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54화 (54/229)

〈 54화 〉 11권 ­ 원 그리기에 진심인 사람들(3)

* * *

'나쁘지 않게 나오긴 하네.'

나는 식당에 아침 식사로 나온 음식들의 구성과 맛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대량으로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제대로 된 맛을 내기가 훨씬 어렵다.

그 사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잘 만들어낸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솔직히 여관에서 기본식사로만 처리하면서, 어지간한 끼니를 대충 처리하고 그림만 그리던 시절보다는 낫다.

일단 그것만 봐도 음식의 퀄리티가 꽤나 괜찮은 편이라는 거지.

물론 대학교 학식처럼 메뉴를 고를 수는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것까지 바라긴 어렵겠지.

"후, 따뜻한 스프 먹으니까 잠이 더 온다."

"내가 괜히 약속을 잡았던 건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숙소에 돌아가도 괜찮은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냥 나른하다는 뜻이지."

원래 자고 일어난 직후에는 사람이 잠에 반쯤 취해서 잠에 신경이 많이 간다.

막상 이래도 자려고 하면, 이미 한 번 깨어난 거라서 잠들기 어려울 거다.

들어가서 자더라도 오늘은 일단 둘이서 구경이나 해보고 생각해야지.

"후우, 그나저나 노출이 심하니까 자꾸 눈길이 가네."

"어떤 부분에 눈길이 간다는 거야?"

"그, 레이디들 가슴 아래랑 배꼽이 드러난 배 부분. 개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위야."

"아, 네 미학을 채우는 옷 디자인이라서 눈이 황홀하다는 뜻이었군."

"그런 느낌이지."

그는 그다지 이해는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그럴 수는 있다는 정도로 넘어갔다.

저 새끼는 여자 몸에 관심도 없나?

어제 처음 저 복장을 봤을 때도 별로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긴 했었다.

황태자쯤 되면 성욕에도 초탈해서 살아가는 건가?

"뭐, 이성에 관심 같은 건 없어?"

"글쎄, 별로 없지. 사실 이제까진 항상 교육받는 것에만 집중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친구랑 대화하면서 쉬는 시간 같은 것 자체가 좀 신기해."

"너도 참 고생이다...."

나는 그래도 로자리아가 있어서 다행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저렇게 혼자서 고립된 채로 검술만 연습했겠지.

로자리아가 나한테 꼴 받는 행동을 많이 했는데도,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폐인처럼 검만 휘두르던 나를 케어해주던 유일한 친구였잖아?

그런 사람한테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밥은 다 먹었고. 어디부터 갈래?"

"아마 조금 있으면 수강 신청인지 뭔지 하는 것이 시작되는 것으로 하는데. 그걸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

"뭐, 우리는 어차피 1학년이라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체험은 해봐야 다음에 실제로 할 때 편하겠지."

어제 말로만 들을 때는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형태였다.

그래서 수강 신청의 용도로 사용 중인 강당으로 찾아갔더니, 빼곡한 사람들이 모여서 문 앞에 대기 중이었다.

저 들어가는 문은 가벽으로 만든 임시 문인 것 같은데?

저번에 그림 관람할 때는 저런 벽이랑 문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늘이 1학년이랑 2학년이 수강 신청을 하는 날이라고 되어 있네."

"첫 강의는 이틀 뒤부터, 그럼 오늘 수강 신청하고 나면 내일은 온전히 쉬는 날인가?"

"그렇겠지."

그럼 1학년은 수강 신청에 엄청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테니, 오늘도 좀 여유 있게 쉬고 내일도 쉬면 편하겠네.

하긴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도 있어야 학교에 적응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아카데미에서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짜뒀을 거다.

"아, 근데 이거 시작부터 바로 줄 서는 게 아니었네."

"성적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 그래서 그런가?"

실제로 안내받았던 시간이 되니까, 니아와 나부터 호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성적으로 사람을 끊어서 안에 들여보내는데, 그다음에 한 명씩 원하는 과목에 줄을 서는 식이었다.

공정함을 위해서 이런 형태를 하는 건 알겠는데, 왜 하루나 걸리는지가 이해가 가는 귀찮은 방식이네.

"저기 빵 쌓아둔 이유가 뭔가 했는데, 아마 2학년들 점심으로 준비해둔 건가 보네."

"...여기서 밥을 먹는다는 건가?"

"그렇지. 그래야 계속 진행이 가능하잖아?"

공정함을 위해서 효율 따위는 땅바닥에 박아버린 듯한 시스템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느껴졌는데.

이게 모든 과목의 줄에서 하나의 수강 신청이 끝나면, 그때서야 벨을 울리면서 다음 사람의 신청이 가능했다.

신청이 끝난 사람들은 다른 줄의 맨 뒤에 서서 다음 과목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게 줄마다 속도가 다르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대신 빨리 신청해야 지금 신청하는 사람 중에는 가장 먼저 줄의 뒤를 선점할 수 있으니까 은근히 오랜 시간 끌리지 않고 진행되는 느낌은 있었다.

"우리야, 정해진 대로만 하는 거니까 꽤나 여유 있고 많이 분산되었지만. 저쪽 2학년은 특정 교수님 과목 같은 것에 사람이 엄청나게 몰렸을걸?"

