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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77화 (177/199)

〈 177화 〉 노스페라투 (3)

* * *

아카데미에서 블랙우드는 그리 멀지 않다. 대륙의 중앙, 수도의 바로 옆에 위치한 아카데미는, 대륙 곳곳과 연결된 전이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제국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출발해, 조금만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면 이미 도착하고도 한참 지났을 터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참이나 지체 돼서, 이제야 막 블랙우드에 다다른 이유는….

“앙, 아아, 우리 한 번만 더 해요. 네에?”

“응, 쭙, 쭈우. 마시써. 조금만 더 주세요….”

이렇게, 하루의 절반 정도는 나와 몸을 섞는 데에 쓰기 위해 달라붙는 두 여자 때문이다.

정확히는 떡치는 데에 반나절, 기절하듯 잠들어 기력을 회복하는 데에 반나절 가량 쓰는 거지만.

물론 내가 받아주지 않으면 됐을테지만.

“하읍, 웅, 쭙, 자지이….”

“하앙…. 앙, 아! 손가락, 굵엇…! 하응!”

분홍색 컬이 들어간 단발 귀 뒤로 넘기며 자지에 봉사하는 데이지나, 내가 박아주지 않자 대신 내 손가락을 이용해 자위하며 허리 흔들며 머리칼 찰랑찰랑 거리는 에일린.

이걸 어떻게 참냐고.

덕분에 잔뜩, 예정보다 며칠은 더 늦었지만 후회는 않는다.

*

“──어서 오십시오,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블랙우드의 저택.

저택의 규모만큼은 체페슈의 영지에도 밀리지 않는 거대한 저택의 정원에 발을 들이자, 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노집사가 정중하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정중하게 목례하는 노집사의 기품에 작게 감탄했다. 체페슈에는 없으니까.

물론 노집사가 보기 드문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이지만.

보통 역사 깊은 귀족가마다 오래도록 가문에 헌신해온 노집사가 한 명씩은 있는 편이다.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노집사는커녕 집사조차 한 명 없는 체페슈가 특이한 것일 뿐.

“제국의 위대한 기둥, 체페슈 공작 전하와…, 마탑의 주인이신 프리드리히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저는 미숙하나마 이곳의 집사장을 맡고 있는 알프레드라고 합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스스로의 이름을 알프레드라고 소개한 늙은 집사가 우리를 저택의 안으로 안내했다.

“…으.”

고향의 집으로 돌아온 데이지가 어쩐지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눈치를 살피고는 있지만. 딱히 뭔갈 무서워 한다기보단 그냥 긴장한 것 같아 일단 놔두기로 했다.

만나기 껄끄러운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이곳입니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만,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음.

확실히, ‘블랙우드’라서 그런가. 영지에 방문한 손님인 우리에게, 영지의 주인을 ‘만날 지’를 물어보다니.

우리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손님’으로써 이곳에 방문한 이상, 제국의 황제가 직접 발걸음 하지 않는 이상 ‘영주를 기다리게 해놓고 만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고를 수 없다.

아니. 설령 황제라도 그런 짓은 쉽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영주의 권위와 체면을 무시하는 행위이니까.

특히 블랙우드는 이름난 무가(?家). 그만큼 여타 가문들보다 가풍이 엄격하고 체면을 중요시할텐데도, 다름 아닌 내가 ‘체페슈’이기에 영주의 체면보다도 내 의사를 우선시 하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제국의 황제에게도 쉽게 보여주지 않을 맹목적인 충성. 그것도 누구보다 오랫동안 가문에 헌신하고 충성했을 집사장이.

에일린은 말로만 들었지 이 정도였냐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집사장을 번갈아 봤다. 그 다음에 눈길 준 상대는 내 뒤에 숨은 데이지. 네 가문은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에, 데이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흥. 당연한 거잖아요.”

“아니. 당연한 건 아니지.”

“…아니, 바로 만나지.”

“예.”

내 뒤에서 투닥거리는 두 여자를 무시하고, 희미하게 웃고 있는 알프레드에게 말했다.

