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노스페라투 (13)
* * *
아델라가 갑자기 내 등이나 어깨를 때리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걸 포함하고서라도 여행길은 순조로웠다.
왜 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 때렸냐고 물어봐도.
“그것도 모르세요? 하…!”
같은 대답이나 돌아왔다. 솔직히 조금 억울하지만 넘어가주기로 했다. 하나도 안 아픈 것도 있고.
“하!”하고 헛웃음을 흘리곤, 한참 뒤에 우물쭈물.
“……아프진 않으셨지요? 아팠다면 치유라도 해드릴테니까.”
“안 아팠다.”
“……그것 참 아쉽게 됐네요!”
…같은 대화가 항상 이어졌기에.
뭐지. 츤데레인가? 츤데레는 이미 에일린이 있는데. 심지어 상위호환으로는 누나까지 있었다.
“아델라.”
“뭔가요, 공작?”
“츤데레 자리는 꽉 찼다.”
“…….”
아, 이건 진짜다. 진짜로 경멸하는 표정이야.
다행이게도 아델라는 딱히 내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냥 정말로, 과거의 나한테 짜증이 나서 나를 때렸다가, 막상 나는 기억이 없으니 미안해져서 뒤늦게 사과한 것 뿐인 듯 했다.
아무튼 내가 억울한 입장이란 건 변함 없지만.
그보다는.
“……주인님은 과거에 여자랑 인연이 꽤 많네요. 그렇군요. 제가 특별한 게 아니었던 거네요….”
“제가 제일 늦게 들어오긴 했지만, 딱히 후임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저기요? 듣고 있어요?”
음울한 기색에, 나를 향해 끊임 없이 중얼거리는 두 사람이 문제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는 기색이 아니다. 그야, 아델라와 나의 거리감은 내가 봐도 무척 가까우니까.
다만 정말로 오해인 것이, 내가 아델라를 편하게 대하는 건 그녀가 동성애자─즉,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껴서이다.
마치 동성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만일 아델라가 내 여자에게 눈독을 들인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델라.”
“또 뭔가요, 공작? 자꾸 저한테 말 걸지 마시고 당신 여자나 잘─.”
“네 취향이 어떻게 되지?”
덜컥.
아델라가 아니라, 내 얘기를 엿듣고 있던 두 여자의 어깨가 흔들렸다. 마치 관심 있는 여자에게 이상형이 누구인지 묻는 것 같은 광경이었을까.
오해가 더 깊어지는 것 같지만, 나는 우선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로 했다.
“……글쎄요. 여신님처럼 아름다운 얼굴일까요?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보아요.”
꿈도 크다……, 라고 핀잔을 주려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여신님 같은 얼굴이라니.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몇 명이다.
아이리스, 레티시아, 루나…. 언급하기로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명이나.
……이 년, 혹시 내 연적인가?
내 미심쩍은 눈길을 느꼈는지, 아델라가 사납게 눈썹을 치켜떴다.
“당신이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저를 뭘로 보는 것이에요? 불쾌하답니다, 정말로!”
“…음. 미안하다.”
“알면 됐어요!”
이 일련의 대화에서 소외되어 있던 데이지와 에일린이, 고개를 맞대며 나와 아델라 사이에 오간 대화를 해석하려 끙끙댔다.
마음 같아선 알려주고 싶었지만.
성녀가 동성애자라니. 아델라가 직접 커밍아웃 하지 않는 이상 말할 수 없는 주제라,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아델라가 내 연적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조금 안심이다.
아델라가 못 이룰 사랑을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야…….
“짜증나.”
퍽!
왠지 모르게 내 옆구리에 주먹을 꽂은 아델라의 주먹은, 아프진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왜인지 생생하게 느껴졌다.
*
순조롭던 여행길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불쾌한 공기.”
아델라가 미간을 찌푸리고, 데이지와 에일린 역시 전신을 감싸는 불쾌함에 기감을 가다듬고 있었다.
“취미 한 번 고약하기는.”
쯧─ 혀를 차자, 세 여자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있는 곳은 제국 외곽, 변두리에 위치한 도시, 이아지나.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토양도 적당히 비옥하고, 근처에는 항구도시, 광산맥 같은 것들이 있어, 크게 부유하지는 않아도 영지민들이 하루하루 배 굶을 걱정은 하지 않는….
그러니까, 줄여 말하자면 살기 좋은 도시였다.
그리고.
“이런 곳에 숨어 있을 줄은.”
질렸다는 듯 중얼거리는 데이지. 콱! 그녀의 발길질이, 건물의 그림자에 박혔다.
그렇다.
이아지나에 도착한 우리는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어림짐작으로만 알고 있던 노스페라투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기 위해서였다.
분명 이 부근이었으니까.
여행길에서도 부지런하게 연구한 덕에, 블랙우드의 영지에서 사용했던 대마법의 범위와 효과를 줄이는 식으로 개량하는 데에도 성공해서, 조사는 수월한 편이었다.
그 결과, 조사에 착수한지 일주일 째. 우리는 성과를 얻었다. 성과 수준이 아니라, 그렇지.
답을 찾아냈다.
노스페라투의 본거지.
홍혈선서의 성채. 피를 머금은 붉은 박쥐들의 영원한 요새가, 바로 이곳, 도시의 밑바닥── 그림자 속에 있었다.
