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4권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는 오늘도 답답하다(5)
* * *
"이, 이거 뭐야?"
"잠시만 리아야! 그 그림은...."
이 와중에 정말 다행인 점이 무엇이냐면, 저것이 내가 그린 그림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만약 내가 그린 작품의 원고였으면, 내가 '시우'라는 사실을 숨기기 어려워지니, 그것만큼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발견한 그 그림이 그것과는 별개로 봐도 굉장히 야하다는 거지.
나랑 그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는 푹 익은 얼굴로 마구 고개를 흔들더니.
최대한 작품을 열심히 관람하려고 하다가, 이상할 정도로 내 사타구니와 그림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아, 시발 뭐랑 비교하는지 보여서 되게 당황스럽네.
"저, 전시관에 갔다가 너무 그림이 좋아서 구매했을 뿐이야!"
"그림이 너무, 너무,... 아니 이거 뭐야...?"
사실 그녀가 처음 그림을 볼 때만 해도, 그녀가 야하게 느끼지 않고 그냥 예쁜 그림으로 보고 넘어가 주길 바랐지만....
역시 론도 교수님의 역작 '백광'의 초디테일한 거대 오크 남근과 그에 짓눌린 여리여리한 엘프의 배가 지닌 힘은 대단했다.
전에 어지간한 남자가 벗은 그림을 봐도 그냥 담담하게 넘어가던 로자리아조차 저런 반응이라니.
솔직히 내가 저 그림을 보고 폭주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니까?
"으, 응.... 확실히 그림이 예쁘긴 하네. 그, 남성기가 디테일해서 당황했을 뿐이야. 차라리 여성기면 그렇게 신경 안 쓰였을 텐데."
"이번 론도 교수님의 신작이야. 보고 진짜 너무 잘 그린 그림이길래 사본을 바로 샀었어."
"이게 론도 교수님 신작이었다구!?"
화들짝 놀란 그녀가 다시 그림을 열심히 살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전작과 닮은 점이 없는 것을 보고는 진짜 신기하다면서 당황하기 시작했고.
'이게 바로 마법 기초학 교수님의 완성된 기반의 힘인가?'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좀 진정했다. 몇 번 보니까 익숙해지네."
"그건 다행...."
"그, 근데 칼리...?"
"어?"
"그림은 이제 괜찮은데, 자꾸 네 쪽에 시선이 가는데...?"
"보, 보지마!"
아니 내 눈앞에서 미소녀가 야한 그림 보면서 얼굴 붉히고 있는 게 실시간으로 보이는 중인데.
그걸 보고도 자지가 반응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잖아.
여기서 뭐라고 해야지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지?
"호, 혹시 오랜만에 나를 봐서...?"
너를 봐서 그런 건 맞지만, 오랜만이 아니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꼴려서 그런 거란다.
근데 시발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서 조용히 시선을 피했더니, 갑자기 싱글벙글 모드로 변한 그녀가 나에게 밀착하면서 안겨 왔다.
야, 미친 그러면 발기한 게 그대로 몸에 닿잖아...!
"그래도 날 여자로 보고 있긴 했구나?"
"그, 그거야 당연히...!"
"부끄럽긴 하지만, 그 이전에 뭔가 기뻐서 울컥해버렸어."
뭐가 울컥하는데?
나는 지금 정액이 울컥울컥 나올 것 같은데 참느라 힘들거든?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이쯤에서 용서해주면 안 될까?
아니 얘는 왜 방학이라고 나오자마자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너 나 안 괴롭히겠다고 하지 않았냐?
"그. 미안한데.... 미안 한계야. 여기서 멈춰주면 안 될까?"
"예? 아, 아. 응.... 미안, 내가 너무 오랜만에 봤더니 좋아서 그랬나 봐."
"아니,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내가 폭주할 것 같아서 그래."
"...폭주?"
"저 그림의 오크처럼 변할 것 같다는 뜻이었어."
"......."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그거 꽤 괜찮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의 표정으로 다시 나에게 접근했다가.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발기한 자지에 몸에 부딪혀서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더니 몸을 파르르 떨면서 도망쳤다.
그렇게 자극을 당한 내 하반신은 이대로 확 덮치고 싶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욕구를 어떻게든 억누르며 말했다.
"내가 다 받아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우리 조금만 천천히 가자. 방금은 우리가 너무 성급했어."
"어? 어, 응...."
로자리아와 하기 싫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데,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는 시기였다.
한 번 선을 넘고 나면 그대로 어디까지 날아갈지 감도 잡히질 않는 상황이라, 지금은 조금만 더 상황을 두고 보고 싶었다.
그래도 연인이 할만한 일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한 건 약속한 거니까 어느 정도 그녀를 달래줄 필요는 있으려나?
나는 어떻게든 발기를 억누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로자리아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줬고.
그대로 나에게 안긴 채로 힘이 풀린 그녀가, 자신도 사랑한다는 말을 겨우겨우 입 밖으로 내뱉고 있었다.
"칼리, 나 어쩌지?"
"응?"
