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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84화 (184/199)

〈 184화 〉 노스페라투 (10)

* * *

성녀 아델라.

누가 봐도 마왕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절대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네임드임에도 내가 그녀를 히든카드 삼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린애?”

“…….”

의아한 듯 중얼거린 에일린. 면전에 대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무례함에, 정작 무의식적으로 속마음을 뱉은 에일린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지만.

착한 성녀인 아델라는 아마 웃는 얼굴로 넘어가 줄─.

아, 아니다.

웃고 있지만 입꼬리가 굳었다. 화났다.

그런가. 화난 건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처음 봤을 때야 그 신성한 자태와, 도저히 어린 아이로는 볼 수 있는 풍만한 곡선에 눈을 빼앗기지만, 이후 자세하게 살펴보면 알아볼 수밖에 없다.

미묘하게 남은 젖살이라거나.

앳된 티가 나는, 은근한 분위기 같은 것들이.

──그렇다.

성녀 아델라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실제로, ‘푸른 장미 정원’에서도, 아델라의 영입은 주인공 ‘루나’가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

그러니까, 작중 시작 지점이 루나의 1학년 입학 시점이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3년이 지나 4년 차에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전까지는, 성녀에 대한 언급만 종종 존재할 뿐 등장도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바로.

“미성년의 성녀는, 아직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잖아요?”

그 말대로.

여신의 축복과 가호를 한 몸에 가득 내려받아, 대륙을 통틀어 용사를 제외하면 누구보다 막대한 신성력을 비롯한 힘을 지닌 성녀이지만.

성년이 되기 전에는, 쓰지 못하는 힘을 몸에 품고만 있을 뿐.

물론 자기방어를 위한 장치는 모두 되어 있다. 위협을 느낄 시, 여신의 가호가 그 막대한 신성력을 빌어 적을 자동으로 격퇴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건 마왕과의 싸움이라는, 대륙의 멸망을 앞둔 싸움에선 아무 도움도 안 된다.

마왕과의 싸움에서, 성녀는 그 막대한 신성력 뿐 아니라, 대륙 최고의 성법술을 발휘해줘야 한다.

역대 어느 성녀보다도 뛰어난 성법술의 재능.

하지만 성년이 되기 전에는 성법술의 ‘ㅅ’자도 쓸 수 없는 상황.

지금 시기가 원작보다 반년 정도 빠르니, 그녀가 성년이 되기까지는 정말 말 그대로 4년 가까이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지의 지적은 정당했다.

정당했지만.

“……후, 후후후.”

에일린과 데이지.

내 일행 두 명에게 동시에 ‘어린아이’ 취급을 받은 성녀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야 도움이 필요하다고 불러놓고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면 화가 날 법도 하지.

“……후우우.”

하지만 역시 성녀는 성녀. 내 기억 속의 그녀보다 4살 가량 어리긴 해도, 그 성품마저 다르진 않는 모양이다.

상냥하고, 다정하고, 자애롭지만, 또 은근히 다혈질인 면도 있고….

그렇지만 또 결과적으로는 용서해주는, 그야말로 성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여인.

“후우. 그래요. 납득하였답니다. 두 분께서는, 소녀가… 못 미더우신 것이지요?”

커다란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심호흡해 흥분을 다스리는 아델라. 저게 아직 성장 중인 몸뚱이다.

확실히 키도 꽤 작고, 가슴도 키에 비하면 엄청나게 크긴 하지만. 기억 속의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꽤 있다.

흥분을 다스리긴 했으나, 여전히 살짝 떨리는 목소리라거나, 미숙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허나, 저를 한 번 믿어주시어요. ‘성녀’라는 이름의 권위를 빌려서가 아니오라, 바로….”

아델라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은근한 시선에, 데이지와 에일린 역시 나를 보았다.

아니. 손 안 댔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애초에 성녀는─.

“저의 오랜 친우, 스칼렛 공작이 소녀를 불러주신만큼, 그에게 폐를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어요. 두 분 역시… 소녀가 아니라, 소녀를 부른 공작을 믿어주시어요.”

“…으음.”

“…그,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에일린도, 데이지도, 모두 나를 흘깃흘깃 보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성녀.

순식간에 데이지와 에일린을 설득해버렸다.

그야, 내가 부른 인원인만큼 두 사람 모두 필사적으로 반대할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후후…. 그럼, 보잘 것 없는 몸이나마, 잘 부탁드려요.”

끄덕.

그렇게 우리는 새 일행을 맞이하게 됐다.

“…그나저나, 두 분 모두 공작의 여자인 것이지요?”

“그래.”

“그렇담, 제가 ‘선배’로군요?”

움찔.

잘 마무리 됐나 싶었더니, 뺨에 손바닥을 올려 “후후─.” 웃는 성녀가 폭탄을 던졌다.

“뭐?”

아니. 이건 진짜 나도 엄청 당황했다. 대뜸 ‘선배’ 선언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는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주, 주, 주, 주인님?”

“당신, 성녀는, 아직 나이가─!”

그건 나도 안다.

아는데.

빌어먹을. 과거의 나는 미성년자한테도 손을 대는 놈이었나? 아니, 애초에 성녀와도 인연이 있었다고?

지금보다 더 과거면, 성녀의 나이는─.

아니, 아니지. 진정해라, 스칼렛 체페슈. 아델라는 그거잖아, 그거. 이건 나를 놀려먹으려는 아델라의 수작이 분명했다.

큭!

최근 이 이상 동요한 적이 없었던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델라의 손목을 잡아챘다.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어머.”

나는 데이지와 에일린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성녀를 데리고 방에서 나가 바로 그 옆방으로 들어갔다.

*

“성녀님.”

“……공작.”

