꼴찌 경쟁조차 못 한 채 압도적 꼴찌인 누나가 보면 이를 갈겠군.

콩콩.

출렁출렁….

“무, 뭘, 히끅, 계속 봐요. 변태야. 히윽.”

아. 잠깐 정신을 놓고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보니까 진정하려면 좀 걸릴 거 같은데. 나는 말을 마저 잇기로 했다.

“아님 이름으로만 불러도 되고.”

“흐윽, 누구, 누구를, 히끅. 누구를요?”

“리하르트를.”

“어,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러긴.

“네가 황제가 되면, 안 될 게 뭐 있어.”

“히끅.”

“아직은 아니어도, 미래에 그렇게 될 거라면, 리하르트한테 미리 충성 서약을 받을 수도 있는거고.”

“자, 잠깐.”

한참 딸꾹질을 해대던 아이리스가, 겨우 진정이 됐는지 숨을 할딱이며 나를 멈췄다. 그리곤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제, 제가 뭘 해요? 뭘 받아요?”

“다음 황제는 아이리스라고, 저번에 말해줬잖아.”

아이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농담 아니었어요?”

“왜 농담이라고 생각해?”

아이리스가 눈동자를 굴렸다. 내 눈치를 살피듯 입술을 오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멋진 말로 유혹하려는 건 줄 알았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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