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영애의 동생이 되었다-188화 (188/199)

〈 188화 〉 노스페라투 (14)

* * *

그림자 속 세계, 노스페라투의 성채에 진입한 우리는, 손을 잡은 덕분인지 다행스럽게도 누구 하나 떨어지지 않는 데에 성공했다.

“다들 괜찮나?”

“네. 양호합니다.”

아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누구보다 다친 사람의 구분은 잘 해낼테니 믿어도 되겠지.

그 말대로, 에일린과 데이지 역시 큰 데미지는 없다는 듯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곳이, 노스페라투의….”

감회가 새롭다는 듯 중얼거리는 에일린.

생각해보니 오타쿠였지, 얘. 시트리랑 조금 겹치는 듯 안 겹치긴 하지만, 여하튼 노스페라투도 덕질 포인트인가?

“그렇다고 힘 빼진 마라.”

“안 그러거든요?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그럴 리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다.

밤을 지배하는 일각, 노스페라투라면 모를까. 마왕과 계약한 대륙의 배신자 노스페라투라니.

아무리 지식에 눈이 돌아가는 에일린이라도 용서 할 수 없는 선은 있을 터.

그렇기에 그녀가, 영웅이 될 운명을 품은 이 중 하나인 거겠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공기가 기분 나빠요.”

“확실히….”

데이지의 중얼거림. 아델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동의했다.

“겉으로 보기완 달리, 대기 중의 마나가 무척 지저분해요.”

고개를 끄덕인 에일린. 마나의 흐름에 있어선 이 자리의 누구보다 민감한 재능을 타고난 그녀가, 불쾌하단 듯이 손을 휘저었다.

“아니, 지저분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뭔가 알겠어?”

“……마나의 형태가 이상해요. 이런 게 자연적으로 생길 수는 없어요, 절대.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흐름을 뒤틀어 놓은 듯한…….”

대충 뭔지 알겠군.

마왕─ 바알의 강림을 위한 의식의 준비 때문일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올 때, 넘어가고자 하는 존재의 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혼이 크면 클수록, 차원의 벽을 넘을 때에 가해지는 압력과 금제는 강해진다.

그것이 대다수의 악마들이 본체가 아니라 분신만 보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본체로 넘어가봤자 전력을 쓰지도 못하니까. 본신의 힘을 모두 쓸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분신을 보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랜드」가 되면, 분신을 죽이는 것으로 차원 너머의 본신까지 타격을 주다 못해 심하면 죽이는 경우도 있을테지만.

「그랜드」가 흔한 존재도 아니고.

그 외에는 일전에 대수림에서 아이리스와 함께 했던 합동기로, 차원의 벽을 열어서 본체에 타격을 직접 입히거나.

달리 말하자면, 그런 편법을 쓰거나, 정말 말 그대로 초월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 한 분신인 악마를 죽인다 해도 본체에는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아마, 마왕과 직접 거래를 했을 노스페라투의 본성인 이곳에도, 악마가 꽤 있을 터.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편법’이, 여기에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마왕 강림을 저지함과 동시에 성가신 악마를 단숨에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

“…아직 마왕 강림까진 멀었다. 늦지 않았어.”

우선, 일행을 안심시켰다.

“……주인님.”

첫째, 데이지.

“데이지. 불안해지면 내 생각을 해라.”

“…주인님이 옆에 있는데도요?”

“옆에 있을 땐 내 얼굴이라도 보고.”

“응. 좋아요.”

데이지는 「경지」를 앞두고 있다.

아마 한 발자국. 좀 더 나아가서 두 발자국 정도만 내딛으면,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르리라.

처음엔 생각도 않았다. 마스터라는 것은, 손쉽게 몸에 남은 희미한 잔재만으로 도달한 내가 말하기엔 참 그렇지만서도,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으니까.

대륙은 넓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는, 시대의 황금기라 불릴만큼 재능 넘치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럼에도 현재 대륙 전체를 통틀어, ‘마스터’라고 불릴 수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세자릿수는 어림도 없다.

기껏 해야,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안팎. 인간 외의 존재를 포함한다면 그 수가 훨씬 늘기야 할테지만.

그 중에서 드래곤을 제외한다면, 결국 그래도 백 명이 되지 않는다.

