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9화 (9/229)

〈 9화 〉 2권 ­ 제 야짤이 범죄가 아니라 명작이라는데요?(3)

* *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내가 이전에 테스트했을 때는 마력을 사용하지 못했었는데.

갑자기 오늘은 마법을 사용할 수가 있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흐음, 조금 놀랐나 보오."

"그, 그게...."

"솔직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알려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자네 스승이 진짜로 화가 나겠지. 우리 귀여운 제자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제가 언제부터 귀여웠습니까?"

아, 그리고 자네 스승에게는 작은 질투의 산물이라고 전해주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괜찮은 원석까지 제자로 삼다니.

정말 부러운 일이니까.

그가 한 말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제자라니?

분명 작품 제출에 대한 정보 같은 건 비공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네 스승이 이 그림을 그린 시우라는 사람이지? 대충 눈치를 보면 알 수 있다네."

"예?"

"굳이 여기까지 안내를 받아서 저 그림을 안내받고 있는데. 심지어 그게 등록을 담당하는 직원이다? 솔직히 너무 뻔하지 않나."

"그건 그러네요...."

확실히 너무 티가 나는 상황이긴 했다.

물론 실제로는 내가 '시우'라는 화가의 제자가 아니라, 시우 본인이기는 하지만.

이미 그는 시우가 실력이 꽤 있는 대마법사라고 예상했을 테니, 마력조차 쓸 줄 모르는 나는 그의 제자일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여튼, 자네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려줬으니. 자네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실들 좀 알려주지 않겠나?"

"예?"

"자네 스승이 그린 그림에 대해서 말이야. 후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 설명만큼 좋은 게 없지. 자네도 그림 그리는 것을 어느 정도는 도왔을 거고, 스승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거 아닌가?"

"그, 그건...."

그림을 그린 본인이라서 그런지 당신 같은 사람에게 이 작품을 그렇게 평가받으면 낯간지러워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는데요?

생각이야 그렇게 했지만, 정말로 그런 식으로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거 진짜 돌아버리겠네.

"자네가 생각해도 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 특유의 눈이 큰 묘사 방법이야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니 제외한다고 쳐도. 여기 겨드랑이나 핏줄 같은 곳의 자연스러우면서 과장된 표현들이...."

"아, 확실히 그렇죠."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여진 것이, 내가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 디테일을 살렸던 부분들을 정확하게 칭찬하는 것이 굉장히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뭔가 말려든 느낌이긴 했는데, 자기 작품을 칭찬하는데 기분이 나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자기가 노린 부분들을 정확하게 집으면서 저런 평가를 한다면?

여기서 입꼬리 승천을 참을 수가 있나?

"그리고 물방울이랑 땀방울의 미묘한 색상 차이 의도한 것 같은데. 이 두 가지가 배꼽에서 섞이는 것도 참 좋아. 물감이 아니라 보조제를 바꿔서 색을 다르게 표현한 것 같은데, 적당히 구별되면서 각기의 특성이 느껴져."

"스, 스승님이 들으면 좋아하시겠네요. 꽤나 신경을 쓰신 걸로 알아서요."

확실히 고인물이라서 그런지, 보조제를 활용해서 미묘한 색 변화를 만든 것과 물감 자체를 약간 다른 수치를 쓴 걸 결과만 보고도 구분하네.

물방울 특유의 반짝이는 느낌을 살리려고 반들거리는 느낌을 주는 보조제를 사용했는데.

땀을 살짝 더 탁하면서 반짝거리게 하려고 보조제의 양을 조금 늘렸던 기억이 난다.

그 두 개가 섞이는 부분이 생각보다 이쁘게 나와서 좋아했었지.

"그러한 기교를 꼭 옷을 통해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걸 전해주는 느낌이라.... 굉장히 감명 깊은 부분이 많은 그림이야."

"그, 그런가요?"

내가 그런 생각까지 했을 리가 없잖아.

나는 그냥 내 취향에 맞는 벗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굳이 첫 그림인데도 다 벗고 있는 진심 야짤로 그린 거라고.

첫 그림이니까 야짤을 공개적으로 게시해도 문제가 없는지를 알고 싶기도 했고.

물론 이 세상에서 야한 그림이 유해하다든가 하는 여론은 없어서 이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게 이론적으로 알고 있어도 실제로 해봐야 아는 부분이니까.

전생에서 워낙 그런 일로 시달렸더니 그것부터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게 되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생각하지도 못한 칭찬이 나오니까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거기에 그런 커다란 의미 담은 적 없다고!

