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38화 (38/229)

〈 38화 〉 8권 ­ 혁명의 팬티를 휘날리며(2)

* * *

"허, 참...."

이게 시발 대체 무슨 상황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모자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아서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너무 당황스러운 게 많아서 내 머릿속에서 정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다.

너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

일단은 최대한 진정하고 상황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봐야겠다.

아니 근데 시발 이걸 어떻게 이해해?

"일단 나랑 사람들의 인식 차이가 뭐길래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지?"

이번에는 어지간한 조사를 다 했다.

특히 자위 도구인 딜도 같은 건, 제출 직전에 혹시 몰라서 실존하지 않는 건가 싶어 더 찾아봤는데.

역사상 여러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터부시되는 것이 맞았다.

그럼 내가 생각한 대로 그 터부시되는 분위기를 깨야 한다는 목적에 맞으니까 그대로 내용을 유지했었고.

실제로도 내가 그런 말을 하려고 한다는 것까지는 정상적으로 전달이 되었다.

또한 브래지어에 대한 부분도 굉장히 잘 전달되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제대로 된 브래지어가 시장에 출시되는 중이었고, 그 종류나 사이즈가 많아서 벌써 여성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무조건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란다.

이것도 내가 원하던 느낌의 선순환을 목표로 잘 달려 나가고 있었다.

'다 그렇게 생각했던 그대로 풀리면 당황스럽지도 않을 텐데.'

이상한 사람들끼리 뭉치면 나름대로 무언가 엄청난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더니.

이번에 내 만화를 본 사람들이 무슨 브래지어 연구 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내가 그린 야한 브래지어와 팬티를 기반으로 한 실용 속옷 제작 따위를 하겠다고 선언했단다.

물론 야한 팬티를 만들어 주는 건 좋은데, 대체 그 또라이 같은 디자인을 어떻게 실용성 있게 만든다는 거야?

진짜 여러모로 천재들이 많은 세상인가보다....

왜 시발 야한 속옷을 그려서 섹스할 때 쓰라고 했더니, 그걸 아름다움의 해방이라는 개소리를 하면서 실제로 노출하는 것이 가능한 속옷을 만들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누가 봐도 당연히 그냥 사람을 유혹하는 용도로 보이지 않나?

물론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의도로 해석한 사람도 있었지만, 에이 설마 '위대하신 시우 화가님'이 그런 이유로 여기 한 챕터를 소모했겠냐며 엄청나게 까였다는 이야기는 정말 여러모로 마음이 아팠다.

진짜 그런 이유로 소모한 거야 이 망할 놈들아.

"결국 이거 이름값 때문에 이상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이런 상식적인 판단이, 나랑 크게 다른 세상은 아니다.

애초에 내 기억 중 꽤 많은 부분에 칼리가 있으니,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 수준의 성적인 분위기나 상식 같은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상 당연히 저런 속옷이 그런 용도로 쓰일 거라 판단해서 넣었던 거다.

실제로 그냥 내가 그린 느낌 그대로 야한 속옷으로 출시를 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거기 무슨 새로운 기술 이런 게 들어가는 것이 아닌 애초에 장식용이라는 걸 바로 이해해준 거지.

이렇게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만 봐도 내가 이상했던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번에 했던 가장 큰 미스는, '시우'라는 인간에 대한 이 세상의 기대감이 너무 커졌다는 걸 간과했다는 거다.

별것도 아닌 것에 이것도? 이것도? 하면서 의심하니까 끝도 없이 오해하는 거지.

심지어 평범하게 정상적으로 이해한 사람이 있어도, 감히 시우님이 그런 하수 같은 생각을 했겠냐면서 밴당할 거 아니야?

정상적인 의견이 묵살당해 버릴 테니 이상한 것만 주류로 떠오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 시발."

사실 이건 내가 잘못한 것이긴 했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겠지, 하고 무슨 유혹을 용도로 사용하니 뭐니 하면서 세세한 주석까지 달진 않았으니까.

나도 이 정도로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갈 거라고 예상했다면 그냥 주석을 달고 말았을 터다.

그렇다고 주석을 아예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고, 고민할 때 굳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무언가 어떤 물건에 대해서 용도를 확정시키고 싶지 않았거든.

말이 유혹용이고 남편을 만족시키는 용도지, 그게 아니라 그냥 그 허전함과 짜릿함을 즐기는 변태일 수도 있잖아?

그런 사람들도 챙겨 줘야지.

근데 그 변태 같은 행위가 정석적인 미래의 아름다움으로 퍼지고,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 좀 당혹스러울 뿐.

'하긴, 자궁 두근거린다는 게 유행어가 된 시점에서 이런 부분은 틀려먹은 걸지도 몰라.'

그리고 사실 딜도파트처럼 슬쩍 만화로 표현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콘티 단계에서 아무리 내가 아니라 '시우쨩'이라는 가상의 여자 캐릭터라도, 내 자캐가 갑자기 다른 남캐에 헤으응 거리는 걸 그리는 건 묘한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진행이 되질 않았기에 그대로 접었다.

그렇다고 만약 시우쨩이 아니라 새 캐릭터들을 등장시켰으면, 부자연스럽게 티 내는 느낌이라 주석 다는 거랑 다를 바가 없었고.

