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10권 그라베다 아카데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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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못 그렸다. 이건 폐기."
대체 왜 마법 문자는 한붓그리기로 그려야만 정상 작동이 되는 걸까.
심지어 12시쯤에 점을 찍고,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그려야만 한다니.
연습하면 할수록 느끼게 되는 미묘한 요구사항이 귀찮았다.
저번에 로자리아가 이걸 알려줬을 때, 만약 방향이 틀리거나 끊어서 그리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실제로 해보라고 해서 해봤더니.
마력을 흡수하던 문자가 폭발하듯 붕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문자에 담긴 내 마력이 그 경로도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에 맞춰서 마력이 공급된다나 뭐라나.
기록 마법은 마력석의 안정된 마력이라서 이런 일이 없으니 모양만 똑같이 그리면 되지만.
직접 쓰는 마법들은 이런 부분에서 제한이 심하니까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야 어디 하나 붕괴하면 거기로 마력이 다 빠져나가서, 마법진 자체가 캔슬되니까 실수하면 안 되겠지.
"의외로 실수 안 하고 그리게 연습했던 시간이 마법에 도움이 되네."
분명히 이 세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적응한 거였는데.
역시 이 세상에서 괜히 마법이랑 그림이 비슷한 범주로 취급받는 건 아닌 모양이다.
결국 마법진도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일종이니, 이런 기초 부분은 공유할 수밖에 없을 거다.
물론 심화 부분에서까지 왜 비슷한 취급을 받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여튼 의외로 마법 공부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 와서 했던 그림 연습들이 대부분 노하우로 작용하는 중이라서, 더 빠르게 적응하는 느낌이다.
시험 날까지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정작 배우는 것도 빨라서 그다지 걱정이 들지 않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어?'
이전에 검을 휘두르면서 하루를 모조리 가져다 버리던 공터에서.
지금은 마법진과 마법 문자를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나부터가 연습의 성취를 느끼고 있다는 거다.
원래 내가 마법진을 그리면, 아무리 원을 똑바로 그려도 조금씩은 틀어진 부분이 있었고.
그래서 아주 옅지만 흘러나온 마력의 빛이 마법진에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빛만큼 마법이 발동할 때 손해를 봐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완전히 그 빛이 사라지도록 완벽한 원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번 거 완벽하지 않나?"
굳이 마법진 그리는 연습을 따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법을 발동시키는 김에 마법진도 최대한 동글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 덕분인지 처음으로 완벽한 원을 그려낸 듯했다.
로자리아가 굳이 더 완벽한 원을 그리지는 않아도 합격은 충분하다고 했던 걸 생각하면, 입학시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아까랑 똑같은 마법을 써보면....'
어둠을 의미하는 문자와 커다람을 의미하는 문자를 같이 그려내고.
마법진에 마력을 투입해서 마법을 발동시킨다.
아까도 사용해 본 적 있었던 마법이지만, 이 문자 크기였으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빛이 들어와서 완벽한 어둠이 되지는 않았는데....
"오?"
거의 완벽한 암막이 펼쳐지는 걸 보니, 확실히 효과가 올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력 소모는 같았으니, 확실히 마법진을 똑바로 그리면 효율에서 오는 차이가 넘사벽이네.
이래서 이걸 필수로 연습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는구나?
"하, 연습이라는 건 역시 이렇게 하면 늘어서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게 맞지...."
매일 같이 한계만 느끼던 검술이랑은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서 즐거워진다.
정말로 이게 내가 마법에 재능이 있어서 그런거고, 앞으로도 이런 느낌이 계속된다면 마법도 서브로는 배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모두가 마법 메인에 그림 서브를 생각하겠지만, 나는 반대로 해보는 거지 뭐.
화가가 취미로 마법사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칼리, 아직 연습 중이야?"
"응, 왜? 일단 마법은 끝나서 쉴 수는 있는데."
"점심 먹으라고 불렀지. 짠!"
"뭐야. 굳이 샌드위치를 준비해서 나온 거야?"
"한참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데, 점심 먹느라 시간 소모하면 안 되잖아? 히히, 그리고 화신정열에서 애들이 도시락 들고 소풍 가는 내용 보고 해보고 싶었거든."
아, 생각해보니까 여긴 동아리 활동이 아닌 이상 그러한 활동을 하는 문화는 없다고 했었지.
물론 알아서 동아리 느낌의 진행이라고 생각해준 모양이지만, 로자리아는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으니까 궁금했을 거다.
근데 정작 나도 술 퍼마시는 남정네 그득그득한 공대 MT 말고는 경험이 없는데?
그나마 수학여행이 있긴 한데, 까놓고 말해서 오히려 소설이나 만화, 애니, 영화 등의 매체로 접하는 소풍이 더 익숙했다.
화신정열에서 그렸던 소풍 장면도 그런 내용이었고.
"아, 맞다. 손부터 씻을게."
마법진을 그리고, 물을 뜻하는 문자인 ▷를 그려내자 허공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에 대충 손을 씻고 있는데, 마법진의 순도를 본 로자리아가 놀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별생각 없었는데, 한 번 성공하니까 완벽한 원이 계속 그려지네...?
"뭐야, 칼리 벌써 마법진 완성했어?"
