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노스페라투 (6)
* * *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해야 할 건 정보를 모으기다.
만일 이게 게임 속이고, 내가 스칼렛이 아닌 주인공… 누나 말고, 아무튼 주인공 캐릭터였다면, 정보를 모으는 데에만 시간을 꽤 소모했을 터.
예를 들자면.
영지민들로부터 수소문 하기.
수상해 보이는 곳 직접 조사하기.
술집 같은 곳에 앉아 술꾼들의 얘기를 엿듣기.
정보상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사기.
뭐 그런 것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고?
“여기, 말씀하신 자료들입니다.”
“수고했다. 거기 두고 가도록.”
기진맥진, 알몸이 되어 숨 헐떡이던 두 여자를 그림자로 덮어 숨겨둔 채, 블랙우드의 메이드가 가져온 자료를 챙겼다.
양이 꽤 되는군. 역시 이 정도로 세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 방어했으니 노스페라투가 내가 없는 사이 침투했어도 피해가 예상보다 미미한 수준인 것일테지만.
“자, 나와서 같이 봐라.”
메이드가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 그림자를 걷어내자, 그 속에서 옷매무새 단정하게 가다듬은 데이지와 에일린이 쭈뼛쭈뼛 밖으로 나왔다.
하마터면 들킨 뻔 하니까 좀 오싹오싹했던 모양이다.
“이건….”
“이 정도로 양질의 자료들이라면, 대응도 쉬울 것 같은데요?”
어색한 것도 잠시. 우수한 인재답게, 두 여자는 금방 자료의 가치를 알아본 듯 했다. 서류들을 슥슥 넘기면서 두 눈을 빛내고, 곳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내게 이 정보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설파했다.
“…이 정도의 자료를 가지고도, 완전히 막아내진 못할 정도라니. 과연이라고나 할까, 역시라고나 할까…. 그 저력이 어디 가진 않네요.”
“아니. 오히려 반대다.”
“넷?”
에일린의 감탄 서린 탄식에 내가 정정해주었다.
“모종의 일로 내부가 어지러운 모양이다. 이렇게 급하게 움직여 꼬리를 밟히는 것을 보면.”
드라쿨레아가 이종족─ 엘프와 늑대인간, 드워프 따위에 눈독을 들인다면, 반대로 노스페라투가 주로 권속으로 두는 것은 인간이다.
많은 피를 내어줘 ‘혈족’으로 만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고, 혹은 극소량의 피만 내어줘 이지를 상실한 ‘구울’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즉, 알게 모르게 제국에 침투해 있을 놈들의 세력은 꽤 넓을 터였다.
이번 서열전 때 직접 사냥했던 놈의 경우가 그렇듯이.
그만큼 세력을 불리기 위해, 서서히 스며들어 티도 나지 않게 영지 하나를 집어삼키는 것은 놈들의 특기나 다름 없을텐데.
특히 블랙우드는 체페슈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닿는 곳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더욱 신중하면 신중했지, 이토록 어설프게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어디까지나 그 내부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그렇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거군요.”
내 설명에 데이지가 두 눈을 빛냈다. 그 속에 은근하게 깃든 두려움을 알아, 나는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의 분홍색 단발을 쓰다듬었다.
“응. 그러니까 네 도움이 필요해.”
앞서 말했듯, 나 대신 전면에 내세울 사람으로는 데이지가 딱이다. 나나 에일린은 나설 수 없고, 가주 역시 나섰다간 놈들이 숨어버릴 수 있다.
“네. …힘낼게요, 주인님을 위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의욕을 내는 데이지에게 태클을 걸었다. 그야, 날 위해 일한다는 건 기특하고 고맙지만.
“이번만큼은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알겠어?”
“아. ……네.”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네.
*
굳이 지체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곧바로 활동을 시작했다. 나와 에일린은 데이지의 그림자 속에 숨고, 데이지는 블랙우드의 사병을 대동한 채 영지 내부를 천천히 휘젓기 시작했다.
우지끈─!
“이곳에 영지 내 반역도가 있다는 첩보가 있다. 전원 머리 위로 손 들어올려!”
“허억!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 아무리 영주님의 병사라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놈! 내 뒤에 계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냐?!”
“블랙우드의 적통을 이은, 가주님께 이번 일에 대해 전권을 위임 받은 이로써 명령합니다. 전원, 순순히 조사에 따르도록.”
“……크읏!”
이런 식으로.
흉흉해진 영지의 상황에 몸이 근질거리던 이들이, 데이지라는 알기 쉬운 얼굴이 생기니 무자비하게 반역도를 토벌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노스페라투의 끄나풀로 의심 되는 놈들 뿐 아니라 죄목이 다른 이들도 겸사겸사 때려 잡는 중인 것 같은데.
‘블랙우드는 나름 내부 정리가 깔끔하게 된 영지일텐데도, 잡범 수준이 아니라 꽤 거물들도 있어 보이는데.’
‘다른 영지에서 세력을 넓히러 들어왔거나, 혼란스러운 틈을 타 세력을 불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양지와 음지 양쪽 모두 힘을 지닌 이들이거나… 뭐 그런 부류겠죠. 뻔하죠.’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블랙우드만한 대귀족의 영지에도 내부에 스며든 어둠이 꽤 커, 의아해하자 에일린이 옆에서 덧붙였다.
그런가.
‘애초에, 당신이야말로 ‘밤의 주인’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면 어떡해요? 정말이지.’
‘무슨 상관이냐, 그게. 내 ‘밤’은 깨끗해. 인간들처럼 은유적인 의미로 ‘밤’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흔히 범죄자들이 활동하는 시간대를 ‘밤’, 그들의 영역을 ‘뒷골목’이라고 은유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내가, ‘체페슈’가 ‘밤의 지배자’이긴 하지만.
