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결승 (2)
* * *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오스카 샬론. 노스페라투의 끄나풀. 일부러 놈을 내버려 둔 것 역시, 노스페라투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다만.
‘그게 지금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서열전이 진행 된 겨우 며칠. 그 사이 뭔가를 저지르기엔, 놈도, 그리고 노스페라투도 준비가 모자를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체페슈의 가주를 노리고 수작을 부리는 데에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놈들이 더 잘 알테니까.
헌데.
“꺄아악!”
“무슨 일이야 이게!”
“고, 공작께서 지켜주신 건가?”
폭음. 날리는 불꽃. 연기…. 빠르게 그림자를 움직여 관중석까지 감싸는 것으로 다친 인원은 없으나,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채 술렁였다.
‘겨우 이것 뿐일 리가 없는데.’
겨우 폭탄 테러 따위로 나를 노렸을 리는 없다. 인명 피해를 내는 것으로 나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게 목표였다면 모르겠지만, 그놈들이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할 것 같지도 않았다.
“들어라.”
쿵. 진각을 밟아 일으킨 진동에 술렁이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묵묵하게 내 그림자를 도와 마법으로 사람들을 지키던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마탑에서 왔나.”
“그렇습니다.”
“마탑이 아닌, 나의 벗 프리드리히의 여식에게, 이곳의 뒷수습을 맡기고 싶다만.”
“…이미 알고 계셨군요.”
움찔. 로브를 푹 뒤집어 쓴 에일린 프리드리히가, 로브의 모자를 뒤로 넘기곤 내게 목례했다.
“마탑이 나서 현장을 수습하겠나이다.”
“그래.”
마탑의 인재들이라면 이곳의 뒷처리 정도는 손쉬울 터. 마탑 쪽에서 공로를 나눠가지겠으나, 이제 와 그런 사소한 공적 따위에 관심이 있진 않았다.
“나는 소요 사태의 범인을 찾으러 가겠다.”
“무운을.”
내게 경의를 표하는 마법사들과, 자발적으로 나서 그들을 돕기로 한 생도들의 모습을 확인한 후 자리를 뜨려던 찰나.
“…전하!”
폭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감쌌던 그림자 속에서 빠져나온 안나가 외쳤다.
“저도, 저도 데려가주세요!”
물끄러미 내 시선이 닿자 안나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겁을 집어먹었다기보단, 어떻게 말해야 나를 설득할 수 있을 지 고민하는 듯 했다.
“잘… 싸울 수 있어요. 전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확실히.
안나의 몸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우선 내가 어디까지나 그녀가 방어할 수 있을 범위에서만 공격하기도 했고, 빠르게 성장 중인 안나의 감각이 기이할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는 조금 지친 듯 했으나, 어쨌든 안나 정도의 실력자라면 어지간하면 도움이 될 터였다.
“여기 있어.”
반대로. 도움이 되긴 할테지만, 없어도 상관 없는 수준이기도 했다. 그녀 한 사람의 분전의 몫이 판세를 뒤집지는 못할테니.
게다가 놈들이 나를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해뒀을지 모르니, 안나를 데려갈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여기 남아있으라고 했더니, 안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싫어요!”
반항까지.
아니, 반항이라고 표현하니 내가 무척 나이 먹은 꼰대가 된 것 같으니 조금 정정하자면, 그러니까….
거부.
그래. 아무튼 안나가 거부했다.
“여기 얌전히 기다리면서, 마탑의 사람들을 도와. 그 편이 내게 더 도움 된다.”
“그건.”
안나가 눈을 내리깔았다.
조금 마음이 아팠지만, 정말 안나가 여기 남아주는 쪽이 내게는 좋았다.
일단 마탑의 마법사들, 그중에서도 차기 마탑주가 남아 있긴 하나, 내가 오스카를 족치러 간 사이 놈들이 여기 뭘 풀어버릴 지 모를 일이다.
만일 악마 중 하나가 여기 강림해버린다면?
숙주도 없이, 자신의 신체 말단만을 분신 삼아 보낸 거라면 어려울 것 없다. 에일린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을테니.
