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1권 사실은 이거 이세계물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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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감정을 전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네.
그저 내가 너무 욕심쟁이인데다 약해빠진 정신을 하고 있을 뿐이겠지.
사랑하는 그와의 관계가 조금이나마 바뀌는 것이 무섭기에 감정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그가 나와 조금이라도 어색해져서 멀어질까 봐, 내 마음을 깊은 곳에 꼭꼭 숨기고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어쩌다가 이 뜨거운 마음을 들킬 것 같으면, 거짓된 행동으로 진심을 외면하며 도망쳐 왔다.
물론 그런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그와 떨어지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어차피 대부분은 그가 검술을 연습하고 있는 것을 구경할 뿐이지만.
그런데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이 세상 무엇보다 달콤했고, 아름다웠으니까.
"아, 아아...?"
그리고 이제까지 보내왔던 그 긴 기만과 욕심의 시간이 나를, 아니 그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의 몸을 향해서 마법진을 그린 손이 덜덜 떨려온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칼리...?"
처음에는 분명 그의 훈련을 도와주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다.
내년에는 그가 우리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그와 자주 보지 못하는 것만 생각해도 애가 타는데.
다음 연도에도 그것이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급해진 것이 발단이었다.
그래서 내가 최근 배운 마법을 같이 연습할 겸, 대련을 해보자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칼리는 어차피 자신이 압도적으로 패배한다며 거절했고.
나는 살짝 오기가 생겨서, 이젠 검술 실력뿐만 아니라 싸울 의지조차 잃었냐며 도발했다.
그제야 칼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며 화를 내고는 내 상대를 해줬다.
당연히 나는 칼리의 훈련을 위해 대련을 시작한 것인 만큼 화력을 칼리의 실력에 맞게 조절했지만.
이번에는 칼리가 혹시 자길 좋아해서 손속이라도 두는 거냐며 비아냥거렸다.
먼저 도발했던 것이 나인 만큼, 그 말이 기분 나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항상 그렇듯이 좋아하냐는 칼리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혹시 내가 칼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킬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칼리가 나를 거절하고 점점 멀어질지도 모른다고.
좋지 않은 상상들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칼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을 쏟아내며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이성 덕분에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칼리를 다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화력이 올라간 만큼, 마법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규칙을 어기고 찔러 들어온 칼리의 검을 막아내야 할 때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부 계산해서 진행하고 있던 움직임이 무너졌고.
당장 눈앞의 칼을 막아야 한다는 급한 마음으로 아무런 계산 없이 마법진을 그렸으니.
힘 조절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치, 치료.... 치료해야 해."
마법에 직격당한 칼리가 몇 바퀴나 땅을 구르며 나가떨어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은 물론이며, 온몸이 까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혹시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손이 떨려서 마법진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돼, 됐다!"
기도나 치료를 뜻하는 문자인 가 마법진 내부에 그려지자.
내 마력을 따라서 붉게 빛나는 문자와 함께 마법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기초적인 치료 마법이라서 이것만으로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응급 처치 정도는 될 거다.
"칼리, 제발 일어나줘...."
몇 시간 동안 깨어나지 않는 칼리를 간호하고 있으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회복되어서 깨어날 수만 있다면 그게 뭐라도 할 수 있다.
깨어난 뒤에 내가 싫다면서 나를 거부해도 괜찮으니까, 제발 깨어나기만 해줘.
이제 너에게 아카데미에 억지로 오라고 노력을 강요하지 않을 거야.
내 욕심을 위해 널 괴롭히는 짓 따위는 이제 하지 않을 거야.
맨날 너와 멀어지는 게 무섭다는 이유로 숨기던 마음도 고백할 거야, 그것으로 인해 너와 멀어지더라도 상관없어.
숨기다가 자꾸 너를 다치게 할 바에야 내가 너에게서 버려지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미안해, 미안해 칼리.... 그러니까 제발 깨어나기만 해줘."
무서웠다.
이대로 칼리가 영영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너무나 무서웠다.
칼리랑 떨어지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칼리가 죽어 버린다는 건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이었다.
항상 그가 내 곁에서 건강하게 있었기에, 이제까지는 그런 결말 따위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아악...!"
"칼리! 괜찮아?"
그리고 반나절이 지난 시점.
드디어 칼리가 깨어났고, 나는 평소에 제대로 믿지도 않던 주신 미지아를 향해 감사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감사 인사를 하던 나에게, 신은 줘야 할 것이 있지 않냐는 듯 싸늘하게 웃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충격적인 현실이 다가왔다.
"누구, 세요...?"
"...에?"
칼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장난이나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의 표정만 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제발 깨어나게만 해달라는 기도였기에, 그에게서 나에 대한 기억을 빼앗은 것일까.