알프레드가 문 앞에 다가서자, 시립하고 있던 메이드가 허리를 숙인 채 문을 당겼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과, 자신은 여기까지라는 듯 문을 연 메이드와 함께 한 걸음 물러선 알프레드.

데이지와 에일린은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늙은 집사의 흐뭇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데이지 아가씨….”

“……윽~!”

꼭 손녀를 예뻐하는 노인의 부드러운 목소리. 정작 그 훈훈한 덕담을 들은 데이지는 어깨를 떨어댔다. 싫은 건 아니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은 기색.

얘 진짜 뭐 저질렀나.

궁금했지만, 물어볼 시간은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쿵. 나 뿐 아니라, 다른 귀족인 에일린과, 자신의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머리를 찧은 중년의 남성이 중후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자네, 지금 뭘 하는.”

“진정한 주군을 뵙습니다. 현 블랙우드의 가주, 로건 블랙우드입니다.”

아.

에일린이 이제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게 느껴진다.

등 뒤에 있는데 훤히 보이네.

*

어찌저찌 오해 아닌 오해를 풀고, 응접실에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까지 진중한 기세로 내게 허리 숙이는 로건은 솔직히 조금 부담이었다.

“…휴우. 블랙우드의 얘기는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정말 이 정도일줄은 몰랐어요.”

안내해준 방에서 에일린이 작게 투덜거렸다. 각자 방을 하나씩 배정해주고, 데이지는 원래 쓰던 방으로 갈 줄 알았는데, 집사장이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잠깐만. 방이 하나 뿐인가?’

‘예? 그건 아닙니다만…. 한 방을 쓰시는 게 세 분에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뭐지,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체페슈의 가주랑 프리드리히의 가주가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냐고 말하는 건 둘째치고, 이 집 딸내미인 데이지까지 자연스럽게 포함시키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 이유마저 ‘체페슈 공작 전하이시니까.’ 같은 게 틀림 없는 게, 애초에 뭐가 이상한지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데이지. 사교계나, 다른 외교의 장에서도 이러니?”

“엣. 아, 아뇨.”

데이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히려 억울하다는 기색까지 느껴졌다.

“우리 가문이 이렇게 나사 빠진 것처럼 구는 건 다 체페슈와 관련이 되어 있을 때 뿐이에요!”

“미치겠네요.”

에일린이 이마를 짚었다. 나도 따라 짚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데이지를 봤다.

“오랜만에 오는 건데, 네 방은 한 번 안 가봐도 돼? 여기서 자는 건 상관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향수도 느낄 겸 구경은 해보고 싶을텐데. 나도 보고 싶어.”

우뚝.

데이지가 굳었다.

“……어, 어떡하죠.”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데이지가 향수를 느끼며 제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침을 삼켰다. 내 소매를 잡곤, 긴장한 듯 살짝 떨었다.

“왜 그래?”

“…그게.”

머뭇거리던 데이지가 눈을 질끈 감고 실토했다. 사실 본가의 차녀인 그녀를, 아무리 체페슈라지만 일개 메이드로 보내는 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출중한 재능을 보이는 그녀를 지지하는 가문 내의 사람들.

딱히 승계권을 놓고 내부의 다툼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하니,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걸, 목숨까지 걸고서 데이지를 지지한 것은 아닐테지만.

어쨌든 가문 내에 끼치는 영향력 정도는 걸렸을 거다.

여자에 둘째이긴 하지만, 그만한 재능이다. 사람들이 절로 매료되어 따를만도 했다.

하지만 데이지는 계승권을 포기했다. 소녀를 따르던 이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주 깔끔하게,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당연히 불만은 터져나왔다.

“…그땐 어렸어요. 관심들도 부담스럽기만 했고…. 제가 수련한 이유는 주인님을 모시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불만들에 대한 데이지의 대응은, 반박과 설득이 아닌 철저한 무시였었다.

그리고.

“그리구 주인님을 만나러 왔어요.”

