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9화 (19/229)

〈 19화 〉 4권 ­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는 오늘도 답답하다(3)

* * *

"안된다고요?"

"네, 아마 이번에 요청해주신 것들은 대부분 힘들거나 기다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 기획한 신작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는 오늘도 답답하다'의 1차 원고가 완성되어서 가져왔더니, 전시도 판매도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아와서 굉장히 당황했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었지만, 아까 내가 구경할 때는 내 작품 추천수만 잘 늘어나고 판매만 잘 되고 있었는데?

혹시 나라에서 야한 거 규제라도 들어왔나?

"일단, 최근에 '만화'라는 형태 맞죠? 만화로 그림을 전시하려는 사람이 늘어나서, 이걸 전시관에서 진행하면 감당이 안 된다는 판단이 나왔어요. 이미 진행 중인 것들은 어쩔 수 없지만, 신작은 일괄적으로 막기로 했습니다."

"아, 저는 또 뭔가 엄청난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네요."

그런 거라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는 부분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게 막힐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예상보다 더 만화로 신작을 내려는 화가들이 늘어난 여파로 보였다.

아니 그럼 내 작품을 판매하는 건 왜 안된다는 거야?

생각해보면 전시를 하지 않은 작품은 여기서 판매가 안 돼서 그런가?

"아, 전시야 하실 수 있어요. 책 형태로 일단 완성하고, 그거 자체를 몇 개 샘플로 놓는 식으로 전시를 진행하는 형태로 결정이 났습니다. 전용 전시관이랑 전용 평가 방식 같은 것도 도입할 예정이고요."

"그럼 어째서 이 작품이 바로 판매될 수 없다는...."

"죄송합니다. 시우 작가님의 '화신강림'이 너무 잘 팔리고 있어서, 그 물량 감당하기에도 벅차거든요."

"아...."

시발 원인이 전부 다 나였잖아?

확실히 이번에 첫 판매 대금이라면서 전달받은 금액이 엄청나게 크긴 했었는데.

첫 번째 만화라서 그런지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중에야 이 세상의 괴물 같은 작가들에게 밀려날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만큼은 최고의 만화작가인 셈이다.

잠시라도 1등에 주차했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기분이 좋네.

"그럼 전시도 어렵겠네요?"

"지금 따로 하나 샘플용으로 굴리고 있는 것도 있는데, 그것도 굉장히 많이 밀렸어요. 시우 작가님이 인기 작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순서 변경을 하는 건 이곳 방침상 불가능하거든요."

"오히려 그건 스승님이 들으면 기뻐할 만한 이야기 같네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세상이라는 것이 실력과 성과로 진행되는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부분은 순서대로 진행이 되어야지.

진심으로 그림계의 발전을 위해서 만든 단체답게, 이런 부분이 철저하다는 것은 오히려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번에 이쪽 장르에 대한 가능성을 확실하게 알아서, 제대로 전용 시설을 갖추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몇 주 정도는 더 소요되지 않을까 싶어요."

"안정화가 된 뒤에는 책 형태로 전시도 진행하고, 양산해서 판매도 진행한다는 이야기죠?"

"맞습니다. 원하신다면 저희가 그림 맡고 있다가 진행을 할 텐데요. 어떻게 하실래요?"

"...혹시 책 분량 말인데요. 지금보다 더 늘어나도 괜찮습니까?"

"그건 상관 없을 거예요. 화신강림보다 3배 정도 두께까지는 생산할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지금 화신강림은 너무 얇게 나온 책이라서, 어차피 화신강림처럼 전시하지 않는다면 이번 작품부터 분량을 늘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딱 내가 그리고 싶었던 오크와 엘프가 섹스하는 장면까지가 원고의 전부라면.

솔직히 거기서 조금 더 진행해서 알콩달콩한 내용을 추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거든.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오히려 저희 스승님 때문에 일을 많이 늘려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저야말로 시우님 작품들의 팬인데요. 항상 좋은 그림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아, 넵."

진짜로 팬인지 아니면 체면상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말해주면 나야 고맙지.

나는 제출하지 못한 원고를 들고 밖으로 나왔고, 다음 파트에 무슨 내용을 쓸지 고민하면서 그림 용품을 판매하는 판매점에 들렀다.

이제 슬슬 종이를 비롯한 부족한 것들을 사야 할 때가 되었으니까.

이번에 돈도 들어왔으니 좀 넉넉하게 사면....

"어? 전용 코너가 생겼네?"

익숙한 느낌의 패턴지가 있길래 확인했더니, 역시나 내가 그려서 보급했던 스크린톤이었다.

내가 저것들에 대한 저작권을 다 포기해서 그런지, 굉장히 저렴하게 판매되는 중이었다.

사실 그것뿐이었다면 잘 되고 있다는 생각 정도로 넘어갔을 텐데....

"와, 진짜 많네. 여기가 천국인가?"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에서 패턴 브러쉬 스토어에 들어온 기분이다.

정말 다양하고 많은 스크린톤이 우르르 전시된 걸 보니, 내가 원했던 그 상황에 굉장히 빠르게 도달했단 생각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가격도 내 것이 워낙 저렴해서 그런지 그다지 비싸게 나오는 녀석도 없었다.

"다 하나씩 사자."

