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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79화 (179/199)

〈 179화 〉 노스페라투 (5)

* * *

쿠르릉…….

천둥 소리라고 착각할만큼, 대기를 울리는 굉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진조’의 분노에, 덩달아 주위의 마나가 요동치는 중이었다.

“……송구합니다.”

블랙우드의 가주, 로건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책망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는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으리라. 그러니 블랙우드가, 그 영지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할 수 있던 것일테니.

아마 실제로도 영지에 큰 이상은 없을 거다. 눈에 보일 정도의 피해량이긴 하나, 블랙우드가 조기에 나서 방어함으로써 영지에 큰 타격은 없는 정도.

다만, 그 혼란을 야기한 것이 다름 아닌 ‘노스페라투’라는 게 중요했다.

제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블랙우드는 체페슈에 충성을 맹세하긴 했으나 그와는 별개로 독립적인 영지를 지닌 귀족 가문이다.

오히려 분류하자면 ‘대귀족’의 카테고리에 들어갈만큼 그 위세가 대단한 가문.

하지만 밤의 세력. 혈귀들의 입장에서 블랙우드는, 명백히 체페슈의 지배력 하에 놓인, 체페슈의 권속이나 다름 없다.

그런 블랙우드에, 노스페라투가 침범했다?

몰랐다면 모를까─모르면 그건 그것대로 무능한 거다─알게 된 이상 철저하게 보복하지 않으면 안 됐다.

“얼마나 됐지?”

“본격적으로 밤의 영토에 침입이 시작된 지는 보름 가량 지났습니다. ‘까마귀’의 말로는, 실제로 잠입한 지는 그보다 한 달 정도 더 이전이라는 듯 합니다만.”

블랙우드에 최초로 잠입한 건 한 달 하고도 보름 가량 전이라는 건가.

내가 한창 기억을 찾는 일과 바알의 시련 탓에 전이조차 안 되는 오지를 오다닐 때인가. 우연이라기엔, 노스페라투와 마계의 연결 고리를 포착한 이후다.

“노렸군.”

나와, ‘까마귀’들의 연결이 약해진 틈을 탄 것이다.

까드득. 이가 갈렸다. 나의 분노는 정당했다. 다만 그 대상이 눈 앞의, 블랙우드의 가주로써 스스로의 책임을 다 한 로건을 향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기세를 갈무리 했다.

“내가 없는동안 잘 해주었다. 고생 많았어.”

“…과찬이십니다.”

말론 그렇게 겸손을 빼면서,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니 적잖게 감동한 모양이다.

아무튼.

“밤의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미안하다. 너희는, 우리에게 충성했어도 이쪽이 아닌 제국의 귀족이거늘.”

혈귀들이 보기에 블랙우드는 체페슈의 영역이지만, 나는 블랙우드의 사람들을 권속으로 삼지 않았다.

내 조부가 그러했듯, 피를 내림으로써 강제적인 충성심을 얻어내기보다, 그들이 영혼에서 우러나온 충성심을 바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블랙우드는 체페슈의 충성스러운 신하일지언정, 혈귀로써의 권속은 아닌 것이다.

나는 그 점을 사과했다.

“당치도 않습니다─! 어찌, 저희가 받은 은혜가 있거늘…….”

로건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지만.

원래 이런 건 자기만족이다.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사과한다. 그런 편이, 관계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 수 있으니까.

물론 이건 내 쪽이 갑이고 상대가 을일 경우에 한한다. 내가 을인데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 사과했다간 그냥 호구 잡히는 것 뿐이니까.

그것과는 별개로, 나 역시 오래도록 체페슈에게 충성해온 이들에게, 인간적인 정이라는 게 없지는 않기에.

타산적인 사고를 통해 도출해낸 결과와는 별개로, 밤의 세력들간의 항쟁에 휘말린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것 역시 진짜다.

내 사과를 들은 로건은 처음엔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더니, 이윽고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우, 역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페슈의 주인이라는 칭호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군요.”

아니.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제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수도나 아카데미에서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게다가 뜬금 없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과하게 칭송 받는 기분이라, 되려 내 쪽이 당황스럽다…….

“저희 영지에서 옛날 체페슈 공작께서 대륙 곳곳을 누비며 보여주신 영웅적인 활약을 엮어내면서 처음으로 언급했던 칭호입니다만, 지금은 밤의 종족들 사이에선 무척 공공연하다고 합니다. 뿌듯하군요….”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가 했더니, 너희가 원흉이었냐.

이쯤 되면 체페슈와 관련된 낯간지럽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의 대부분은 블랙우드에서 나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 아마 거의 확실하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역시 근본은 전하의 가문인 ‘체페슈’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근본에 집중한 칭호로는 역시 그것이 제일─.”

태연하게 다른 게 있다고 지껄이고 있다, 이 자식.

“그만. 아무튼 이 일은 내가 해결해볼테니, 더 이상 염려하지 말도록. 지금까지 조사해온 자료는 따로 모아두었나?”

“예. 머물고 계신 방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로건과의 대면은 마무리 지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었는지 벌떡 일어난 두 여자가 맞이해줬다.

“주인님!”

“당신, 백작과의 얘기는 잘 마무리 되었나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와 에일린, 내가 굳이 이 둘을 일행으로 고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다른 여자들이 여전히 아카데미에 발이 묶여 있다는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노스페라투, 혹은 드라쿨레아가 블랙우드에 마수를 뻗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드라쿨레아는 내가 숙청했으니, 당연하게도 노스페라투밖에 남지 않은 상태.

