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9권 화신전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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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전시관에 찾아가서, 어떠한 분위기인지만 보려고 했는데.
이게 사실상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았다.
아직 제품도 다 나눠주지 않은 상태라, 예약된 시간이 될 때마다 꾸준히 화신전장을 찾으러 오는 사람만 계속해서 보일 뿐이었다.
'뭐, 이건 이것 나름대로 힐링이 되네.'
자신의 작품이 잘 팔리고 있다는 것만 구경해도 굉장히 힐링이 되는 법이었다.
물론 저 작품들은 전부 원가에 판매하는 중이기에, 많이 판다고 해서 돈으로 이득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그 부분이야 사람들이 마지막 파트를 읽으면서 즐겨줄 걸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이미 돈은 전작들로 꽤나 넉넉하게 번 편이라서 걱정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여튼 내가 원하던 반응을 제대로 들을 때까지는 작품을 발매하고 나서도 꽤나 시간이 필요했는데.
사실 그 단계에서도 이미 만족을 했던 것이, 평소라면 이미 작품 내용에 대해서 떠돌아야 하는데 일부러 숨기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 감동을 스포일러하지 않도록 자제하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그냥 보다 빡쳐서 읽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표정은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이고....
'사실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고 있겠지만, 정작 내가 아는 사람이 없네.'
어디까지나 이건 전시된 작품을 보고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전부라서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 이런 평가들이 자주 나오는 마법사 모임 등은 내가 들어가 볼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꽤나 만족스러우니까, 돌아가서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나 더 해볼....
"어, 자네?"
"샤론 원로님?"
"허허, 아직도 론도 녀석이 책을 구하지 못했다기에, 하나 가져가려고 들렀는데. 자네를 볼 줄을 몰랐군."
"아하하, 스승님이 어떤 분위기인지 보고 오라고 하셔서요. 워낙 이번 작품에 공을 들이셔서...."
"하긴, 정말 엄청난 명작이었으니. 본인도 어떤 반응일까 궁금할 만해."
"혹시 대충 어떤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지 아시나요? 제가 아무래도 스승님 말고는 아는 분들이 없어서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솔직히 샤론 원로님을 만나는 순간 꽤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쪽팔리는 말만 들을 것 같아서 그다지 마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이지만.
오늘만큼은 확실하게 평가해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런 의미로써는 가장 권위가 높은 화가 중 하나인 샤론 원로님의 평가가 가장 좋은 것 중 하나지.
"사실 자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최근 그림계에서는 시우 화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왔다네."
"예? 그랬었나요?"
"순정한 그림판에서 정치질을 시도하고 있다던가, 너무 의도가 명백한 그림을 그려서 물을 흐린다던가. 물론 소수의 의견일 뿐이니까 굳이 자네 스승한테까지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었지."
그건 꽤나 억울한 이야기군요.
물론 아예 그런 의도가 없다기에는, 야한 것을 부흥시키겠다는 목적도 그런 것에 들어갈 테니까 조금은 찔리지만.
기본적으로 큰 건수가 되었던 것들은 대부분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슈가 되었던 거잖아.
"다만 그런 의견들이 대부분 반박을 받은 건, 매번 시우 작가는 그림과 만화에 진심이라는 점이 컸네. 특히 '브래지어 이야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였었고."
"아하...."
"그랬더니 그자들은, 이제까지의 작품들이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했던 행위고. 이제부터 이런 선전물로 우리를 현혹할 거라고 어쩌고 했는데.... 이번에 나온 작품을 읽고는 다 울면서 반성하더군."
"...네?"
작품성을 위해 수익이나 제작에 걸리는 시간 따위는 전부 무시해 버리는 예술가다운 자세는 당연하고.
오로지 작품에 집중해서 그려낸 그 소름 돋는 연출은, 마치 그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싹 다 반박하는 느낌이었으니.
내가 다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어.
"뭐, 자네 스승이 그런 것을 유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냥 자네 스승은 그냥 작품에 미친 사람일 뿐이지."
"그, 그런가요?"
"자연스럽게 회색조로 넘어갔다가 컬러를 부담스럽지 않게 이어지는 편안한 감각은 굉장히 배려심이 깊었고. 그것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읽는 이의 감정을 타고 작품이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세하고 다양한 연출들이, 작품 안에서 무시무시할 정도의 퀄리티로 구현이 되어 있어."
사실 이번에는 고생한 만큼 저런 말들을 엄청나게 듣고 싶었다.
내가 고민하고 적용하고, 열심히 그려낸 작품의 세세한 것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야말로 엄청나게 기분이 좋으니까.
심지어 이번에는 어떠한 오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내가 그려낸 작품에 대해서 나온 평가들로 가득했다.
"솔직히 나는 처음 읽을 때부터 분석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세세하게 보며 읽어 나갔는데.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계속해서 자네 스승이 흔들어 놓더군. 앞부분에 치밀하게 깔린 악랄한 배경들의 모습에 오히려 정신을 좀먹어서 포기하게 되게 되어 있어."