보빔으로 진행했다면, 오히려 그게 또 여성과 여성의 사랑도 나쁘지 않다는 걸 말하는 작품이라고 이상한 말 나올까 봐 자제했었다.

지금 상황 보면 진짜로 그런 내용이 나왔을 것 같아서 더 무섭네.

"좋게 생각해야 하나? 시발, 지금 보니까 최악은 아닌 것 같은데?"

하긴 오크 남편감이 유행을 타기도 했는데, 변태 속옷이 유행을 타는 정도야 뭐가 이상해.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게 그냥 좋은 말로 겁나 포장해서 그렇지, 그냥 쟤들이 변태 속옷 입고 다니고 싶다는 거잖아?

나는 그런 여성들이 늘어나면 오히려 시각적으로 이득인 부분인데?

"와, 여긴 벌써 정신승리 끝났다. 음, 솔직히 그럴 수 있지. 그냥 그런 유행이 생길 수도 있잖아. 내 잘못 아니야."

자, 이제 다음 오해로 넘어가 보자.

사실 이게 내가 황당했던 메인이고, 실시간으로 자살 마려워지는 파트다.

하, 내가 이번 작품의 내용은 원하면 어디든지 가져다 써도 된다고 적어놓은 게 이걸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자캐인 시우쨩이 밑트임 팬티 모양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는 혁명 그림 같은 걸 내가 보고 있어야겠어?

그리고 이 시발 미친 나라는 민주주의도 아닌데 왜 이런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는 거냐?

하긴 시발 누가 봐도 저걸 국가 반란을 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진 않겠네.

'내 자캐인 시우쨩을 쓴 게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실수야.'

나는 그냥 지구에서 평소에 이런 컨셉의 그림이나 만화를 그릴 때 시우쨩을 자주 썼기에,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사용했던 건데.

시우쨩이라는 이름을 쓰면, 그것 자체가 '시우'의 가치를 가질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전국에 내 자위 장면을 직접 그려서 뿌린 미친 치녀가 되어 있었고.

그걸 무슨 성녀의 행위처럼 포장 당해서 조리돌림 당하는 중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이걸 내가 시작한 운동을 이어가는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그린 만화의 대사 낭독회라도 당하는 듯한 기분이다.

앞으로는 조심할 테니까 제발 이쯤에서 용서해주세요. 이 미친 새끼들아.

물론 내가 이 세상에서 여성들이 야한 것에 좀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게 당연한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왜냐면 그런 분위기가 되어야 내가 야한 만화 그리기도 좋고, 내가 보기에도 좋잖아.

다만 그걸 무슨 일침충이 강림해서, '엄청난 사람인 나도 이렇게 딜도로 자위하는데 그럼 내가 쓰레기냐?'의 느낌으로 자위 해방 선언을 했다?

나는 그런 급진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절대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광고하듯 꼬드겨서 천천히 끌어들일 생각이었지.

그래서 굳이 시발 딜도도 존나 예쁘게 만들었잖아.

왜 그런 디테일은 봐주질 않고, 이상한 부분에서 핀트 이상하게 잡고 질주하냐고.

시발 심지어 '시우쨩'이 여캐라고, 이미 내 성별이 여자로 둔갑해 있다는 사실도 공포였다.

이미 나는 여성의 성적인 행복을 위해, 그림으로 행동하고 활동하는 여성 혁명가 동지가 되어 있었다.

'와, 생각해보니까 진짜 어처구니없는 느낌으로 2차 창작이 발생한 거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이번에 출시한 '브래지어 이야기'라는 만화의 모든 내용을 다른 곳에 가져다 써도 된다는 설명을 넣어놨다.

물론 그건 브래지어 같은 걸 똑같은 디자인을 내 작품 때문에 못 만든다거나 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넣은 거다.

하지만 문제는 '시우쨩'이라는 캐릭터도 만화에 있는 일부라는 거지.

그러니까 시발 얘들은 폭주하다가, 이 부분을 보고는 '시우쨩'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자기들 이상한 주장 하는 데 써도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 버렸다.

그리고 그 인간들은 대부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이들일 테니, 자연스럽게 시우쨩이 이곳저곳 그림에 등장하는 결과로 이어진 거고.

"아니 진짜 작품 이름도 마음에 안 들어. '혁명의 팬티를 휘날리며'라니, 너무 천박한데...?"

이딴 게 왜 추천수 급상승해서 여기까지 올라와 있는 거냐고.

물론 그렇게 혹평하면서도, 저 그림이 정말 잘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더 짜증이 났다.

왜 그 좋은 실력으로 이상한 걸 하고 계시는 건가요?

'차라리 나쁜 놈 취급이 더 나을 것 같은데.'

무슨 사람을 고귀한 희생자처럼 묘사하니까 오그라들어서 죽을 것 같다.

물론 시우쨩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야짤을 그린다던가,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뭐 내 작품을 표절한 것도 아니고, 모두가 저 캐릭터가 누구인지 아는 시점에서 그냥 2차 창작이잖아.

개인적으로 2차 창작이라는 시스템이 열리는 시발점이 된 것 같아서 그 부분은 나름대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그냥 나는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취급받는 게 힘든 거였다.

근데 그건 이미 예전부터 그러던 거잖아?

뭐야, 별거 아니었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