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과거 : 데이지 (4)
* * *
스칼렛을 만나지 못하게 된 후로, 시간이 꽤 흘렀다.
대륙은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로건이 데이지에게 말해주었다.
데이지에게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으나,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로건은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지’하고 말했다.
“……스칼렛 님.”
찾는 것은 동경하는 영웅의 이름.
자신의 방.
꼭 자신을 닮은 분홍빛으로 꾸며진 침대 위에서 풀썩 엎드린 데이지가 입을 오물거렸다.
벌써 못본 지 몇 년째다.
“하아아아아…….”
보고싶다!
옛날엔 그래도 달에 한두 번은 봤었는데, 이제는 과거의 기억을 외롭게 추억하는 수밖에 없는 와중이다.
“그래도 절대 허락 못 받겠지…….”
이제 십대 중반에 접어든 데이지는 특유의 조숙함 덕에,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좋지만은 않은 상태.
다만 혼란에 비해 대륙 전체에 피해 자체는 미미하다.
그게 모두, 스칼렛 체페슈 덕분.
그런 상황이니 보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차라리 나이에 걸맞게 철이 없었더라면 모르겠지만.
“어떻게 그러냐구.”
데이지는 조숙한 편이었다.
특유의 재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스칼렛과 주기적으로 만났다는 특이한 환경으로 인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소녀가 또래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들보다는 확연히 정신적으로 성숙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민폐가 될 게 분명하니까 괜히 만나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역시.
“으, 보고 싶다아아아…….”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거다.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왕자님이라도 만난 것인줄 알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품은 동경이다. 금방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감정이, 묘할 정도로 오래도록 데이지의 가슴 속에 남아 여전히도 타오르고 있었다.
다만.
그러니까.
“……흠.”
자세를 고쳐 앉은 데이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나는 스칼렛 님을 어떻게 생각하구 있는거지?”
조숙하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
그러니까, 결국은 어린아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제 갓 십대의 중반에 접어들어,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올랑말랑 하는 데이지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분명 보고 싶은 건 맞다.
하지만 그게 왜 보고 싶은 걸까?
동경하니까?
정말로 단순히 동경하는 게 맞나?
……설마?
“에이, 설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데이지는 고개를 휘휘 젓는다. 설마 자신이 스칼렛 님을 그렇게 오래 봐왔는데, 연모 같은 감정은 아닐 거라고.
“…아닌가?”
이하 반복.
“…으으으!”
자기 자신조차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데이지의 발이 동동 굴렀다.
차라리 한 번 만나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떻게 만나지?
……항상 만나던 곳에 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어떻게 가.
보통은, 이쯤에서 생각을 접는다.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실행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괜한 민폐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포기하게 된다.
스칼렛은 데이지가 나이대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누구보다도, 스칼렛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데이지가 조숙해지는 데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스칼렛이었으니까.
그 미묘한 어른스러움을, 스칼렛은 통찰해냈다.
나이에 어울리는 어린애처럼 굴지만, 그 속내가 어디까지나 스칼렛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어서 연기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스칼렛은 굳이 지적은 하지 않았지만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로건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 이상의 조치를 굳이 취하지 않았다.
어른스러운 데이지라면,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잘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스칼렛은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봤자, 데이지는 이제 겨우 십대의 여자아이이고.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일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사실을.
“일단 가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데이지, 방년 14세.
가출.
*
*
*
분명 기억나는대로 잘 도착했었는데.
여긴 어디지.
데이지의 시야가 흐릿하게 뜨였다.
……아.
‘납치당했구나.’
상황 판단은 빨랐다. 무가(?家)의 핏줄이,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만들어주었다.
납치. 데이지는 괜히 그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연 없이 살았기 때문일까.
블랙우드가, 그리고 스칼렛이 지켜주었던 덕분에.
그렇다면 지금은?
“……이상, 해.”
데이지도 바보는 아니다.
납치의 가능성…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론은 ‘가능성이 없다’였기에, 데이지는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유는, 작금의 대륙이 혼란스럽기 때문이었다.
혼란스럽다면 납치의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고 할테지만.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도적단?
데이지의 수준이라면 괴멸도 어렵지 않다. 살인을 해본 적은 없으니 변수야 있을테지만.
거기다.
‘혼란을 틈타 움직이는 도적단 같은 게, 도시 안에서 나를 납치할 수 있을 리 없는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오히려 영지의 방비나 치안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막장인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 대륙의 혼란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모두 스칼렛이 활약한 덕분에.
