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8권 혁명의 팬티를 휘날리며(5)
* * *
"하, 진짜...."
그 뒤로 한참을 교복을 그려보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게 그리는 것만 문제면 어떻게든 억지로 그려보겠는데, 그려 놓은 것을 보기만 해도 몸 상태가 나빠져서 답이 없었다.
그냥 머릿속에서 그리는 정도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그걸 내 손으로 그려내려고 하거나 그려낸 것을 볼 때 역함이 올라왔다.
난장판이 된 실내를 정리하면서, 좋아하던 교복을 잃게 한 그 새끼를 욕지거리로 씹으면서 화를 삭였고.
결국 이것도 정신적인 문제일 테니, 언젠간 꼭 극복해서 교복을 그리겠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했다.
여전히 나에게 교복을 그냥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망할 그 '검열'로 점철된 나라에서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라면.
만약 이 세상에서 그런 '검열' 없는 삶을 지내다 보면 씻어낼 수 있겠지.
지금 확인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아까 스케치를 완성 단계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일지도 모른다.
"하, 그럼 무슨 디자인으로 가야 하냐."
망할 어떤 나라는 조금이라도 교복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으면, 교복으로 쓰이지 않는 복장조차 지랄했었고.
그 영향인지 세라복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교복이라는 생각이 들만한 복장은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럼 최대한 그것과 멀면서 제복을 사용하는 직업들을 생각해 봐야 할 텐데.
"승무원복도 나름 예쁘던데."
물론 승무원복도 종류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어떤 느낌을 골라야 할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나름 금방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위쪽은 흰색 베이스의 셔츠를 입고, 아래쪽에는 달라붙는 스커트를 입혀보면....
'괜찮은 느낌이긴 한데.'
학년 구별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으니, 목에 묶인 손수건에 색을 넣어서 표시했다.
빨간색이랑, 초록색, 파란색? 파란색은 살짝 진해서 보라색에 가까운 것도 괜찮겠다.
4학년의 경우에는 사복으로 활동한다고 했으니, 3개의 색상을 준비하면 돌려서 사용할 수 있으리라.
다만 정작 완성된 형태에서 손수건이 끼치는 영향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손수건만 벗기면 학년 구별이 어렵다는 점도 그렇지만, 손수건 부분이 부피와 색이 모두 강하니까 너무 부각되고....
솔직히 내 취향에 가까운 느낌은 아니라서 손수건을 제외해보기로 했다.
'이러니까 굳이 승무원복보다는, 평범한 일반 복장 느낌이긴 하네.'
사실 내가 생각하던 승무원복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목에 이 손수건 비슷한 것을 묶는 것이니.
그것을 제외하면 승무원복의 느낌이 많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이러면 이제 학년 구별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소매 부분에 색으로 띠 하나만 둘러줬다.
그러자 꽤 그럴듯한 제복의 느낌을 내기 시작했다.
다만 뭔가 평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버릴 수 없었고.
옆에 비슷하게 그려보면서 수정할만한 부분이 뭐가 있나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가슴 부분을 파버릴까?"
이번에 떠올린 아이디어는, 역시나 야한 코스프레 복장에서 생각해낸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교복을 그리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 억울해 죽겠는데, 그럼 다른 부분에서라도 내 취향을 가미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옷을 변태 치녀 같은 느낌으로 해서 그려버리면 어떠려나?
물론 높은 확률로 캔슬 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교복을 그리지 못하는 이상 캔슬 당해도 크게 상관없었다.
내가 이 외주를 하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교복을 전파하기 위해서인데, 교복을 전파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솔직히 이상한 곳에 화풀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평소에 맨날 야짤만 그리는 변태 작가한테 외주를 맡겼고, 특별히 가이드라인도 안 줬으니까 내가 폭주해도 괜찮지 않을까?
결국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그려오라는 거고, 그 미학에는 맞으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어, 바로 깊게 파버리고."
목부터 가슴 부분 골이 보일 정도로 깊게 파버리는 식으로 옷의 디자인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이러니까 점점 원형을 잃어서 승무원복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어차피 승무원복은 베이스일 뿐이니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노출한 이상 소매도 반팔로 당겨서 디자인을 바꿔야 자연스러울 거고...."
위에만 깊게 파는 건 성에 차지 않으니까, 아래쪽도 크롭티처럼 잘라 내버린다.
거유 기준으로 밑가슴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면서, 배꼽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
겨울에는 상당히 추울 것 같긴 한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동복용 겉옷 같은 것을 준비해주면 될 것 같았다.
"와, 근데 진짜 다들 이러고 다니면 아카데미가 아니라 창녀촌처럼 느껴지겠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거고, 여기서는 이게 유행을 타서 별것 아닌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비키니 같은 경우에는 이것보다 훨씬 노출이 많은데도 그리 위험한 옷으로 취급되지는 않잖아?
실제로도 내가 야하게 의도한 걸 일반적인 미학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고.
"아, 이렇게 되니까 목이 좀 허전하네. 그렇다고 손수건을 넣으면 겨우 만든 맨살이 너무 많이 가려지고."
그래서 학년의 색에 맞는 초커 정도를 채워 줬더니, 적당히 공간이 느껴지지 않아서 괜찮아졌다.
