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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81화 (181/199)

〈 181화 〉 노스페라투 (7)

* * *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크아악! 도망쳐!”

“어딜!”

평소엔 거드름 피우고 다니던 거물들조차, 지금껏 잠자코 있던 영주가 마음 먹고 칼을 빼들어 휘두르기 시작하면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재산을 들고 나를 시간조차 없이 빠르게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 터라 더더욱.

“과연, 자료대로 뒤로 빼돌린 게 꽤 많군요.”

“전부 회수하겠습니다.”

탈세 혐의가 걸린 상인들은 재산을 압류당하고, 죄가 중한 자는 즉결 처분으로 목이 잘렸다.

“아이고, 저놈 저거, 내 저럴 줄 알았다! 암만 그래두 그렇지, 어찌 영주님의 재산을 탐하누? 욕심이 과하면 저리 되는 게야!”

“에잉, 쯧쯧. 하여튼 돈 많다고 거드름이나 뻑뻑 피워대며 생필품이며 뭐고 가리지 않고 가격 올려댈 때 알아봤다! 돈이 많아 세금을 많이 내야 해서 그렇다더니, 실제론 뒤로 꿍쳐두고 있었구만?”

영지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호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숙청 대상은 대부분 영지 내에서도 인망이 별로 없는 이들이기 때문에.

영지민들의 등골을 빨아먹던 상인은 예사고, ‘뒷골목’의 쓰레기는 영지민들에게 혐오와 증오의 대상에 가깝다.

특히 상인들과 결탁한 놈들은 더더욱.

“그래두 우리 영지는 살만 해! 요즈음 좀 시끌해져서 그렇지……. 치안두 다른 곳보단 좋구, 영주님도 우리 같은 것들을 얼마나 신경 써주시는데! 지금도 봐봐. 아가씨께서 직접 병사들을 이끌구 우리 괴롭히던 놈들 벌해주시잖어!”

“아이구, 암요. 게다가 공작님께서두 챙겨주시잖아요? 아가씨두 공작님네 영지로 갔다가 돌아오신 걸 보면, 아마두 공작님이 보내주신 게 분명해요! 그러니 요즈음 흉흉해져두, 여긴 못 떠나죠.”

확실히 블랙우드가 영지민들에게 평가가 좋군. 나에 대한 기묘할 정도로 높은 평가가 한몫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일로 회수한 자산들은 적합한 조사와 절차를 통해 영지민들에게 적절히 분배해주세요. 어차피 한동안은 영지의 내실을 다져야 할 때이니까요.”

“예, 아가씨.”

데이지의 부관으로 따라온 기사 역시 꽤 유능하다. 굳이 데이지가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말뜻을 이해한 듯 했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상급자의 명령에 반사적으로 충직한 대답이 나왔다면, 그건 그것대로 맹목적이고 훌륭한 충성심이니까 합격이다.

맹목적인 충성은 좋지 않다고?

그것도 인(人)의 장막에 갇혀 있을 때의 얘기다. 아니면, 듣기 좋은 말과 싫은 말 중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는 폐급이거나.

데이지도 그렇고, 블랙우드의 사람들은 둘 모두 해당사항이 없으니 상관 없다.

오히려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기사는 다른 귀족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으면 되었지, 아무튼 나쁠 건 없다.

충성스러운 기사 뿐 아니라, 출가했다가 돌아온 데이지의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르는 병사들.

데이지부터가 가문 내에 좋은 이미지로 남았다는 뜻이기도 할테지만.

어쨌든 내부의 단결이 잘 된 가문은 그만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볼수록 마음에 드네, 블랙우드.’

기묘할 정도로 나를 덕질하는 건 조금 부담스럽지만.

하여튼 믿음이 가는 동료로 봐도 무방하겠지. 속으로 블랙우드를 향한 평가를 상향조정하고 있자, 에일린이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저기 봐요. 여기도 하나 찾은 것 같은데?’

‘응?’

그 말대로 그림자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데이지와 부관, 병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전 억울해요! 지금까지 세금도 잘 냈는데!”

스미스라는 이름을 쓰는 사내. 직업은 목공. 두 달 전 블랙우드에 이주한 성실한 청년… 이라는 설정이다.

다른 곳이었다면, “에잉, 죄 없는 스미스를 벌을 줘? 하여튼 귀족놈들이란…!” 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주위 평판이 좋던 놈이지만.

