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결승 (3)
* * *
오스카는 체념한 얼굴이었다. 자신의 발악이 아무 소용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듯, 허탈하게 웃었다.
“흐, 흐하하. 오셨습니까 전하…? 많이 노하신 모양입니다, 저 같은 놈을 벌하기 위해 친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놈을 응시했을 뿐.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놈의 동공이 떨렸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사람을 굴복시킨다. 그 근간이 되는 감정으론 여럿이 있겠으나, 놈이 느끼는 것은 명백히 공포이리라.
“…죽여주십시오.”
긴 침묵 속에서 놈이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단순히, 이제 와 자신의 죄를 뉘우쳤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가,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한 하찮은 핏줄의 혈귀를 어떻게 대할 지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컸을 뿐.
“제발, 제발…. 묻는 것에 모두 순순히 답하겠습니다…. 그러니 편히 죽게라도 해주십시오….”
생을 포기한 자의 눈동자는 아니었다. 그 눈동자의 저변에 삶을 갈구하는 욕구가 깃들어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잔혹하고, 죽는 것보다 못한 꼴로 삶을 연명하기보단, 차라리 편하게 죽고 싶어 한다.
그 공포의 기저는 어디에서 오는가.
“.”
“허어억….”
놈은 드라쿨레아의 공포를 모른다.
놈은 체페슈의 공포를 모른다.
놈이 아는 것은 오직, 노스페라투의 그것 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세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데에는.
놈의 증오스런 부모의 이름을 담자, 그의 몸뚱이가 벌벌 떨렸다. 이대로 살아나가도 그의 육신은 노스페라투의 손에 정성스럽게 해체당할 것이다. 성국의 ‘정화’ 못지 않은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터.
“하, 하하, 하하하…!”
오스카가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가만히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놈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내게, 편안하게 죽는 것 말고는. 그마저도 내게 자비를 구걸해야 했다.
한평생 제국의 귀족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참으로 덧없는 최후이겠으나…. 어쩌겠는가. 그의 한계는 결국 여기까지인 것을.
“편안하게. 말이지.”
“…예! 예, 예에…. 전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그놈들, 그놈드으으그으윽…!”
말하다 말고 놈이 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내가 손을 쓴 것이 아니라, 함부로 ‘부모’를 욕 보이려 한 놈의 몸뚱이 속 핏줄이 스스로를 자해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 되는 흡혈귀가 내리는 피의 주박.
“빌어, 먹을, …!”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들었다.”
목을 부여잡은 채 피눈물을 흘리던 오스카가 고개를 들었다. 피의 폭주로 내장이 진탕이 되었을텐데, 그 고통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얼굴이 환해졌다.
“그, 그럼!”
“과연 네가 가진 정보가 내 성에 찰 지는 잘 모르겠군.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내용일지는,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
“…!”
희망을 찾은 듯 하던 놈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내 말을 부정할 수도 없었는지, 순식간에 표정을 펴곤, 비굴하게 웃어댔다.
“무, 무엇이든 물어보시죠…!”
“놈들이 네게 무엇을 시켰나.”
“후우우, 후우…. 전하께선 의심이 많아 어차피 저를 믿지 않을테니, 차라리 아예 의심을 사 전하의 신경을 돌리라고… 했었습니다….”
“그게 될 거라 생각했나?”
“일단 크게 터뜨려두면, 주변을 수습하느라, 저를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전하는 무척 오만하시기에, 얼마든지 저를 찾을 수 있으니 급한 일부터 처리하려 할 거라고 했습니다….”
놈이 몸을 추스리곤, 뒤틀린 내장 조각을 핏물과 함께 바닥에 뱉으며 대답했다.
나는 픽 웃었다.
“그럼 놈들의 말대로, 네가 어딜 가더라도 내가 쉽게 찾아낼 거라는 걱정은 않았나?”
“흐, 흐흐. 놈들이 괜찮을 거라고 했지요. 안 그랬다면 제가 이런, 이런 미친 짓을 했겠습니까…?”