“그림자 속에 거꾸로 매달린 세계를 구축해뒀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체페슈의 기록실에서조차, 노스페라투가 아예 이면세계에 자신들의 본거지를 차려뒀다는 기록은 없었다.
오히려 기록상에서는 노스페라투가 대륙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만 되어 있었을 뿐.
그렇다면, 그들이 본거지를 아예 이주해버린 것이리라. 그것도 멀지 않은 과거에.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는 잘 아는 모양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몰래 숨어있는 거겠지요.”
“가증스러운…….”
증오심, 분노, 경멸……. 세 여자가 각각의 감정을 짓씹듯 뱉어냈다. 너무 과해 스스로 잡아먹힐 지경이면 모를까, 이 정도라면 적절한 각성제가 될 것 같아 잠깐 지켜본 다음.
짝!
박수를 쳐 주의를 끌었다.
“여기서 너무 열내진 말고. 어떡할까.”
“…곧장 진입할까요?”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물러나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에 들어가는 게 맞나?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우리가 저들을 관측한만큼, 저들 역시 우리를 관측했을 터.
시간을 주기보단, 빠르게 끝내는 편이 낫다.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후우우….”
긴장한 듯, 대답 대신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자세를 잡은 데이지와, 딱딱하게 굳은 채 대답하는 아델라.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푸는 에일린.
“여러분.”
그때였다. 아델라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준비하던 우리의 눈이 그녀에게 몰렸다.
“이 싸움이 끝은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이번 싸움이 앞으로의 큰 전쟁으로 넘어가는 큰 관문이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답니다.”
과연, 아델라의 말은 조금 뜬금 없긴 해도, 사리에 맞는 말이었다.
현재 노스페라투의 영역 안에는 시트리가 있을테고, 그 외에 다른 악마 역시 강림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확실히. 시트리 정도의 대악마까지 격살하고 나면, 그 뒤는 전쟁밖에 없기야 할테지.”
마왕도 더 이상 손 놓고 있진 않을 거다. 그때쯤 되면 나 역시 내 기억을 찾고, 기억을 잃기 전의 경지, 그 너머까지 도달해 있을 터.
이건 추측이 아니라 일종의 확신이었기에, 마찬가지로 그때가 됐을 때 마왕─ 바알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오리라는 확신 또한 들었다.
마왕.
그 무거운 이름에,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손을 뻗어 에일린과 데이지의 손을 마주 잡았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몸이 조금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휴우. ……고마워요.”
“저는 마왕도 무섭지만, …응, 역시 노스페라투라는 이름이, 저한테는 좀 더 와닿네요.”
부드럽게 웃는 에일린. 너스레를 떠는 데이지. …확실히 데이지는 트라우마의 대상인 쪽이 심정적으론 크게 와닿는 거겠지.
“……그러라고 꺼낸 얘기는 아닙니다만.”
조금 심통이 난 얼굴로 우리를 보던 아델라가, “엣흠.”하고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었다.
“제 말은 그거랍니다. 오늘 이후, 대륙은 격변하겠지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니 미리 말해두고 싶었어요. 소녀는 이 싸움이 끝나면──.”
“잠깐만.”
“예, 뭔가요 공작? 소녀의 말을 중간에 끊어버리다니, 솔직히 조금 기분이 나쁘지만 공작이니까 용서해드리겠어요.”
“불길해지니까, 싸움이 끝나고 난 뒤의 얘기 같은 건, 말 그대로 싸움이 끝난 뒤에나 하지.”
“……공작, 그런 걸 믿는 타입이었어요? 처음 알았어요.”
딱히 믿지는 않지만. 안 믿어도 그건 너무 불길한 대사잖아. “해치웠나?” 급이라고.
“아무튼 됐다. 우리가 농담따먹기를 한 덕분에 긴장도 꽤 풀렸어. 에일린, 아델라의 손을 잡아줘라. 이제 진짜 들어갈 거니까.”
검을 쥔 데이지와 달리 남은 한 손도 여유로운 에일린이 아델라와 손을 잡았다.
확실하게 서로 손을 마주잡은 것을 확인한 후, 그림자를 움직였다.
스륵─.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박리해둔 나의 그림자와 도시의 그림자가 겹쳐지고,
──화악!
“손 놓지마!”
내 외침과 함께, 일행의 몸을 칠흑의 장막이 뒤덮었다.
*
세계는 잘 만들어져 있다.
여신이 공들여 만든 세계, 아득한 빛, 태초에 탄생한 두 여신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마스터피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세계다.
혼돈, 무질서, 파괴…, 아무것도 없던 세계에 여신의 권능으로 흐름과 질서가 생겨났으며, 뒤따라 질서를 수호하는 사도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다만 여신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세상을 만들어내고 조율한 이들이어서,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너무나도 슬프다고.
그래서, 여신들은 직접 무대에 내려오기로 했다.
아득하게 드높은 권능을 포기하고, 대신 태양과 달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다.
그것만으로도 대륙의 모든 지성체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이 두 여신을 칭송하였으니, 여신들은 무척 기뻤다.
다만.
그렇게 무대 밖의 존재에서, 무대 위의 존재로 스스로의 격을 격하시킨 두 여신은, 언제나처럼 무대의 밖에서 세계를 조율하는 힘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계는 잘 만들어져 있으니까. ‘보는 눈’을 내려놓아도, 별일 없을 거라고.
‘마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