"그래? 같은 과목이라도?"

"어, 심지어 교수님까지 같아도 강의 시간이 다르면 인기가 다를 거야."

아마 그건 세상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강의 듣기 편한 시간표를 원하고, 그 이전에 더 좋은 강의를 듣고 싶어 하니까.

사실 여기가 명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후자가 더 심할 거다.

"그래도 이거 시간표 맘에 든다."

과목별로 도장을 만들어 놓고, 들어올 때 빈 시간표를 건네주는데.

이 부분을 수강 신청하면 찍어주는 식이라서 모든 수강 신청이 끝나면 자연스레 시간표가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만약 수정해서 수강을 취소하면, 취소하는 곳에서 그 부분을 흰색 종이로 가린 상태로 복사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래도 워낙 제시간에 나오지 않은 애들도 많고, 정정할 것도 없어서 1학년 수강 신청은 쉽게 끝날 것 같았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계속해서 이렇게 밀폐된 장소에서 줄을 서느라 사람들과 밀착해있는 상황 자체가 좀 문제였다.

'와, 시발 암컷 냄새가 진동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검술부는 수강 신청이 없어서 마법부만 잔뜩 모여 있는 상태인데.

그렇다면 이 밀폐된 장소에서 여성의 밀도는 얼마나 높을까요?

그리고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따뜻하게 마법으로 관리되고 있는 실내에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

이게 여자들 냄새가 엄청나게 강하게 내부를 뒤덮는데.

그게 그냥 냄새만 뒤덮는 것도 아니고, 가슴골과 밑가슴과 배꼽과 팬티를 다 드러낸 야한 옷차림인 여자애들로 가득하다.

이게 갓 성인이 된 남자가 견디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니까?

솔직히 가슴에 땀이 차서, 그 땀이 기화된 다음에 나중에 천장에서 비처럼 내리는.

유방운 같은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암컷 냄새가 진동했다.

시발 존나 야하네.

그리고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살짝 땀에 젖어서 반들거리는 배 부분은 장난 아닌 비주얼로 변해 있고.

브래지어를 입지 않았는지 엄청나게 흔들리는 젖탱이들은 내 눈을 현혹하면서 최면이라도 거는 것 같았다.

진짜 지옥철처럼 사람 몰려들 2학기 수강 신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졌다.

발기가 멈추지를 않아.

"수고했어."

"흐아, 내부에 온도 조절 잘못한 거 아닐까? 너무 더운데...."

"그랬나? 적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적당했다.

우리한테는 매우 적당했기에 제대로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지.

근데 이게 커다란 가슴이 몸에 달라붙어서 땀이 많이 나는 애들한테는 더울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 같다.

이번에 옷이 노출이 심해서 이렇게 설정한 건진 모르겠는데, 어차피 옷에 따뜻하게 해주는 기능도 있는데 좀 시원하게 맞춰주지 그랬냐.

나야 정신이 좀 혼미하긴 해도 여러모로 즐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름 만족하지만, 그거야 내 입장이고.

가슴 큰 애들은 안 그래도 우리 눈 호강도 시켜주느라 항상 고생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배려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 미안하다 로자리아.'

그렇지만 이건 가슴이 껌딱지인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은 가슴 수준이 존나 높아서 거유부터 폭유까지 다양한 가슴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로자리아는 나에게 완벽한 만족감을 주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젖꼭지도 아름답고, 배꼽도 아름답고, 살결의 촉감부터 냄새까지 아름다운 몸이지만.

심지어 커다랗게 잘 빠진 골반과 엉덩이 라인이 아이를 잘 낳아줄 것 같은 기분 좋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신은 그녀에게 모든 걸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가슴만큼은 내려주지 않았다.

물론 빈유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나도 빈유인 사람이나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거유로 채워야 하는 감성은 거유가 아니면 채울 수 없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로 오늘 제 눈에 많은 황홀함을 잔뜩 주신 마법부 동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후, 시발...."

로자리아는 오늘 수강 신청 때문에 바빠서 나랑 놀아주기는 틀려먹은 모양새고.

나와 계속 놀아줄 것 같던 니아는, 갑자기 불려가는 바람에 나 혼자 남았다.

그렇다고 수강 신청을 끝낸 주제에 아까 그 공간에 들어가서 즐기기에는 양심에 찔리고.

'아니, 애초에 거기 다시 들어가는 건도 좀 위험해.'

슬슬 끓어오르는 음심에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아카데미에 야한 몸이 너무 많다.

꼴리게 생긴 이도 많고, 꼴리는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참 많아.

그러다가 보니까 변태적인 망상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떠다니기 시작했고.

평소에 이런 소재들을 메모했던 습관처럼, 간단한 그림을 그려가면서 전부 디테일하게 정리해버렸다.

그렇게 가슴과 관련된 망상으로 가득 찬 노트를 완성했더니, 살포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어서 그쪽으로 고민을 틀어냈다.

"무지성으로 야한 내용이 가득가득 찬 만화도 그려볼까? 작품의 모든 고찰이 다 야한 거만 있는 거로."

대놓고 딸감을 노리고 만든 듯한 그런 천박한 작품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슬슬 그런 작품도 이 시장에 내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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