데이지는 나를 만나러 체페슈에 왔다. 모든 얘기를 끝낸 데이지가 멋쩍게 웃었다. 그녀의 얘기를 모두 들은 나는, 무언가 의아한 점이 하나 걸렸다.

“…어릴 적 얘기라며?”

정작 데이지는 나와 만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게, 철 없던 시절의 얘기인 척 해놓고선 실제론 당장 작년쯤의 얘기나 다름 없단 뜻이다.

“…헤헤.”

이 녀석이.

“1년, 1년밖에 안 된 건 아니에요. 메이드장에게, 메이드의 마음가짐이나, 올바른 몸가짐 같은 걸 배우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몇 년?”

“2년….”

거기서 거기잖아.

남들 앞에서는 일부러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고, 그게 또 원래 얼굴과 잘 어울려서 냉랭해 보여서 그렇지, 실제로는 의외로 허당에 맹탕인 데이지다.

또 그만큼 붙임성도 친화력도 좋은 편이기도 하고. 평소엔 무뚝뚝한 컨셉을 지키느라 사람들과 대화를 잘 안 해서 그렇지.

지금도 에일린과 함께 여행하며, 컨셉을 풀고 나니 무척 친해진 사이 아닌가. 이건 내 아래 같이 깔려 앙앙 울어댔다는 공통점이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긴 했을테지만.

“2년 동안 수습 안 하고 뭐 했어?”

즉, 이게 문제다.

그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난 데이지가, 무뚝뚝한 가면을 쓸 필요도 없는 본인의 집안에서,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던 가신들의 기대를 져버린 다음 아무 수습도 없이 체페슈로 왔을 것 같진 않았다.

아니면, 스스로 수습할 수 없을만큼 일이 커졌거나.

실제론 승계권 다툼이 꽤 격해서, 멋대로 계승권을 포기한 데이지에게 가신들이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거나.

그런 경우라고 해도 나는 데이지의 편일테지만.

어린애가 스스로 바란 것도 아닌데 자기들 마음대로 지지를 바친 것 뿐이니까.

“…그, 그런 게 아니라요!”

다행이게도 그건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아까 만났던 집사장도 거의 손녀 대하는 할아버지 같은 태도였고.

나는 더욱 의아해졌다. 데이지의 성격상, 읍소하는 가신들을 철저하게 무시할 것 같진 않은데.

“…힝. 그게요.”

데이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검지손가락끼리 콕콕 맞대 찌르거나 하며 내 눈치를 살피다가.

“……어차피 우리 가문 사람들도 다 체페슈 빠돌이 빠순이들이거든요? 사실 제가 메이드로 간다는 것도, 자기들 기회 뺏겨서 더 싫어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서.”

그건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본가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는데, 굳이 방계들이 바라는 꿈의 직장을 뺏어버리는…….

“가신들도 기본적으로 ‘체페슈’라고 하면 눈 돌아가는 사람들이라서……. 제가 계승권을 포기해서 싫은 건 싫은 거고, 그거랑 별개로 제가 체페슈로 간다는 걸 되게 부러워 하는 사람도 많았구요. 일단 결정된 시점에서 축하해주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많았지만…….”

우물쭈물 거리던 데이지가, 이윽고 실토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귀찮게 했던 사람들도 좀 골려줄 겸 해서, 출가하는 날에 편지를 써두고 나왔어요…….”

“뭐라고 적었는데?”

데이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말로 꺼내기는 실로 부끄러웠는지, 종이를 가져와 슥슥 글씨를 써서는 내게 내밀었다.

보자.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나는 체페슈령에 간다. 부럽지? 헤헤 너희는 여기 못 오지롱~!! 가주에는 관심 없구 나는 이제 평생 스칼렛님 모시고 살 거다~~!! 꼬우면 나보다 강해졌어야지~!

와.

개얄밉네.

“아, 어지러워요.”

결국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에일린이 두통을 호소했다.

나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어서 눈을 감았다.

진짜 가문 전체가 나서서 내 덕질 하는 거 실화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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