그러니 목적지에 도착한 시점에서 납치 같은 걸 시도할 도적단 따위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블랙우드의 상징 같은 분홍빛 머리색과 눈, 거기에 가문의 인장까지.
일단 도시 안에 들어오고 나서 혹시 그녀가 실종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우선 블랙우드가 나설 것이며.
체페슈도 움직여줄 터.
그것을 모르는 귀족은 없으니, 데이지의 안전은 보장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무력은 물론이고.
블랙우드나 체페슈가 나서도 두려워 하지 않을,
그런 존재가 세상에 있을까?
……아.
“으으응? 일어났구나?”
데이지의 피부 위로 소름이 내달릴 때.
히죽히죽, 그런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들뜬 목소리가 데이지의 귓가에 들려왔다.
하이톤의,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여성의 목소리.
검은 머리카락.
창백한 피부.
불길한 기운…….
그리고 붉디 붉은 눈동자가, 그것이 흡혈귀임을 짐작케 했다.
“하아아아아. 블랙우드…… 원래라면 절대, 절대절대 건들지 않았을 소재지만……. 흐흥, 어쩌겠니! 이제는 본가에서도 추방당하고, 그럼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도박을 해야겠지? 개좆같은 노스페라투! ……그래도 뭐, 내가 백년 안에 뭔가 성과를 낸다면, 다시 받아주겠지? 응? 애기야, 너두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영문 모를 말만을 느닷 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한 흡혈귀가, 데이지의 옆으로 다가왔다.
“나이도 어리고. 으으으응, 일단 저질러버리긴 했는데, 역시 무섭네에. 그래도 난 운이 좋아. 때마침 본가의 눈을 피해 도망쳐온, 인적도 거의 없는 한가한 시골 동네에서, 혼자 떨어진 블랙우드의 핏덩이를 발견할 줄이야!”
이건.
그러니까, 오판이었다.
스칼렛과 함께 만나던 곳이,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낸 시골이었던 것이, 하필이면, 노스페라투에서조차 추방 당한 미치광이가 새롭게 고른 보금자리였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애초에 그런 걸 누가 생각한단 말인가.
이 드넓은 대륙에서, 체페슈를 겁내지 않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잃을 거 없는’ 노스페라투의 추방자가 하필 이런 곳에 있을 거라고.
“……끅.”
데이지가 혀를 깨물었다. 비릿한 피냄새에, 아릿한 고통이 생경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은 바짝 들었다.
다만, 상대 역시 무엇보다 혈액에 민감한 흡혈귀였기에.
“스으으으읍. 으으응? 뭐지, 뭐지. 너, 혀를 깨물었구나? 왜? 무서워서? 그래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혀를 깨문 거야?”
달콤한 향기를 쫓듯 바짝 데이지에게 밀착한 흡혈귀가 히죽 웃었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미친년.
데이지는, 그러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다 나 죽으면, 스칼렛 님, 상처 받으실텐데.’
떠올리는 건 한 남자의 모습.
스스로가 생각하고도 바보 같다. 이럴 때라면, 어떻게 살아남을지, 아니면 가족에 대한 걱정 같은 게 먼저 떠오르는 게 당연할텐데.
이런 곳에서 죽어버리는 것보다도, 그로 인해 상처 받을 남자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고 무섭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나온 거니까.
그 분은, 책임감을 느끼시겠지.
그건 역시 싫다.
나 때문에, 그런 분이─ 책임감을 느끼고, 상처 받는다니, 그런 건 죽어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은 영웅이니까.
영웅에게 상처를 주는 건, 나쁜 사람이나 할 짓이니까…….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떡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지.
그야말로 눈 앞이 막막해서, 아득한 기분이었다.
“좋아. 시간도 없으니, 빠르게 블랙우드의 피를, 그 속에 담긴 체페슈의 인자를 받아가보실까!”
이대로 죽어버리고 마는 걸까.
폐만 끼치고서.
한 순간의 잘못 된 판단으로, 다시는 당신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바보 같은 녀석.
귓가에 파고드는, 그립고도 낯익은 목소리.
소녀의 의식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긴장이 탁 풀림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은 것은, 누구보다 동경하는,
아니.
연모하는, 한 남자의 모습.
*
“자, 여기.”
“이건?”
“항상 데이지를 받기만 했으니, 이번엔 내가 주마.”
“으응. 머리핀이네요.”
“그래. 항상 하고 있어. 그걸 착용하고 있으면, 네가 언제 어디서든, 위험할 때 내가 찾아갈테니.”
“거짓말.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가능하다니까.”
정말로.
당신은 나의 영웅.
나의, 주인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