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11권 원 그리기에 진심인 사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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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좀 유행을 타고 여기까지 전해진 거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분위기라서 버틸 만했을 텐데.
일단 시켜서 입었지만, 이상하다는 듯 옷을 계속 살피는 여학생 대다수와 그런 여학생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소수 인원의 남학생들이 눈에 들어와서 양심이 쿡쿡 찔렸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옷을 입으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그래도 마법부가 여자가 훨씬 인원이 많은 식이라서, 다 같이 저러고 있으니까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반대로 남성이 훨씬 많은 상태였으면 더 이상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물론 검술부의 경우는 성비가 반대지만, 그래도 거긴 여기보단 옷 디자인이 통일되어 있으니까 여기만큼 여성복에만 눈길이 가진 않았을 거다.
'대부분 당황한 게 보이는데, 의외로 이 녀석은 당황하질 않네.'
그 와중에 니아는 딱히 여성들 몸에 신경을 쓰거나, 옷차림을 신기해하는 식의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게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생각해보면 황태자니까 이번에 적용될 옷의 프로토타입 정도는 미리 봤을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 당황하지 않는 것이 설명되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남자면 무조건 눈길이 갈만한 맨 빨통이 드러나는 상의랑 팬티가 다 보이는 하의를 버티다니 대단하네.
"다 모이셨는지 확인 좀 하겠습니다. 조금만 대기해 주세요. 아무래도 옷 안 맞는 게 있어서 교체하시는 신입생분들이 많네요. 이번에 사이즈가 좀 타이트하게 나와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아까 고생 좀 했어요."
학생회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녹색으로 빛나는 미니스커트를 반짝이며 강당에 나가서 설명을 시작했다.
아, 생각해보니까 로자리아가 오늘 무슨 제복 교체를 한다던가 말했었지.
그게 시발 이거로 일괄로 갈아입힌다는 소리였구나.
걸을 때마다 팬티 다 보이는 거 존나 천박해서 꼴리네.
"다 오신 것 같네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별로 할 말은 없고, 가장 중요한 건 학생회가 인원을 나누어서 차례대로 돌아다니면서 설명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러니까 앞부분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다 넘어가겠습니다. 맞다, 자기소개 빼먹었다.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그녀가 뭔가 열심히 설명하곤 있었는데.
자꾸 그녀의 가슴이랑 팬티에 눈이 가는 바람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니 시발 무슨 야동에서 프로필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옷차림으로 자기소개하니까 나쁜 것만 떠오르네.
"다들 이번에 지급된 제복 디자인에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이 많아 보이네요. 저희도 처음엔 조금 당황했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시면 생각이 조금 달라지실 겁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할 생각이길래, 듣고 나면 이 제복의 굉장함을 알게 된다는 듯한 표정이지?
표정만 보면 되게 경건한 수녀 느낌이라서 더 좀 그렇네.
야한 옷을 입은 타락 수녀 같은 게 생각난다.
'아니지.'
여기는 아카데미니까 수녀 컨셉보다는 더 좋은 설정이 존재한다.
'풍기위원'이 겁나 야한 옷 입고 야한 짓 하고 돌아다니는 타락 설정 마렵네.
그게 진짜 아카데미에서는 국룰 설정 중 하나 아닌가?
"이번 제복 디자인은 어지간한 분들은 다 아시는 '시우 화가'님이 직접 디자인하신 것으로, 그라베다 아카데미에서 최초로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즉, 여러분들은 시우 화가님의 신작을 몸으로 입고 돌아다니는 모델이 되셨다는 거죠."
무슨 패션쇼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물론 여기가 마법부인 만큼, '시우'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이 강한 것은 나도 인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겨우 그런 이유로 이런 디자인의 옷을 감수할만한 학생이....
'왜 많지?'
아까까지 불편함을 호소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족하는 모습에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유명해지면 점 하나만 찍어서 제출하면 예술이라더니, 화가 이름 공개되자마자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다고?
근데 그럴 거면 점보다는 이렇게 야한 걸 당당하게 미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여러모로 당황스러워지는 광경이었다.
"오늘 제가 교수님한테 들었던 이야기와 여러 전문가의 말을 정리해서 이 작품에 담긴 여러 의미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그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게 항상 그렇겠지만, 원래 작품 해석이라는 건 원작자의 의도랑은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 나도 이상한 오해를 자주 받아서 이 지경까지 온 거잖아?
그래서 별로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귀를 막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에 얌전히 듣기 시작했다.