다음은 치마를 디자인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위에서 노출도를 올린 만큼 치마의 길이도 미니스커트 수준으로 줄였다.
여기서는 변태력을 끌어 올려야 하니까, 나중에 예시 그림 그릴 때 어지간한 각도로 앉으면 팬티가 보인다는 주석을 달아야지.
"약간 특이하면서 위랑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내가 초커랑 소매에 넣은 학년별 색에 광택을 강하게 넣은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고광택의 미니스커트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번쩍거려서 천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위쪽에서 사용한 광택과 색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더 다듬긴 해야겠지만. 일단은 나쁘지 않은 느낌이네."
물론, 이건 여성용이고 남성용의 경우에는 흰 베이스의 와이셔츠 느낌의 옷으로 진행했다.
초커를 넣는 대신 와이셔츠 깃 부분에 색 라인을 넣어서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털어냈다.
그리고 바지는 평범하게 편한 느낌을 줄 것 같은 반바지 정도로 타협을 했다.
"색이 좀 문제네."
여성복처럼 하의 색을 학년 색으로 박아버리면, 너무 디자인이 이상해지는 느낌인데.
아니면 남성복만 학년 색에서 광택을 빼고 색감도 거친 느낌으로 팍 죽여볼까?
이러면 바지로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색상들이 되는데.
"오? 그래, 차라리 이렇게 가야겠다."
괜찮은 색을 찾아내고 나니까 이 디자인도 꽤나 적당했다.
완성해서 남녀를 비교하니까 더더욱 눈에 들어오는 치녀같은 여성복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 정도면 정말 만족스러운 디자인이었다.
"좋아, 여기까지 마법부 제복 디자인 끝이고."
내가 알기로는 매번 땀 흘리면서 검술 연습하는 검술부랑 마법부가 같은 제복을 쓴다.
심지어 항상 그 옷으로 활동하고 갈아입지 않는 느낌이라서 엄청나게 고통받는다는 모양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검술부에서 사용할 제복은 따로 디자인하기로 했다.
나도 검술을 해봐서 알지만, 일반적인 통풍 잘 안 되는 옷 입고 연습하면 땀에 절어서 죽을 것 같아진다.
어차피 그 제복에 방어구 역할을 하는 것도 없어서, 방어구가 필요하면 추가로 입어야 하잖아?
그럼 그냥 맨살이나 얇고 통풍 잘되는 티셔츠를 입고 연습하는 게 낫지.
실제로 나도 여기서 혼자 연습할 때는 그런 느낌의 옷을 입고 연습했다.
"일단 여성용부터 생각하면.... 예전에 육상에서 쓰던 부르마 복장이 꽤나 괜찮았는데."
일단 그 디자인을 그려 놓고 보니, 살짝 더 야하게 하고 싶어서 하의 부분을 안쪽으로 더 파냈다.
상의는 원본의 민소매를 유지하면 학년 색을 표기하기가 어렵기에.
마법부의 디자인과 비슷한 느낌이 될 수 있도록 소매를 붙여놨다.
다만 이 부분이 딱 달라붙어야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하는 운동계 복장의 특성상, 소매가 마감되는 부분에 학년 표시 띠를 넣어서 마법부랑은 그 위치가 조금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일상 운동용 티셔츠의 느낌을 강하게 나도록 하는 형태로 완성되었지만.
다른 점이라면 크롭티라 배가 노출이 되어서 드러나는 맨살의 면적이 늘어났다는 거다.
재질을 잘 늘어나고 달라붙는 재질로 설정해서, 가슴의 라인은 마법부의 제복보다 훨씬 두드러지지만.
옷이 안정적으로 달라붙어 있어야 하므로, 밑 가슴 부분도 보이지 않도록 가슴 아래까지 옷이 달라붙는 것이 가능한 사이즈가 되도록 했다.
나는 그렇게 완성된 검술부의 여성복을 보면서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슬슬 끝나가네."
남은 건 검술부의 남성복이다.
사실 이 경우에는 마법부의 남성복과 검술부의 여성복을 적당히 섞으면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게 되어 있다.
일단 검술부 여성복의 디자인에서, 상의의 크롭된 부분을 돌려내 길게 만들어낸다.
굳이 남성복이 가리는 면적을 늘리는 건, 내가 남자 나체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여기서 부르마 부분을 좀 달라붙는 반바지 느낌으로 변경한다.
"마법부 여성복까지는 아니지만, 여기도 좀 광택이 있었는데.... 마법부 남성복처럼 여기도 광택을 죽이면?"
평범하게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느낌의 남성복이지만.
띠 형태로 남아 있는 학년 색상 덕분에 아카데미 제복이라는 느낌이 살짝 남아 있게 되었다.
솔직히 남성복은 평범한 게 최고지.
"일단 초안은 이런 느낌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이제부터는 세부적인 색상이나 형태를 수정해가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주석을 달아가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나 여러 상황에서 이 옷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참고 그림들을 첨부하면 된다.
다만 그 그림들을 그대로 옷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색감을 참고할 수 있도록 그림 전부를 채색해야 하는 기나긴 대장정이 될 예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