나는 찢어질 듯한 마음을 부여잡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나, 리아야. 로자리아. 로자리아 드 마기우스! 칼리, 정말로 내가 기억이 안 나?"
하지만 여전히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나서야, 이것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벌임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칼리의 건강만 무사하다면....
"아악...!"
"칼리!"
아아, 신이시여.
어째서 죄를 지은 것은 저인데, 그 무게는 그에게 지우십니까.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부여잡는 그를 보고 있으니, 점점 어지러움과 함께 정신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제발, 제발 칼리는 건들지 말아주세요.
"칼, 리...?"
그렇게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침대에 걸터앉은 칼리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리아야, 정신이 들어?"
"응, 으응.... 리아라고? 칼리 너 기억이!?"
"어, 아주 잠깐 혼란스러웠을 뿐이야."
설마 방금 칼리가 고통스러워했던 이유가 나에 대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였던 건가?
그 기억이 지워졌던 것은, 분명 내가 지어왔던 죄에 대한 대가일 것인데.
이 바보같이 착한 녀석은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서, 고통을 넘어서 나를 만나러 와준 것이다.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자, 평소보다 더 강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대체 너는 나를 어디까지 반하게 할 셈이야.
나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로 사랑하는 내 보물을 껴안았고.
이제까지 그에게 지었던 죄들을 쏟아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그, 리아야? 조금만 떨어져 줄래?"
"응! 알았어!"
내가 말하면 전부 다 긍정하면서 그대로 따라주는 모습에, 이게 내가 알던 로자리아가 맞나 싶었다.
원래라면 여기서 더 달라붙고 싶어서 이상한 변명을 대면서 버텨야 하는데?
아니, 근데 떨어져 놓고 그렇게 달라붙고 싶다는 눈으로 보고 있으면 사실상 강요하는 거긴 하네.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정말? 헤헤...."
내가 허락하자, 굉장히 기뻐하는 얼굴로 나에게 달라붙어서 몸을 비비적거렸다.
심지어 내 몸에 얼굴을 묻은 다음 킁킁거린다던가, 조금 수위가 높은 행위를 하기도 했는데.
자각은 없는 것 같으니까 굳이 태클을 걸지 않았다.
하긴 이런 미소녀한테 당하는 킁킁이라면,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지.
"그렇게 많이 걱정했어?"
"...깜짝 놀랐어,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 건 아닐까 싶었단 말이야."
"마법으로 치료했다며, 어차피 네 실력이면 충분했을 텐데. 걱정도 너무 심하다니까."
"네가 너무 띄워주는 거지, 난 이제 아카데미 입학하는 신입생이거든? 그래봐야 기초 마법 밖에는 할 줄 몰라."
뭔가 반박하고 싶지만,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내가 아는 거라곤 로자리아가 그라베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것과 아까 대련할 때 쓰던 마법이 체감상 강력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들이 기초면, 나중에는 대체 어디까지 가능해지는 거야?
"하여튼, 가문에 연락하거나 한 건 아니지?"
"...이렇게 다쳤는데 부모님께 연락하지 않겠다고?"
어차피 연락되어봐야, 내가 검술을 연습한다는 소리에 쓸데없는 기대만 늘어날 터다.
내가 이 별장에서 훈련하는 걸 비밀로 하고, 여기서 맨날 노는 것처럼 속이고 있어서 그나마 좀 조용한 거지.
아직도 내가 진심으로 연습하지 않아서 실력이 이렇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쌓은 지금 실력이, 놀아도 기본으로 생기는 수준의 재능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으니....
만약 내가 다칠 정도로 연습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벌어질 일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할 때도 됐잖아. 너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거, 말해도 괜찮지 않아?"
"가문에서 제명당할 일 있냐?"
다행히 오늘은 사용인들도 전부 미리 물려놓았고.
상처만 잘 숨기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 있을 거다.
굳이 일을 키울 필요는 없지.
"그건 그렇고 아까 네가 말했던 사랑한다던 거 말이야."
"아, 응...."
"나도 리아가 좋아. 다만, 그게 그런 감정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어. 확신이 생길 때까지 시간을 줄래?"
"그, 그 말은?"
"그전까지는 평소처럼 지내줘. 대신 네가 원한다면, 연인이 할 법한 일들을 나에게 해도 괜찮아. 로자리아는 나에게 소중하니까, 친구로서 그 정도는 받아줄 수 있어."
솔직히 지금 여러 상황이 얽힌 것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최대한 기존 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로자리아가 폭주하지 않도록 적당한 포상도 주는 편이 안전할 터다.
절대로 사심 채우는 것도 맞았다.
"연, 연인이 할 법한 일들...?"
저렇게 얼굴 새빨갛게 변한 로자리아도 되게 귀엽네.
솔직히 이 정도면 컴퓨터랑 타블렛 포기하고 이세계에 올 만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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