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2권 제 야짤이 범죄가 아니라 명작이라는데요?(1)
* * *
"...스승님?"
"저번에 여기 왔을 때는 자네한테 졌다는 생각에 꽤나 분했었는데 말이야."
"순수하게 그림 실력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이긴 것이지 않습니까."
"그 말이 더 열받는다는 사실 알고 있나?"
나이답지 않게 귀여운 모습을 보이는 스승의 모습에, 론도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살 만큼 사신 양반이 왜 저러실까.
평소에 마법 연구하는 걸 보면 매번 내 쪽에서 배우면서 감탄만 하는데.
꼭 취미인 그림 쪽까지 이기려고 드신다니까.
"하지만 그런 자네의 시대가 끝일지도 모르겠어. 한 반년은 더 자네 그림을 따라올 것이 나오진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예?"
그제야 론도는 몇 달 전 출품했던 자신의 작품 때문에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대체 무엇을 봤길래 자신의 까다로운 스승이 저런 평가를 하는 것일까.
애초에 3개월 전에 출품한 저 작품도, 비슷한 컨셉으로만 10번은 그려서 겨우 스승의 눈을 만족하고 나서 출품한 것이지 않은가.
그냥 기법만 신선했다면, 저런 표현을 하지 않고 아쉽다는 말부터 했을 텐데.
대체 뭘 보셨길래 저러시지?
"이건.... 사람, 인가요? 인간?"
하지만 과연 저것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수백화'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은, 론도의 눈에 담기자마자 그러한 의문을 발생시켰다.
비현실적으로 강조된 눈의 크기는 물론이고, 전체적으로 실재하는 인간과는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주는 그림이었다.
아마 자신의 스승이 당황한 것은 저 인간을 표현한 특이한 방식 때문이겠지.
사실 사람이 본래의 형태를 벗어난 그림이야 시도된 적이 없던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문제였다.
현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그림의 가치는 아름다움일 것인데, 사람을 일정 이상 비현실적으로 그리는 순간 생기는 불쾌함이 그런 시도를 억눌러왔다.
그런데 저 그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히 원래의 인간을 굉장히 간략화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전혀 어떠한 불쾌감이 생기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전해지는 것은 '반짝거린다', '아름답다'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었다.
"하...?"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처음엔 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네."
그러다가 깨달았지.
오히려 우리가 사람을 데포르메하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걸.
어째서 저 그림을 본다고 해서 불쾌감이 생기지 않는 것인지 깨달았나?
"설마...!"
"그래, 너무 많이 멀어졌기 때문이지."
우리가 시도하던 사람의 변형이 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는 거다.
그래서 애매하게 사람을 닮은 이상한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고.
하지만 일정 이상 그 범위를 벗어난다면....
"근데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게 사람의 형태를 많이 벗어났는데...."
"바로 사람이라는 건 물론이고, 종족까지 알아볼 수가 있네요."
"그것뿐만 아니라, 이미 하나의 그림으로써 완성된 명작이지."
이 그림이 아이디어만 제공하는 정도의 그림이었다면, 스승이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그의 스승이 질투하던 '문 안의 세계'도 비슷한 방식으로 호평을 받았으니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최대한 현실적인 아름다움을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을 그린다.
그 방식을 나타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써 선보이는 것에는 큰 노력과 재능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때 론도 자신이 느꼈던 그런 고민은 이 작품에도 비슷하게 담겨 있었다.
다만, 그 난이도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이미 많은 연구를 해서 만들어낸 형식이라는 것이 느껴져. 출품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 경악스러울 정도지, 이 화가는 이런 그림을 많이 그려봤다는 소린데...."
"황당하네요. 기초적인 그림 실력도 괴물 같은 수준이고."
하긴, 이런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그림을 못 그린다면 그것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오히려 이미 알려진 화가거나 마법사가 이름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리라.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온 건지, 론도는 조금 허탈해져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림에서 그려진 몽환적인 호수의 모습은, 사실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론도의 고향에도 저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 정도야 있으니까, 여행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모티브를 따오기 쉬웠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그 호수 위에 누워있는 한 소녀에 대한 묘사였다.
이것이 너희가 찾던 답이라는 듯 큼지막하게 변한 보석 같은 눈동자부터, 현재 그림계에서도 흔하게 이루어지는 몸매의 과장까지.
그 모든 것이 어떠한 불쾌감도 없이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고.
그 미려하게 그려진 몸매의 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호수의 물결은 웅장하기까지 하다.
마치 불타는 듯한 새하얀 머리카락이 물가에 잠겨서 식어가는 장면은, 뜨거우면서 차가운 온도감을 완벽하게 표현했으며.
