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32화 (32/229)

〈 32화 〉 7권 ­ 그게 뭔데 씹덕아(1)

* * *

"설마, 아니겠지?"

일단 이름만 들어봤을 때는, 마치 스크린톤을 펜으로 그릴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제품이었다.

근데 내가 그 비슷한 걸 하나 알고 있거든, 그건 바로 디지털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패턴 브러쉬다.

디지털로 그림이 넘어가면서 일반적인 붓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그대로 쭉 그려주는 것도 가능해졌고, 그러한 것들을 패턴 브러쉬라고 부른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려지는 모양이 특별한 마법의 붓 비슷한 거다.

"저기, 이거 설명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 스크린톤 펜이요?"

"네."

"잠시만요."

그녀는 종이 한 장을 꺼내오더니, 그 위에 스크린톤 펜을 올리고 쭉 그어버렸다.

그러자 스크린톤이라기보다는 좀 특이한 경로로 선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분명 일직선으로 그었는데, 마치 패턴 브러쉬처럼 특정 패턴을 그려내면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빨리 움직일 때랑 천천히 움직일 때, 심지어 진행 방향에 따라서도 좀 다른 디자인이 나오긴 하지만.

솔직히 보자마자 패턴 브러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허...."

"아직 많은 종류가 나오진 않아서, 거기 있는 5종류가 전부일 거예요."

다만 내가 아는 패턴 브러쉬처럼 바로바로 만들어서 적용이 가능한 건 아닌 것 같고, 나올 때부터 펜마다 하나씩 패턴이 정해진 모양이다.

이러면 패턴마다 펜을 새로 만들어야 하니, 스크린톤처럼 내가 쉽게 만들 수 있는 녀석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도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좀 감격스럽네.

'어라?'

일단 전부 구매하는 것으로 하고, 간단하게 하나씩 테스트해 보는데 느낌이 굉장히 독특했다.

확실히 색칠하듯 마구 칠하면 특정한 스크린톤을 칠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해서, 스크린톤 펜이라는 명칭이 어울리긴 했다.

근데 그 구현하는 방식이 내가 아는 디지털에서의 패턴 브러쉬랑은 딴판이었다.

내가 색을 칠할 때마다 내가 이미 그려진 선 부분에 잉크가 달라붙듯이 이어진다는 이상한 감각이 드는데.

이것 때문에 패턴을 마구 그려도 안정적으로 패턴이 이어지면서 그럴듯한 것이 완성되게 되어 있다.

저 기능을 구현하려고 만든 특징 같은데, 이게 오히려 패턴 말고 스케치 등을 그리면 엄청 신기한 스타일로 선이 튀게 되는데....

'느낌 있는데?'

그 예측하지 못하게 튀어 나가서 달라붙는 그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우면서 신비한 느낌을 줬다.

그리고 그 느낌은 화신정열에서 불을 표현할 때 필요로 하던 것에 굉장히 가까웠고.

나는 드디어 해결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이건 진짜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해결이 되네.

그날 데이트가 끝나고 별장에 돌아와서, 곧바로 테스트해보고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물론 익숙해지는 데 시간도 걸릴 것 같고, 휙휙 튀어 나가는 부분이 많아서 느낌이 굉장히 이상했지만.

그만큼 결과물은 이제까지 봤던 어떤 것보다 신선하고 그럴듯해서 감탄이 나왔다.

"이게 시발 칠하는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선 부분이 문제였네."

오히려 칠은 옅은 스크린톤이랑 스크린톤 펜을 살짝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느낌이 나왔다.

분명 불꽃의 느낌은 들고 있으면서 각기 색에 따른 특성이 한눈에 보이고 있고.

색이 없는데도 그림만 보고도 어떤 캐릭터의 불인지 알아볼 수 있으면서, 그 캐릭터의 성격이나 전투 스타일을 느끼게 해준다.

치트리니타스의 노란 불꽃은, 말이 불꽃이지 무슨 전기가 튀는 것 같은 스파크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고.

비리디타스의 녹색 불꽃은, 마치 덩쿨이 자라나는 듯한 살아있는 식물에 가까운 모습의 불꽃이 넘실거리는 것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루베도의 빨간 불꽃은 넘실넘실 흐르는 액체 같으면서도, 근처에 있는 것을 삼키는 마치 고래와도 같은 불꽃으로 칠해져 나갔다.

"이거 진짜 괜찮은데?"

기존의 너무 하얗게 비어서 다른 공허한 느낌을 주던 알베도의 불꽃이나.

너무 검어서 마치 책 자체를 침식당할 것 같다고 느끼게 하던 니그레도와 마찬가지로.

각기 색이 자신의 특성을 굉장히 잘 살려지는 느낌이라서 감탄이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선 단계부터 새로 그려야 하는 방식이라, 불꽃을 빼야 해서 처음부터 선을 다시 따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굉장히 만족스럽네.'

사실 그 부분이야 다시 하면 되는 거지만, 이 느낌은 시간이든 뭐든 때려 박는다고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선이니까 내가 똑같이 그리면 되긴 하겠는데, 애초에 이런 아이디어 자체를 내가 떠올리지도 못했었고.

만약 떠올렸다고 해도, 스크린톤과 다르게 똑같은 것을 복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저 복잡한 방식의 작업을 한 땀 한 땀 그리다가는 정신 나가서 그만뒀을 거다.