"이 복장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노출이 과하다는 겁니다. 이전부터 여성의 매력은 잘록한 허리로 인해 날씬함과 얼굴을 위주로 주목되어 왔다는 점 아실 겁니다. 물론 나체도 분명한 여성의 매력으로 사용됐죠. 민망하다는 이유로 좀 밀려났을 뿐입니다."
하지만 날씬함을 강조하기 위해 시작된 코르셋은 여성들의 숨통을 조이고, 건강을 위협하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시우 화가는 이전부터 오랜 시간 코르셋보다는 여성의 나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신경을 썼죠.
그리고 심지어 코르셋의 가슴 고정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브래지어라는 개념까지 탄생시켰습니다.
이 제복은 그런 시우 화가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코르셋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맨 배를 드러내는 디자인을 선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부분도 노출이 심하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존 코르셋으로 찾아내려던 아름다움을 대체하기 위해서겠지요.
'오, 진짜 미친 소리인데.'
상상도 못 했던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니까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냥 야하게 그리고 싶어서 그렸던 건데, 그게 무슨 코르셋을 사용하지 못하게 강요하려고 그랬다고?
그럴 리가 있냐?
"여기 학생회에 검술부 친구가 있어서 데려왔습니다. 검술부조차 여성복은 이렇게 배 쪽이 드러나 있습니다. 시우 화가의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이죠."
그리고 제복은 원래 특성상 꾸밀 수 없이 모두 통일된 느낌이어야 합니다.
그게 일반적인 제복이 항상 유지하는 점이고, 학년별 색이 다른 것이 전부죠.
이건 검술부 기준으로 마찬가지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법부는 기본적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화가의 길을 걷는 이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고, 이런 니즈를 최소화한 형태로 드러낼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짧은 치마입니다.
치마 아래에 팬티가 살짝 보이게 함으로써, 팬티의 디자인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거죠!
그 부분은 원본에서 일부러 조금 보이게 길이를 설계해달라고 적혀 있었다는 증언도 제가 들었습니다!
남성복에서는 이 부분을 넥타이로 진행했지만, 옷 디자인이 달라서 여성복은 넥타이를 사용할 수 없었겠죠.
그래서 이렇게 팬티로 넥타이를 대체하기 위해서 이런 디자인을 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대체로 정답으로 취급받는 중입니다.
'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무리 작품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뜻이 된다지만.
저게 저런 식으로 해석이 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일 무서운 건 저거에 어떠한 의심이나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열광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남학생들조차 저 모습을 음심으로 바라본 것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어지러웠다.
팬티가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어버린 천박한 아카데미의 세계라니.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꼴리는데, 이걸 눈앞에서 경험해야 하니까 힘드네. 심지어 그 원인이 나라서 더 힘들고.'
여기서 다 경건한데 나 혼자 천박함을 느끼고 꼴림을 느끼면, 그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가?
하여튼 왠지 혼자 죄를 짓는 기분이라서 양심이 자꾸 찔리게 된다.
근데 꼴리는 걸 어떻게 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취향을 그대로 드러낸 디자인의 야한 옷이 주위에 가득한데.
"다들 이제 옷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품게 되신 것 같으니. 그 옷을 입은 채로, 아카데미를 순회하면서 건물 설명 등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조를 나눠서 학생회가 1명씩 인솔하며 설명을 하는 식으로 아카데미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식당을 어떤 시간에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는 물론이고.
강의를 듣는 건물들이 각기 어떤 식으로 나뉘어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해주고 있었다.
"잠시만 휴식했다가, 다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계속 말했더니 목이 타네요."
그렇게 중간쯤에 휴식을 위해 일정을 일시 정지했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누가 안겨 와서 깜짝 놀랐다.
이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약한 볼륨감과 팔의 부드러운 감촉.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서 뒤늦게 안심했다.
"리아? 아니지, 로자리아 선배?"
"칼리, 찾았다!"
역시나 로자리아가 맞았구나.
내 등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면서 신난 그녀를 보니까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작아서 그런지 좀 낫긴 한데, 그래도 그녀가 저런 복장으로 교내를 활보한다고 생각하니까 좀 기분이 이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녀가 입은 팬티가 꽤나 보수적인 형태의 팬티라는 거다.
딸기 문양이라서 귀여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보면 그 개성이라는 걸 표현한다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정신이 침식당하는 기분이긴 한데.....
" 왜 그리 거기를 열심히 봐? 혹시 팬티가 밑이 트여 있지 않아서 실망했어?"
"미, 미쳤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런 속옷을 입는다는 거야...!"
"히히, 걱정하지 마. 그런 속옷은 오로지 칼리한테만 보여줄 거니까."
그녀는 그렇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내 귓가를 향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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