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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85화 (185/199)

〈 185화 〉 노스페라투 (11)

* * *

아델라가 일행이 되는 것으로, 드디어 준비는 끝났다.

게임이라면, [신난다! 「성녀 : 아델라」가 동료가 되었다!!]라는 문구와 함께, 다음 에어리어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아델라는 이번 일에 아주 큰 도움을 기대하고 부른 건 아니다.

필수인원인 건 맞지만.

아델라의 역할은 일이 모두 끝난 뒤에나 있다.

그 막강한 신성력을 몸에 두른 채 휘두르거나, 아예 펑펑 날리는 식으로 쓴다면 싸움에서도 제 몫은 하겠지.

하지만 내게 순수하게 전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필요했다면, 차라리 지금쯤 영지에 박혀 코나와 교감 중일 누나가 더 도움이 됐을 거였다.

아델라 역시, 내가 부르니 오긴 했지만, 막상 자신이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성녀가 조금 기죽어 있는 얼굴이라니. 귀한 광경이지만, 나는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주기로 했다.

“아델라.”

“……뭘까요?”

나를 슬쩍 올려다보는 아델라. 키가 작아서인지, 눈높이가 상당히 차이가 났다. 덕분에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풍만한 곡선─.

이게 아직 성장 중인 몸이란 말인가.

성녀란 도대체…….

엉뚱한 생각에 잠겨있던 것도 잠시. 나는 아델라의 정수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믿는다, 아델라.”

“…….”

아델라는 입을 다물었다. 슬쩍 팔을 쓸어내리는 걸 보니, 꼭 소름이라도 돋았다는 표현 같았다….

하긴. 나와는 친분이 있어 참는거지, 실제론 남자를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그녀다. 이해해주기로 하자.

“주인님, 저는요?”

“데이지도.”

“……저기요. 저는?”

“에일린도 믿지.”

“…흐, 흐흥.”

남성혐오 성녀님과는 다르게 내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두 여자가 내게 달라붙었다. 아델라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몰라서인지,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감 없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평소에 츤데레마냥 튕기던 에일린마저 은근슬쩍 나한테 기댈 정도로.

“아앙, 주인님. 손 주세요, 손. 네에?”

“손으로 뭐하려고.”

“아시잖아요.”

“…저, 저도 좀, 빌려주실래요?”

처음에는 어리광에 가깝게 몸을 밀착하던 두 여자를,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델라가, 이윽고 나와 그녀들 사이의 수위가 에스컬레이트 타듯 순식간에 솟구치자 와락 얼굴을 구겼다.

“……크흠.”

그리곤 헛기침.

“앗.”

“…내, 내가 무슨 짓을.”

그제야 외부인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아델라의 표정이 무척 적나라하게 우릴 비난했다. “미성년자의 앞에서 뭘 하시는 거지요, 여러분?”이라고, 쿡쿡 쑤시는 것 같은 눈동자였다….

과연 성녀의 실체를 모르는 두 여자에겐, 대륙에서 신성하기론 세 손가락에 꼽히는 여자의, ─그것도 채 성인이 되지 못한 어린 여자아이의 그런 눈빛이 무척 아프게 꽂힌 듯 했다.

“…숨고싶어요, 주인님.”

“이, 이, 이건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나를 유혹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언제 출발할 건가요, 공작?”

“…지금 바로 가지.”

절대 무안해져서는 아니고.

실제로 아델라가 합류함과 동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준비는 모두 끝난 상태라, 데이지도 에일린도 군말 없이 채비를 마쳤다.

“어서 가도록 합시다, 공작.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요.”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아델라가 내 부름에 답하지 않았어도 나는 계획대로 노스페라투를 숙청하러 갔을 것이다.

당초의 계획과는 많이 달라지기야 했을테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델라는 은근히 신이 난 목소리로 조잘댔다.

“깜짝 놀랐습니다. 공작이 설마 제 도움을 필요로 할 줄이야. 공작은 언제나 홀로 고고한 이였잖아요?”

“미안하군. 기억나지 않는다.”

“아, 그, 저는 궁금한데…….”

기존의 일행에서 아델라가 추가된 우리 파티가 저택의 정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델라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과거의 얘기를, 데이지와 에일린은 거기에 은근한 관심을 드러내던 중.

“가시는 겝니까?”

배웅은 필요 없다고 했는데. 블랙우드의 주인, 로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용히 떠나려던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 시종 한 명조차 없이 홀로이긴 하지만.

“아빠…!”

데이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설마 이런 곳에서 아버지가 시종 하나 없이서 묵묵하게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허허, 데이지. 이 아버지가 배웅해주지 않아 섭섭했─.”

“지금 딱 좋게 주인님의 옛날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왜 끼어들고 그래~!”

“…….”

과연.

아무리 블랙우드라도, 딸을 체페슈의 아내로 들인다는 말에 기뻐하던 그 블랙우드라도, 결국 딸을 둔 아빠이긴 한 모양이다.

그야 이렇게 직접적으로 ‘아빠 미워!’급의 선언을 들어버린다면 그야 상처 받겠지. 늙은 남자의 울상 같은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방금 순간적으로 날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어.

“크흠, 흠…….”

헛기침을 한 뒤, 로건이 일행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 분 늘었군요?”

아델라의 얘기였다. 분명 전날만 해도 없던 여자가 일행으로 추가되었으니 의아할만도 했지만.

