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권 사실은 이거 이세계물입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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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
귀에서 시끄러운 이명이 울리고, 머리는 깨질 것같이 아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머릿속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심장마비? 호흡곤란?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아악...!"
"칼리! 괜찮아?"
아름답게 빛나는 금발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내 시야에서 일렁거린다.
빨간 끈으로 양쪽이 묶인 양갈래 머리 스타일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처음 보는 미소녀가 내 몸을 붙잡으며 굉장히 감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상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은데?
"누구, 세요...?"
"...에?"
나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굉장히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금발 적안 트윈테일 미소녀가 내뱉는 말도, 내가 방금 내뱉은 말도, 모두 한국어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내가 아는 어떠한 언어와도 닮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아, 방금 그 말은 실수였네.'
저 소녀가 부르는 칼리라는 사람은 분명 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고, 또한 일어났다는 것에 순수하게 감동한 것을 보면 소중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사람이 자신에게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 상대의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서 엄청 괴롭겠지.
"나, 리아야. 로자리아. 로자리아 드 마기우스! 칼리, 정말로 내가 기억이 안 나?"
거의 울먹이는 수준으로 물어보는 로자리아의 모습에 나야말로 울고 싶어졌다.
아니 시발 나는 웬 미친 새끼가 이모티콘으로 약 올리더니, 꺼지라는 말 듣자마자 쓰러진 거라고.
왜 정신 차리자마자 이딴 상황이야?
"아악...!"
"칼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통이 심해지더니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져 왔다.
그리고 천천히 통증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이상한 기억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방금까지 나를 위해 울고 있던 로자리아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는 이 몸의 주인에 대한 기억도 들어 있었다.
"이런 미친...."
글라디스 가문의 독자인 칼리 흐 글라디스.
그것이 지금 내가 빙의한 몸 주인의 이름이었다.
아니, 빙의보다는 지금의 내가 '칼리'고 '김시우'로 살았던 기억이 전생의 나라고 생각하는 편이 조금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왜냐면 지금 '김시우'의 자아가 더 강한데도, '칼리'로 살아온 기억과 감정이 꽤나 진하게 느껴지거든.
아까 있었던 사고로 인해 죽을 뻔하면서, 전생인 김시우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보는 편이 그나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자아가 칼리보다는 김시우로 기울고 있는 것은, 거의 20대 후반에 도달해 가던 김시우와는 다르게 칼리는 이제 갓 19살이기 때문으로 보였다.
거의 10년 가까이 기억의 분량이 부족하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아니면 뭐, 정말로 김시우가 칼리에게 빙의했다는 상황일지도 모르고.
지금 생각해보면 김시우로서의 마지막 기억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호하게 짝이 없었다.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일단 지금은 이 지랄 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하필이면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암시하는 대사를 날리고, 심지어 두통까지 강하게 호소했으니.
그걸 지켜보고 있던 로자리아에게는 워낙 큰 충격이었을 거다.
"로자리아!?"
너무 놀란 로자리아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나는 굉장히 난감해져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필 옆에 있었던 게 로자리아라서 문제가 더 커진 느낌이다.
어차피 다른 가족이나 동생이었으면 이렇게 걱정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지, 애초에 로자리아도 이렇게까지 놀라면서 걱정할 줄은 예전의 나라면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하긴, 지금이야 로자리아 특유의 그 꼬장꼬장함이, 부끄러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츤데레 속성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판단을 하는 거지.'
로자리아 드 마기우스.
마법사 집안으로 유명한 마기우스 가문의 장녀로, 엄청나게 뛰어난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마법사 지망생이다.
우리 글라디스 가문과 마기우스 가문은 옛날부터 연이 꽤 있어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였다.
물론 나이는 로자리아 쪽이 1살 많은 누나지만, 그런 나이를 신경 쓰지 않던 시절부터 친했기 때문에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로자리아는 어릴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집착하면서 묘한 행동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내가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결과물인 것 같았다.
다만 굉장한 부끄럼쟁이라서, 자신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으면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마음을 숨기려고 하는 편이었다.
그래, 진짜 딱 츤데레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었지.
"환자가 복사가 되네...."
나는 낑낑대며 로자리아를 옆에 있던 다른 침대에 눕혀놓고, 내 침대로 돌아왔다.
하여튼 이번 사건도 따지고 본다면 그 로자리아의 사랑과 집착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로자리아는 더더욱 저렇게 충격에 빠진 거겠지.
우리는 작년까지라면 둘이서 보고 싶을 때라면 마음대로 찾아와서 만날 수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20세가 된 로자리아가 지구로 따지면 대학교인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시기였고.
로자리아가 입학하는 그라베다 아카데미는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특성이 있기에, 앞으로는 마음대로 만나는 것이 어려워질 예정이었다.
1년 정도야 참겠다고 생각한 로자리아겠지만, 만약 내년에 내가 그라베다 아카데미 입학에 실패한다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게 되는 거고.
