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7권 그게 뭔데 씹덕아(2)
* * *
"와, 줄 되게 기네."
한 여성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줄을 살펴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신강림'의 후속작인 '화신정열'의 출간일에, 예약 도장이 찍힌 화신강림을 들고, 굉장히 긴 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도장이 찍힌 화신강림을 보여주면, 전달 완료 도장을 그 옆에 찍고 신작인 화신정열을 건네주는 식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받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교환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조금 불만이었다.
"엄청나게 많이 예약된 작품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잖아."
이제 슬슬 그녀가 책을 받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 벌써 몇 시간이나 서서 기다렸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죽하면 화장실을 따로 가지 못해서 잡상인이 파는 병 등에 처리하거나, 배가 고파서 잡상인이 파는 음식을 사 먹거나 하는 경우가 근처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잡상인만 신났네. 하긴 여기서 장사하면 엄청나게 잘되긴 하겠지."
"손님?"
"아, 제 차례에요? 드디어...!"
"네, 예약 도장 보여주시고요. 아, 화신정열만 예약하셨군요. 오른쪽에서 받으시고, 지급 완료 도장 찍어주세요."
사전예약 보상인 특별 일러스트 사본 책갈피와 처음 보는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표지의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당연히 표지도 책갈피랑 같은 일러스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거였다고?
그럼 사전예약으로 구매하지 않아서 책갈피가 없는 사람은 이 일러를 소장하지 못하는 거야?
"진짜 다행이다...."
만약 예약하지 않았다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면 엄청나게 후회했을 터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선택이 너무나 탁월했다며 감탄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금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힘들었던 시간이,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너무 행복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와, 영롱해. 심지어 화신강림에 비해서 엄청나게 두껍네."
그녀는 화신정열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배시시 웃다가, 왠지 옆쪽 부분의 그림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혹시 잘 못 복사된 건가?
화신강림에서는 화신강림의 표지 그림 중 일부가 왼쪽에 나와 있었는데.
왜 이번에는 화신정열의 일러스트가 아니라 다른 것이....
"아...!"
두 개의 책을 겹치고 나서야 보이는 깊은 뜻에 그녀는 감탄을 내뱉었다.
이게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라서, 일러스트도 지난 권에서 이어지게 되어 있구나.
진짜 어떻게 시우 화가는 이런 천재적인 발상들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천재는 따라잡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읽어보자."
오늘 바로 화신정열을 읽기 위해, 어제까지 화신강림의 내용을 달달 외워 놓았다.
분명 마지막에 알베도한테 니그레도가 찾아오는 거에서 끝이 났었는데?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려나?
실제로 그녀가 예상한 것처럼, 만화는 니그레도와 알베도가 만난 그 직후부터 시작했다.
니그레도는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알베도도 자신을 도와 함께 싸워달라고 말했고.
알베도는 자신의 평범함을 혐오하는 만큼, 당연히 그 부탁을 받아주며 마그눔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다.
"아카데미인데 제복이 없어? 아, 그렇지. 다니는 사람 말고는 몰라야 하는 비밀의 아카데미니까...!"
작품 내에서 등장인물들이 싸우는 적인 침식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모르는 기밀이었으니.
당연히 그 침식과 싸우는 이들이 모인 아카데미는 비밀에 싸여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끄덕이면서 계속해서 만화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어, 귀여워! 뭐야 새로운 애들이 나오네?"
특히 그녀는 성깔 있어 보이지만, 귀엽게 생긴 루베도가 맘에 들었는지 루베도가 나오는 페이지 수를 메모해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근 들어 화신강림에 나오는 캐릭터들로 그림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에는 루베도를 그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와, 불 엄청 예쁘다. 분명 다 검정색인데 불만 봐도 누구 불인지 알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시우 화가는 괴물이라고 중얼거리며, 그녀는 열심히 이야기를 탐닉했다.
특히 열혈인 루베도가, 문제가 생겨서 혼자 끙끙 앓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때 정말 서럽게 우는 루베도를 보고, 괜히 울컥해져서 그녀도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역시 재밌네...."
화신정열은 결국 새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기존 등장인물들까지 사건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면서 성장하는 일기 같은 느낌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들으면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안에 담긴 감동들이 어마어마해서 무조건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든 건, 감탄 말고는 다른 평가를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단 스토리 위주로 만화책을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천천히 그림에 담긴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짚어 가면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불의 묘사가 진짜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었고.
