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1권 사실은 이거 이세계물입니다(3)
* * *
"어, 그건 절대로 아니야."
미소녀랑 꽁냥거리는 시간은 확실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내가 지금 실시간으로 메가데레 상태의 로자리아에게 대접받고 있으니까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거든.
아니, 애초에 상상만 해도 개쩌는 상황인데 굳이 이걸 설명해야 할까 싶긴 해.
솔직히 몸이 나아야 하는 일주일 동안, 로자리아는 자기가 솔선해서 나를 돌보고 있었고.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부 가져다주면서 아기처럼 잘 케어해줬다.
이 정도면 편의성은 이세계도 현대만큼이나 고퀄리티로 따라가지 않나 싶더라.
그깟 현대 문물의 편의 따위 우리 로자리아가 다 손으로 해결하면 되는 일이더라고.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서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진짜 내가 뭘 해주길 원하면 오히려 나도 뭘 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뭔가 친구를 도와준다기보다는 내가 로자리아를 사용인으로 쓰는 기분이라서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자리아는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 이걸 책임지는 건 당연한 거라며 배시시 웃었고.
심지어 나랑 이렇게 옆에 붙어 있기만 해도 행복해서 다른 것이 필요 없을 정도라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대사까지 던졌다.
그래, 이렇게까지 내가 로자리아에 대해 극찬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자리아는 굉장히 나를 잘 돌봐주는 중이었다.
솔직히 이 이상으로 챙겨주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이건 로자리아가 아니라 내 문제지."
컴퓨터랑 타블렛을 포기하고 로자리아를 선택한다.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후자를 고를 정도로 로자리아는 나에게 완벽한 케어를 지원해주고 있었고.
심지어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까지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귀신같이 그림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라는 인간은 이 저주나 마찬가지인 성격에서 도망칠 수가 없는 모양이거든.
미안하다 로자리아, 나는 이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어, 어라!? 칼리 왜 주방에 있어?"
"아침 하고 있는데?"
"에? 몸은? 아직 더 쉬어야지!"
아니, 사람을 대체 언제까지 병자로 취급할 생각인 건데?
전체적으로 많이 회복되기도 했고, 주기적으로 로자리아의 치유 마법도 받은 덕에 사실상 다 나은 느낌이다.
그래서 매일 식사를 준비하던 로자리아 대신, 오늘은 내가 음식을 준비한 거였다.
"먹기나 해."
"내 일을 빼앗아 갔어...."
"나도 양심이 있지, 다 나았는데도 네가 사용인처럼 일하게 할 생각은 없어."
애초에 지금 사용인을 이곳에서 쓰지 않는 것도, 그들이 부모님께 보고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나 때문에 로자리아 같은 고급 인력이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그건 진짜 내 양심이 용납을 못 하겠거든.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맞지.
"맛은 괜찮아?"
"응, 평범하게 좋아."
하지만 로자리아는 먹으라고 해놓은 수프는 손도 대지 않고 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건가 싶어서 말을 걸었더니.
이젠 자기가 먹여주는 것도 하지 못한다면서, 되게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아앙을 하고 싶다고?"
"응! 먹여주고 싶어! 근데 자꾸 다 나았다면서 혼자 다 하니까...."
"다 먹여주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그래도 몇 번 정도는 받아먹어 볼까? 이건 내가 알기로 연인들도 가끔 한다고 하니까."
"아, 응...!"
연인이라는 말만 들으면 활기차져서 되게 좋아하는 게 보이네.
아니 진짜 기억 속에 있던 내가 아는 로자리아랑은 너무 달라서 기분이 이상하다니까.
어쩌다 그 까칠한 츤데레 로자리아가, 나만 보면 좋아 죽으려고 하는 메가데레로 바뀐 거냐고.
그 간극이 매우 좋다는 게 함정이지만.
"헤헤, 맛있어?"
"어. 이번에는 나도 먹여줄게."
"에? 헉...!"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이잖아.
진짜 내가 해주는 것에는 아무런 기대도 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라, 뭐라도 하나 해줄 때마다 감동해서 저러는 걸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저런 사람이 날 좋아해 준다는 점에서 행복한 쪽으로 이상한 기분이지만.
"하음.... 헤헤, 뭔가 이렇게 받아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
"그래? 그럼 더 먹여줘야 하나?"
"그, 그래도 괜찮아?"
"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정작 너는 며칠 동안 계속 이렇게 해줬잖아."
회복에 방해된다면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난리 치면서.
나한테 밥 먹여준다는 사심을 잔뜩 채우는 걸 내가 얼마나 많이 봤는데.
물론 나도 여러모로 행복한 느낌이라서 그냥 받아먹기로 했었고.