"하여튼 찾아낸 게 어디야."

자꾸 잡생각이 드는 머리를 최대한 비우며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로자리아가 만화를 완성했으니, 아마 한동안은 나랑 붙어서 놀려고 할 텐데.

그게 심해질수록 작업할 시간이 줄어들 거라서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해서 원고를 제출하는 게, 내 만화를 예약 걸어놓고 기다리던 독자에 대한 예의 아니겠어?

'...근데 진짜로 시간이 없을 줄은 몰랐지.'

온종일 내 옆에 붙어 있으려는 로자리아 덕에, 진짜로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었고.

결국 나는 매일 밤 잠을 포기하며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하긴 낮에 졸고 있으면 은근슬쩍 와서 무릎베개해주긴 해서, 오히려 이 패턴이 더 이득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정말 낮에 계속 자고 있으면 의심할 테니, 그 유일한 자는 시간도 2시간 정도로 참아야 해서 솔직히 힘들었다.

"뭐, 생각보다 금방 완성했으니까 내가 이겼지."

새하얀 불을 불태우며 침식과 전투를 벌이는 알베도의 표지 일러스트도 괜찮게 나왔고.

불 때문에 전투 장면을 그리기 골치 아팠던 본편 만화 부분도 성공적으로 해결이 되었다.

그렇게 원고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기에, 오늘은 로자리아에게 가정사가 있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수도에 나온 상태였다.

"아, 오셨어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이 좀 늦었죠?"

"아뇨. 오히려 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요? 물론 현재 작업장이 비워진 걸 생각하면 딱 좋은 타이밍이긴 하네요."

"바로 생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다만 예약량은 많아서,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랑 이동시간 고려하면 날짜는 좀 나중으로 잡아야겠네요."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그나저나 저렇게 말할 정도로 예약 수가 많다니까 되게 기분이 좋네.

하긴 나라도 한정 프로모 카드가 있으면 참지 못했을 것 같긴 하다.

저런 것들은 나중에는 절대로 사지 못한다는 부분이 굉장히 뼈아프게 느껴지지.

"그리고 다들 좀 슬쩍 많이 팔아먹으려고 노력했던 것도 있을걸요?"

"네?"

"화신강림을 구매하는 분들에겐, 화신강림이 있는 분들만 참가할 수 있는 예약이 있다고 홍보했거든요. 아무래도 자기가 산 물건의 혜택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대부분은 예약하고 가던데요?"

그렇게 말하니까 그것도 아마 예약이 대박 난 이유가 되었을 것 같긴 하다.

새로운 한정판 물건을 주문하는 조건이, 그 전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전작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예약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직원들은 그걸 이용해서 예약 수량을 더 끌어올린 거고.

"와, 진짜로 컬러 일러스트를 하나 더.... 이게 표지로 사용되는 거죠?"

"네, 그게 원본이니까 전시에 사용하시면 되고요. 이게 표지로 완성된 녀석이요."

"글자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라, 딱 봐도 화신강림이랑 관계가 있어 보이네요."

그야 그렇지 않으면 후속작인 것을 알기 어렵잖아.

가만히 표지 원고를 보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왼쪽에 띠처럼 있는 그림 부분은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것의 용도를 말해줬다.

"화신강림에서 표지 옆쪽 그림이 좀 세워져서 보이게 해놨었던 거 기억하세요?"

"아, 네!"

"그거랑 이어지는 그림으로 했어요. 나중에 뒷이야기까지 다 모으면, 화신강림의 표지 그림이 책장에서 보이는 거죠."

"아...!"

이러면 굳이 작품에 숫자를 넣지 않아도 어떤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지를 구별할 수 있고.

책을 끝까지 모두 모아서 책장에 넣었을 때 보기 좋잖아.

안 그래도 예상해둔 콘티와 분량이면 총 5권으로 끝이 날 것 같아서, 딱 적당하게 1권의 표지를 옆에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 설명에 한참을 감탄하더니,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샘플을 뽑아왔다.

"자, 확인해주시고 이상한 것 있으면 다 말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오, 이거 딱 좋네요."

프로모 카드는 재질도 재질이지만, 두께나 크기 등이 딱 적당한 느낌이라 만족스러웠다.

물론 제일 중요한 책이나 표지 부분도 항상 그렇듯 퀄리티가 좋았다.

솔직히 매번 확인하면서도, 문제가 있었던 적이 극히 드물어서 이걸 확인하는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긴 해.

"이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넵!"

가장 중요한 원고 제출을 끝내고, 나는 오랜만에 만화와 그림의 관람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신작이 만화 쪽에 몰려서인지, 전시관의 비율 자체가 만화 쪽에 많이 몰렸네.

이제 슬슬 내가 느끼기에도 괜찮은 만화가 등장했으려나....

"어?"

그런데 그 와중에 꽤나 많은 작품이 단색 표지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거 설마 로자리아가 그린 '핑크빛 일기장'의 여파인가?

혹시나 해서 그 작품의 추천수를 찾아봤는데, 내가 그린 작품들을 제외하면 만화에서는 거의 최강 수준의 추천수가 찍혀 있었다.

"완전 대박이 났네...?"

설마 싶어서 만화가 아니라 그림을 전시하는 곳으로 향했더니, SD 캐릭터를 그려둔 작품들이 아주 많았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 로자리아의 그림이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는 중이란 뜻이었다.

이게, 우리 로자리아의 재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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