“뭐? 스미스가 사실은 반역자라고…?”

“어, 어이! 그럴 리가 없잖아! 날 못 믿는 거냐, 존?! 내가 이 영지에 와서 얼마나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는지, 너는 알잖냐!”

“……하! 스미스, 그렇게 안 봤는데. 퉷! 반역자 새끼가 어딜 친한 척 내 이름을 불러?”

“에잉, 쯧쯧! 은혜도 모르는 놈. 영주님과 공작님이 얼마나 살기 좋게 배려해주시는데, 외부에서 왔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이곳은 블랙우드.

기묘할 정도로 나와, 내 인정을 받은 블랙우드에 대한 충성심한 강한 영지. 평소에 평판이 좋았던 놈이라도 영주나 그 대리인이 나서 반역도라고 찍어버리면 얄짤 없다.

“이, 이게 무슨…….”

황망한 표정의 스미스. 애초에 ‘노스페라투’의 이름을 받긴커녕, 혈귀조차 되지 못한 인간 끄나풀이다.

그야말로 쓰고 버리는 말.

본인은 꽤 충성스러웠던 모양이지만.

“그럼, 영지법에 의거해 즉결처형합니다.”

서걱─.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

내가 드라쿨레아의 보물고에서 찾아내 데이지에게 선물해준 검이 아깝다며, 평범한 철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낸 데이지가 차가운 얼굴로 털썩 쓰러지는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노스페라투’의 끄나풀을 이렇게 하나씩 발견해내 목을 썰어버릴 때마다, 데이지를 비롯해 그녀의 부관과 병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져 간다.

이렇게까지 많을 줄이야─ 같은 감상이겠지.

지금까지 영지 내 썩은 뿌리들을 도려내고 다니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겸사겸사.

덤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영지 내에 스며들어 있는 노스페라투의 끄나풀을 잡아내는 것. 그것이 최종적인 목표.

잠시 혼란스럽던 틈을 타, 악명 높은 ‘노스페라투’가 영지 안에 침투해 있다니 그야 속이 쓰리고 걱정될만도 했다.

나야 이 기회에 더 나아가선 아예 노스페라투를 숙청하는 게 좋지만. 그건 블랙우드가 아니라 내 목표고.

여하튼간, ‘블랙우드에 숨어든 노스페라투의 축출’까지는, 공통적인 목적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까마귀’가 잡아낸 무리는 다섯.

다른 놈들까지 쳐내면서 움직인 데이지가 잡아낸 무리는 셋.

이번의 것까지 포함하면 넷인가.

“대놓고 움직이는 것치곤 데이지도 꽤 많이 잡았는데.”

“오히려 대놓고 움직이니까, 못 피하는 게 아닐까요? 지금 시점에서 도망가려고 몸을 빼면 누가 봐도 수상하니까.”

그것도 그런가.

한 몸 빼낼 수 있는 흡혈귀라면 모를까, 단순 협력자나, 혈귀로는 화(化)하지 못한 권속들은 그러지도 못할 터.

지금 상황에서는 어디 가서 숨는 것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길을 받을 수 있다.

‘너는 뭔데 숨어?’라고.

차라리 ‘뒷골목’에서 활동하거나, 애초부터 평판이 나쁜 녀석이었다면 모를까. 적절한 스파이 노릇을 하기 위해 좋은 평판을 유지하던 놈들도 여럿 있을테니.

그런 녀석들이 갑자기 의심 받을 짓을 해버리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덕분에 음지로 숨어든 녀석들을 잡아내는 ‘까마귀’보다, 남들은 모르지만 은밀하게 알아낸, 양지에서 활동하는 놈들을 데이지가 족족 잡아내는 중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데이지 쪽에서 예상보다 많이 잡아내는 것도 납득이 간다.

촤악─!

서걱─!

그 뒤로도 데이지는 노스페라투가 남기고 간 잔당들을 무참하게 정리했다. ‘까마귀’들 역시 꾸준하게 정보를 보내고.

“커억…!”

마침내 데이지가 아홉 번째 머리통을 참수했다.

이걸로 당초에 파악해둔 끄나풀은 모두 정리가 끝났다.

남은 것은, 정말 은밀하게 숨어 있을, ‘까마귀’의 눈조차 피할 수 있는 ‘진짜’들 뿐.