하지만 만약의 경우. 이미 본체를 강림시키는 데에 성공한 악마가 온다면?
에일린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리라. 안나까지 가세한다는 전제 하에, 악마 한 개체 정도가 상대할 만 했다.
그 경우도 지금 비약적으로 경지를 끌어올린 안나의 기준에서다. 어제까지의, 그 이전의 안나였다면, 에일린과 안나 두 사람이 마탑의 마법사들, 그리고 아카데미의 생도들과 힘을 합쳐도 악마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서열전의 관람을 위해 아카데미에 방문한 귀족 중, 무가의 주인, 이름 난 기사가 없진 않으나.
애초에 ‘악마종’에 대해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안나와 에일린 뿐.
아이리스의 「용사」, 안나의 「검성」과 에일린의 「대마도사」, 이 셋이 대표적으로 악마의 마기를 뚫고서 타격을 줄 수 있는 특성이다.
그 외에도 몇몇 특성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는 안 보였다.
‘두 사람이라면 쓰러뜨릴 수는…. 가능성은 반반 정도.’
현재 안나의 경지를 가늠해봤을 때. 악마 한 개체를 상대할 때 쓰러뜨릴 수 있을 확률은 절반에 조금 못 미칠 정도.
‘그 정도면 누님이 와서 가세할 때까지 버틸 시간은 충분하겠어.’
사실 상위 서열의 악마. 그러니까, 20위권 안쪽의 악마라면 아이리스와 누님이 오더라도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하지만 반대로, 그 정도로 강력한 악마가 강림할 확률은 제로였다. 이미 마왕이 강림했다가 실패한 이후 제대로 된 씨앗을 뿌리지 못했을테니.
한 마디로 급조해낸 테러다. 아마도 나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유인하기 위한 도발, 그 정도의 수준.
노스페라투의 놈들도 알고 있을 거다. 노스페라투의 영지. 자신들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라면,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쯤.
그러니 이건 오스카라는 말단을 사신으로 보내, 나를 그들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도발이다.
‘이 정도쯤은 문제 없지? 그래도 좀 빡칠 것 같은데, 꼬우면 이리 오든가.’
딱 그 정도.
나는 노스페라투에 볼일이 있다. 놈들이 숨겨두고 있을 게 많았다. 여신이 알려준 것도 있고, 잃어버린 기억 속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데이지의 복수도 남아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급적 노스페라투와의 항쟁을 개인의, 그리고 가문의 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문이란, 제국의 공작 체페슈가 아니라, 밤을 지배하는 일각인 체페슈를 뜻했다.
하지만 노스페라투가 일선을 넘어, 나를 분노케 한다면, 나는 나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 놈들을 짓밟으리라.
‘예를 들어. 안나가 심하게 다친다거나.’
아까의 폭발.
내가 그림자로 감싸지 않았더라도, 안나가 크게 다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처는 입었을테지만, 치명상은 아닌 정도.
나는 혀를 찼다.
놈들의 의도대로, 나는 분노하면서도, 노스페라투를 형체도 남기지 않고 갈아버리는 대신 놈들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들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놈들도 그걸 알아.’
영악한 것들. 내가 자신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점을 알고는, 미묘하게 선을 타고 있다.
의도대로 행동해주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함을 억누르곤, 시무룩한 기색이 된 안나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부탁해.”
“…알겠어요.”
그래도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인지, 새침하게 대답하곤 입술을 삐죽 내민다. 부탁이라고 말하니 꽤 기분이 좋아보이는데.
하여튼 감정이 이렇게 훤히 보여서야.
…조금 난감했다. 이쯤 되면 받아줘야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다른 여자들, 특히 누님과 아이리스의 눈총이 떠올랐다.
누나? 누나는 센 척 욕만 할 줄 아는 호구라서 괜찮다. 밤에 좀 어루만져주면 잉잉 울기나 하겠지.
‘그것도 일단 일부터 마무리하고 나서.’
나는 그림자 속으로 침잠했다.
*
오스카 샬론.
