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42화 (142/199)

〈 142화 〉 서열전 (1)

* * *

대륙의 북부는, 제국의 북부와 같다.

그 말은 즉 제국과 대륙이 하나임을 뜻했다.

그리고 그 드넓은 북부의 맹주.

그 남자의 이름을, 악마─ 로노베는 증오스럽다는 듯 읊었다.

「니콜라이…!」

니콜라이 크로이체프.

가히 대륙 북부의 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남자.

대륙에서 유이한, 그랜드 마스터.

그가 바로 북부의 대공이며, 검성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흠.”

저를 증오하는 악마의 목소리에도 니콜라이는 무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서걱! 번뜩이는 빛과 함께, 악마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크아아…!」

“참으로 끈질긴 것들이로다.”

그리고, 떨어져 나간 목이 다시 재생해, 그를 향해 수십 가지의 흑마도를 쏟아붓는 비현실적이고도 경악스러운 상황에서도, 니콜라이는 턱을 한 번 쓰다듬었다.

“아무리 베어도 베어도 죽지를 않으니 원.”

그렇게 말하곤, 무심하게 발을 내딛는다. 산책이라도 나가는 듯 느긋한 자세로, 한 손에는 검을 든 채.

챙!

마치 유리 깨지는 소리.

가벼운 발걸음 한 번. 그것만으로도, 악마가 전력을 쏟아낸 수십 가지의 마법진들이 깨져버리고 만다.

「크으으. 네놈. 하등한 인간놈!」

결국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한 악마가 이를 갈면서, 증오와 원망을 입 밖으로 뱉어내면, 니콜라이─ 늙은 검성은 히죽 웃는다.

“하등한 인간에게 상처 하나 주지 못하는 고등 생물은 말이 되고?”

「죽여버리겠다─!」

일순.

분을 참지 못 하고 덤벼드는 악마의 몸이, 허공에 굳는다.

“음.”

그를 올려다 보는 늙은 검성 역시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그럼에도.

「저, 주, 한….」

툭.

툭, 툭.

하나씩, 하나씩. 악마의 몸이 쪼개져,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지는 고깃덩이들을 따라 시선을 내린 니콜라이가, 턱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크로이체프 류(?)─.”

애초에 딱히 전해지는 검술 따위 없이, 핏줄로 전해지는 검술의 재능이 이끄는대로 각자의 검로를 이어 개인에게 최적화 된 검술을 만들어내는 크로이체프의 전통에 따라.

크로이체프 류(?)는 없는 유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이것은, 어디까지나 눈 앞의 악마를 단순히 조롱하기 위함.

그것을 알고 있는지 조각난 악마의 몸이 천천히 달라붙기 시작했다.

무슨 이름이 좋을까.

꿈틀거리며, 다시 재생을 시작하는 악마를 내려다보며, 검성은 고민했다.

“흠.”

그래.

이게 좋겠군.

「죽, 인다──!!」

──마음대로 베기.

*

“요즘 들어 악마가 어디선가 자꾸 나타나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단 말이지.”

벽을 넘는다.

스스로를 ‘완성’ 시켜서, 세계의 흐름을 뒤트는 초인을 일컬어, ‘마스터’의 경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한 번.

‘자기완성’을 뛰어넘어, 그릇을 부수고, 세계의 법칙에 간섭하며, ‘초월’한 이들을 부르길.

‘그랜드 마스터’라고 부른다.

악마를 죽이는 데에 가장 적합한 것은 신성력이다.

그 중에서도 신의 축복을 받은 ‘신물’이 가장 효과적이다. 용사의 무구 같은 것들.

하지만 꼭 신성력이 아니더라도, 악마를 죽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그랜드 마스터’가, 세계의 흐름과 법칙을 뒤틀어, 악마의 불사성을 지워버리는 수 같은 것.

그렇기에 대륙에 유이한, 다른 그랜드 마스터인 스칼렛이 모종의 이유로 그랜드가 아니라 여타 마스터와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감안했을 때 대륙 유일의 그랜드 마스터인 니콜라이 대공은 지금──.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것들. 자꾸 어디서 기어나오는 게야?”

북부 곳곳에서 나타나는 악마를 전담해 사냥하는 중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특유의 초월적인 기감으로 악마가 소환 될 조짐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데다, 단순히 신성력을 다루는 이들이 순수한 전투력에서 악마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 니콜라이 이상으로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니콜라이 역시 자신의 영토라고 할 수 있는 북부에 악마 같은 게 소환 돼서 도시 몇 개씩 초토화 시키는 것보단, 자신의 기감에 걸리자마자 날 듯이 공간을 접어 달려가 모가지를 썰어버리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 못해 악마를 사냥하곤 있다만.

“스칼렛 그놈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북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약을 짊어진 그와 달리 이동에 제한이 없을 그놈이 조용하단 것이, 늙은 검성에게는 못내 불만이었다.

