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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50화 (50/229)

〈 50화 〉 10권 ­ 그라베다 아카데미(4)

* * *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나를 봤다는 신호를 보냈고.

나는 슬쩍 전체적으로 인사만 하면서 가볍게 받아줬다.

론도 교수님이 시험을 감독하는 교수 중 하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361번 칼리 흐 글라디스 수험생,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

내가 조금 긴장한 상태로 걸어 나가자, 교수들이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첫 번째 시험으로 마법진을 그리라는 안내가 떨어졌다.

굳이 완벽할 필요는 없고,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먹으면서 원을 그려냈다.

"좋습니다. 완벽하네요.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 딱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실력이라고 보겠습니다."

평가 점수를 적는 손을 보니, 아마 10점이라고 적은 것 같았다.

지금 마법진의 순도를 생각하면 10점이 만점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사실 조금만 일그러트려서 9점을 받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내가 아직 그렇게 일부러 조절할 정도의 실력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마법진 시험에서 10점을 받는 일이 흔한 것이 아니라서인지, 같이 시험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 지금 그거에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지.

지금은 내 시험에 집중해서 점수부터 확실하게 따고 생각해야 했다.

"따뜻한 물을 만들어 보시겠어요?"

통에서 쪽지 하나를 뽑아서 말하는 걸 보니, 랜덤으로 정해진 시험을 치르는 모양이었다.

그리 어려운 문제가 나오진 않을 거라더니, 실제로 꽤나 쉬운 문제가 출제된 듯했다.

간단하게 물을 크게 그리고 불을 작게 그리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문제다.

'이 정도 조절은 이제 눈감고도 하지.'

이건 내가 로자리아랑 같이 연습했던 문제 중 하나였다.

대충 이런 문제들이 나온다고 하더니, 시험에 적절한 조합이 별로 없어서인지 바로 기출 문제 그대로 나오네.

마력의 성능 때문에 양은 조금 많았지만, 적당히 따뜻한 물을 허공에 만들어냈다.

"좋습니다. 괜히 마법진이 완벽했던 것이 아니군요. 화력도 크기 조절도 훌륭합니다. 이런 인재를 볼 때마다 항상 즐거워요."

론도 교수님, 그것 때문에 즐거운 건 아니신 것 같은데요.

되게 싱글벙글 나를 쳐다보면서 말씀하시는데, 저러니까 좀 무서워진다.

아는 사람이 시험 감독을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점이었다.

"자, 자리에 돌아가서 대기하시고. 362번 유리아 수험생?"

"예? 네!"

와, 시발 근데 쟤는 무슨 가슴 크기가 저렇게 크냐.

슬쩍 지나가면서 보인 362번 수험생은 거유가 아니라 폭유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한 가슴을 낑낑대면서 운반하고 있었다.

살짝 지저분하게 흩어진 옅은 보라색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그나저나 성이 없는 걸 보면 평민인데,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려나....

"자, 마법진 그려보시겠어요?"

"그, 그게.... 읏!"

역시나.

그녀는 제대로 마법진을 그리지도 못하고, 마력으로 낙서를 하다 실패한 느낌이 허공에 빛무리만 수놓아졌고.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굳어지기 시작했다.

"수험생은 혹시 마법을 배운 적이 없으신가요? 아니면 긴장을 하셔서 그런가요?"

"마, 마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교수들의 표정이 풀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림만으로 입학하는 전형을 위해서 도전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근데 그러면 따로 전형을 나눠두지, 한꺼번에 시험을 다 보고 떨어진 사람 중에서만 전형을 쓰게 하는 건가?

좀 이해가 어려운 방식이네.

"좋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시고...."

그렇게 하나씩 시험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참 여러 사람이 많이 있었다.

마법진은 제대로 못 그렸지만, 마법의 화력은 좋았던 사람도 있고.

마법진은 꽤 괜찮았는데, 실수 때문에 재시도하면서 감점을 먹은 사람도 있었다.

실수하면 감점 추가하고 재시도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좋네.

"370번 니아 흐 알트레스 수험생?"

"예."

잠시만, 알트레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수험생 전원이 화들짝 놀라서 시선이 집중되었다.

알트레스면 왕족 직계 혈족에서만 사용되는 성씨인데, 현재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왕족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따라서 지금 알트레스를 성씨로 사용하는 것은 황제와 그 아들인 황태자 둘밖에 없을 터다.

내가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니아 흐 알트레스'라는 저 남성이 그 황태자겠지.

은발로 시작해서 하늘색으로 끝나는 투톤 머리칼에, 반반한 얼굴 외모가 눈에 띈다.

여자 좀 후리게 생겼네.

심지어 다이아몬드 수저를 넘어서 옥새 수저라니, 저런 인생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마법진부터 시작하시죠."

"예."

그가 담담한 얼굴로 마법진을 그리는 순간, 나는 그가 무조건 합격할 거라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원의 형태를 띠어서, 깨끗한 순도를 가진 마법진이 나타났고.

한 팀에서 2명이나 마법진 만점이 나오는 건 참 오랜만이라는 론도 교수님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심지어 마법 재능도 엄청나게 뛰어나다? 엄청 불공평한 세상이야.'

물론 마법 재능이라도 있는 내가 불평할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집안도 꽤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니, 진짜로 불만 터트리면 욕먹지.