내로라하는 대륙의 무가에서도 마스터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예가 바로 블랙우드와, 서열전 때 안나와 에일린을 도와 악마를 상대했던 루펠드 후작과, 로베르 백작.

이름난 무가의 가주들이면서, 그들은 결국 삶의 전성기가 지나 일생을 바쳐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의 끝에 닿았음에도, 지평선을 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 마스터의 경지를, 데이지가 넘보고 있다.

수없이 많은 고수들이 훔쳐보지조차 못한, 경지의 지평선을 두 눈에 똑바로 담은 채, 조금씩이나마 나아가고 있다.

계기는 얼마 전 블랙우드에서의 일.

그때의 일이, 데이지의 속에 잠든 알을 깨운 듯 했다.

+++++

특성: 「■■의 마음(A)」

+++++

이것이, 바로 그 상징.

비록 꽃봉오리를 피우는 것은 내가 아닌 데이지가 해내야 할 일이지만.

나는 내 사랑스러운 메이드를 믿는다.

“저, 저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줘요?”

둘째, 에일린.

“데이지처럼 내 얼굴이라도 봐라.”

“……잘 생긴 것도 맞고, 얼굴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맞는데, 조금 짜증나요.”

“그럼 보지 말든가.”

“이익….”

“대신 손이라도 잡아주마.”

“…….”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마주 잡은 두 손이 긴장으로 꼼지락 대는 것을 느끼며, 작게 웃었다.

솔직하지 못한 여자.

처음 만났을 때의 소심한 기색은 없어졌지만, 대신 그 자리를 솔직하지 못하면서도 은근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여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하지 못한 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던 것 같지만. 그래도 그때는 내 눈치를 살피긴 했었는데. 좀 무서워 했다고 해야하나. 동경하는 눈빛이었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이 편이 좋긴 하다.

에일린 프리드리히.

대륙 최고의 마법사. 나 같이 어중간한, 한 우물만 판, 마법사라기보단 ‘마법사용자’에 가까운 놈과 달리, 진정한 그랜드 아크 메이지의 자질을 지닌 여자다.

유일무이.

현존하는 마법 체계에 소속된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그렇게 될, 미래의 대마법사.

아직은 조금 이르긴 하나, 데이지와 마찬가지로 한두 걸음만 내딛으면 순식간에 한계를 부수고 날아오를거다.

정작 본인은 바짝 성장해 비슷한 경지까지 따라붙은 데이지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것 같지만.

애초에 기사와 마법사다. 분야부터가 다른데 왜 경쟁심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왜 절 보시어요? 저는 필요없답니다.”

그리고 셋째는, 아델라.

“나도 안다.”

“…….”

“왜 때리는 거냐.”

“그냥요. 짜증이 나서.”

이 녀석은, 당장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까 생략.

“그러니까 그만 때리래도.”

“불순한 생각을 한 공작을 계도하는 거랍니다.”

“그런 적 없다.”

도움이 안 되는 건 사실이잖아.

“넌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라, 진짜. 혼자 떨어지면 못 지켜준다.”

“저를 이런 곳까지 데려왔으니까 알아서 책임지셔요. 절대 안 떨어질 겁니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아델라는 현재 전투능력이 전무한 상태이니까.

‘절대 떨어지지 마라’ 같은 발언들 때문인지, 방금까지만 해도 훈훈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던 두 여자의 시선이 무척 날카로워졌다. 등이 조금 따끔거릴 정도로.

이 꼬맹이 숙녀랑은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애초에 미성년자잖아.

‘……아, 그러고보니.’

미성년자이긴 한데.

……이긴 한데.

나는 계획을 다시 떠올렸다.

당장의 싸움에서야 아무 도움도 안 된다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 싸움이 끝난 후의 그녀는 가장 중요한 파티원이 된다.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을 크리스티나가 성녀의 대체제이긴 해도, 역시 하위호환 느낌이 강하다.

가챠게임으로 따지자면, 아델라는 후반에 나오는 한정 5성, 크리스티나는 초반부터 나오는 초기 통상 4성 정도.

둘 다 동료로 삼아서 나쁠 건 없지. 특히 파티원을 구성할 때 인원 제한이 없는 현실이라면 더더욱.

마왕과의 전쟁으로 대륙 전체가 전장으로 변했을 때, 아델라가 최전방에서 싸웠다면, 크리스티나는 후방의 안정과 지원을 맡긴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배치이리라.