나에게 꽤나 집착하고 있던 로자리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을 거다.
근데 그라베다 아카데미는 제국 최고의 실력파 아카데미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합격해?
"아직 팔 상태는 좋지 않네. 괜히 침대에 눕힌다고 무리했나?"
칼리 흐 글라디스라는 인간은, 글라디스라는 유명 검술 가문의 독자임에도 불구하고....
검술에 굉장히 형편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다.
물론 형편없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라베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에는 턱도 없다는 소리고.
일반적인 평민 시골집에서 태어나서 이 정도 재능이었으면, 대충 마을에서 잔치를 열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긴 했다.
이 정도도 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로자리아도 나한테 빡센 연습을 하자고 꼬드기지 않았겠지, 가족들도 진작 내 장래를 포기했을 거고.
하지만 그냥 평범한 수준의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재능.
딱 입시 기사 수준의 재능을 가진 나로서는, 글라디스 가문이라는 괴물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아니 족보에 소드 마스터가 줄줄이 있는 건 어디 듣보잡 판타지 소설 설정이냐고.
제대로 밸런스 관리 안 하냐?
"하아...."
그것에 나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사실상 최근 1년은 모든 걸 포기한 채로 허송세월만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로자리아는 그런 내 상태를 모르고 나와 같이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검술로 도발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는 로자리아의 재능을 질투하며 그 도발에 응했다.
그 뒤로는 당연하지만, 그라베다 아카데미를 수석 입학한 로자리아의 엄청난 마법에 감탄만 하면서 얻어맞았다.
사실 거기까지만 하면 별문제가 없었다.
로자리아는 당연히 사람이 맞아도 될 정도로만 마법을 쏘며, 나를 약 올리는 것에 집중했을 뿐이니까.
아마 그렇게 약을 올리면, 내가 진심 모드가 되면서 재능이라도 각성할 줄 알았나 보다.
사실 진짜 문제는 열등감에 제대로 돌아버린 내가 돌발 행동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검술과 마법으로 대련을 할 때 지켜야 하는 룰 따위는 전부 무시하고, 그냥 다짜고짜 로자리아를 검으로 찔러 공격했으니까.
물론 그딴 좆밥 공격이 로자리아에게 닿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울분에 가득 찬 발악 같은 느낌이었다.
내 반칙 행위에 당황한 로자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화력이 강한 마법을 방어로 사용했고.
그에 얻어맞아서 땅바닥을 10바퀴 정도 구른 것이 오늘 있었던 사건의 경위였다.
솔직히 전생의 기억이 돌아올 정도로 존나 아프고 쪽팔린 일이었지.
"근데 정말로 돌아오면 어쩌자는 거냐...."
진짜 문제는 전생의 기억이 진짜로 돌아왔다는 것에서부터 기인했다.
당연하지만 칼리가 원했던 것도, 김시우가 원했던 것도 아니다.
이상한 새끼한테 비현실적인 무언가로 놀림당하다가, 좆까라고 했더니 심장마비로 쓰러진 기억?
정말 알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심지어 그 편하던 현대 문물의 기억이 다 밀려 들어왔다는 문제도 심각했다.
청소도 로봇이 하고, 설거지도 로봇이 하고, 쇼핑도 택배가 가져다주는 안락한 생활.
그리고 현대라서 가능한 조미료들의 강렬한 단짠맵의 조화까지 기억해버리다니.
이제 뭘 해도 불편해서 짜증만 날 것을 생각하니까 정신이 아득해졌다.
'망할....'
그리고 사실 진심으로 화나는 원인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이 세상에는 컴퓨터랑 타블렛이 없다는 거다.
짤쟁이한테서 그 두 개를 빼앗는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
하루까진 아니어도 일주일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손발이 덜덜 떨리는 나에게는 너무 치명적인 문제였다.
지병인 그림 못 그리게 해서 가출하는 병이 도질 것만 같았다.
"시발, 세상이 날 억까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이외에는 나한테만 이딴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불행하던 나한테, 왜 불행한 기억을 1+1 이벤트로 던져주는 거야?
진짜 좆같네.
"칼, 리...?"
"리아야, 정신이 들어?"
"응, 으응.... 리아라고? 칼리 너 기억이!?"
"어, 아주 잠깐 혼란스러웠을 뿐이야."
그녀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묘하게 감동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대로 나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는 굉장히 애처로운 표정으로,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약 올리거나 장난치지 않겠다면서 울먹였다.
이제까지 했던 돌발 행동들이 전부 미안하다며 그것에 대해 사과도 했다.
심지어는....
"널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마음을 들키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그랬어.... 앞으로는 널 사랑한다는 거 숨기지 않을 거야. 이제는 절대, 그런 바보 같은 행동 하지 않을 거야...."
"어라...?"
이세계 1일 차.
츤데레 소꿉친구가 자기 혼자서 후회물 찍더니 메가데레로 변한 썰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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