솔직히 이게 지구에서처럼 원할 때 바로 다운로드로 구매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미리 구매해서 가지고 있다가 필요하면 바로 써야 하니까, 여기 올 때마다 내가 사지 않은 건 전부 다 사놔야지.

돈 있을 때 투자하는 게 맞는 거 아니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호기롭게 종류별로 하나씩 다 포장해달라는 말을 했고....

"이, 시발. 미친 새끼."

지갑은 여유로우니까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너무 많이 사면 들고 오는 내 어깨가 박살 난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던 걸까.

진짜 별장까지 오던 도중에 시체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이제 어지간하면 스크린톤 내가 그릴 일은 없겠네."

이번에 산 것에 워낙 마음에 드는 것이 많아서인지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 실제로 이것들 때문에 스크린톤 작업 다 해놓은 원고 몇 개는 스크린톤 작업을 새로 하기도 했다.

솔직히 확실하게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 않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

나는 시간이 좀 끌리더라도 그건 못 참는 편이야.

"이제 스토리 짜야지. 이거 스토리는 사실 첫 섹스 다음에 어떻게 하냐가 문제인데...."

사실 섹스 후에도 비슷한 관계로 틱틱거리면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달달한 장면들을 뽑아내는 것이 메인 라인업이긴 할 거다.

결국 이 작품은 '화신강림'이랑 다르게 가벼운 일상 개그물에 떡씬을 넣어서 독자들의 성 건강까지 챙겨주는 것이 목적이니까.

다만 엔딩 부분을 이번에도 화신강림처럼 애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훈훈하면서 따뜻한 형태로 해주고 싶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엘프 쪽이 임신하는 건데."

아무리 일상 물이어도, 갑자기 분량을 2배로 올리려면 그것에 맞는 메인 소재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개그물인 이상 너무 원툴로만 밀고 가면 재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엘프가 임신한다면?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야한 걸 회피하려는 오크와 욕구 불만이 되어서 유혹하고 난리를 치는 엘프를 보는 재미가 있겠지.

이거 좀 괜찮은데?

'호불호는 좀 갈리는 영역이지만, 임신한 엘프와 섹스하는 오크 같은 떡씬도 재밌겠네.'

다만 스토리상 여기선 좀 덜 과격하고 부드러운 섹스를 보여주는 편이 낫겠지.

좀 더 달달하면서 부드러운 맛도 하나쯤 있으면 균형을 잡아줄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일단 후반부 주제는 임신으로 잡으면 되려나?

"그럼 자료 조사를 추가로 해야겠네...."

내가 알기론 엘프랑 오크 사이에 하프가 나오긴 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혹시 그게 내 착각이고, 실제로는 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잖아?

이런 고증 부분에서는 혹시 모르니까 한 번씩 더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했다.

"아, 찾는 김에 하프는 외모가 어떻게 생겼나 그려놓은 그림이나 사진 없나?"

가능하면 엔딩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엘프와 오크가 그 아이를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끝나는 식으로 하고 싶은데....

솔직히 딱 그 정도가 엔딩으로 적절한 시기지.

문제는 그 아이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나조차 모른다는 거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물건 사기 전에 조사 다 하고 돌아올걸.'

일단 물건부터 샀더니 무게 때문에 급히 돌아오느라 바빠서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을 못 했었다.

분명 수도에 커다란 도서관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나는 한참을 수도에서 헤맨 끝에 도서관을 찾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여기 도서관 있는 게 맞았네.

생각해보니까 이 세상은 인쇄할 때 그림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인물 삽화는 없겠네?

마법진 같은 건 단색으로도 그릴 수 있었기에 삽화로 채용할 수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그림은 명도 표현 때문에 내가 만화를 출판하기 전까지는 넣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모양이니까.

아예 어떤 느낌인지 사진이나 깔끔한 그림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

"아, 여깄다. 이종족별 하프에 관한 연구."

일단 인간을 포함한 모든 이종족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생명체는 서로 생식 기관이 비슷하고, 당연히 관계를 통해 아이를 가지는 것도 가능하다.

애초에 그게 불가능한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이종족이 아닌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학계의 관례이다.

즉, 이종족으로 취급되는 오크와 엘프 사이에서 하프가 나오는 것은 가능하단 소리네.

"특이한 점이 있는데, 절대로 하프에 하프인 종족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엘프와 인간의 하프라면, 그 하프가 다른 이종족과 생식 활동을 하면 엘프와 인간 중 한쪽의 종족 특성만 유전된다."

이건 좀 신기했다.

즉, 부모님이 하프일 경우 아이는 순수한 인간이나 이종족이 나오는 일도 있다는 거잖아?

"다음은 제일 중요한 하프 오크의 특성인데, 하프 특성 중에는 맨 처음에 나와 있네?"

오크는 아주 특이한 하프 특성이 있는 종족 중 하나이다.

다른 종족과 하프가 될 경우, 오크의 하프는 오크의 외모적 특성을 거의 물려받지 않게 된다.

대부분의 외모적 특성은 상대 종족의 것을 그대로 따르며, 작은 송곳니 정도만이 오크의 하프라는 것을 구별할 몇 안 되는 단서 중 하나가 된다.

"이게 그러니까...."

오크가 엘프랑 떡쳐서 낳은 아이는 무조건 엘프처럼 생겼다는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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