"첫날부터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나 방학 끝나면 아카데미 어떻게 돌아가?"
"돌아가기 싫을 것 같아?"
"응...."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대신 겨울 방학에도 둘이서 행복하게 시간 보내면 되는 거지."
"몰라, 싫어."
"한 학기 동안 아카데미를 다니고 오더니, 완전 어리광쟁이가 되어서 왔네."
생각해보면 원래부터 좀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로자리아와 꽁냥거리고 있는 감각은 꽤나 나쁘지 않았고, 그녀도 그런 느낌이었는지 우리는 한동안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며 안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으음, 칼리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
"내가?"
"은근히 부끄러워하는 건 여전하지만, 뭔가 눈이 초롱초롱해졌다고 해야 하나? 응, 좋은 느낌.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반했던 칼리 느낌이 나기 시작했어."
부끄러워하는 건 나도 심하긴 한데, 그걸 너한테 듣고 싶지는 않단다.
눈이 바뀌었다는 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네, 혹시 내가 검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지금은 이전과 다르게 삶의 만족도가 저 하늘까지 치솟아 있는 상태긴 하다.
솔직히 내 작품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데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그래서, 바뀌어서 싫어?"
"아니? 말했잖아. 내가 반했던 시절 느낌이라고. 그때 생각도 나고 되게 좋은데?"
"그럼 됐고."
한참을 그렇게 둘이서 실실거리다가, 문득 그녀는 생각이 났는지 그림 그린 거 보여줄 수 있냐는 물었다.
나는 일단 지금은 다 망쳐서 버려서 보여줄 수 있는 건 없고, 열심히 연습 중이라는 식으로 말을 돌려버렸다.
근데 이럼 결국 내 그림을 보여줘야 할 텐데....
"그럼 간단하게 스케치 정도만 보여줄 수 있어?"
문제는 내가 정말 시우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면, 일부러 그림을 못 그리든가 아니면 그림체를 바꿔야 한다.
근데 내가 그림체를 워낙 고정하고 살아서 변경은 힘들 것 같고....
일부러 이상하게 그리는 것도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솔직히 스피드 스케치 같은 걸 해도, 항상 내 특유의 그림체는 느껴지는 편이란 말이지?
'가만, 이제까지 내가 SD 그림체는 공개한 적이 없었구나?'
슈퍼 데포르메의 준말인 SD는 2등신에서 3등신 사이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용어다.
내가 평소에 그리던 씹덕 그림이 라이트 데포르메인 LD로 신체 비율이 실제와 거의 비슷했지.
근데 이게 LD랑 SD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서, 아무래도 예쁜 느낌을 잡으려면 그림체가 서로 많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SD를 그리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간단한 거 그릴 때는 가끔 썼으니까.'
나는 별 생각 없이 내 평소 SD 그림체로 스케치를 쓱쓱 그리다가, 뒤늦게 그럼 반대로 이 세상엔 SD까지 데포르메가 강해진 그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 지금 시우가 아니라 칼리 이름으로 해도 되는 일인가?
"칼리?"
"어, 어어. 약간 이런 느낌."
잠시 고민했지만, 여전히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대로 스케치를 보여주기로 했다.
어차피 내 SD 실력으로 시우의 그림으로 내놓으면 시우라는 이름에 악영향이 있을 것 같긴 해.
그 정도 업적은 그냥 칼리가 가져가도....
"아! 칼리도 나랑 비슷한 생각 했구나?"
"응...?"
얘는 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내가 되게 의문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더니, 그녀는 가지고 있던 노트 비슷한 것을 꺼내서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꼭 내가 보여줘야만 나온다고 생각한 것도 되게 멍청한 일이긴 했네.'
로자리아가 그려놨던 그림들은 이미 완성도가 높은 SD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색한 부분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SD는 나도 자신 있는 장르가 아니라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으리라.
아무리 내가 SD를 가볍게 그렸다고 해도, 얘한테 벌써 따라잡혔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마법이랑 그림의 재능은 비슷한 계열이라더니, 이 정도는 되어야 천재 소리를 듣는 건가?
"왜?"
"아니, 예쁘길래. 우린 생각이 잘 맞나 보다. 이런 것도 비슷한 걸 생각한 걸 보면."
"응! 아, 이건 초반에 했던 거고. 나중에 명암이나 채색까지 작업한 것도 있어."
...그리고 그 나중에 작업했다는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고 나서는 재능에서부터 오는 격의 차이를 느꼈다.
이미 SD 쪽은 벌써 나보다 나은 수준으로 뽑아내는 중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기본적으로 생략이 심해서 생기는 어색함을 어떻게 하면 귀여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그 미묘한 감각을 되게 잘 캐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채색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 정도다.
물론 명암까지만 들어간 스케치가 너무 압도적으로 예쁘게 느껴져서 그렇지, 채색한 버전도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칼리?"
"응? 아, 미안. 그림이 이뻐서 자꾸 보게 되네."
그리고 솔직히 잘 그린 것을 떠나서,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매력적이고 귀여운 그림체라는 점이 아주 크게 느껴졌다.
사실 SD에서는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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