믿는 배가 있다 이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는 대책? 나는 그것이 노스페라투가 놈을 속인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놈들이 나를 과소평가 했던가.
아마도 둘 다이겠지. 어차피 버림패로 쓰고 버릴 모양이었으니. 놈이 속든, 아니면 내가 당하든, 상관 없다고 여겼으리라.
“그런가. 놈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모릅니다. 제가 그걸 어찌── 크아아악!”
콰직!
놈의 어깨를 잡곤 팔을 뽑았다. 압도적인 능력의 차이. 마력조차 쓰지 않은 순수한 신체 능력임에도, 풀뿌리를 잡아 뽑듯 손쉽게 팔 한짝을 뜯어버리자, 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편안히 죽고 싶다 하지 않았나?”
“크윽, 크흐으…. 죄송, 합니다….”
“그래. 다시 잘 생각해보도록.”
놈의 팔을 붙여주자, 어깨가 잘게 떨렸다. 성에 차지 않으면, 노스페라투 못지 않게 처절하게 내 손에 잔혹히 해체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눈에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정보를 뽑아낼 생각은 없었으나, 굳이 오해라고 정정해주지도 않기로 했다.
뭐. 정 안 되면, 누님에게 던져줄 수도 있고. 누님의 특성창에 버젓이 존재하는 「고문기술자(B)」를 떠올렸다. 분명 전에 확인했을 때는 C랭크였는데.
‘이놈 정도의 재생력이면, A랭크까진 오를까.’
좀 꺼림칙한 특성이긴 하나, 아예 저주나 다름 없는 특성이 아닌 이상 고랭크의 특성이 생기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었다.
‘편안하게 보내준다고는 했지만. 굳이 지킬 필요도 없고.’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명예 실추? 보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누가 봤다 해도 신경쓰지 않을 거였다. 그런 것보단 누님이 좀 더 중요했다.
“좋아하려나.”
“예? 뭐, 뭘.”
“아니. 됐다. 머리나 좀 더 굴려보도록.”
“예, 예!”
순간 혼잣말로 튀어나와버렸나. 아무튼 누님이 기뻐했으면 좋겠다. 고문용 몸뚱이를 제공받아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과연 이게 맞는 일인가 싶긴 하지만.
‘누나를 위해 준비했구나? 기뻐!’
아무튼 누님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된 일이다.
이미 자신의 처우가 정해진 것도 모른 채, 오스카가 외쳤다.
“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말해봐라.”
“진정 밤을 지배하는 가문은 노스페라투가 걸맞으니, 성가신 체페슈는 치워버려야 한다고….”
“쯧.”
“더, 더 있습니다!”
내가 혀를 차며 그림자를 일으키자 기겁한다. 그러게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할 것이지.
“드라쿨레아! 드라쿨레아의 영지가 쑥대밭이 되고, 그들의 혈족과 닿아있던 연락망이 뚝 끊긴 것이, 모두 체페슈의 탓일 거라고…! 무, 물론 저는 믿지 않습니다! 왜 고귀하고 고고한 체페슈가 같은 세 가문을 그렇게…!”
“똑똑한데.”
“예?!”
기겁한다. 그림자로 발목과 목을 묶어 바닥에 처박았다.
“크아악!”
“시끄럽다.”
“크윽….”
그래도 조용히 하라니 조용히 하는군.
그나저나, 드라쿨레아의 소식이 노스페라투에 전해졌는가.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드라쿨레아의 멸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 사이 나를 습격한 다음, 자신들의 영역으로 노골적으로 유인하는 계획을 짠 뒤 준비를 끝마친다?
있을 수 없는 일.
분명 드라쿨레아의 건은 방아쇠가 됐을 뿐, 이미 진즉부터 준비는 해오고 있던 것이리라.
딱히 상관은 없었다.
놈들이 내 생각보다 준비가 철저할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해야 할 일.
나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놈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아는 건 많이 없군.”
“크으윽! 다, 다른 걸, 다른 걸 물어봐주십시오…!”
“노스페라투의 성. 그 내부가 어떤지 알고 있나?”
“…그, 그게.”