다 늙은데다 끝끝내 그랜드의 벽을 넘지 못한 중앙의 황제에겐 애초에 기대조차 않았고, 이미 골로 가 버린 마탑의 아크메이지가 남기고 간 후계자는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조차 오르지 못한 상황.

마음에는 안 드는 놈이지만 그래도 믿을만 한 건 대륙 전체를 제집 드나들듯 오가던 체페슈의 가주놈 뿐이거늘.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로는 조용하다 못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나는 잘 지내고 있을런지나 모르겠구만….”

매일 같이 체페슈 체페슈 노래를 부르던 딸이 걱정된 늙은 검성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러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그 놈을 남편감이랍시고 데려오진 않겠지.

*

니콜라이.

북부의 맹주, 설원의 왕, 검성.

황실의 오랜 벗이자, 체페슈의 악우.

그런 그가, 정신을 차려 보니 웬 웨딩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여기는…?”

영문을 몰라 두리번 거리던 니콜라이의 눈에, 벽에 걸린 명단이 들어왔다.

신랑.

스칼렛 체페슈.

“허어…. 그 망나니 놈이…!”

결혼을 한단 말인가! 소스라치게 놀란 듯, 아니면 새삼 그놈이 결혼을 하긴 하는구나 하는, 오랜 악우의 경사에 기뻐하는 듯, 기기묘묘하게 뒤섞인 한숨을 푹 내쉰 니콜라이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어디. 그 놈과 결혼하는 상대가 누군지 한 번 볼까.

신부.

레티시아 체페슈.

“뭬라…?”

신랑과 신부의 성이 같았다.

아니. 그야 결혼하고 나면 부인의 성이 남편을 따라가는 게 이상할 것은 없을테지만.

그 이전에.

결혼하기도 전에 이미 같은 성이던 사이인 것 같은데.

“세상이 말세구만, 말세야….”

근친혼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도 경우가 경우다. 이 경우에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려 체페슈가 아닌가.

게다가 친척지간도 아니고 친남매.

“내가 뭐라 하겠느냐만….”

그래도 오랜 악우의 선택.

니콜라이는 순순히 축하해주기로 했다.

흡혈귀의 세계에서는, 의외로 근친혼이 드문 일이 아닌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인간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음?”

그렇게 생각한 니콜라이의 눈에, 신부 명단이 더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신부 명단.

레티시아 체페슈.

그 밑으로.

아이리스 아르카디아.

“허어어어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체페슈와 황가의 결합? 대륙이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니콜라이로서는 이걸 이제야 자신이 알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이놈이…?”

아이리스라면, 그놈과 자신의 친구인, 황제의 어린 막내딸이 아닌가.

니콜라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뭐.

두 사람이 좋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게지….

그 밑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데이지 블랙우드.

블랙우드의 여식은 대대로 체페슈를 섬겨왔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루나 테일러.

크리스티나 헤일리.

테일러 가(家)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루나 테일러라고 하면 니콜라이 역시 들어본 적 있었다.

아무래도 대륙 전체적으로 간간이 언급되던 어린 소녀 영웅이었으니까.

그놈, 스칼렛과 함께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고 다닌 것은 유명했다.

거기에 헤일리 가(家).

한때 이름을 날리던 변경백의 가문이었기에, 니콜라이 역시 그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외에 아는 것은 없지만.

그리고 마침내.

….

“스칼레에엣…!”

가장 밑에 적힌, 익숙한 이름.

안나 크로이체프.

대공의 멋들어지게 자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 이름을 본 니콜라이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이 빌어먹을 딸도둑놈을 죽여버리겠다!

그렇게 식장으로 달려간 니콜라이는, 보고 말았다.

“아, 아버지…. 아니, 아빠….”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나는 이 결혼 반대다!”

벌떡!

침대에서 일어난 니콜라이가 외쳤다. 아주 쩌렁쩌렁 울려서, 대공가의 저택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그랜드 마스터의 심후한 오러가, 그 깊은 마음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외침에 뒤섞여 벌어진 헤프닝이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전하!”

“…아, 아아. 괜찮다. 돌아가게….”

쩌렁쩌렁 울리는 대공의 목소리에 달려온 충성스런 가신들을 돌려보낸 니콜라이가, 안면을 덮었다.

“…꾸, 꿈이었나.”

요즘 피곤한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이리라. 당장 오늘만 해도 악마를 두 마리나 썰어버리지 않았나. 옛적에 스칼렛 그놈이 분명 악마는 72마리 뿐이라고 그랬거늘, 자신이 최근 들어 잡아 소멸시킨 악마만 벌써 열두 마리나 되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왠지 꿈에서 본대로 될 것 같아 두려운 이 마음은 뭔지.

늙은 검성은 알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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