두개는 엄연히 다르다. 엄연히!
‘노스페라투라면 모를까.’
놈들은 인간들의 ‘밤’과 ‘뒷골목’에 깊숙하게 얽혀 있긴 할테지만.
‘…아무튼 골치 아프다고요, 저런 것들은. 이번에 기회가 생긴대로 뿌리 뽑는 게 나아요.’
‘경험담인가?’
‘네에. 아버지가 타계하시고, 제가 아직 풋내기이던 시절 말이에요.’
에일린이 풋내기이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그 몇년만에 마탑과 영지를 사로잡은 그 수완은 과연 감탄이 나왔다.
새삼 나와 함께 그림자에 몸을 감추고 있는 이 여자가, 대륙 전체에서도 내로라하는 재능을 지닌 ‘메인 히로인’ 중 한 명이라는 게 체감이 됐다.
‘대단한데.’
‘……그, 그렇게 칭찬해도 뭐 없거든요?’
‘딱히 뭘 바라고 한 말은 아니야.’
‘이미 당신한테 전부 줘버렸─ 앗.’
‘아.’
잠깐 침묵.
그런가. 나한테 전부 줘버려서 더 줄 게 안 남아버렸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그림자 속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내가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얼굴을 붉힌 에일린이 내 옆구리를 마구 찔러댔다.
그렇게 부끄러워 해도 말이지.
‘…아무튼. 확실히 기회가 생긴대로 청소하는 건 나쁘지 않겠어. 게다가 이렇게 구분 없이 잡아들여야 노스페라투의 끄나풀들도 자신들이 표적이란 걸 눈치 채지 못할테니 경계심도 덜할 거고.’
물론 가리지 않고 잡아들인다는 점에서 발각되었을 때 잡혀가는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그래도 심리적인 안정감이라는 게 다르다.
생각해봐라. 경찰이나 검찰이 아예 표적을 자신으로 삼고 지명수배까지 때린 상황과, 그냥 돌아다니며 질 낮아 보이는 놈들을 습격하면서 잡아가는 것.
위험한 건 매한가지이지만 전자 쪽이 훨씬 무섭겠지.
여튼 이래저래 나쁠 거 없는 방식이었다.
‘…저기.’
‘음?’
아까의 대화 이후 부끄러워졌는지 입을 다물고 있던 에일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이대로 있어도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러다간 놈들이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아. 그 걱정인가.’
그러니까, 아무리 이 방식이 겁을 덜 주는 방법이라 해도, 결국 포위망에 빈 곳이 있으면 도망가는 건 똑같을테니, 이렇게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게 아니라 그런 놈들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뜻인가?
‘그런 거라면 괜찮다. ‘까마귀’들을 보내뒀어.’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던 ‘까마귀’의 3할 가량을 불러, 이곳을 포위했다.
일부러 정보망에 구멍이 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가까운 위치에 있는 녀석들만 데려오는 게 아니라 대륙 건너편에서부터 하나에서 둘씩 빼오는 식이었기에, 체력이 꽤 소모되긴 했지만.
일단 불러온 이상 걱정할 건 없다.
나의 부재로 인해, 그림자 사이의 연결이 희미해진 틈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대륙에서 ‘까마귀’ 이상의 정보 수집과 무력을 동시에 지닌 집단은 없다.
이건 나름의 자부심이다.
‘신전’을 비롯해, 내가 퍼뜨려둔 그림자가 옅어진 사이를 어떻게 노스페라투가 눈치 채고 일을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마왕이 그 ‘눈’으로 보고 일러주었든가 하였겠지. 그와 같은 눈을 지닌 지금의 나이기에 대충은 알 수 있다.
어쨌든, 두 번 이상은 안 통한다.
에일린의 걱정은 기특하지만, 하여튼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딱히 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으.’
‘거기, 균형이 안 맞아. 회로 연결이 좀 불안정한가?’
‘욱. 살살 해요.’
그림자 속에서 준비 중인 것도 있고.
─나의 주군이시어.
때마침.
‘눈’으로부터, 진언이 돌아왔다.
무어냐.
속으로 읊조리자, 진중한 목소리로, 나의 충신이 내게 전해주었다.
─감히 위대한 당신께 반역기를 든 치들의 끄나풀을 붙잡았나이다. 대령하나이까?
그런가.
내가 잠시 입을 다문 채 ‘까마귀’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옆에서 “저기요, 저기요? 제 말 안 들려요? …당신 내 남편 맞아요? 이보세요. 여기 어두워서 조용해지면 무섭단 말이야…!” 에일린이 울상 지으며 말하고 있긴 했지만.
귀여워서 잠시 놔두기로 하고.
‘어떡할까.’
잠깐 생각에 잠기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잠깐 사로잡은 채로 두거라. 자결하지 못하게 하고.
─존명.
영지를 좀먹는 썩은 뿌리들을 뽑아내고 있는 데이지나, 그녀를 따르는 병사들의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해서, 일단 좀 더 지켜보고.
그러고 나서 얘기해주자.
지금 나서서 ‘이제 잡았으니까 그만하고 그놈들 보러 가자’라고 말하기엔 아깝기도 하고, 게다가 그놈들 말고도 있을테니까.
다른 까마귀가 잡기 전에, 데이지가 먼저 잡을 수도 있는 거니까.
“……주인님.”
그런 내 생각이, 정확히는 감정의 표면이 그림자를 타고 흘러들어갔는지, 데이지가 잠깐 멈춰서곤 말했다.
처음엔 하나 잡혔다는 소식도 들었나 싶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다.
“까마귀들보다, 제가 더 많이 찾아내면. 상 주시는 거죠?”
굳이 안 그래도 원하는 건 들어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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