“우리도 이제 움직여볼까.”

데이지의 그림자에서, 그녀의 그림자와 주변 건물의 그림자가 겹칠 때 슬쩍 옮겨탄 다음, 에일린과 함께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준비는 됐지?”

“휴우. 이 정도로 정교한 대마법은 처음인데요.”

“할 수 있을 거야. 난 믿는다.”

“이럴 때만?”

“항상.”

입에 발린 말이라며, 에일린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지금까지 그림자 속에서 그려둔 마법진에 마력을 돌리기 시작했다.

데이지의 그림자 속에서 지켜봐야 할 것은 모두 보았다.

그림자를 내려다 본 데이지가, ‘노스페라투’의 관계자 이외, 잡아야 할 놈들은 모두 잡았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준비도 모두 끝.

“정말이지. 영지 내부에 추적 대상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은 모든 것들을 탐색, 구속하는 마법 같은 거라니. 이런 마법 듣도 보도 못했어요.”

그 말대로.

여기서 추적하는 흔적이란 건, 단순한 마력의 잔흔이나, 지문 같은 것이 아니다.

영지 내부의 ‘시간’을 되돌려 짚어, 훑어본 다음, 그 흔적이 새겨진 모든 것들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시공 마법이다.

실제로 시간을 되감는 건 아니고, 그저 cctv의 시간을 뒤로 감아서 관찰하는 정도 뿐이지만.

이것만 있다면, 기어이 노스페라투가 숨겨두었을 모든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터.

“터무니 없어요. 정말…. 시간 신전이라는 곳에 들렀더니, 여신님이 줬다구요?”

“여신님이 준 건 아니고.”

“그게 그거지─!! 다음엔 저두 데려가요.”

“거길 또 가라고…?”

시간 마법.

흔히들 판타지 소설 속에서 최종보스나 주인공, 혹은 세계관 최강자나 쓸 법한 마법의 이름이다.

실제로도 현존하는 모든 마법에 적성을 지닌 에일린조차, 내 보조가 없었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 했을 정도.

그러는 나는, 오히려 특정 마법이 아니면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나는 어떻게 쓸 수 있는 거냐? 라고 한다면.

‘시간 신전’.

그곳에 다녀와서, 여신과 직접적으로 접촉한 덕분인지.

시공간 마법의 적성이 미약하게나마 생겨 있었다.

다만.

“이런 마법을 쓸 수 있으면서, 정작 마력이 적합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농담인가요?!”

“어쩔 수 없잖아.”

마법 계열에 대한 적성이라는 것은, 그 계열에 대한 마법을 얼마나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

같은 마법진을 그리더라도 더욱 정교하고, 더욱 완벽하고 세밀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을 보고 ‘적성’이라고 부른다.

즉, 그런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마력 속성은 불인데, 적성은 빙결 계열이라거나.

그래서 마법을 부리는 것 자체는 빙결 계열의 마법이 더욱 능숙한데, 정작 속성이 불이라 위력은 요만큼도 안 나오거나 불발해버리는 식의.

그러니 속성이 적합하지 않은 나는, 적성이 생겨도 내가 원하는만큼의 ‘시공간 마법’을 쓸 수 없다.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박으면 그만큼 출력도 올라가긴 할테지만.

그건 아무래도 비효율적이니까.

다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제 도움이 없으면 기껏 생긴 적성도 발휘 못 한다는 거잖아요…!”

모든 마법 계열에 뛰어난 적성을 지닌 에일린의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뜻.

실제로 에일린은 나의 보좌를 받는 것으로, 완벽하게 대마법의 술식을 그려냈다.

그녀의 마력을 제공받아서, 내가 술식을 그리면, 그것을 에일린이 연결된 회로를 통해 통제권을 받아낸 다음 시전하는 방식.

무척이나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경천동지할 대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찬란하게 빛나는 오색의 마력. 단순히 술식을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심력의 소모가 크다.

“머리가 지끈지끈……! 이 일이 끝나면, 확실하게 침대에서 보답을 받아낼 거니까!”

“얼마 전까지 처녀였던 여자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대담한데.”

“조용히 하세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에일린이 눈을 질끈 감고.

직후.

빛의 기둥이 블랙우드의 영지 곳곳에서 찬란하게 솟구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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