커다란 눈이나 강렬한 홍조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얼굴 구성은 이상할 정도로 잘 조화되며 아름다움을 구현해냈고.
그 눈에서 흐르는 눈물과 호숫물이 뒤섞인 상황은 확실함이 없는 신비한 감정으로 심금을 울린다.
또한 그 아래로 깔끔하게 내려가는 쇄골 라인은 인체 특유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데다, 놓치기 쉬운 피부 위로 비치는 혈관 같은 세세한 요소까지 빠짐없이 구현되어 있다.
당장이라도 하늘을 붙잡을 것처럼 아련하게 뻗어있는 팔이 전해주는 미묘한 감정선과 그 행위로 인해 드러난 겨드랑이의 모양은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로 디테일하면서 아름다웠고.
선명한 유두의 모양과 유륜의 분홍빛 색감은 바로 자신이 이상적인 유방의 형태라는 듯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며, 그 아래를 따라 내려가는 극대화된 골반은 참을 수 없는 에로스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장소들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물방울은 서로를 구별할 수 있도록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액체들이 칵테일 되어 고이는 것으로 반짝이는 배꼽의 형태는 또 얼마나 세세하고 아름다운지....
그저 감탄만 나온다.
'심지어 성기는 엘프 같은 느낌이군.'
분명 인간 소녀를 그린 것일 텐데, 마치 동족의 것을 보는 것처럼 털 하나 없이 말끔한 여성기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성기까지 드러나는 작품이야 아주 많지만, 이렇게 꽉 닫혀서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 모습은 자주 보기 어려운데.
그것과 함께 털이 전혀 없다는 특성까지 함께하자, 특유의 매끈한 아름다움이 그를 두근거리게 했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겨드랑이도 털이 없었구나?
'본래 인간에겐 존재해야 할 것을 엘프처럼 존재하지 않도록 그려서 특별함을 줬어.'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의적인 의도를 담았다는 평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어떤 의도를 담았는지는 속단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것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 감상평을 곱씹던 론도는 딱 하나의 결론만을 내뱉는 것으로 머릿속을 정리해버렸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네요."
"그렇지?"
아주 예전에 인간 따위를 스승으로 섬기는 것이 쪽팔린다던 치기 어린 자신에게.
스승은 이곳에 나를 데려와서 그림이라는 이름의 신세계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두근거림이, 정말 오랜만에 다시 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느꼈다.
과연, 이것이 인간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가치라고 한다면....
내가 아직도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마법과 그림을 배우는 것이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것의 증명이리라.
그리고 그런 인간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은 제대로 된 길이리라.
"저걸 보고 떠오르는 감상은 그게 전부인가?"
"어, 사고 싶다?"
"확실히 그런 생각도 들지. 하지만 저 화가는 판매할 생각이 없었는지, 경매를 걸어놓지 않았어."
"그건 그럴 만하네요."
어차피 저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 돈의 여유는 있을 거다.
정확히는 그걸 팔아서 벌 수 있는 돈에 대해서 느끼는 가치가,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애착심보다 약할 거라는 거지.
당장 자신이 그런 이유로 '문 안의 세계'를 팔지 않았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할법한 생각이지만, 틀렸어."
"그럼 스승님이 하신 생각은 뭐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길래 그러십니까?"
"허허, 요즘 자꾸 기어올라?"
"솔직히 이제 그림은 제가 스승님보다 유명합니다?"
"에잉, 예전에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능구렁이가 다 되어버렸어."
"제 나이도 좀 생각을 해주십시오."
아무리 내가 외모가 20대 같아 보이고 유행에 민감해서 아카데미 애들에겐 젊은 교수로 통한다지만, 스승과 처음 만난 것만 해도 벌써 30년이 되어가지 않는가.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애 취급하는 스승의 모습에, 론도는 조금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자 스승이 하는 소리가 더 가관이었다.
"엘프가 백 살이면 젊지, 뭘 그렇게 따져."
"스승님은 백구 세시면서! 아홉 살 차이밖에 안 나잖아요!"
"나는 인간이잖어."
"그거 종족 차별 발언입니다? 아니, 그래서 대체 뭘 느껴야 했냐니까요?"
"궁금해? 허허, 자네가 그렇게 반응하니까 재밌어서 더 알려주기가 싫구먼."
이 노친네가 진짜 돌았나.
자신의 스승이 더 강하지만 않았어도 머리라도 한 대 후리고 싶었지만.
괜히 깝쳤다가 이 나이에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론도는 한숨을 쉬면서 분을 삭였다.
"간단한 거지. 저걸 보면 들어야 하는 생각. 딱 하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게...!"
"우리도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
짧은 내용이지만, 론도는 그것으로 스승의 말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해했고.
자신들에게 그런 감정을 준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