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12권 행복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4)
* * *
"나는 론도 교수님이 밉다."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우리보다 훨씬 많이 리스트 정리하지 않았어?"
"예전에 읽어뒀던 것들 정리하는 거지."
최근 작품들이야 다른 동아리원들에게 맡겼지만, 이전에 올라온 것들은 괜찮은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들로 만화관의 만화책 구매 리스트를 짜는 중이었다.
우리는 분명 아카데미 밖이나 놀러 다니고, 동아리 방으로 꿀이나 빨려고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어느새 우리가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이 생겨 있었다.
나 너무 슬퍼.
"힘들다.... 기억이 애매해서 더 힘들어. 구매한 책들 말고도 괜찮다 싶은 건 다 사야 물량이 되니까 머리 부서질 것 같아."
"그래도 그만큼 이득이 있잖아. 네가 원하던 아무도 못 건드리는 동아리에, 엄청나게 큰 동아리방까지!"
"솔직히 그런 장점도 없으면 절대로 안 했지."
거절하기에는 지금만 좀 고생하면 후에 이득 볼 것들이 많았다.
솔직히 신작 만화 훑으면서 재밌는 거 찾아내는 거야 우리 동아리가 취미로 진행할 수 있는 거고.
특히 그 분야를 오르카가 담당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바빠도 괜찮다.
오르카가 일차적으로 가져오면, 그걸 읽은 나랑 로자리아가 통과시킨 작품이 최종 리스트가 되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 일만 하면, 거의 학생회와 비슷한 크기의 동아리 방을 얻을 수 있고.
심지어 일반적인 동아리로 취급되지 않아서, 여러모로 편의를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잖아.
뭐, 교수님은 이 일을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이었을 테니 교수님대로 이득이시겠지만.
일단 교수님이 동아리 활동에 간섭할 수 없다는 주장을 때려 박은 것만 해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보는 사람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인기가 좋은 화가 작품은 수량을 좀 늘려서 하고...."
"그럼 시우 화가님 작품은 한 10개씩 둬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좀 오버긴 한데?
어차피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이 다 본 것일 텐데, 굳이 만화관에 여러 개 둘 필요가 없다.
대신 인기 화가의 신작 경우에는 좀 더 수량을 확보하는 쪽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리스트랑 진행 시스템만 정해주면, 일하는 건 따로 직원을 굴리게 되어 있어서 힘들 건 없었다.
원한다면 도서관처럼 학생이 맡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일에 시간을 쓸 만한 여유가 없으니까.
나중에 그런 거 하고 싶어 하는 부원이 생기면 그때 일임하면 되겠지.
"리스트 완성된 건 교수님 가져다드리면 되고.... 슬슬 우리 나갈까?"
사실 저번에 사 온 신작들까지 해서 리스트 작성을 급하게 진행한 이유가 있다.
이거 딱 제출하고 타이밍 좋게 전시관에 가고 싶었거든.
신작 사러 간다는 핑계를 대려면 지금 일을 마무리해야지.
'그리고 전시관에 가고 싶은 이유야 당연히....'
이번에 그리고 있던 '행복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신작 원고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표지는 냥제리를 입은 채로, 가슴 사이에서 정액을 주르륵 흘리는 일러스트로 정했다.
가슴을 보지처럼 쓰는 이야기니까 이거만큼 작품의 주제를 잘 관통하는 게 없더라고.
"아, 그럼 주문을 미리 그 정도로 잡아두시겠다는 거죠?"
"네, 이건 시우 스승님이 아니라 아카데미 이름으로 제가 하는 거예요. 반칙 같긴 한데, 어쩌겠어요. 제가 둘 다 담당자인데."
만화관은 오로지 만화를 보는 공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보고 소장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만화관을 통해서 대리 구매를 하는 식으로 물량을 받을 수 있고.
유명 작가의 경우 예약 판매 같은 것도 같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었다.
다만 이번 작품은 후속작이 아닌 만큼, 예약 판매보단 선주문에 가까워서 만들어지는 대로 출고되는 거라 초기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데.
나야 최대한 반응을 빨리 볼 수 있는 것이 아카데미다 보니까 아카데미 쪽을 우선해서 물량을 공급받고 싶었다.
뭐, 사실 선주문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주문을 넣는 셈이긴 하지.
"알겠습니다. 뭐, 꼼수긴 하지만 특별히 문제 될 것도 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이제 신작은 공장에서 출고가 되기만 기다리면 되고.
남은 건....
'이번에 그림을 그려서 전시한 유리아지.'
이번에 유리아가 그린 그림은 기존의 그림과 비슷한 감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내용은 훨씬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기존에는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던 것이.
지금은 커다란 남자의 품에서 기승위로 허리를 흔드는 모습으로 변화했으니까.
물어보니까, 원래 그리려던 건 이거였는데 이런 장면이 어떤 모습인지를 몰라서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걸 이번에 만화를 대량으로 보면서 섹스가 뭔지 익히고 그려냈다는 거지.
대부분 참고한 작품이 내 것이라 그런 건지, 자지 모양에 맞게 배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강렬한 연출이 그대로 담겨있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전작에 있던 여자 캐릭터의 공허함과 망가진 웃음이 자아내는 '가학심' 만큼은 그대로 담겨있었고.
정액이 온몸에 말라붙은 듯한 연출이나, 목에 생긴 멍 같은 부분이 그 소녀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는 그림이었다.
시발 존나 꼴려.
"제목은 뭐로 할 거야?"