삐죽. 성녀가 입술을 내밀었다. 참으로 친근해보이는 그 시그널에, 나는 속으로 ‘씨발, 진짠가?’ 싶은 심정을 숨겨야만 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소식은 들었답니다. 왜 제게 먼저 말하지 않았지요?”

“음.”

나름 극비인데 어디서 새어나간 거지.

“기억을 잃었는데 어떻게 알고 먼저 말합니까?”

“……기억을 잃은 건 진짜인가 보군요. 공작이 제게 존대라니.”

놀란 듯 하얀 눈동자를 크게 뜬 아델라가, 입가를 손으로 살포시 가렸다. 나는 성녀와의 이 기묘한 거리감에, 설마 기억을 잃기 전에, 정말로 나는 성녀까지 꼬신 건가─? 했지만.

“그 얼굴로 존대하지 말아주시어요. 솔직히 기분 나쁩니다.”

“아.”

그럼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푸른 백합 정원’을 모르고, ‘푸른 장미 정원’만 알던 나는 누나에게 물었었다.

‘어째서 다들 남자인데, 성녀는 여자야?’

‘성녀는 있어도 성남 같은 건 없잖아.’

‘그렇긴 한데.’

그때의 나는 원본이 되는 ‘푸른 백합 정원’을 모르고, ‘푸른 장미 정원’이 누나의 오리지널 작품인줄 알았기 때문에, 굳이 성녀가 아니어도 될텐데 성녀를 고집하는 누나의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근데 같은 여자인데 왜 개인 루트가 있어?’

‘아. 그건 원래 아델라가 레즈라서 그래.’

‘어, 응.’

레즈라서 그래, 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작자가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자기 작품의 설정에 ‘원래’라거나, ‘~라서 그래’라니, 어울리는 말은 아니잖은가.

결국 ‘푸른 백합 정원’의 정체를 알게 된 지금은, 모두 어떻게 된 건지 이해했다.

……즉, 아델라는 ‘푸른 장미’에서도, ‘푸른 백합’에서도.

──레즈비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겉으론 자애의 성녀를 연기하지만, 실제로는 남자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그래. 하여튼 반갑다. 기억은 없지만, 너에 대해선 어렴풋이 알고 있어.”

“조금 소름 돋습니다. 기억을 잃었지만 저에 대해선 기억할만큼 제가 당신한테 중요한 존재였나요? 으, 자제해주세요.”

“…그나저나, 그럼 왜 그런 농담을 한 거냐? 농담인 걸 알면서도 심장이 철렁했다.”

“당신 심장은 철렁해도 안 죽잖나요? 소녀, 이래 봬도 다 알고 있답니다.”

“알기는 개뿔이─.”

이 년이.

…나도 모르게 친근한 태도가 나오는 걸 보면, 무의식적으로 확실히 아델라에 대한 친밀한 감정 같은 게 남아있긴 한 모양이다.

이런 꼬맹이랑 내가?

…라고 해도, 과거의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인만큼, 확실하게 단언할 순 없겠지.

그나저나 이 녀석, 처음 문을 열고 등장할 때 보여주던 그 신성한 아우라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

“휴우. 하여튼 하루빨리 기억을 되찾도록 하세요. 편지에 적혀있는대로, 가급적 협력해드릴테니. 방법이 있다고 했지요?”

“그래.”

아직 성년까지 한참이나 남은 성녀다. 전투원은커녕, 보조인원으로도 완전히 미달이다.

“내 기억도 찾고, 너한테도…….”

입을 다물었다. 마왕과 같은 ‘천리안’을 지니고 있어서, 더 이상 놈에게 ‘관측’은 당하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입조심 하는 편이 좋겠지.

“편법에 가까운 거라, 당장은 말하기 힘들다. 너도 알테지, 마왕의 권능은.”

“아……. 예, 뭐, 대충은.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은 좀 못 미덥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정이 있으니.”

솔직히.

조금 답답했다. 지금까지 잃어버린 기억 탓에 발목을 잡힌 적은 없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이들이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종종 가슴에 무겁게 내려앉곤 했다.

지금도─.

“얍.”

“큭. 이 년이. 아프잖아. 뭐하는 짓이냐.”

찰싹! 아델라의 손바닥이 양 뺨에 달라붙었다. 이 정도의 폭력, 아플 리가 없을텐데도 얼얼한 고통이 전해졌다.

“……이런 데에 신성력을 써? 낭비다.”

“흥. 어차피 당신이 말한 그 ‘계획’대로 되기 전까진, 성법술도 제대로 못 쓰는 몸이잖습니까?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어요.”

“그걸 왜 나한테 푸는 거냐. 죽고 싶은 모양이지?”

“폭력적인 남자. 이래서 남자는 싫답니다, 정말.”

인상을 와락 찌푸리는 나와 아델라. 으르렁, 서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숨을 뱉었다.

“인상 좀 펴시어요. 당신만 보는 이가 몇 명인데, 당신이 죽상이어서 되겠나요?”

“……쯧.”

그래도.

흠.

마음은 좀 편해진 것 같았다.

이런 느낌, 누나한테서 말곤 딱히 받은 적이 없는데.

아.

“딱히 이미지를 챙길 필요가 없어서 그런가.”

“네? 뭐라고 하셨지요?”

“아니, 아무것도.”

그렇군.

어차피 레즈라 공략 불가 대상이니 대하기 편해진 거였어.

마음이 편해졌다.

좀 내려놓고 대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꼭 동성 친구가 생긴 것 같다.

“뭘 봐요? 징그럽게.”

“안 봤다.”

근데 내 기억으로는 원래 이렇게 성격이 더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오히려 데이지나 에일린의 앞에서 보여주던 다정한 모습이, 내 기억 속 아델라와 닮았다….

대체 뭘 하고 다닌 거냐, 과거의 스칼렛 체페슈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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