결국은 나도 분석이고 뭐고, 작품이 이끄는 감정선에 휘말려서 마지막 장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지.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확실히 그 부분에서 전작과 대비를 뒀던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에서는 행복해 보이는 세상의 모습을 그렸지만, 이번 작에서는 침식으로 인해 무너져가고 스러져가는 연약하고 절망적인 세상을 은근히 드러냈거든.
그걸 알아보길 원해서였다기보단, 그래야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성공적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항상 시우 화가의 작품에 불만을 품은 적이 없을 정도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네만. 이번 작품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훌륭해. 솔직히 말해서 처음 그가 데포르메나 만화의 개념을 제시했을 때보다 더 충격을 받았을 정도야."
"그런가요?"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와 섬세함으로 생겨난 충격이지. 하지만 이건 '만화는 이래야 한다'라는 느낌의 강렬한 작품성의 폭격이었으니, 아마 나는 이 작품을 평생 잊지 못할걸세."
샤론 원로님은 '화신전장'에 대해서 엄청난 극찬을 때려 박았고, 그 후에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런 평가라는 말까지 들으니까 여러모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진짜 몇 달 동안 죽어라. 12장의 그림 그리는 것에 미쳐서 살았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내가 열심히 했고, 그게 정말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울컥해서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에게 전해드릴게요. 많이 좋아하실 겁니다."
"앞으로도, 작품 기대한다고 전해주게. 요즘 정신없이 바쁜 것만 아니어도, 나도 만화를 그려보고 싶은데.... 참 아쉬워이."
"샤론 원로님의 만화라니. 기대되네요."
론도 교수님의 그림에서도 그리 감탄했는데, 과연 샤론 원로님은 어떤 그림을 그리시려나.
조금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예전에는 전시된 것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미 내려가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없어서 본 적이 없었다.
'후, 여전히 좀 과대평가 된 것 같아서 얼굴이 후끈거리긴 하는데....'
그래도 오해 없이 펙트만으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별로 반박을 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이번에는 잘했으니까 순수하게 즐기고, 조금 우쭐해도 되는 거 아닐까?
아까 전시 상위권에서 '우쭐한 표정의 시우쨩'이란 그림을 보고 기분이 떨떠름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그 시우쨩처럼 우쭐해지는 듯한 느낌이라 공감이 된다.
나는 그렇게 행복한 상태로 별장으로 돌아왔고.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정말 오랜만에 침대에서 푹 잠들었다.
작품 완성한 이후로 꾸준히 잠을 잤지만, 평가가 기대돼서 맨날 잠드는 것이 어려워 뒤척이고 그랬던 것이 있었는데.
오늘은 금방 푹 잘 수 있었다는 느낌이다.
"어우, 너무 푹 잔 건가? 머리가 다 띵하네."
푹 자고 일어났더니, 사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이 흐릿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는데, 이상하게 주방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쥐라도 숨어들었나?
괜히 음식물 건드리면 골치 아프니까 가서 처리해야겠네.
"응?"
"아, 칼리! 일어났어?"
"어? 뭐야. 로자리아?"
"어제 왔는데, 엄청 푹 자길래 안 깨웠어. 되게 행복하게 자더라."
"아.... 잠시만, 근데 어떻게 들어왔어!?"
"너희 부모님이 주셨는데?"
"엥? 만났어?"
"응, 수도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별 우연이 다 있네.
혹시 수도에 오신 김에 여길 들렀는데, 우연히 엇갈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열쇠를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면 상황이 딱 맞아떨어진다.
나는 최근에 계속 수도에서 살았으니까 엇갈릴 만하지.
와, 근데 벌써 로자리아가 방학할 시기가 되었구나.
이 미친 작품에 너무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단숨에 시간이 삭제된 탓에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하긴 나도 최근에 작품으로 바빴으니, 한동안은 로자리아랑 놀면서 시간이나 보낼까?
"헤헤 칼리이!"
"으악!?"
"킁킁! 후, 칼리의 냄새. 진짜 칼리가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나도 리아 보고 싶었어."
"흥, 아까는 당황한 것 같던데?"
"갑자기 누가 무단으로 집에 쳐들어왔는데 당황하는 게 당연하지."
로자리아도 그 말에는 반박할 방법이 없었는지, 은근슬쩍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너도 이럴 때는 약은 면이 있구나.
심지어 그 말을 돌리는 방향의 수위가 위험해서, 나를 절로 당황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짜잔!"
"뭐,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자신의 치맛자락을 들춰내면서 팬티를 보여주는 로자리아의 모습에 당황했다.
물론 그 변태적인 행동 때문에 당황한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드러난 팬티의 밑이 전부 트여 있으면, 그냥 당황하는 정도가 아니라 급하게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는 척만 할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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