다만 그것을 위해 앞으로 4년을 더 기다릴 순 없기에, 편법을 쓰기로 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아델라를 데려온 것이다.

위험 요소가 없진 않지만,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

“에일린. 준비 됐나?”

그걸 위해, 철저하게 계산을 거듭해 최적의 파티를 구성했으니까.

“네.”

불길한 공기에 불쾌한 듯 미간을 일그러뜨렸던 에일린이, 내 호명에 답했다.

블랙우드에서 했던 것처럼, 내 눈을 빌려, 내게 흐름을 맡긴 채, 내 인도에 따라 술식을 그린다.

주변의 마나가 요동친다. 불온한 움직임. 짙은 농도의 마나가 우리를 감쌌다.

예상 범위였다.

저 너머에서 강림을 준비하고 있을 마왕을 위해 조성된 환경이,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편이 오히려 이상하다.

에일린의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요동치는 마나를 강제로 제압하고, 술식을, 새로운 법칙을 그려냈다.

“──나중에, 백 배로 돌려받을 거예요.”

시공간을 뒤틀어서, 이 공간에 하나의 ‘법칙’을 새긴다.

노스페라투의 성채. 마왕과 손 잡은 배신자들의 본거지. 가장 위험한 상대는, 서열 12위의 대악마 시트리.

그걸로 끝인가?

아니다. 그 외에도 악마의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시트리는 나 혼자서 상대한다고 쳤을 때, 다른 악마들은? 노스페라투의 장로들은?

차라리 한꺼번에 상대한다면 괜찮을 거다. 하지만 이곳은 놈들의 본거지였다. 어떤 방법을 써서 일행을 분리할지 모른다.

그래서 에일린과 함께 만들어낸 일회용 권능.

마법진을 중심으로 결계를 만들어낸다. 한 번 결계 안에 들어온 순간, 외부에서는 그 어떤 방법을 써도 결계 안의 사람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

반대로, 내부에서는 결계 안에 들어온 침입자를 밖으로 추방할 수도 있다.

결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다섯.

결계 내부의 인원이 다섯 명이 된 순간, 결계의 내외는 완전히 박리되어 별개의 세계로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파티가 총 네 명인 것이다. 단순한 전투인원을 더 바랐다면 데려올 수 있었을테지만, 이 권능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적을 포함해서 다섯 명 뿐이라.

그보다 줄일 수는 없었다. 늘릴 수도 없다.

오직 지금만을 위해 만들어낸 대마법. 블랙우드에서 시전했던 대마법 역시, 에일린이 시공간 마법에 실전으로 적응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기도 했다.

에일린이 없었어도 까마귀들로 어떻게든 해결 했을테니.

그야말로 마스터의 경지.

그 너머, 「그랜드」 급에서나 보일 법한 권능의 재현.

“──크음.”

“…주인님.”

속이 뒤틀렸다. 데이지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다가왔다.

아무리 에일린의 재능이 유례가 없을 정도라고 해도, 거기에 내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다.

“괜찮아.”

“하지만, ……알겠습니다. 무리하시면 안 돼요.”

그 기적을 만들어낸 대가는, 그녀와 링크한 내가 대부분 받아내는 중이다.

내장이 뒤틀린다.

무리는 아니다. 에일린이 직접 받아냈다면 아마 시전 직후 죽었을 거다. 나는 괜찮다. 심장이 터져도, 몸의 내부가 갈기갈기 찢어져도 죽지 않으니.

조금 아프긴 하지만.

“……그래.”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는 의도한대로다.

가자.

*

미친년.

걸으면 걸을수록 느껴진다.

꽤 여러 악마의 기운은 짙게 느껴지는데, 정작 남아있는 악마가 없다.

그러니까, 흔적만 메아리처럼 남은 채, 정작 느껴져야 할 본체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못해도 열 개체, 많으면 스물 이상의 악마가 현계한 흔적이 남아있는데, 정작 느껴지는 기척은 셋 이하.

게다가 꽤 내부 깊이 진입했는데, 악마라곤 코빼기도 안 보인다. 나타나는 건 노스페라투의 떨거지들 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친년, 진짜.”

시트리가 모조리 제물로 바친 거다.

자신을 빼고,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악마를 전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