설마 하니 내 눈을 피해 벌써 기어들어왔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녀석들이 침입하기 전 사전에 미리 예방해둘 생각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어쨌든 달라질 건 없다. 피해가 없진 않다는 게 내 마음에 묵직하게 내려앉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는다.

노스페라투를 블랙우드에서 쫓아낸다. 그리고 놈들의 영토로 가, 드라쿨레아에게 했듯, 숙청한다.

그것이 내 계획이다. 데이지와 에일린, 두 사람은 그걸 위한 인선이다.

추가로 한 명 더 합류할 예정이긴 하지만.

‘그거 나지?’

이 얘기를 했을 때, 누나가 그렇게 물었었다만. 아쉽게도 그녀는 아니다.

‘뭐? 야!’

누나가 따지는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다.

괜히 따라올 생각 말고 영지에서 코나와 교감이나 제대로 하고 있으라고 했더니, 엄청나게 삐져서는 “몰라!”라고 소리 쳤었다.

그렇게 말해도 시킨대로 고분고분 하고 있을테지만.

아무튼 데이지는 블랙우드의 차녀다. 블랙우드의 일을 해결하는 데에, 그녀의 존재는 필수에 가깝다.

일단 내가 블랙우드에 방문했단 사실은 불문에 부친 상태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과정에서의 내 동선 역시 철저하게 비밀인만큼, 내가 이곳에 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내 일행과 블랙우드의 사람들 뿐.

블랙우드의 사람들은 모두 가주와 내 ‘까마귀’들이 한 번씩 걸러낸 이들일테니 의심할 필요 없다.

즉, 내 방문 소식에 잠입해있던 노스페라투의 떨거지들이 빠져나가거나, 혹은 숨죽이고 숨어버리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내 정체를 숨기고, 데이지를 표면에 내세운다. 고향에 돌아와, 가주인 아버지로부터 영지 내 사건 해결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은 차녀─ 라는 설정으로.

크게 틀린 사실은 아니지만.

게다가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것도 있고.

정확히는, 언젠가 느꼈던 그녀의 어두운 면모.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주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면 좋을텐데.

단순히 블랙우드에 도사린 놈들의 마수를 끊어내는 수준으로 마무리 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노스페라투까지 숙청해버릴 계획이니, 데이지의 마음 속 어둠을 걷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

에일린은 내가 쓰지 못하는 마법이 필요할 때에 적합한 인재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나는 보통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마법에는 약하다. 아주 간단한, 클린 같은 생활마법이라면 모를까. ‘대마법’이라 불리우는 것은, 지식으론 있어도 직접 사용하기엔 어렵다.

그것은 내 마력 속성의 탓.

조금 무리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것보단 그냥 나와는 달리 현 마법체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에일린을 데리고 오는 편이 더 낫다.

“아직 아크메이지가 아니라 경지 이상의 대마법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뭔가요? 갑자기. 제가 아직 정체되어 있는 데에 뭐 보탠 거라두 있으신가요?”

혼잣말로 중얼거렸더니, 에일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일전에는 나를 꽤 어려워 하는 것 같았는데, 침대 위에서 뒹굴고 난 뒤부터 조금씩 편하게 굴더니 함께 여행길에 올라 매일밤 야외에서 몸 섞으니 이젠 아주 친근하게 군다.

오타쿠적인 면모도 드러내고 말이지. 지금도 가끔 나를 변태적인 눈으로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래, 뭐. 하여튼 내 여자가 나를 어렵게 생각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이긴 하지.

하여튼 아직 정체 중이긴 하지만, 상관 없다. 에일린에게 전투력을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메인은 나 혼자다. 에일린에게 바라는 건 보조역.

“그러니 괜히 나서지 말고, 몸 사리도록.”

“뭘…. 저를 못 미더워 하는 것 같아 조금 짜증나지만, 알겠어요.”

틱틱대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지. 츤데레 귀족 아가씨 같은 느낌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츤데레라면 누나가 있긴 하지만, 누나는 츤데레라기보단 입 걸걸한 욕데레에 가깝다고나 할까.

전형적인 히로인스러운 츤데레가 아니라 진짜 남매 같은 츤데레라고 할까.

어쨌든 친해지고 나니 보이는 에일린의 틱틱거림은 묘한 울림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일단 좀 빼둘까.”

“빼, 빼요? 뭐를 뺀다는. 자, 잠깐만. 아직 한낮인데요? 꺄악! 어, 어딜 만져!”

“좋으시면서 내숭 부리지 말아주실래요, 탑주님? 아니면, 정말 싫으시다면 제가 먼저 해도 되죠?”

“……빨리 해버리세요!”

과연.

틱틱대면서도 순서를 뒤로 미루기는 싫다는 건가.

츤데레 히로인. 공략 되고 나면 그 요소가 귀여워 보이지만, 공략 이전에는 사사건건 방해하고 튕겨대는 귀찮은 캐릭터이다.

하지만 공략 이후에 츤데레가 되는 캐릭터라면?

공략 이전의 번거로움이 없다!

물론 공략 이전의, 거의 적대시와 다름 없던 관계가 서서히 발전하면서 공략을 해내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나도 싫어하지는 않지만.

애초에 나는 이미 하렘을 꾸린 남자가 아닌가.

순애라면 모를까. 이제 와서 튕겨대기만 하는 히로인의 마음을 공략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일린은 실로 훌륭한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지만.

“흣, 뭘 그렇게, 내려보는 거냐구요.”

그래서 더 좋다.

이 온기와 감촉이, 모두 진짜라는 거니까.

“아앙. 주인니임. 어서 빨리, 저도오.”

내가 환생한 몸이 스칼렛이라 다행이다, 정말로.

아니었다면 아마 진즉 복상사라도 하지 않았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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