루베도의 외모도 너무 이쁘게 뽑혀서 행복 사할 것 같았다.
"진짜 우리 루베도 너무 귀엽.... 어라?"
그렇게 열심히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그녀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화신체로 변신하는 경우, 옷이 전부 불타오르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는 옷을 벗고 변신하는데.
그 과정을 굉장히 미려하게 담은 부분이 이제야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아깐 대충 변신 흐름이라 답답해서 빨리 넘겨서 몰랐는데.... 저게 대체 뭐야?"
훑어서 지나갈 때는 그냥 평범한 코르셋을 벗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코르셋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였다.
가슴 부분까지는 코르셋과 비슷하긴 한데, 이상하게도 허리를 조이는 부분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뭔가 가슴까지 고정해주는, 평범한 코르셋을 잘라서 윗부분만 남겨둔 느낌이야.
"이거 속옷이지...?"
일단 겉에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나서 나타난 옷이니까 속옷이라고 볼 수 있긴 하겠지.
가리는 면적만 생각하면, 코르셋을 사용하지 않을 때 가슴을 가볍게 묶어주는 천과 비슷한 느낌인데?
하지만 그런 주먹구구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코르셋처럼 확실히 고정된 형태로 가슴을 받쳐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당최 처음 보는 이상한 느낌의 속옷에 여러모로 그녀는 어지러워졌다.
시우 화가가 이런 그림을 그렸다면, 분명 그것에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긴 하는데.
지금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고 있었다.
"저게 왜 필요한 거지?"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코르셋보다는 훨씬 벗기 편한 디자인이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 그냥 아무것도 입히지 않으면 되는 걸 텐데, 대체 왜 저런 난생처음 보는 옷이 등장하는 걸까.
심지어 한 명의 캐릭터가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각기 다른 디자인의 이런 속옷을 입고 있었다.
"벗는 부분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벗은 뒤에 떨어진 모습도 되게 열심히 표현했는데...?"
하지만 마치 일부러 보여주려는 것만 같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라면 굳이 이걸 이렇게까지 열심히 연출할 필요가 없잖아?
"시우 화가님은 처음에 데포르메 그림을 알리려고 작품을 데포르메로 냈었지?"
그리고 그다음에는 만화를 알리기 위해 화신강림을 그려서 전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이 그림계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듯, 한가지씩 무시무시한 것을 풀어온 셈이다.
심지어 만화의 발전을 위해 스크린톤을 무료로 배포했다는 건, 요즘 화가나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다.
"분명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는 오늘도 답답하다'에서는 오크와 하프 오크의 억울한 비애를 담았지."
그 덕분에 이제 어지간한 인간 마법사들은 오크나 하프 오크에 대한 편견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나 작품에 대단하던 걸 담아왔던 양반이, 갑자기 이번 작품에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넣어놨다?
절대로 가볍게 넘어가도 괜찮은 소재가 아니라, 엄청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물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씨. 진짜. 마법사들이 이런 거 못 참는 건 어떻게 알고."
어떻게 알겠어.
본인도 엄청난 대마법사니까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즐기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 교수님이 시험 문제 숨겨두듯 메시지를 담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우 화가는 너무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처음부터 여기에 신경 팔리지 않고 스토리부터 쭉 읽어서 그나마 다행인 건가?
"아아악! 미치겠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듯한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혹시나 해서 이 이상한 속옷을 부르는 명칭이 있을까 싶어서 작품을 다 뒤져보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 읽을 때는 보지 못한 것 같지만, 처음 보는 단어라서 그렇게 넘어갔을지도 모르잖아?
"어, 드디어 모르는 단어 나왔다!"
이게 이제까지 내가 찾고 있던, 그 이상한 속옷을 부르는 명칭인지는 사실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처음 듣는 단어가 있고, 처음 보는 물건이 있으면 그 둘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저 단어가 나온 곳은 치트리니타스가 루베도에게 그 이상한 속옷을 건네주면서 잘 챙기라고 말하던 부분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그 속옷의 명칭일 가능성이 크니까, 그렇게 가정하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대로 읽으면.... 브래지어? 이렇게 읽는 게 맞겠지?"
난생처음 보는 이 브래지어라는 것이 뭐길래, 시우 화가는 이것을 우리에게 숙제로 던져준 것일까.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면서 화신정열의 페이지를 계속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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