"글쎄. 지난 작품의 이름이 '휴식'이었잖아? 그럼 이먼엔.... '일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작품의 이름이 일상이라, 되게 느낌 있네."
"그래? 그냥 딱 그 정도가 괜찮다 싶었는데."
말은 무뚝뚝하게 하지만, 내가 칭찬한 것이 기분 좋은지 바보 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신기하단 말이야.
무슨 원리로 저렇게 움직이는 거지?
"제출하고 와. 그럼 오늘부터 이제 마법 알려주면 되나?"
"응."
유리아는 정말로 나와 약속했던 대로 그림 하나를 그릴 때까지 마법을 배우지 않았다.
슬슬 실습이 들어가는 강의들이 있어서, 미리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다 거절하더라.
덕분에 그 강의들은 매번 마법 하나 발동 못 하고 시간을 날려 먹는 장면을 직관해야 했다.
그래도 마법 대신 그림 그리는 부분은 좀 알려주긴 했지만, 사실 대부분은 론도 교수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알려준 거라서 그리 어려울 건 없었고.
기본적으로 그림에 관한 재능이 뛰어나서 조금만 알려주면 알아서 다 이해하기도 했다.
솔직히 할 게 없으니까 그냥 나는 꿀만 빨았어.
"내가 말한 대로 했지?"
"응, 판매는 사본만. 최소 판매 가능 추천수가 되면 그 이후로 계속 판매 진행."
"좋아. 아마 다음에 왔을 때는 돈 좀 벌 수 있겠네."
"그렇게 내 그림이 괜찮아?"
"슬슬 내 안목을 좀 믿어줘."
"응."
물론 취향을 좀 타는 그림이긴 하겠지만.
아마 이게 푹 빠진 사람들은 무조건 추천을 누르고 알리기까지 할만한 그림이고.
좀 알려지면 추천수가 팍팍 오르는 특성상, 내가 보기엔 무조건 성공할 작품이다.
"걱정은 그만하고. 돌아가서 마법 배울 준비나 하자."
"응."
그러한 시간이 지나 현재.
나는 약속대로 유리아에게 마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몸을 푸는 중이었다.
솔직히 마법진 그릴 때마다 느끼는 건데 팔에 무리가 많이 간다.
괜히 기초 체육 같은 과목을 마법부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더라.
"일단 이거 들고 팔에서 힘을 좀 빼봐. 붙잡던 걸 놓아준다는 느낌으로. 아니 펜을 떨어트리진 말고."
"이렇게?"
"어, 그대로 조금씩 무언가 빠져나간다는 걸 상상해."
사실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이게 이런 펜을 사용해서 도움을 받아야 처음 감각을 익히기가 쉬울 뿐이다.
아주 간단한 팁인데, 왠지 대단한 걸 알려주는 것처럼 상황이 진행된 바람에 이걸 지금에서야 알려주게 되어버렸다.
곧 유리아가 들고 있는 펜 끝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간단하게 마력 발현에 성공하자, 유리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 여기만 잘 뚫었으면 나머지는 쉽지.
"그리고 여기서 원을 그려내면 될 것 같아."
"아, 마법진을 그린다고 했었지?"
"응. 최대한 동그라미에 가까우면 성공이야."
내 말을 듣자마자 유리아는 무표정하게 손을 휘둘러서 동그란 마법진을 그렸는데.
단번에 완벽하게 동그라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축하하려고 했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져서 말을 멈췄다.
"뭐야?"
원래라면 이 정도로 완벽하게 원을 그리면, 거의 투명해져서 순도 높은 마법진이 되는 것이 정상적인 순리다.
그런데 유리아가 그린 마법진은 어지간한 망한 마법진보다 더 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거 왜 이러는 거지?
"이상해?"
"조금. 혹시 다시 해볼래?"
"응."
다시 그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줄 몰라서 되게 당황스럽네.
이런 건 자기 의지가 아니라 강제로 도구 같은 걸 이용해서 그릴 때만 벌어지는 현상 아니었나?
"혹시 왼손으로 해볼 수 있어?"
유리아가 왼손으로 그린 그림은 아까보다는 훨씬 삐뚤삐뚤한 원이었지만.
순도는 훨씬 좋아졌다고 해도 되는 상태였다.
왜 오른손으로 그리면 문제가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우선 왼손부터 시작하는 게 맞겠네.
"평소에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려서 어색하겠지만, 마법진만 왼손으로 연습하자. 아마 발동할 때 마법은 오른손으로 그려도 괜찮을 거야."
"잠시만, 처음이라 그래. 몇 번 해보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손을 바꾸고 완벽한 원을 그리는 건, 아무리 네가 천재라도 너무 난이도가 있는...?
뭐야 시발.
"이게 되네...."
"될 것 같더라고. 근데 왼손이 오른손보다 어렵긴 해. 이상하게 손이 흔들려."
"오른손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
"응."
그럼 오른손이 마법진 순도가 낮은 건, 오른손이 마력 반발 비슷한 걸 느끼지 못해서인가?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일단 해결했으니 다음 것부터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대충 감이 오지? 마법 문자를 안에 그리고 마력을 흘려보내면 되는 거야."
"이렇게?"
갑자기 시작부터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마법 문자 조합을 그려내길래 당황해서 멈추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미 엄청난 속도로 완성해서 마력까지 불어넣고 있어서 당황했다.
미친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응?"
"와, 진짜 되네."
대충 봐도 10개가 넘는 마법 문자가 서로 연계되면서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입을 떡 벌리면서 경악했다.
시발 너 나 속인 거고 사실은 마법 쓸 줄 알지?
* * *