...외모도 '시우'면 모를까 '칼리'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성화와 성수를 하나의 마법진에서 따로 구현해 보세요."

쪽지도 꺼내지 않고, 굉장히 어려운 주문을 넣는 교수의 모습에 조금 의아해졌다.

저러면 문자도 좀 어려운 '성화'를 사용해야 하는 데다, 빈칸 문자를 이용해서 마법진을 나누기도 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수준의 문제였는지, 황태자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지만.

결국은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화력도, 문제를 풀어낸 실력도 완벽하네.'

나도 만점이 적힌 느낌이었는데, 아마 저러면 그도 만점이 적혔을 가능성이 컸다.

작년에는 이런 느낌인 입학생이 로자리아뿐이라고 시끄럽지 않았나?

금년에는 한 팀에서만 두 명이 나온 셈이라 그런지, 교수들의 표정이 굉장히 밝아져 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나가보시면 됩니다. 결과는 최대한 금방 통지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내 그라베다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금방 통지한다더니, 진짜로 시험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통지해주더라.

얘들 처리 속도 왜 이렇게 빠르냐고.

"어차피 합격이라며. 왜 그렇게 긴장해."

"그래도, 딱 눈으로 보는 거랑은 다르잖아!"

"뭐, 그건 그렇지."

편지로 전달된 수험 결과를 뜯어내자, 아카데미 인장이 찍힌 합격 통지서가 안에서 나왔다.

그리고 안에는 합격 내용도 합격 내용인데, 차석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너무 마법진을 잘 그려서 불안하다 싶었는데, 이게 차석이 나와버리네.

수석이 아닌 게 다행인가?

"뭐야, 수석은 아니네?"

"말했잖아. 황태자 전하가 나랑 비슷한 실력이었다고."

"그럼 그림 점수에서 밀린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래도 SD라 자신이 없다 싶었는데, 그래도 하필 그림에서 다른 사람한테 밀리니까 조금 기분이 나쁘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 그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확률이 높았다.

진짜 예쁜 그림이면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마니까.

"궁금한데, 공개 안 하려나?"

"발표 났으니까, 아마 그 평가 점수 때문에 합격자만 공개할 걸?"

"아, 진짜?"

"응, 근데 아마 미리 신입생을 판단하라는 의미라서 재학생이랑 교수만 알고 있을 거야. 공개야 다 되어 있긴 해. 나도 입학하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라서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아하."

결국은 대체 어떤 그림이길래 내가 졌는지를 로자리아와 함께 확인하러 갔다.

와, 근데 여기는 뭐 하는 장소길래 이렇게 전시관처럼 쓰는 거지?

"여기? 원래는 연구 발표 같은 거 하는데 사용할걸? 동아리 성과 발표에도 쓴다고 듣긴 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지원금 받는 동아리만 해당할 거고."

"다용도 발표용이구나? 근데 진짜 괜찮은 그림이 꽤 있네.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

옆에는 점수를 어떻게 받았는지도 적혀 있었는데, 그림이 좀 애매하다 싶으면 전부 마법 실력이 좋았다.

그림 평가 점수는 대부분 이해가 갈 만큼 확실한 이유만 감점이 들어가 있었다.

이런 느낌이면 내 것도 그다지 점수가 낮진 않을 것 같은데.

"역시."

실제로 그리 나쁜 점수는 아니었다.

다만 내 특유의 그림체가 SD에서는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LD보다는 실력이 부족해서 군데군데 문제점이 발견된 느낌이다.

사실 수험용으로 빡세게 그린 게 아니라, 연습용으로 그려놓은 것을 급하게 제출했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아, 여기 있다."

"음, 1점 차이로 졌네."

황태자 전하의 그림은 평범하게 잘 그린 LD체 그림이었는데.

솔직히 내가 봐도 흠잡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냥 평이한 느낌을 주는 느낌이라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그래서인지 나보다는 점수가 좋지만, 만점을 받지는 못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네. 황태자 전하 그림 잘 그리셔."

"그러게."

근데 이거 점수가 높을수록 중앙에 전시해둔 것 같은데.

가장 중앙에 화려하게 장식해둔 그림은 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저렇게 해둔 걸까.

내가 차석인 걸 보면, 마법 점수는 낮고 그림 점수만 높은 모양이던데.

"미친...?"

그냥 평범하게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나체의 소녀를 그려낸 그림인데.

그 소녀의 눈동자에 담긴 공허함과 망가진 듯한 웃음, 묘하게 떨리는 듯한 신체가 엄청난 음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의 퀄리티야 당연히 흠잡을 곳은 없었고, 그것을 넘어서 자지가 감동할 정도의 완벽한 야짤이다.

론도 교수님의 '백광'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백광은 어디까지나 그 참혹함과 현실성으로 그 꼴림을 일으켜 냈다면, 이 작품은 소녀의 표정과 상태 등이 불러일으키는 퇴폐적인 무언가가 감성을 들끓게 한다.

그림에 마력이 담겼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묘한 성적 끌림이 담겨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점수 유일하게 만점. 마법 점수는 전부 0점. 그림 특별 전형으로 합격. 이름은 유리아."

...시험 날 봤던 그 빨통 큰 여자애 이름 아닌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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