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과거 : 레티시아 (2)
* * *
어두운 밀실.
체페슈의 저택, 그 지하감옥. 음울한 공기와,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길 없어 보이는 아득한 어둠 속에서, 낮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칼렛.”
“예.”
그가 바로 나의 아버지다.
그람.
무능하면서, 자존심은 강한 나의 비루먹을 아버지.
그가 나를 불렀다.
“죽여라.”
“……예.”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살의 대상은, 체페슈의 저택에서 일하던 메이드.
……본디 블랙우드 외의 인간은 가급적 저택에 들이지 않던 체페슈에 인간 여성 메이드가 들어오게 된 지는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해가 지날수록 위태해지는 체페슈의 입지를 살리기 위해, 그람이 제국의 귀족들처럼 저택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다.
‘기껏 선택한 게 남들을 따라하는 거라니.’
누구보다 고고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 특별한 모습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국에, 제국 귀족 중 안 하는 이가 없는 ‘고용인을 늘려 가문의 위세를 보여주기’ 같은 걸 택한 시점에서 그람의 처참한 안목이 엿보인다.
여지껏 고용인 하나 없이 이 넓은 저택을 지키며, 천 년간 군림해오던 체페슈가 이제 와 인간 출신의 메이드를 대거 고용한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무언가 달라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꼴이다.
‘미친 짓이라고 말려도 봤다만.’
돌아오는 건 혈족의 힘으로 짓누르는 강제. 덕분에 뇌가 압박으로 터지면 어떻게 되는 지 겪어봤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금.
결국 그때 대거 들여온 메이드 중 한 명이, 노스페라투의 세작이라는 걸 내가 알아낸 덕분에.
이 싸늘한 지하감옥에 있게 된 것이다.
“…스칼렛. 뭐하고 있는 게냐? 어서 죽이라니까.”
생각이 길었다.
물끄러미, 곧 죽게 될 여인을 지켜보던 나를 그람이 보채기 시작했다. 더 늑장을 부렸다간 저 성질머리가 곧 나를 피곤하게 할 터였으므로, 나는 그림자를 움직였다.
“읍, 으으읍! 으으읍─!”
메이드가 발버둥을 쳤다.
두 눈을 파낸 지 오래인데, 어떻게 그림자가 움직였다는 걸 느낀 걸까.
어쩌면 육감 같은 것이 발달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노스페라투에서 체페슈에 세작으로 꽂는 데에 뽑힌 거겠지.
유감이다.
스파이만 아니었다면 그 능력, 내가 잘 써먹어줬을텐데.
서걱──!
피가 흩뿌려졌다.
털썩. 묵직한 살덩이가 생명을 잃고 쓰러지는 소리.
“확실하게 죽은 것이냐.”
“…….”
“뭐, 됐다. 네가 이런 일을 허투루 하진 않을테니.”
뒷정리는 네가 하거라,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그람이 감옥을 빠져나갔다. 사람을 잡아오는 것도,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문하는 것도, 죽이는 것도, …그리고 그 뒷처리마저도, 저 남자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아들인 내게 떠넘겼다.
「……도련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됐다.”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까마귀가 아뢰었으나, 나는 그것을 물렸다.
어차피 다음 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는 내게 또 일을 일임하리라. 흡혈귀 주제에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 모양이지.
이것도 그 일환이냐. 제국 귀족 따라하기.
손에 피를 묻히는 더러운 일은 아랫것들에게 시키는, 추잡한 행태 따위를, 그저 그 알량한 자존심과 자리를 위해 흉내낸단 말인가.
“…떠날까.”
「예? …도련님, 그건.」
내 중얼거림을 들은 ‘까마귀’가, 당황하여 나를 만류했다.
나도 안다. 대부분의 ‘까마귀’들이, 그람이 아닌 내게 충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그 충성심이 어디까지일까 의문이 들어 아직까진 거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말을 실언인가. 언제든 나를 배신할지도 모르는 수하의 앞에서 약점이 될 만한 말을 하다니.
“…….”
「……잊겠습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도, 부디. ……아가씨를 생각──커흑?!」
음.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레티시아를 언급하니까 나도 모르게. 나는 손짓해 그림자로 옥죄던 녀석의 목을 풀었다.
「큽, 쿨럭…. 죄송합니다. 감히 존귀한 분을 입에 담았습니다.」
“그래. ……네가 이번 일을 잊기로 한 대신, 나도 네 실수를 눈 감으마.”
내게 부복한 까마귀가 다시 그림자 속으로 침잠했다.
─스칼렛. 괜찮니?
괜히 떠오르는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그만 허탈하게 웃고야 말았다. 그래, 내가 레티시아를 두고 떠나긴 어딜 떠난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내 손짓에 일어난 그림자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를 집어삼켰다. ‘까마귀’와 같이 그림자 속으로 침잠하는, 한때 살아 숨 쉬었던 인간.
‘아무 감흥도 없군.’
그저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꺼지는 생명이다. 그림자가 목을 베어내고, 그 시체를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처음에는 분명 밤 중에 울기도 했었는데.
─울지 마. 누나가 있잖아? 자, 누나 품에서 울어도 돼. 착하지.
