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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59화 (59/229)

〈 59화 〉 12권 ­ 행복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3)

* * *

"마법...."

"물론 아카데미에서 배우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마법진 그리는 것부터 알려주는 강의는 없으니까."

그나마 론도 교수님의 '마법 기초학'이 마법진을 그리는 단계부터 알려주는 강의이긴 한데.

이게 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알려주기보다는, 거의 선과 채색에 대한 기초를 분해 분석해서 알려주는 거라서 조금 결이 달랐다.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는 나도 굉장히 도움이 되는 강의라서, 내가 요즘 유일하게 집중하고 있는 강의긴 하지만.

그걸 듣는다고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가능해지지는 않지.

내가 보기엔 마력 사출하는 것부터 모르는 모양인데....

사실 어지간하면 교수님들에게 부탁하면 바로 알려주실만한 부분인데, 아마 얘가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된 거겠지.

그럼 나는 그걸 이용해서 그녀를 동아리에 끌어들이면 된다.

"어때,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나 이런 건 내가 다 대줄게. 그리고 네가 우리랑 같이 그림 그려서 전시하기 시작하면, 그림 사본 같은 걸 팔아서 돈을 벌 수도 있어."

"내 그림으로 돈을 벌어...?"

"당연하지. 네가 봤다던 그 책들도 돈 주고 파는 거였잖아. 그럼 네 그림도 팔 수 있을 거 아니야? 솔직히 네 그림 정도면 상위권은 가볍게 도달할 것 같은데."

"그럼 나는 너한테 반 정도 떼주고 그러는 거야?"

"...뭐?"

얘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대체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내가 지원이라는 투자를 했으니까 당연히 자신이 성공해서 벌어들이는 것을 떼가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아, 확실히 처음 보는 사람이 돈을 번다고 이야기하면 이렇게 들릴 수도 있겠지.

"아니야. 나는 충분히 돈 많아. 이래 봬도 후작가의 자제인데 돈이 없겠어?"

"후작 집안이었어?"

"아, 너는 몰랐겠구나. 그래도 그 정도 되니까 쟤들이 내가 나타나자마자 쫄았지."

"하긴...."

물론 내 돈은 가문의 돈이 아니라 만화를 팔아서 번 것이긴 하지만.

하여튼 돈이 넉넉하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오로지 네가 그린 다른 그림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러려면 너한테도 동기가 필요하잖아?"

"그 동기를 만드는 걸 도와주겠다는 거구나."

"뭐, 사실 마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비슷한 거지. 네가 아까 그런 녀석들한테 우습게 보이느라 시간 낭비하면 그림 그릴 시간이 줄어드니까."

"이해했어. 너는 좋은 사람이구나."

"뭐?"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기분이 이상한데.

사실 나는 지금 너를 속여서 마법을 알려주는 게 대단한 것처럼 꾸미는 중인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좀 미안해져.

"알았어. 대신 마법을 가르쳐주는 건 나중에."

"어?"

"일단 그림 하나부터 그릴게. 그 보상으로 마법을 알려줘."

"그럼 동아리에 들어온다는 거지?"

"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왠지 그녀의 바보 털이 동그랗게 말라면서 O처럼 변한 것 같았다.

사실 쟤 인간이 아니라 무슨 이종족이라서 바보 털이 살아 움직이는 건가?

솔직히 좀 신기하네.

"오케이, 그럼 이제 4명이구나."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하고 싶었는데.

이 세상에는 대형 통신구 정도나 비싼 가격으로 있지, 휴대폰 통신구는 없으니까 연락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이러면 일단 오르카랑 로자리아의 기숙사에 가서, 기숙사에 있는지만 물어본 다음에 없으면 편지 남겨놔야지.

'이런 건 역시 답답하네.'

매번 사람 위치를 예측해 가면서 찾아다녀야 한다니.

휴대폰 있으면 바로 전화해서 상황이 끝났을 일인데, 이건 너무 불편했다.

나중에 마법 좀 배우면 휴대폰을 만들 방법도 같이 연구해봐야겠다.

물론 그게 그렇게 쉬우면 벌써 나왔겠지만.

"아, 칼리."

"다행히 있었네. 아직 밥 먹으러 안 갔어?"

"지금 나가려던 참이었지. 무슨 일이야?"

"동아리 등록 때문에 같이 교수님 보러 가려고 했거든. 그 전에 아침도 같이 먹고. 시간 괜찮아?"

"응! 드디어 만드는 거야?"

"마지막 멤버를 찾아서. 얘가 아마 우리 1학년들 중에서 그림 제일 잘 그릴걸?"

"진짜?"

"안녕."

유리아는 뭔가 표정은 좀 다채로운 편인데 목소리는 힘이 풀려 있어서 딱딱한 느낌이 드네.

일반적으로는 조금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목소리 톤이었지만, 오르카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지 신나게 웃으면서 손을 잡고 흔들었다.

유리아는 자신에게 그런 반응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듯, 바보 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그거 사실 강아지 꼬리냐?

"칼리! 어, 옆에 있는 애들은 누구야?"

"누구긴, 내가 힘들게 찾아온 동아리 멤버들이지. 그래도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같이 아침 먹으러 갈 수 있겠어."

"히잉, 아침부터 칼리가 같이 데이트 하자는 줄 알고 기분 좋아졌는데.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칼리는 양옆에 여자를 끼고 오네...."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제대로 준비하고 나와."