"아쉽긴 하다."
"응?"
"이렇게 오래 지내면 좋을 텐데, 로자리아는 좀 있으면 아카데미에 들어가니까. 한동안 보지 못하잖아."
"그건...."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나한테 안기더니 굉장히 억울한 표정이 되고는, 이렇게 행복할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진심을 터놓을 것 그랬다며 칭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서 좀 수위 높은 것까지는 요구도 못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에 대한 것에는 메가데레로 바뀌었다지만, 그런다고 사람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당연하겠지.
"그, 칼리. 호, 혹시 키...."
"최근에 키가 컸냐고? 음, 모르겠는데."
물론 나는 그녀가 말하려는 것이, 키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슬슬 거기까지 진도를 빼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겠지.
그녀는 내가 일부러 장난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오늘도 혼잣말로 바보 멍청이를 연호하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아, 진짜 너무 귀엽네....
"아, 혹시 펜이나 종이 같은 거 사려면 어디 가야 해? 붓이나 물감 캔버스 같은 것도 괜찮고."
여기가 중세 베이스의 시대이긴 해도, 내가 알기로는 마법이 있는 탓에 깨끗한 백색지나 인쇄 같은 것도 발전했을 터다.
사실 마법 때문에 거의 근대 이후 지구와 비슷한 삶의 퀄리티 정도는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 중 다행인 부분이지.
그러므로 일단 그림 연습하는 것에 필요한 재료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해본 말이었다.
컴퓨터랑 타블렛이 없어서 디지털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계속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다른 도구로라도 그림을 그려야 했다.
"물감이랑 캔버스라니.... 너 설마 마법 배우려고!?"
"어? 그, 갑자기 왜 마법이 나오는 거야?"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런 상식을 왜 모르고 있냐는 듯한 느낌인데?
'아니, 검술 말고는 관심이 없었는데 어쩌라는 거야.'
내가 어릴 때부터 김시우의 기억이 있었다면 마법에도 관심을 가졌겠지만.
그렇지 않은 칼리는 오로지 검술을 배워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목적으로만 살아오던 인간이다.
당연히 마법에 대한 것은 마법사와 대련하는 것에 대한 요령 말고는 모르고 있었다.
"마법을 발동하려면 마법진을 그려야 하잖아?"
"...그렇지?"
내가 아는 일부 판타지 소설에서 영창을 한다던가, 아니면 서클을 돌린다든가 하는 설정과 다르게.
이 세계에서는 마법을 발동하려면 무조건 마법진을 허공에 그려야 한다는 행위가 필요했다.
그래서 마법 전용 펜인지 지팡이인지 하는 것을 로자리아가 항상 지니고 다녔지.
"그럼 붓이랑 캔버스가 있으면 뭘 하겠어?"
"그림을 그리겠지?"
"그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이면 또 뭘 그릴 수 있는데?"
"...마법?"
로자리아의 엄청난 맞춤 설명에, 나는 금방 어떤 상황인지를 깨닫고 말았다.
그린다는 공통점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랑 마법진을 그리는 마법사가 비슷한 개념이라는 거구나.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니, 로자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림이라는 건, 결국 마법사들이 가지는 취미 생활이라는 거야."
이 세상의 인식은 그렇게 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림을 처음 배우는 건, 결국 마법을 배우는 입문을 위한 행위 같은 것이고.
반대로 아주 잘 그려진 그림은, 항상 마법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숙련된 마법사의 취미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실력주의로 최소한의 직위가 보장되는 현 사회의 특성상, 그림이라는 건....
'무조건 귀족만이 누리는 취미. 오히려 그림을 잘 그릴 줄 아는 사람은 평민에서 귀족이 되는 형태....'
당연히 이 세상에서 그림이 가지는 가치가 아주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적 가치를 넘어, 대마법사의 발자취 같은 것이기에 추가적인 가치까지 가지게 되니까.
그래서 제국 내에서, 특히 귀족 카르텔에서는 이 그림이라는 게 엄청나게 잘 발달한 취미 생활이라고 로자리아가 덧붙였다.
"나도 적당한 그림 정도는 그릴 줄 알아. 칼리가 원하면 초상화라도 그려줄까?"
"아, 그럼 나중에 한 번 부탁할게."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로자리아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어떤 양식으로 그림이 발달했는지도 궁금하고.
아니지, 이거 메이저한 취미라고 그랬잖아?
"그럼 혹시 전시회 같은 것도 있어?"
"당연히 있지. 유명한 마법사들이나 아니면 자신의 원래 이름을 숨긴 대단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전시회나 경매에 꾸준히 올라가."
"오...."
그건 진짜 꼭 가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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