그렇군. 그때도 레티시아가 밤새 곁에서 위로해줬었지.
….
이토록 간단하게, 하나의 삶은 저물고야 만다.
나는 이토록 간단하게, 삶을 수확할 수 있었다.
내 손을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아무 감각도 남지 않은, 살인의 감흥이라곤 일말의 여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 유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
시간이 꽤 흘렀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나도 레티시아도 모두 여전히 체페슈라는 이름에 얽매여 있으니.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스칼렛!”
“누님. 그렇게 막 달라붙지 말라니까.”
덥석.
내 등에 와락 안긴 레티시아의, 성숙해진 몸매를 부각시키는 살덩이 두 개가 꾹꾹 와닿았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거지.
“체페슈의 영애가, 아무리 남매라지만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거야.”
“뭘, 남들 시선은 왜 신경 써? 나한테 집중해, 스칼렛!”
고집 부리기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이곳은 체페슈의 저택이고, 우리 남매가 달라붙어 있는 걸 본다고 해서 뭐라 할 외부인은 없다.
다만.
“아버지가 보시면 화내실걸. 뭘 놀고 있는 거냐면서.”
“…아.”
그제야 레티시아가 슬쩍 떨어진다. 아쉬움 반, 체념 반, 복잡한 감정 뒤섞인 표정에 괜히 마음이 쓰인다.
“…할 거면 방에 가서 해, 방에 가서.”
“…그럴까?”
배시시 웃는 레티시아.
다만, 뭐라고 할까. 성애적인 감정보단 확실히 유일하게 챙겨주는 가족에게서 애정을 갈구하는 느낌이라 흑심이 전혀 안 느껴진다.
그냥 안쓰러운 기분.
여하튼 요즘은 이런 날들이다. 밤 중에 활동하는 흡혈귀의 생체 시간에 맞춰, 레티시아 역시 심야에나 활동하니까.
어둑어둑한 밤, 달빛 아래서 서로 장난을 치거나 하며,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낮에는….
레티시아와 달리, 체페슈의 가주 부부로써 활발하게 낮에 활동하는 양친과, 그들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인간 메이드들이 돌아다니니까.
‘……속 메슥거려.’
괜히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댄 레티시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응….”
절대 그 년놈들 앞에서는 레티시아랑 이렇게 못 있지. 뭐하는 거냐고, 노닥거릴 시간이 있으면 어서 경지를 높이라며 닦달하는 양친이나…….
메이드들한테는 별 다른 감정이 없긴 하나, 어차피 하나 같이 아버지란 작자의 손아귀에 떨어져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이니만큼.
조심해야 할 것은 마찬가지이다.
“스칼렛.”
“응? 왜 불러, 누님.”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레티시아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뭐가 또 그리 걱정이 되길래. 고개를 돌려 눈 마주해주니, 그제야 떨리는 눈동자가 진정된 레티시아가 입을 열었다.
“…지금 나 정도면, 아버지도 만족하시지 않을까?”
“안 돼.”
“……그래?”
“응. 안 돼. 그러니까 괜히 아버지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마.”
“으응. …아버지는 언제쯤 나를 인정해주실까. ……이렇게 힘든데.”
표정이 어두워진 레티시아. 괜히 가슴 속이 따끔거리는 것을 억누르며, 다시 금색 머리카락을 사르륵 쓸어내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었다.
아주 합격점은 아니더라도, 지금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럭저럭 납득할 정도는 될테니까.
‘안 되지, 그렇겐.’
다만 그렇게 레티시아를 선보이게 됐을 때. 약간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만족한 체페슈 부부가 과연 그녀를 어떻게 만들까.
몰라도, 영 좋은 꼴은 아니겠지.
좋게 생각해도 망가지면 안 되는 귀한 도구쯤일 것이다.
언제까지고 레티시아의 수준을 숨길 수도 없으니, 멀지 않은 미래에 들킬테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최대한 레티시아의 경지를 끌어올린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녀가 마스터쯤 되면 아무리 가주라도 쉽게 통제할 수 없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내 말 믿지?”
“응……. 믿지, 당연히.”
씁.
아무리 내가 최대한 애정결핍과 인정욕구를 채워준다지만, 결국 나는 동생일 뿐, 그녀의 부모가 될 순 없다.
그러니 레티시아가 서운해 하는 것도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아프다, 역시.
“누님.”
“응….”
“내가 누님은 꼭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웃어줘.”
“……어?”
뭐라고 해야할까.
분명 나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는데도, 그래도, 여전히 쓰레기 같은 부모에게 매달리는 모습이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해서.
그래도 역시 이런 것들을 말하기는 부끄러우니까.
동시에, 레티시아의 속이 얼마나 상처가 곪아 있을지도 알고 있으니.
그러니까 부끄러운 속마음을 잘 포장해서, 다짐하듯 말했다.
그녀에게 하는 약속 같지만 실제로는 나와의 약속.
반드시 지키도록 맹세한 언약.
“……그게 뭐야, 정말.”
레티시아가 작게 웃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정 안 되면, 내가 가주 찬탈이라도 하면 되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