‘그새 여자가 한 명 늘었어?’

……그런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딸 가진 아버지의 힘인가? 괜히 좀 찔리려다가도, 순간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델라다. 남자라면 치를 떠는 성녀!

“그런 거 아니다.”

“….”

“아무튼.”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성녀는 사실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비언이니 괜한 오해하지 말도록’이라고 말했다간, 그 경우엔 아델라가 내게 품은 우정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게 뻔했다.

“으. 속이 좀 울렁거리는 데 어떡하면 좋지요, 공작?”

그러니까 넌 좀 다물고 있어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건은 딱히 그 이상 물어보진 않았다. 대화 역시 지지부진 더 길게 이을 것도 없이, 단순히 우리를 마중나왔던 것 뿐이기에, 간결한 인사가 전부였다.

“다녀올게요, 아버지.”

“그래. 몸 성히 다녀오거라. …아니지. 굳이 다시 들를 필요는 없으니, 꼬옥 공작 전하의 곁에 달라붙어 있거라. 애비 말 무슨 뜻인지 알테지?”

딸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물론이죠.”

뭘 또 긍정하고 있어.

“장하다, 내 딸. 비록 근처에 쟁쟁한 경쟁 상대가 많을테지만, 이 애비 눈에는 우리 딸이 제일이다. 알고 있지?”

“……응. 아까 화낸 건 죄송해요.”

가족 사이 훈훈한 덕담과 화해는 무척 보기 좋지만, 부녀가 단결하는 계기가 나라니, 기분이 미묘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크흠. 죄송합니다.”

그렇게 한참 데이지와 즐겁게 떠들던 로건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아뇨, 보기 좋네요.”

“후후. 화목한 가정이네요. 분명 여신님께서도 흐뭇하게 여기실 거랍니다.”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에일린과, 애초부터 성직자로서가정 내 화목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델라.

두 사람은 되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

덕분에 혼자 부끄러워진 데이지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말았지만.

아무쪼록 귀여우니까 됐나.

*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다시 여행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 생각이 짧았구나.

기어코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처음엔 순조롭게, 별 문제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 반나절 가량 지났을 무렵, 아델라가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요, 공작! ……우리, 언제 쉴 수 있는 거지요?”

일행이 잠깐 정지했다. 나는 슬쩍 일행을 돌아봤다. 완숙한 경지의 데이지나, 마법을 통해 공중부양으로 우릴 따라오는 에일린과, 그리고 두 말 할 것도 없는 나.

…누구 한 명 지칠 일이 없어서, 지금까지 체력 분배에 신경을 안 썼다.

마법사인 에일린조차 마력 고갈만 조심하면 되는데, 그녀 역시 아크 메이지에 가까워진 덕분에 단순 비행에 드는 마력보다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빨라서.

덕분에 깡으로 우리를 따라온 아델라가, 참다 못해 백기를 든 모양이었다.

신성력으로 지친 몸을 회복시킨다 해도, 오래도록 걸으며 느낀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테니.

즉, 그거다. 근육통 자체는 없어졌지만, 방금 전까지 느끼던 근육통이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다리가 뻣뻣해지는.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가 슬슬 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아직 잠자리를 만들기엔 약간 이른데.”

“……서얼마. 노숙을 한다는 얘기인 것인지?”

“그 설마가 설마다.”

“……꺄아악! 이 악마야! 나를, 나를 또다시 축축하고 지저분하고 텁텁한데다 먼지 날리는 바닥에서 재우려고──!!”

“조용, 조용히 좀 해라.”

반쯤 발광하는 성녀를 제압했다.

성녀가 눈을 뒤집고 흡혈귀의 머리를 쥐어뜯으려는 광경이라니. 이 세계의 흡혈귀가 대중적인 종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흔한 판타지 세계였다면, 성녀의 솔선수범에 모두 감동했을 광경이지만.

아니. 그래도 충격 받을 사람은 받겠지. ‘성녀님이 저렇게 과격하게…?!’ 같은 말을 하면서.

“성녀님…?!”

아. 데이지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녀씩이나 되는 여자가 품위 없게 남자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한 얼굴이었다.

그렇지. 그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나도 조금 당황해서, 씩씩거리며 울상인 채 내 그림자에 구속당한 아델라를 내려다봤다.

“뭐가 문제냐.”

“뭐가 문제? 뭐어가 문제─?! 이 남자, 진짜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어요? 그렇겠죠, 기억상실이라고 했으니까…! 얄미워 죽겠습니다 정말!!”

또 과거의 나인가.

하지만 정말 모르는 일이다. 그냥, 아델라에게 야외노숙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것 정도밖에.

“다행이군.”

“다행? 다행이라 했나요 공작? 네?”

“야외에서 잠들어본 경험이 있는 것 같으니, 굳이 새로 적응하느라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죽으세요 진짜!”

아쉽게도 성녀의 저주에는 죽지 않는다. 애초에 성녀는 저주를 쓸 수 없는 몸이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힘 빼지 마라. 그래도 지친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는 것으로 하자.”

“그런 배려 필요 없으니까 절 돌려보내주시어요!”

“네가 동의하고 따라온 것 아니냐.”

“공간 마법으로 내일 다시 데리러 오면 되잖아요, 공작은!”

음.

귀찮아서 싫다.

“여신님제발이남자를벌해주시어요!!”

당연하게도 여신이 내게 천벌을 내리는 일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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