그냥 내가 꼴리는 요소들을 최대한 표현했을 뿐이란 말이야!

"아, 저도 조금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론도 교수는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말을 꺼내길 참는 것 같았지만.

내가 대답하는 걸 듣고 있자니 자신도 참을 수가 없었는지, 결국은 그녀도 나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게....

"여기 표현된 겨드랑이와 여성기 말입니다. 본래 인간은 여기 털이 존재할 텐데, 마치 엘프처럼 매끈하게 표현한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그, 글쎄요. 스승님이 그런, 건 알려주시지 않았는데."

나이는 많지만, 외모만큼은 젊은 엘프 여교수가 나한테 묻는 진지한 내용이 저딴 거라니.

식은땀이 흐르지도 않는데도, 등줄기가 오싹하면서 뭔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발 뇌수인가?

"뭔가 엄청난 걸 표현하려고 한 것 같은데. 제 식견이 부족해서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좀 답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거기 왜 엄청난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그런 부위에 털이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다.

해당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의 설정상 주요 인물들이 그 부위에 털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 진짜 별것도 아닌 이유로 설정한 거에서 자꾸 의미를 찾으려고 하네.

'후우....'

그래도 그나마 견딜만했던 건, 이 사람들이 나이나 외모 성별 종족을 떠나서.

진심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전해져 온다는 거다.

그 수준이 너무 강렬해서 동족 특유의 '찐'적인 면모가 드러난다고 해야 하나?

약간 친숙한 느낌이야.

"아, 너무 궁금한 것이 많아서 제일 궁금한 것을 잊고 있었구만. 혹시 이 작품의 이름이 왜 수백화인지 알고 있나?"

"아, 여기 제가 왔을 때 두 분이 그것 가지고 싸우고 계셨죠?"

"아, 그건 솔직히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수백화죠?"

그냥 그려진 여자애 이름이 수백화라서 그렇다고 하면 저들의 순정을 짓밟는 느낌인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백화라는 이름을 지을 때 생각했던 아이디어 조각을 전부 다 꺼내서 설명하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마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 사람들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일단 '수'부터가 그 소녀를 뜻하는 겁니다. 원래부터 물에 가까운 소녀를 의미하는 거죠. 호수 자체가 그녀의 그런 특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호오, 그 호수가 단지 역경이나 세상을 의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소녀를 의미한다라...."

"소녀가 호수라는 형태로 표현되는 건, 그 소녀가 호수에 갇혀 있는 물처럼 고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물과 같은 소녀는 그 고립된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물이면서도 타오를 수 있는 불이 되는데, 잿빛으로 타오르는 그 불을 표현하려고 백화라는 글자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녀가 타올라도 호수라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라서 절망하죠.

"그러한 소녀의 마음이 표현된 그림이고, 그래서 사실 비슷한 다른 이름도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중에서 수백화가 선택된 것은, 이 일련의 과정이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중의적인 의미를 주기 위해서 선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허허, 우리 둘 다 맞았다고?"

"호수라는 자신의 형태를 벗어나기 위해 타오르는 불이라니.... 좋네요."

진짜 어떻게든 작품의 설정이란 설정은 다 끌어와서 설명했는데.

두 사람이 만족하는 듯해서 다행이었다.

괜한 오해를 키우는 느낌이긴 했지만, 작품 스토리와 충돌하는 내용은 없었으니까 괜찮겠지.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과 헤어지자, 나는 거의 녹초가 된 상태로 미술관을 나왔다.

다만 분명 피곤한데도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가뿐한 것이, 되게 묘한 감각이었다.

아마도 내 그림이 그렇게 공감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그렇겠지.

"...그리고 이제 나도 마력을 쓸 수 있고."

즉, 마력을 사용하는 도구들을 전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앞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저번처럼 제한적인 도구가 아니라, 여러 도구를 다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그림쟁이로서 기쁠 수밖에 없지.

오늘 좋은 일이 대체 얼마나 많이 일어난 거야?

"다 사자. 부족했던 것들도 채우고."

어차피 그 그림은 몇 달은 가볍게 넘는 기간을 전시할 테니, 마음 놓고 천천히 방문하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기분으로 별장에 돌아왔고.

이제 새로운 도구들로 그림을 그리면서 즐길 생각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별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나는 당혹스러운 광경을 목격하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칼리?"

"...어머니?"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어머니의 존재도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그 뒤로 보이는 광경은 그것 이상으로 경악스러웠다.

별장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유화로 난장판이 된 건물 내부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의 이름은 스트라이카 흐 글라디스.

내 아버지 되는 사람이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