알 리가 없지. 순수한 자신들의 혈족이 아닌 이상 영지 내에도 잘 들여주지 않는, 폐쇄적인 놈들이다. 겨우 이런 말단 중의 말단에게 허락 되지 않은 영역.
“그럼 끝이다.”
“자, 잠깐…!”
꽈악.
다시 한 번 손을 뻗어서는, 내 발목을 붙잡고는 애원하듯 매달렸다.
“당신도…! 당신도! 알 거 아냐! 그 자식들이…! ─케흑!”
울컥! 놈의 입이 핏물을 뿜었다. 두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놈의 몸 속에 흐르는 피가 다시 한 번, 주인을 거스른 괘씸한 육체를 벌한 것이다.
“흐.”
한참을 고통에 뒹굴던 그가, 조소를 흘렸다.
“…크흐, 크흐흐, 그렇지. 당신도 똑같은, 그놈들이랑 똑같은 놈들이었지…!”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내 바짓단을 붙잡은 채 울분을 토하는 모습에는 귀기마저 서린 것 같았다.
오스카의 몸에 마기가 서렸다.
마족화의 전조. 곧바로 그림자를 움직여, 골통을 부수려던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녀석의 몸이 크게 부풀었다.
“죽여버리겠다…!”
나는 그림자를 거둬들였다. 부푼 몸뚱이, 기괴할 정도로 비대해진 근육과, 맞지 않는 비율. 마치 에드윈을 보는 듯 했다.
황궁의 버러지.
끝끝내 열등감에 붙들려 익사해버린 천치.
허나, 에드윈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강령인가?”
황실의 핏줄을 타고나, 그 자질 자체는 차치하여도, 명백히 ‘그릇’으로써 그 가치만큼은 명백히 최상급일 에드윈보다도.
마족화 된 오스카의 격이 한층 높다.
아무래도 에드윈보다는 좀 더 마기를 쉬이 받아들여서, ‘악마’와 가까운 격을 이룬 듯 싶다.
순간 악마가 놈의 몸에 강령한 것인가…, 싶었지만.
“보이는가, 이 힘이…!”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저 악마에 근접한, 최상급 마족.
따지자면 체페슈와 노스페라투 수준이 아닐 뿐, 나름 격 높은 핏줄인 듯 하니, 그 자질에 따라 최상급 마족이 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다.
꿈틀….
저 멀리서 느껴지는, 내 몸이 반응하는 강렬한 마기.
“진체는 저쪽인가.”
에일린과 안나에게 맡겨두고 온 곳.
“이제 알았나! 하지만 늦었다! 네놈이 지금 달려간다해도, 도착할 쯤엔 네가 아끼는 이들이 모두 한줌 고깃덩이가 되어있을테니…!”
“그게 다인가.”
“…뭐. …하하! 그렇군? 걱정되지 않는 척, 연기를 하는 거로군?”
두 눈을 끔뻑이면서 그리 말해도.
정말로 별 걱정하고 있지 않은데.
“아무리 내가 이 정도의 힘을 얻어도, 너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발목을 붙잡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안타깝게도. 아니, 사실 별로 안타깝지 않지만. 오스카는 결국 그렇게 증오하고 두려워하던 노스페라투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악마와 계약을 주선해준 것도 아마 노스페라투이겠지.
새로이 얻은 힘에 취해 자신의 상황이 잘 안 보이는 모양이지만. 아마 내가 여기서 살려줘도 녀석에게 남은 미래는 참담할 뿐이다.
놈의 가문도 마찬가지로 노스페라투에게 팽 당하겠지. 내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그들이 샬론 가를 숙청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탐욕과, 잘못된 선택으로 아예 자신의 가문이 몰살 당하다니.
저지른 죄가 있으니 별로 불쌍하진 않지만, 그래도 곱게 죽여주기로 했다.
“하여튼.”
밤의 주인이란 것들이 썩어빠진 싸이코패스 뿐이라니. 마족이야 아예 다른 세계에서 온 침략자라지만.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
“….”
태양신은 괜히 누가 자신을 험담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