로자리아가 준비하러 들어가자.

우리는 아침이 되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마법부 선배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평소에 보지 못하던 사람들의 가슴골이랑 팬티를 구경하는 맛이 있긴 했는데, 그것보다 자꾸 나를 보면서 숙덕거리는 것이 이미 소문이 다 퍼진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아마 로자리아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내용이겠지.

"안녕. 하, 근데 칼리는 결국 여자만 데려왔네."

"왜, 남자 있으면 나 말고 걔랑 놀게?"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쟤들이 순진한 칼리를 꼬실까 봐 그렇지."

"그렇게 막말하다가 겨우 구한 동아리원 날아가면 어쩌려고...."

"앗...."

물론 오르카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유리아는 별로 상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긴 했는데.

동아리장님의 첫인상이 질투라니 보기 좀 그렇잖아.

물론 동아리에 나 빼고 다 미소녀만 있어서 행복한 건 사실이긴 한데....

"나는 로자리아 드 마기우스라고 해. 너희들은?"

"유리아입니다."

"로자리아 선배 잘 부탁드려요! 오르카라고 해요!"

"좋아. 미리 교수님한테 메모 적어두고 아침 먹으러 가자."

그렇게 만화 동아리의 초기 멤버들이 모여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슬쩍 내 어깨를 친 로자리아가 멤버들에 관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물론 두 사람에겐 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게 속삭여서.

"유리아라니, 그 그림 그린 애 맞지?"

"응, 우연히 아침에 만나서 물어봤어. 그림 때문에 좀 탐나는 인재긴 하잖아?"

"흐응.... 그럼 저 검술부 여자애는 뭐야? 검술부 할 거면 남자애를 골라도 되잖아."

"어.... 우연히 밖에서 알던 녀석인데, 만화를 되게 좋아해서. 일단 물어본 거지."

"밖에서 아는 사이...? 수상한데. 칼리 너 내가 방학에 아카데미 들어오면 여자들 꾀러 돌아다녔던 거 아니야?"

"아니야."

내가 미쳤냐?

그럴 시간이 있으면 만화를 한 장이라도 더 그리지.

물론 여자 말고 여자 그림을 관음하면서 즐긴 시간은 매우 많았다만.

솔직히 요즘 전시관에 꼴리는 그림 많이 올라오긴 하더라고.

"네, 들어오세요."

"교수님! 4명 모아서 왔어요! 가능하면 얼굴 보게 데려오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서 다 같이 왔어요."

"아, 그렇군요. 마법부 학생들은 다 아는 얼굴들이고...."

"검술부 1학년 오르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활기차서 좋네. 오르카라...."

학생명부 비슷한 무언가를 꺼낸 론도 교수님이 잠시 내용을 읽어보더니 헛웃음을 흘리셨다.

왜 저러시는 거지?

혹시 오르카한테 뭔가 특이한 거라도 있는 건가?

물론 오크와 엘프의 혼혈이라는 특별한 종족이긴 한....

"만화 동아리, 솔직히 좀 무섭네요. 학부별 수석 입학생만 3명이고 남은 하나도 전체 차석이라. 이런 엘리트 4명이 달라붙어서 만들겠다는 동아리라니. 가만히 있는데 보석이 굴러들어온 기분이에요."

"뭐야, 오르카 너 수석이었어!?"

"응? 그게 뭔데?"

하긴 그걸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니까 오르카는 몰랐겠구나.

전체 점수를 통해서 마법부와 검술부를 합한 수석과 차석만 알려주는 식이니까.

사실 그것도 합격 통지서에 적혀 있는 정도가 끝이고 아무런 혜택도 없다.

왜냐면 이 아카데미는 애초에 모든 학생이 전액 장학금을 받는 식으로 돌아가니까.

"이걸 로자리아 학생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칼리 학생의 능력인 걸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는 기분이 좋아요. 그냥 동아리 담당 교수로 들어가는 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네요."

"네?"

"좀 팍팍 밀어주겠다는 말입니다. 사실 제가 기획하던 것도 있으니 그걸 여러분에게 맡기면 되겠네요."

와, 듣자마자 굉장히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말이 나왔다.

이래서 교수라는 족속들에게는 능력을 보이면 위험해.

지구에서도 그렇게 대학원생으로 끌려갔다가 맨날 노예처럼 살아가며 괴로워하던 동기들을 많이 봤다.

정작 나는 대학원은커녕 학교를 때려치웠다 보니 신나게 놀렸지만, 아마 걔들도 교수님에게 이런 식으로 당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좀 무서워졌다.

"그렇게 어려운 걸 요구할 생각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교수님 첫 강의에서 그런 신뢰는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후후,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사실 어려운 걸 요구한다고 해볼까요? 엄청 중요한 일이거든요."

론도 교수님은 웃으면서 농담을 던지더니, 자기가 기획하고 있었던 거라면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서류에는 마법부 부속 건물 '만화관'의 설치에 대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만화관이라고?

"사실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건데, 저는 아카데미에 도서관처럼 만화를 보는 만화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매번 만화를 구하러 밖에 나가려고 하는 게 매우 안타까웠거든요."

"아?"

"그래서 그 만화관에 채울 만화의 선별 작업을 여러분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즉, 여러분 동아리는 동아리지만 만화관의 관리기구 역할도 하게 되는 거죠."

아니, 저희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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