"방금 처음 성공해서, 연속으로 될 줄은 몰랐는데.... 이것도 성공이라면 성공인가? 조금 더 연습해야 해."
"그래도 엄청 대단한데? 나는 이거 집에서 꽤 오래 배워서 가능했던 건데, 나는 그냥 설명만 해줬는데 이 정도 성과라니. 나보다 더 천재 아니야?"
"에이, 설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히 조금씩 눈치는 채고 있었다.
내가 가진 마법의 재능이 이런 식으로 넘어가기에는 평범한 수준은 아닌 건 맞을 거야.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샤론 원로님이 나를 보고 마력이 어떠니 원석이니 했던 것도 있었고.
심지어 그때 말투를 생각하면, 로자리아랑 비교할 때 오히려 내가 더 대단하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재능이 좋으면 좋은 거지. 로자리아도 천재니까, 같이 통하는 이야기가 많아질 거 아니야?"
"그, 그건 그렇지? 실제로 그라베다 아카데미 입학 정도야 확실한 수준이고."
"그걸 벌써 단언해도 괜찮아? 내가 가서 실수하면 어떻게 하려고."
"할아버지한테 말해서 재시험 칠 수 있도록 압력 넣어달라고 할까?"
"그건 절대로 하지 마라...."
샤론 원로님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라면 무조건 그 정도 편의는 봐주시겠지만.
그랬다간 로자리아랑 내 관계도 밝혀지고, 하여튼 복잡한 일이 많이 벌어지잖아.
그리고 반칙이니까 하기 싫은 것도 있고.
"실수하지 않도록 연습 제대로 할게. 근데 샌드위치 맛있다."
"저번에 사다 놓은 하몬이랑 치즈 넣어서 만든 거야. 간은 맞아?"
"응,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기분 이상하네."
쌀쌀한 날씨일 텐데, 로자리아가 옆에 마법진으로 온도를 올려놓고 있어서인지 오히려 봄처럼 포근한 느낌이었다.
겨울에 봄과 비슷한 체감으로 소풍이 가능한 건 분위기가 좀 신비해서 좋네.
물론 이전에도 내가 검술을 하다가 지쳐 있으면, 로자리아가 와서 마법으로 편하게 해주고 그랬지만.
이게 내 마음가짐에 따라서 같은 상황도 다르게 느끼나 보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잘하고 와."
"알려준 그대로만 하면 된다며. 워낙 선생님이 뛰어났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알았어. 에헤헤, 드디어 칼리랑 같이 아카데미에 다니게 되는구나. 이거 꿈 아니지?"
"그건 이제 합격 통지받으면 알려줄게."
불합격하면 진짜로 꿈이 되는 거니까.
물론 나도 반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 최근 연습한 결과만 보면 떨어질 거란 생각을 하진 않고 있었다.
로자리아가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으니까, 내 실력이면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무사통과일 거다.
"그나저나 내부 장난 아니네."
마치 아카데미 내부가 불편하다 어쩌고 했던 로자리아의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비주얼이었다.
물론 수도보다는 못하겠지만, 전용 음식점이나 판매점들도 들어서 있었고.
전체적으로 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제대로 된 대학 캠퍼스 느낌이 드는 광경이었다.
'아, 하긴. 원래 처음 볼 때는 괜찮아 보이는 법이지.'
정작 나도 대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학식이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입학한 이후로는 한 학기 만에 학식을 거르기 시작했으니까.
이게 사람이라는 게 항상 똑같은 게 있으면 꽤 시설이 좋아도 만족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자세히 보고 눈치를 챈 건데, 서점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그냥 전공 서적만 판매하는 곳이었고.
의류 판매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제복이나 간단한 침구류만 취급하는 곳이었다.
처음 보면 그럴듯하긴 한데, 결국 써보면 대학교 캠퍼스 수준의 시스템이라는 거네.
'조금 귀찮아지겠다.'
로자리아의 상황을 보면, 밖으로 나가기가 꽤 어려운 것으로 보이던데....
만화를 꾸준히 출판해야 하는 내 처지에서는, 그린 원고를 밖에 가져나갈 타이밍이 필요하잖아.
그나마 다행인 건 2학년과 동행하면 동아리 시스템으로 밖에 나갈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럼 로자리아에게 부탁해서 우리가 활동하는데 유리한 동아리라도 하나 만들자고 해봐야겠네.
"보자, 오늘 시험을 보는 장소는..... 아, 이쪽이구나."
안내문을 보면서 천천히 건물을 찾아갔더니,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건물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인간이었지만, 가끔 이종족들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오크의 경우에는 핍박이 강해서 이런 아카데미에 지원하는 경우가 잘 없다고 들었는데, 저번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는 오늘도 답답하다'로 인한 인식 변환 때문인지 은근히 많은 인원이 눈에 들어왔다.
의도한 건 아닌데, 좋은 결과라서 그런지 조금 기분이 좋아지네.
"아, 칼리 흐 글라디스입니다."
"확인했습니다. 대기 번호 37번 팀이고요. 37번 호명되면 다 같이 들어가셔서 시험 진행하시면 됩니다. 이거 수험번호 명찰 장착하시면 됩니다."
"아, 네."
그리고 37번을 호명하는 소리와 함께, 다 같이 시험장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왠지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살짝 당황했다.
생각해보니까 론도 교수님도 여기 소속이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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