그는 샬론 가의 차남이었다. 장남이 자질이 없을 경우 때에 따라 차남이 가문을 이어 받는 후계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 따라, 오스카는 가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바보 같은 형님보단 내가 낫지’
흡혈귀는 제국 내 몇 안 되는 이종족 출신의 귀족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종족이다.
대륙의 밤을 지배하는 세 가문이 모두 흡혈귀의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흡혈귀가 그만큼 우월한 종족이기에 흡혈귀가 밤을 지배하는 종족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만큼 흡혈귀는 대우받는다. 인간의 제국이나, 격 낮은 잡것이 아닌 제대로 된 혈통의 흡혈귀는 인간 귀족 못지 않은, 혹은 그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우리의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스카의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들의 뿌리란 노스페라투를 뜻했다. 밤을 지배하는 세 가문 중 가장 많은 권속을 거느린 노스페라투다.
그들의 핏줄 아래 거느린 가문만 수백에, 그 중에서 제국의 귀족, 혹은 귀족 못지 않은 성세를 누리는 이들이 수십에 달했다.
‘노스페라투.’
그것은 샬론 가에 있어 경외와 두려움을 뜻했다.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피를 통해 전해지는 굴종의 각인이었다.
오스카의 아버지는 언제나 노스페라투에 복종해야 하며, 자신들의 주인이 바란다면 언제든 제국을 떠나 그들의 부름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젠장.’
그래서 오스카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의 아버지는 샬론 가가 제국의 귀족이 되기 전부터 살아왔으나, 오스카는 태어나면서부터 제국의 귀족이었다.
인간의 제국은 실로 대단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제국의 귀족으로 누려온 온갖 권위와 편의가 오스카의 마음을 붙잡은 것이다.
‘나는 귀족인데. 어째서 누구를 섬겨야 한단 말인가?’
노스페라투. 그 두려운 이름. 오스카는 그것이 증오스러웠다. 그들이 부르면 귀족의 이름을 내려놓고 한낱 흡혈귀 중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정작 그러는 오스카조차 인간 따위보다 흡혈귀가 훨씬 월등하며, 제국의 귀족이면서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는 모순 덩어리였지만, 그것은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노스페라투의 맹견이 찾아왔다.
‘당신의 바람을 이뤄주겠다.’
‘시키는대로만 하면, 샬론 가를 노스페라투의 주박에서 풀어주겠다.’
‘고분고분 우리를 떠받들기만 하던 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홀로 의지를 표명할 수 있는 젊은 핏줄이 나타나다니. 그대야말로 샬론의 주인이 되어 마땅하노라.’
오스카는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 말 속에 담긴 수없이 많은 모순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홀린 듯이. 체페슈의 가주를 도발하라는 말에는 조금, 아니 많이 걱정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자식의 독립을 축하하지 않을 부모가 어딨겠나.”
웃으며 그리 말한 노스페라투의 맹견의 말이 귓가에 멤돌았다.
그런가.
오스카는 기뻤다. 자신이 가주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걱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오히려 즐거운 미래부터 떠올랐다. 노스페라투가 도와준다면 가주가 되는 것이 어렵지도 않으리라.
게다가 자신들을 혈통의 주박에서 풀어준다고도 했으니, 이제 그들은 천년만년 제국의 귀족으로써 그 권위를 누리며 살리라.
정말. 모든 게 그의 뜻대로 되고 있었다.
정말 모든 게──.
콰앙─!
“그새 단단히 홀렸군.”
삐이이──.
귓가가 울렸다. 잘 들리지 않았다.
오스카 샬론.
희망찬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던 그는, 폭음과 함께 튕겨나간 자신의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이래 봬도 혈통 있는 가문의 흡혈귀였다. 순혈의 흡혈귀는 터져버린 고막과, 망가진 육신을 빠르게 재생시켰다.
순간 가물가물하던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어떤 놈이….”
신경질을 내던 그가 입을 다물었다.
흡혈귀 특유의 붉은 눈동자가, 한층 더 불길하게 빛나는 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스칼렛 체페슈.
그제야 오스카는 깨달았다.
내가 뭘 건든 거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